'멀구슬나무'
남쪽 바닷가 가까운 곳에 이르면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다. 초여름 연보랏빛의 환상적인 색의 향연을 달콤한 향기까지 떠올리며 열매를 본다. 시린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꽃으로 피었다.


꽃을 보고 난 후 잊혀진 나무를 겨울에 다시 주목하는 것은 열매 때문이다. 파란색의 열매가 가을에 노랗게 익는다. 긴 열매 자루에 주렁주렁 매달려 다음해 여름까지 달려 있다. 달콤하여 먹을 수 있다고는 하나 알 수 없다.


오이씨처럼 생긴 씨는 무척 단단하다. 염주를 만들 수 있다 하여 처음에는 '목구슬나무'로 불리다가 이후에 '멀구슬나무'가 된 것이라 한다.


"비 개인 방죽에 서늘한 기운 몰려오고
멀구슬나무 꽃바람 멎고 나니 해가 처음 길어지네
보리이삭 밤사이 부쩍 자라서
들 언덕엔 초록빛이 무색해졌네······"


*다산 정약용의 농가의 늦봄田家晩春이란 시의 일부다. 남녘땅 강진 바닷가에서 유배를 살았으니 그때도 이 나무는 주목 받았나 보다.


초여름 꽃과 향기에 주목하여 꼭 찾아보는 나무다. 이 나무의 매혹적인 멋 때문에 '경계'라는 꽃말을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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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피터 베일리 그림, 유영만 옮김 / 나무생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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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적을 만들어 온 사람의 힘

세상에는 불가능을 현실로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법 많다모두가 살지 못하고 떠난 땅에 남아 삶의 터전을 일군 사람들도 그중 주목받는 사람들이다우리 역사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일제 식민지 지배를 피해 시베리아로 떠났던 사람들이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 내몰렸고 그곳을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탈바꿈 시켰다하지만그들은 집단이었다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모진 환경이었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어쩜 의지되고 살았을 것이다이와는 달리 혼자의 힘으로 기적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에 등장하는 사람도 역시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프로방스 언덕에 살던 나이 든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가 그 사람이다늙은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는 양을 돌보면서 황량한 언덕과 폐허가 된 마을에 나무를 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바깥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도 없이 오로지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에 몰두하여 황무지를 숲으로 가꾸어 사람들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숲으로 가꾸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이미애의 마오우쑤 사막에 나무를 심은 여자 인위쩐 이야기를 담은 사막에 숲이 있다’(서해문집, 2006)가 있다이 이야기의 주인공 인위쩐과 바이완샹은 사막 한가운데 달랑 두 사람만 남겨졌고 그곳에서 살아야했다그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갈 수도 없었다떠날 수 없다면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사막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첫발은 나무시장에 가서 일해주고 그 품삯만큼의 대가를 나무로 가져온 것이다그것도 두 사람이 등에 지고서 사막을 건넜다그렇게 시작된 나무심기는 현재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의 도토리 100개나 인위쩐과 바이완샹 부부의 나무묘목 600그루에서 비롯된 기적의 출발은 미약해보이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던 행보에 기적을 일군 힘이 있었다황폐해진 환경을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던 것이다사막이나 황폐한 언덕은 자연의 환경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기에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오고 미래를 희망으로 가꿔갈 단초를 만들어 간다닮이 있는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하다생명의 씨앗으로 대변되는 나무를 심었다는 점을 매개로 미약한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일이 기적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역자 유영만이 주목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황폐한 언덕과 사막은 다연환경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과 알 수 없는 내일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 역시 그 황폐한 언덕과 사막에 다름 아니다라는 시각이다결국 사람들은 그곳에서 감동하고 희망을 발견한다황무지에서 희망을 일군 기적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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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가 들려주는 나무에게 배우는 지혜
유영만 지음 / 나무생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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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인간의 삶의 방식은 다르지 않다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들과 산으로 식물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품속으로 나들이를 다니며 실감하는 레이첼 카슨의 말이다무심히 그 품속에 그냥 들어서서 다가오는 무엇이든 다 가슴에 품을 수 있었던 경험은 그 무엇 하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내적 자산이 되었다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의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는 이런 관점에서 나무를 느끼고 그 나무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삶의 가치관을 돌아보게 하는 안내서다.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근본원리방식을 나무의 생을 들여다보며 나무가 살아가는 힘의 근원을 근거로 다시금 사람의 삶으로 되돌아간다이를 위해 저자 유영만이 나무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은 몇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나무는 새봄의 새싹을 녹음으로 바꾸고불타는 단풍과 낙엽으로 한 시절을 정리하면서 맨몸으로 겨울맞이를 하는” 나무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나무는 나무(裸務)라는 점이다주어진 환경에 마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존재하는 점에 주목한다다음으로 나무는 한 자리에 그냥 존재하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가운데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춤을 추며 살아” 가는 존재로 나무는 나무(裸舞)라는 시각이다.

 

이를 바탕으로 자기 본래의 모습즉 나력(裸力)으로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보여주려는 나무의 치열한 몸부림에서 외형에 치중하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돌아보고자 한다나무가 살아가는 방식을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공감하여 삶의 방식을 바꿔가는 힘으로 삼자는 의미다.

 

이는 곧 "나무에게는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다"라는 말로 함축된다자신이 살아가는 외부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은 나무와 다르지 않지만 그 외형에 의존적으로 끌려가며 살아가는 사람의 삶도 결국은 붙박이로 운명 지워진 나무가 그 운명을 개척해가는 것과 결국은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잎 넓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것이 등나무다나 가을 햇볕에 익어가는 노란 살구는 빛깔만 좋은 것이 아니라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다의 문장에서 등나무의 잎은 칡덩굴보다도 넓지 않다는 점과 살구는 가을에 익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의 오류다팩트를 제시하는 부분에서의 이런 실수는 전체적 내용에 의구심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나무의 철학’, ‘나무의 존재 방식’,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나무들등으로 나무가 살아가는 방식을 생태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이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와 노력에 공감하는 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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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눈 되지 못하여 비로 내린다. 스며들기에는 눈보다 비가 제격이라는듯 한겨울 내리는 비치고는 속삭이듯 살포시 내린다. 찬 기운에 허망하게 당한 언 가슴을 두드리고는 이내 아니한듯 딴청을 부리는 비다.


겨울비 1

먼 바람을 타고 너는 내린다 
너 지나온 이 나라 서러운 산천 
눈 되지 못하고 눈 되지 않고 
차마 그 그리움 어쩌지 못하고 
감추지 못하고 뚝뚝 
내 눈앞에 다가와 떨구는 맑은 눈물 
겨울비, 우는 사람아


*박남준의 시 '겨울비1'이다. "눈 되지 못하고 눈 되지 않고" "내 눈앞에 다가와 떨구는 맑은 눈물"이라고 한다. 시인의 눈앞에 내린 겨울비가 지금 내 눈앞에 내리는 그 비와 다르지 않았나 보다.


포근한 그 온기를 이기지 못했으리라. 하늘의 맑은 눈물로 마른 땅이 물기를 품는 것이나 스스로의 체온으로 시린가슴을 덥히는 것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겨울을 건너는 차선의 방법이다.


"눈 되지 못하고 눈 되지 않고" 
까실한 가을볕을 품었던 그 온기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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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꽝나무'
초록잎을 간직하고 메마른 추운 겨울 푸르름을 선사한다. 햇살 받아 싱그러움을 전하기에 볕 좋은 겨울 나무 둘레를 서성거리며 눈맞춤 한다. 이제는 폐교가 된 시골 초등학교 화단에서 여전히 푸르게 자라고 있다. 내가 졸업한 학교라 간혹 찾아가 어루만져보는 나무들 중 하나다.


꽃은 보지도 못했지만 콩알만한 열매로 나무를 만난다. 유독 까만색이라 더 주목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잘하지만 도톰한 잎사귀가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없이 달리고 잘라도 잘라도 새 가지를 계속해서 뻗는다.


꽝꽝나무라는 이름은 잎에 살이 많아 불길 속에 던져 넣으면 잎 속의 공기가 갑자기 팽창하여 터지면서 '꽝꽝' 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크지도 않고 꽃도 주목받지 못하지만 묵묵히 자라 품을 넓혀가는 나무에서 '참고 견디어낼 줄 아는'이라는 꽃말을 얻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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