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신개정판 생각나무 ART 7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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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림으로 볼 수 있다면?
아름다움은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특정한 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모든 사람들이 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한마디로 아름다움에 대해 정의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미술이다.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바로 그 아름다움을 느끼고 누리려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내 주변에는 늦은 나이에 그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림 공부에 뛰어든 사람들이 많다. 바쁜 시간을 쪼개고 열정을 쏟아 부여 10여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들 역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몇 년 사이 그림과 관객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림 읽어주는 책’이나 미술관의 ‘기획전시’ 그리고 각종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그림수업’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행사들은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보이지 않은 벽에 막혀 멀게만 느껴지는 그림을 누구나 감상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서양화를 대상으로 하는 이주은, 이명옥, 그림과 문학의 함께 이야기하는 고연희, 우리그림을 맛깔나게 읽어주는 오주석,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서양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손철주 등이 그들이다. 

이렇게 탁월한 혜안을 가진 그림 읽어주는 저자들의 애정 어린 노력으로 사람들의 그림에 대한 열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림은 나와는 몇 발자국씩이나 떨어진 곳에 걸려있는 대상일 뿐이 경우가 많은 것 또한 현실이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은 이 거리는 무엇이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그림을 그림으로 보고 느끼며 즐길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이 이 책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의 출발점이 아닐까 한다. 

손철주의 책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는 1990년대 말에 출간되어 스테디셀러에 오를 만큼 독자들로부터 호응을 받은 미술교양서책라고 한다. 독자들이 이 책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누리고 싶지만 어떤 방법이 있는지 고민하던 사람들의 가슴에 담긴 그림에 대한 열망을 위해 스스로 첫발을 내 딛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이 책은 그만큼 편안하게 만만하게 그림과 그림을 그린 화가 그리고 그림과 어우러지는 주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최북, 반 고흐, 브란쿠시, 쿠르베, 안견, 프리다 칼로, 마돈나, 피카소 등 이름만 들어도 알 것 같은 유명한 작가들과 이름도 생소한 작가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과 이들의 작품을 통해 작가와 작품이야기, 우리 것 그리고 미술동네, 감상이야기를 비롯하여 그림에 얽힌 뒷이야기 등을 통해 대상으로만 존재하던 그림을 한발 더 내게로 다가오게 만들어 주고 있다. 

유명인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보이듯 사람들은 뒷 담화에 관심이 많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의 관심사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격이 떨어지는 속된 이야기들은 아니다. 작가들의 덜 알려진 과거사, 작가들의 빗나간 욕망과 넘치는 열정, 미술시장 얽힌 이야기를 비롯하여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서양화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우리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는 조선시대 우리 그림의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림과 친해지기 위해선 우선 ‘그림을 그림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현대 미술의 난해한 표현들 앞에서면 늘 어색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림은 그냥 그림일 뿐이다’라며 현실에서 자신이 가진 이미지를 허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야기를 통해 그림에 대한 관심을 마음속에만 가두어 두지 말고 그림 읽어주는 책이든 미술관이든 그 무엇을 이용하더라도 직접 접해보는 기회를 늘려가라고 한다. 알고 본 그림과 그렇지 않고 본 그림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기에 이런 느낌은 그림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서는 자신을 발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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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3 - 미천왕, 낙랑 축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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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고구려, 다시 출발이다
문학작품을 통해 역사를 본다는 것은 대부분 인물중심이다. 한 인물이 몸으로 써내려온 삶의 모든 것을 통틀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그 흐름을 집중시키기엔 그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인물 중심의 역사 그것도 한 나라의 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왕을 그려나가는 이야기는 한 나라의 운명과 더불어 당시 국제정세를 포함한 시대정신을 읽기에 어쩌면 가장 적절한 방법일 수도 있다. 하여, 많은 작가들이 영웅을 중심으로 한 역사소설을 발표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김진명 작가의 고구려 역시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왕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고구려의 상황과 국제정치정세를 바탕으로 이들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통해 고구려라는 제국의 역사를 살피는 것이다. 이는 역사를 전공한 전문가나 학자의 관심사와는 조금 다른 맥락을 보여주고 흥미로운 사건의 전개를 이야기하기에 독자들의 공감을 받는 것이 아닐까? 

이제 고구려 미천왕의 숙원사업이었던 낙랑 땅의 회복에 초점이 맞춰진 ‘고구려 3 : 낙랑축출’에서 한 나라를 이끈 왕이며 시대를 선도한 영웅의 진면목을 살필 기회가 될 것이다. 을불이 왕에 오른 후 낙랑과의 전쟁을 위해 일성을 토할 때 이를 저지하며 창조리는 10년 이내엔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한다. 절치부심, 왕 을불은 낙랑태수 최비에 견주어 만반의 준비를 하고 10여년이 흐른 뒤 벼루고 있던 낙랑 회복의 진군을 선언한다. 백성을 아끼고 선왕들의 미완성 과업을 달성하며 이민족의 지배하에 목숨을 연명하던 고구려 백성의 한을 풀기위한 미천왕의 뜻을 펼치는 것이다. 

진의 혼란과 낙랑, 선비족의 진출, 고구려는 서로 국경을 맞대고 대륙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상황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시종일관 견지하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운명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고구려의 미천왕이 보여주는 권력의 진정성이 그것일 것이다. 또한 대륙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이야기에서 백제의 존재는 무엇일까? 미천왕에서 출발하여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대왕, 장수왕까지 이어지는 작가의 고구려 이야기에서 백제의 비중을 기대해 본다. 

고구려군의 중무장 철기군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한 낙랑의 군사 앞에 허물어지던 군사들은 창조리와 아달휼 계책 그리고 고노자 대장군의 마음이 더해져 낙랑성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중원을 손아귀에 쥐고 대륙의 통일을 꿈꾸던 낙랑태수 최비는 물랐던 것이다. 권력의 힘의 원천이 무엇이고 권력은 무엇에 부응해야 하는지, 모든 권력의 바탕과 목적은 백성에게 있다는 것 말이다. 낙랑성을 회복하고 강한 고구려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마음을 다지는 미천왕을 바라보는 선비족 모용외의 재사 원목중걸의 시선은 이후 그려질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작가 김진명의 바람은 이뤄질까? 독자의 한사람으로 ‘우리 역사 고구려’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역사소설 ‘고구려’의 집필의도가 작가의 의도대로 이뤄지길 바란다. 하지만 문학작품이 대중적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다양한 조건들과 부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작품이 대중과 만나는 시대의 정치상황이나 대중들 주된 관심의 흐름이 부합될 때에 가능하게 될 것이다. 한 작품의 힘은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정성을 가진 작은 출발이 질문으로 돌아와 스스로에게 묻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한 출발일 것이다. 이 작품 고구려가 그 시작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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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2 - 미천왕,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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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는 다양한 방법
역사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무엇 때문에 역사를 읽고 보는 것일까? 사람마다 나름의 의미를 붙이겠지만 지난 역사를 살피는 것은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을 보다 현명하게 살아갈 방도를 얻기 위함이 대부분이 아닐까 한다. 과거를 통해 현대를 살펴 미래를 희망으로 맞이하기 위한 길이 바로 역사를 보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역사를 보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사를 중심으로 한 역사서가 기 기본이 되겠지만 이는 극히 제한된 전문가나 학자들의 몫으로 남긴다면 일반인이 역사를 접하는 길을 그리 많지 않다. 제한된 방법 중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그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가장 대중적인 방법이 아닌가 한다. 숫하게 방영되는 텔레비전의 역사드라마나 ‘팩션’이라는 문학 분야를 개척한 역사소설이 대중의 사람을 받는 것이 그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학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매개로 하지만 분명 작가의 상상력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기에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전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독자들은 이를 인식하며 문학작품을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김진명 작가의 작품 고구려 역시 그런 역사소설이다. 하여, 고구려라는 먼 옛날의 이야기를 전하기에 상상력의 산물임을 상기하게 된다. 

‘고구려 2 다가오는 전쟁’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이웃나라를 비롯한 고구려 각지를 떠돌던 왕손 을불이 세력을 키우고 반격을 준비할 근거지인 숙신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숙신의 상황은 을불에게 그리 밝지만은 않다. 왕권을 향한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긴 하지만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안개속이다. 이제 근거지를 마련했기에 뜻을 함께할 동지들의 규합이 무엇보다 급선무가 아닌가. 한편, 왕은 고구려 최고의 무장을 을불의 근거지 숙신으로 보내 최후의 일전을 명하는데 백척간두에 선 을분의 대안은 목숨을 내건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다. 여기에 지금까지 모호한 행보를 걸었던 창조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배신자로 철저히 신분을 위장하녀 국상의 자리에 오른 창조리는 때가 왔음을 알고 을불이 올 왕궁에서 자신만의 준비를 하기에 이른다. 죽음을 몰고 올 전쟁에서 패하지 않고 이를 역으로 이용하여 왕에 접근하지만 목적을 당성하지 못하고 실패하여 결박당하는 처지에 놓이지만 남몰래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해온 청조리가 본모습을 드러내며 왕권을 장악하게 되는 이야기까지를 2권에서 담고 있다. 이제 ‘고구려 2 다가오는 전쟁’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영웅과 영웅을 보좌할 장수 그리고 책사들의 활약상을 그려내면서 이후 펼쳐질 장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혼란의 시대는 영웅을 부른다. 영웅은 시대를 반영한 인물이지만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앞을 내다보며 지략을 세울 재갈공명과 같은 책사가 필요한 것이다. 이 작품 고구려에는 그런 존재가 있다. 모용외 곁에 있는 원목중걸 같은 인물이 필요한 것이다. 주아영, 창조리와 같은 자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할 책사들이다. 이들이 주군으로 모시는 이들과 합쳐졌을 때 비로써 영웅은 그 위세를 떨칠 수 있다. 

김진명 작가의 ‘고구려’는 긴 이야기를 펼쳐갈 것이라고 한다. 이중 한 단락인 미천왕이야기는 이제 왕에 오른 을불이 펼칠 정치적 기반의 확충과 여러 나라들과의 전쟁이야기를 통해 조금 빠른 호흡을 보이며 3부에서 그 활약상을 전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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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 - 미천왕, 도망자 을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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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작가의 모든 글은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작가는 시간에 기대어 살아올 수밖에 없는 이치와 한가지일 것이다. 하여 수많은 작가들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담은 세상과의 소통의 결과를 작품으로 내 놓는다. 작품에 담긴 주제가 무엇이든 이런 작품들이 독자들과 만나 소통되는 과정에서 공유되기도 하고 때론 외면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거창한 작가론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분명한 것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 

이런 면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들의 고뇌를 충분히 짐작되는 바가 있다. 어떤 눈으로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바로 작가의 고뇌일 것이며 이와 더불어 시간에 기대어 살아가는 작가가 자신이 살아가는 그 시대의 정신을 담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작가의 고뇌를 함께 공유하게 되는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이 독자들을 문학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런 작품을 만난 기억이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향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감정은 멈추지 않은 시계처럼 시간을 더해가는 동안에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것은 본질이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민족감정에 시원한 폭포수 역할을 했던 작품이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그 작품이었다. 이처럼 김진명 작가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한민족의 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이지 않은 채 계속 이어져오고 있으며, 모두가 힘겨워하는 어려운 시기에 그들을 격려하고 일으켜 세우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하며 작가가 가지는 시대정신을 피력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많은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고구려’는 바로 그 김진명의 작품이다. 이번에는 무대를 광활한 땅 중원의 주인으로 군림했던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과시한 시대로 옮겼다. 바로 고구려다. 그것도 고구려가 가장 강성했던 시대의 기틀을 마련한 미천왕의 이야기에서 출발하고 있다. 작가 김진명이 주목한 고구려는 우리 역사의 긍지와 자부심을 대표하는 시대로 이야기하기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너무 미천한 것이 현실이다. 작가는 아마도 우리의 소중한 역사지만 우리에겐 주목받지 못한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여 다음 시대를 준비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거론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우리역사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고구려 1 : 도망자 을불’은 권력의 부정적 측면이 어떤 모습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대를 배경을 하고 있다. 권력을 지키지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백성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으며 자신의 권력에 도전할만한 사람이나 세력은 끝까지 추적하여 처단했던 왕 그리고 권력을 올바른 모습으로 세우고자 뜻을 세우고 도망자 신세가 된 을불의 고구려와 진나라의 혼란을 틈타 낙랑의 위세를 세워가는 최비, 모용선비족의 새로운 영웅 모용외, 여자로 뛰어난 재사 역할을 자임한 주아영 그리고 왕의 측근 창조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훗날 미천왕으로 등극하는 을불의 성장과정 그려가고 있다. 

왕손으로 태어났지만 혼란한 정치정세에 휩싸이며 갈등하는 을불이 어려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왕재로 성장해 가는 과정은 여타 다른 왕이나 영웅의 일대기에서처럼 비슷한 과정을 겪지만 날 때부터 영웅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개척하는 운명을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또한 고구려왕의 폭정을 돕기도 하지만 암암리에 을불의 소식을 접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고 있는 창조리의 행보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정황의 불리함에는 몸을 숨겨 의탁하지만 그 숨김이 결코 도망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단순히 기다리는 것을 넘어 맞이할 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고구려 1 : 도망자 을불’에서는 독자들의 그러한 기대감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전설처럼 느껴지는 고구려의 한 시대를 작가의 노력에 의해 되살려내는 것은 곧 지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무엇을 찾아가는 과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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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철학의 풍경들
진동선 글.사진 / 문예중앙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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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눈 

시인의 눈이 늘 부러웠다. 시를 쓴다는 주변 사람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함께 있어도 느끼는 것은 달랐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그들은 나와는 다른 눈을 가진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내 나름의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당연히 같은 것을 보고도 달리 본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차이는 바로 사람의 차이다. 

사람의 차이란 점을 실감한 것은 휴대전화의 사진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부터다. 디지털카메라가 없는 것도 아닌데 항상 휴대하기가 불편하여 손에서 떨어지지 않은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을 적극 활용하여 순간적으로 느끼는 풍경이나 사물을 담아내고는 한다. 그렇게 담아낸 사진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멋진 사진으로 이야기되며 카메라의 종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예쁘게 보이는 사진을 찍는 기준에 카메라의 종류가 절대적인 요소가 아님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고성능의 카메라로 담은 사진의 장점을 물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전문 사진가가 아닌 재미로 찍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말일 것이다. 

나의 이런 경험은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자신만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누리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담고 싶은 마음이 표현되는 것은 다양하다. 하지만, 사진만큼 대중적으로 열린 공간이 또 있을까? 그렇게 열린 공간이지만 사진은 만만한 것이 아님을 사진을 찍어본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사진철학의 풍경들’은 바로 한 장의 사진이 가지는 가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에 걸맞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질에서 기술적으로 사진을 찍는 방법이 아닌 사진을 바라보는 철학적 시각을 이야기 한다. 사진을 중심주제로 철학을 논하는 책이라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기술적 방법을 찾는 사람들에겐 즉각적인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그 모든 사람들에게 사진의 근본에 해당하는 의미 있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의 기본 구성이 되는 것은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 그리고 그 중간에 카메라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대상을 본다는 것이 바로 인식의 풍경으로 어떤 대상을 눈과 마음의 동일체로 카메라의 눈이 곧 우리 자신의 눈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사진은 대상의 순간을 담아내는 것이기에 사진은 시간의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곧 사람의 눈에 인식된 대상은 사람의 사유를 통해 특정한 시간으로 카메라에 담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담긴 사유의 시간이 대상으로 표현되는 것은 사람마다 자신의 감각에 의해 구별하게 된다. 커메라에 담겨 표현되어진 사진은 이제 사진을 찍었던 사람의 눈을 떠나 감상자의 몫으로 넘어가 다른 인식의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이렇게 어떤 대상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 그 순간을 담은 것들이 우리들 앞에 사진으로 나타나고 그렇게 나타난 사진들은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해 가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사진을 철학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인 인식의 풍경, 사유의 풍경, 표현의 풍경, 감상의 풍경, 마음의 풍경 등 이 다섯 가지 기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싶다. 

사진은 좋은 카메라로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찍는 것이 아닌 인식과 사유, 표현과 감상 등 철학과 미학의 근본적인 가치인 아름다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아름다운 사진을 만드는 것이 기술적인 측면이 아닌 마음의 문제임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칸트, 헤겔, 하이데거, 벤야민, 들뢰즈, 롤랑 바르트 등 철학자들을 비롯하여 수전 손택, 존 버거, 지젤 프로인트, 다이안 아버스, 마이클 케나 등 직접적으로 사진과 함께했던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무엇 때문에 사진을 찍는가? 와 같은 질문들을 다시 우리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사진은 아름다운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찍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같은 대상을 보고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 그 차이는 바로 마음이라는 것이다. 찍는 사람의 마음이 반영된 사진은 대상을 아름답게 찍는 출발점이며 그 근본에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철학적 물음이 있다고 한다. “사진을 통해 세장을 아름답게 보는 법,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법,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진 하나하나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상은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을 사랑하는 법의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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