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진채에서 당한 것보다 곤경이 심하나 도를 실천하느라 그런 것은 아닐세. 

안회의 가난에 망령되이 비교하려들면 무엇을 즐기냐고 묻겠지.
무릎을 굽히지 않은 지 오래인 나처럼 청렴한 인간 없음을 어찌겠나.
꾸벅꾸벅 절하노니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네.
여기 술병까지 보내니 가득 채워 보냄이 어떠한가?"

*연암 박지원이 박제가에게 돈을 꾸어 달라고 보낸 편지다.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보이지 않는다. 더 주목되는 것은 이 편지에 대한 박제가 답장이다.

"열흘 간의 장맛비에 밥 싸둘고 찾아가는 벗이 못 되어 부끄럽습니다. 

200닢의 공방은 편지 들고 온 하인 편에 보냅니다.
술병은 일없습니다. 세상에 양주의 학은 없는 법이지요."

*박제가의 답장이다. 고생하는 연암의 처지를 먼저 알아 찾아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부끄럽다고 한다. 종에게 돈은 보내지만 술까지 보내지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망하는 것이 모두 이뤄지는 건 인생의 순리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꿔달라는 사람이나 꿔주는 사람이나 피차 구김살이 없다.


*초여름 꽃을 보고자 세석평전을 오르며 보았던 구상나무의 열매다. 무심한듯 서 있는 열매 둘이 어쩌면 벗의 모습은 아닐까 싶어 문득 찾아보게 된다. 

이런 관계도 있다.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내가 그에게 그런 벗이 되면 되는 일이다. 꽃보러 다니는 중심에 사람 사귐의 이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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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개연'
첫인상의 강렬함이 곁에 오래 머물지 못한 이유다. 간직하고픈 느낌이 있고 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거리를 둬야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쉬움도 없이 그곳을 떠나왔다. 그리움, 훗날 다시 만날 때를 기다린다.


노랑색에 붉은 꽃술의 어울림 만으로도 충분한데 물위에 떠 있으니 환상적인 분위기다. 멀리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5장의 노랑색의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꽃받침라고 한다. 주걱모양의 꽃잎은 숫자가 많고 노란색이다. 수술 역시 노란색이다. 붉은색은 암술머리다. 이 붉은 암술머리가 남개연의 특징이다.


섬진강 상류에도 있다는데 다음에는 그곳에서 또다른 만남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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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하다'
여리디 여린 것이 굳은 땅을 뚫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언 땅, 모진 비바람,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도 꽃을 피우는 일의 근본적인 힘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명을 가진 모두는 저마다 품은 사명을 다하기 위해 굳건히 설 힘을 갖고 태어난다. 그 힘은 자신을 지켜줄 무엇이 있음을 태생적으로 믿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설령 비바람에 꺾일지라도 멈출 수 없는 그 힘이다.

상사화가 꽃대를 올렸다. 아직 남은 힘을 다해 꽃봉우리를 더 내밀어야 하기에 먼 길을 준비하듯 다소 느긋할 여유도 있어 보인다. 어느 한 순간도 꽃으로 피어난 그 때를 잊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꽃 피고 열매 맺는 수고로움을 환한 미소와 향기로 견디는 것은 벌, 나비, 바람 등에 의지해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으로 인해 멈추지 않을 수 있다.

그대 또한 가슴 속에 그런 믿음을 품었다. 뜨거운 태양, 비바람 몰아치는 삶의 현장에서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것, 그 믿음으로 든든하기 때문이다.

그 힘을 믿기에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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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좁쌀풀'
우거진 풀숲에서 보고 싶은 꽃을 찾다가 낯선 모습을 마주한다. 비슷한 때에 수차례 오르내렸던 길이지만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비로소 만날 때가 된 것이리라.


튼실한 몸통에 앙증맞은 꽃이 돌려나는 모습으로 피었다. 독특한 꽃모양과 색으로 작지만 금방 눈에 보인다. 한 개체뿐이라 요리보고 저리보고를 반복해도 그것이 그것이다.


앉은좁쌀풀은 높은산 풀밭에서 자라는 반기생 한해살이풀이라고 한다. 반기생이란 스스로 자생도 하지만 다른 식물의 도움을 받아 자라기도 하는 것을 말한다. 선좁쌀풀, 기생깨풀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좁쌀처럼 작다고 붙여진 이름 좁쌀풀은 꽃이 대개는 꽃이 노랑색으로 피며 애기좁쌀풀, 참좁쌀풀, 산좁쌀풀, 털좁쌀풀 등 종류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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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이면 좋겠다'
꼭 붉은색일 필요는 없으나 그래도 이왕이면 붉은색이라면 더 좋겠다. 싸늘하게 식었던 가슴이 온기를 얻어 꿈틀거리기엔 이 붉은색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응어리졌던 마음 속 설움이 녹는다. 한번 녹아내리는 설움은 봇물터지듯 쏟아지고 여전히 가슴을 죄는 시름마져 함께 녹는다. 설움과 시름이 녹은 자리 움츠렸던 심장이 온기를 얻어 다시 뛴다. 이 모든 자리에 붉은색 만이 적합하다. 심장의 피가 붉은 이유와 다르지 않다.

가벼워 잔망스럽지 않고, 짙어 무겁지도 않고 붉지만 탁하지 않은 이 붉은색으로 다시 살아 저 산을 넘어 하늘 높이 날아가는 꿈을 꾼다.

소리가 먼저 당도하는 소나기 소식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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