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 마음과는 상관없다는 듯 한없이 더디오더니 막상 오고보니 이제는 급했나 보다. 여기저기 들러 청하는 모든이에게 안부전하며 노닥거리느라 늦었던 걸음이 내 앞에 와서는 서두른다. 먼 곳에서만 머물던 가을이 이제는 발목에 채인다. 

인위적인 경계를 넘는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은 매달 다르지만 유독 시월의 마지막이 안타까운 이유가 따로 있을 까닭이 없을텐데도 다들 유난을 떤다. 그 별스러운 일에 슬그머니 끼어드는 마음이 그다지 낯설지가 않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시간은 기다린 매 순간의 마음과는 달리 늘 서툴기 마련이다. 그 서툰 마음짓으로 다시 다음을 기약한다지만 그 다음이 올지는 미지수라 헛튼 속내는 안으로만 잠기다. 

두어발자국 사이로 걷는 이들의 눈 앞의 단풍이 유난히도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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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밖에 없는 그릴 수밖에 없는'
-나현정 외, 청색종이

시각예술작가 아홉 명의 그림 에세이
"드로잉, 회화, 설치, 조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하는 시각예술작가 아홉 명이 모였다. 봄부터 매달 세미나를 열고 자기의 작품세계를 중심으로 담론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함께했다."

나현정, 박혜원, 정정화, 양해영, 이록현, 송호철, 현병연, 안성진, 김흥민

개성 강한 예술작가들의 담론, 강한 개성으로 어쩌면 더 큰 공감을 불러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책을 들고 펼치기 전에 무엇이 어떻게 담겼을지 상상의 나래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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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지난지가 언젠데 여전히 이슬이다.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이슬의 무게감을 결정할 것이다. 두텁게 내린 이슬로 계절의 깊이를 짐작한다. 기상청의 나팔수는 추워진다고 야단이다. 순리에 따라 보네고 맞이한다. 서리를 기다리는 것은 대봉감만은 아니다.

이제 발아래 단풍으로 가을을 누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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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딱취'
매화 피어 봄을 알리듯이 꽃 피어 계절의 흐름을 알게하는 식물들이 많다. 이른 봄부터 꽃을 찾아 산과 들로 꽃놀이하던 꽃쟁이들이 한해 꽃놀이의 마지막이나 마찬가지인 발걸음을 부르는 꽃이 있다. 이 꽃 피었다 지는 것을 신호로 긴 휴면의 시간을 갖게 된다고들 한다.


여리디여린 줄기를 쑤욱 올려서 그 끝에 하얀색의 꽃을 피운다. 대부분은 하나이나 간혹 둘 이상의 꽃이 피는 것도 더러 있다. 작아서 지나치기 쉽지만 주의를 기울이면 눈에 잘 보인다. 붉은 색을 띤 세개의 수꽃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다.


'좀'이라는 의미는 '작다'에 있을 것으로 '취'는 나물로 쓰였다는 것을 이해한다. 줄기 아랫쪽에 돌려나는 여러장의 자잘한 잎이 있다. 좀딱취는 화피가 벌어지지 않고 꽃봉오리인 채로 자가수분과 자가수정에 의해 결실하는 폐쇄화가 많아 여러 개체들이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한다.


올해는 여러 곳에서 눈맞춤을 했다. 그것도 풍성하게 핀 것도 만났으니 행운이 따른듯 하다. 여리면서도 강인한 인상으로 다가온 좀딱취의 꽃말은 '세심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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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 2018-11-13 0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에서 잎도 보였으면 좋아겠어요. 심도를 두껍게한 사진 한 장! ^^

무진無盡 2018-11-13 08: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사진 찍는데 참고하겠습니다.
 
누비처네 (반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의 위로를 받다

연암 박지원의 글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호곡장론’ 이옥의 남자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나도향의그믐달’ 등은 찾아서 즐겨 읽는 글이다이 글들을 통해 글이 담아야할 그 무엇에 대해 하나씩 알아간다이와 같은 맥락으로 매우 흥미로운 글을 쓰는 이를 만났다.

 

저자도 저자의 글도 늦은 만남이다이미 이 세상과 이별한 사람이라 만날 수 없지만 그의 삶의 본성이 담긴 글이 있어 늦은 만남을 할 수 있었다. "죽어서 살아 돌아온 수필가라는 이 표현이 담고 있는 것은 뒤늦게 주목 받았다는 이야기 일 것이니 무엇이 어떤지는 접해봐야 알 것이다.

 

목성균은 “1995년 57세라는 늦은 나이에 등단시적 언어 구사력과 탄탄한 구성력으로 작고 하찮은 것평범한 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생명력 있는 수작들을 빚어내어 2003년 명태에 관한 추억을 출간하는 등 의욕적으로 작품을 쏟아내다 이듬해 세상을 떠난 수필가라고 한다. ‘누비처네는 그가 남긴 수필을 모아 엮은 책이다.

 

천상 이야기꾼이다짧은 글 속에 하고자 하는 의미를 잘도 풀어내고 있다할아버지가 사랑방에서 손자를 앉혀놓고 조근조근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과 같이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일상에서 만나는 지극히 사소한 대상에 주목하고 그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의미를 갖게 되는 계기를 잡아내 삶의 희노애락을 다독이고 있다애써서 웅변하지 않지만 글이 가지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기억 속 가물거리던 추억이 현실로 되살려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게 하지만 그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때 내 손을 꼭 잡던 자기 얼굴을 달빛에 보니 깎아 놓은 밤 같았어.” (누비처네)

 

심지는 깨끗한 창호지로 하는 거여그래야 맑은 불빛을 얻을 수 있지심지 굵기는 꼭지에 낙낙하게 들어가야 해굵으면 꼭지에 꼭 끼어서 기름을 잘 못 빨아올리고가늘면 흘러내리느니그리고 꼭지 끝에 불똥을 자주 털어 줘야 불빛이 맑은 거여.” (등잔)

 

곶의 안쪽이 만이고포구는 만 안에 있다곶이 만을 감싸고 포구는 남편 잘 만난 아낙네처럼 얌전하게 만의 품에 푹 안겨 비 맞고 몸부림치는 곶 끝의 으르렁거림에도 불구하고 혼곤하게 잠들어 있다.” (장마전선을 넘어)

 

글의 흐름을 따라가다 만나는 문장 하나가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아 다시금 글 속으로 이끌어간다문장을 건너가는 호흡이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놓치지 싫은 감정이 이입되어 자꾸만 문장 사이에서 멈춘다상황을 묘사하는 탁월한 문장에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다 속으로 그렇지’, ‘...맞다’ 와 같이 맞장구를 친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사람 살아가는 일은 겉모습의 달라짐에 있지 않다서로 의지하고 아껴주며 울고 웃으며 더불어 사는 세상의 근본 바탕엔 무엇이 깃들어 있어야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다그의 글은 따스한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다독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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