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월하정인'
은근하다. 정 깊은 속내는 쉽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마음 밝은 이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마음을 크고 깊게 울리는 것으로 깊은 속정만한 것은 없다.


무심한듯 보이지만 앞서 걷거나 뒤를 따르는 모습만으로도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둘 사이 정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어디선가 이와 비슷한 장면을 분명히 봤는데ᆢ? 다시 '월하정인'을 떠올린다.


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달빛이 어두운 삼경에
두사람의 마음은 두사람만 알겠지


화사한 색감, 절묘한 장면 포착에 은근한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기가막힌 재주를 가진 이가 바로 조선시대 화원 혜원 신윤복이다. '혜원전신첩'에 담긴 그의 그림 모두는 은근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신윤복의 '월하정인' 속 인물이 그려내는 분위기를 빼다박은 듯 닮았다. 지켜보는 이에게도 스미듯 번지는 은근한 마음이 어쩌면 월하정인을 그리던 신윤복의 그 마음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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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뜰이 주인의 욕심으로 넘친다. 아직도 함께 하고픈 풀과 나무가 천지인데 더 이상 들어올 틈이 없어 보인다. 방법은 나누는 것일까? 보내야 들어올 틈이 생기리라.


모든 인연이란 것이 의도하고는 상관없이도 오나보다. 납매와 삼지닥나무가 들어오면서 함께온 나무가 둘 더 있는데 어린 묘목이라 무엇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한해를 잘 견더주더니 그 중 하나에 꽃이 피었다. 비로소 나무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되었다.


미선나무, 서울 나들이때 찾아간 경복궁에서 보았던 나무를 내 뜰에 들이고 싶었으나 방법을 찾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 이렇게 찾아와 주었다. 신비할 따름이다.


미선나무의 미선尾扇은 대나무를 얇게 펴서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물들인 한지를 붙인 것으로 궁중의 가례나 의식에 사용되었던 부채를 말한다. 미선나무를 발견하여 이름을 붙일 때, 열매 모양이 이 부채를 닮았다고 하여 미선나무라 했다고 한다.


미선나무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고 오직 우리 강산에만 자라는 나무라 하니 더 마음이 가는 나무다. 하얀색의 미선, 분홍빛을 띤 분홍미선, 맑고 연한 노란빛의 상아미선, 빛의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리 나타나는 푸른미선 등이 있다.


앙증맞은 모습과 은은한 향기에 색감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도록 매력적인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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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다.
땅에 심어둔 봄이 깨어나겠다.


"꽃씨 하나 얻으려고 일 년 그 꽃 보려고 다시 일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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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섬진강 박시인

연분홍 봄볕에도 가슴이 시리더냐. 
그리워 뒤척이는 밤 등불은 껐느냐 
누옥의 처마 풍경소리는 청보리 밭 떠나고 
지천명사내 무릎 처로 강바람만 차더라.

봄은 오고 야단이야 꽃비는 오고 호들갑 
십리 벗길 환장해도 떠날 것은 떠나더라. 
무슨 강이 뛰어 내릴 여울하나 없더냐. 
악양천 수양버들만 머리 풀어 감더라.

법성포 소년바람이 화개장터에 놀고 
반백의 이마위로 무애의 취기가 논다 
붉디붉은 청춘의 노래 초록강물에 주고 
쌍계사 골짜기위로 되새 떼만 날리더라.

그 누가 날 부릅디까. 적멸대숲에 묻고 
양지 녘 도랑 위 순정편지만 쓰더라.

*정태춘의 '섬진강 박시인'이라는 노래다. 봄 하면 섬진강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매화, 산수유, 벚꽃 흐드러지는 강물따라 걷거나 달리고자 섬진강을 찾는다. 이 봄 그 섬진강이 전하는 봄기운을 놓치지 말자.

이 노래 섬진강 박시인의 주인공은 악양에 사는 '박남준' 시인이다.

https://youtu.be/GxRXQKSTIdI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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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
봄을 기다린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같은 장소를 지켜보기를 4년째다. 올해는 유독 더디 깨어나 애를 태우더니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더해질수록 보는 시선도 대하는 마음도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는 이쁜 꽃을 피우는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존재하는 근거가 되는 공간에서 공존하는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너를 만난다. 그 안에 바라보는 나도 있다.


마냥 좋아 더 가까이 눈맞추는 것에서 이젠 적당한 거리를 둔다. 여기저기서 자생지가 파괴되는 소식을 접하고 조심한다지만 내 발길에도 상처 입었을 것이 분명하기에 조심스런 마음에 스스로 출입하는 문을 닫기도 했다. 그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오랫동안 함께 공존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안다.


사람과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봄을 기다려 만나는 모든 생명들의 신비로움 속에 진정으로 주목해야할 가치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찾고 만들어지고 유지되어야 한다.


꽃에 기대어 조금씩 그 꽃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믿음', '신뢰'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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