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
-최필조, 알파미디어

조심스럽게 펼친다. 받자마자 손에든 책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 큰 마음 먹은 사람처럼 첫장을 넘긴다. 사진 에세이라 사진부터 보는 것이 당연할지 모르지만 사진과 함께 들판을 건너는 바람처럼 함께 있는 온기 넘치는 글맛에 보고 또 보는 사진이다.

"한때 나는 스스로 관람자가 되었다는 착각으로 유랑하듯 세상을 떠돈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결코 구경꾼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나름의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좀 많은 시간이 걸릴듯하다. 사진에 한번, 글에 또 한번, 그리고 글과 사진이 어우러져 만든 감정에 붙잡혀 제법 오랜 시간동안 이 책과 함께할 것 같다. 그 시간동안 내내 훈풍으로 따스해질 가슴을 안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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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꽃'
조선 정조 때를 배경으로 한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김탁환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원작으로 한 영화 속 등장하는 각시투구꽃의 실물이 궁금했다. 투구꽃에 각시가 붙었으니 투구꽃보다는 작다라는 의미다. 여전히 각시투구꽃은 보지 못하고 대신 투구꽃을 만났다.


꼬깔인듯 투구인듯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감추고 싶은 무엇이 있나보다. 자주색 꽃이 줄기에 여러 개의 꽃이 아래에서 위로 어긋나게 올라가며 핀다. 병정들의 사열식을 보는듯 하다. 여물어 가는 가을 숲에서 보라색이 주는 신비로움까지 갖췄으니 더 돋보인다.


꽃이 투구를 닮아 투구꽃이라고 한다. 맹독성 식물로 알려져 있다. 인디언들은 이 투구꽃의 즙으로 독화살을 만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각시투구꽃도 이 독성을 주목하여 등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 예쁘지만 강한 독을 지닌 투구꽃은 볼 수록 매력적이다. 독특한 모양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뭔가 감추고 싶어 단단한 투구를 썼는지도 모를 일이다. '밤의 열림'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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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한다는 것'
빛이 따스함으로 온 몸을 감싸듯 그렇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 마음의 무게 중심은 상대에게 가 있다. 염려한다는 것은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함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상대의 처한 상황의 변화를 시도한다.

아침을 여는 햇살이 꽃잎을 부드럽게 감싸며 그 꽃의 심장을 두드린다. 햇살에 기대어 깨어난 꽃은 비로소 살아갈 사명을 위해 햇살과 눈을 맞춘다. 이렇게 눈을 마주하는 교감이 일어날때 염려하는 마음은 온전한 제 사명을 다할 수 있다.

염려한다는 것은 꽃의 심장을 두드려 깨우는 햇살의 작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달을, 음악을, 꽃을, 노을을, 하늘을 빌려 전하는 염려의 마음이 상대에게 닿아 교감이 일어난다. 깊은 눈 속에 환한 미소로 피어나는 순간이 그것이다. 염려하는 마음이 대상과 교감을 일으켜 기적을 만든 때이다.

하여, 산 너머 전하는 나의 염려가 그대 가슴에 닿아 온전히 밝고 환한 미소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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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진범'
가을로 내달리는 숲에는 늦지 않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분주하다. 여전히 꽃은 피고 지며 맺은 열매는 영글어 가고 이미 떨어진 낙엽도 있다. 그 숲에서 특이한 모양을 한 꽃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가지 끝에 옹기종기 모여 서성이듯 오리를 닮은 것처럼 특이하다. 연한 황백색으로 꽃이 핀다지만 다 핀 것인지 피는 중인지 참으로 독특한 모습이다.


모양은 진범을 닮았으나 꽃 색깔이 흰색이라서 흰진범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모양 만큼이나 독특한 이름이다.


덕유산, 지리산, 백운산 등 비교적 높은 산에서 만났다. 긴 투구를 연상하게 만드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는지 '용사의 모자'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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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로 피어
손남숙 지음, 장서윤 그림 / 목수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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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전하는 우리의 이야기

한적한 국도변을 다니다 보면 마을 입구나 인근에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들을 제법 많이 만난다특별한 일이 없는 한 차를 멈추고 나무를 돌아보며 그 이력을 확인해 본다느티나무은행나무가 주를 이루지만 간혹 팽나무나 푸조나무회화나무도 있다이들 나무는 대부분 마을의 당산나무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던 이야기를 품고 있을 나무주목하는 것들 중 선두에 있다.

 

이 책 나무 이야기로 피어는 나무와 관련된 책이기에 선 듯 손에 들었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선택의 이유가 있다창녕 우포늪에서 자연환경해설사로 일하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손남숙 시인이 쓴 책이라는 점이다페이스북에서 손남숙 시인이 전하는 우포늪 이야기에서 시인의 자연을 바라보는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짐작되는 바가 있기에 더 주목한 책이기도 하다.

 

벚나무느티나무산수유회화나무대나무은행나무오동나무밤나무소나무버드나무무궁화진달래 등 우리 일상과 친숙한 50여 종의 나무들이 나온다나무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이 식물학이나 생태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나무와 얽힌 시인과 우리 이웃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어린 시절 마을 어른들의 일상이 있다어디에서 주어들은 이야기가 아닌 겪고 느끼며 함께 살았던 나무들의 이야기다여기에 더하여 잔잔한 미소를 떠올리는 나무 이야기에 온기를 더해주는 것이 나무를 주제로 한 삽화가 또 다른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나무는 그저 산과 들에 존재하며 사람이 바라보며 이용하는 대상으로서의 존재만은 아니다. “오랜 세월 나무는 먹을 것입을 것머물 곳을 제공하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온 존재로 인식이 그것이다시인은 친구이자 이웃 같은 존재로써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한 잎의 물은 나무에게로 가서 크고 탐스러운 꽃이 된다한 방울의 나는 다른 사람에게로 가서 작고 더 작은 사람이 된다한 나무의 꽃에서 사람의 일생이 피고 지는 것을 본다.”

 

시인이 나무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사람들의 삶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지만 굳이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친구이자 이웃의 든든함으로 자리 잡고 있는 나무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비춰볼 기회를 제공한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시인의 손을 빌려 나무가 전하는 따스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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