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배다.

그저 보는 것에 불편함이 없을 땐 무슨소린가 싶었다.

지금도 여전히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는 것은 자유롭고

그 덕분에 참으로 다양한 느낌을 얻고 깊은 감정으로

내 가슴을 다독인다.

 

하지만, 언제부터가 침침해지는 것을 느낀다.

오로지 그 좋아하는 책을 볼 때면 말이다.

그 덕에 오랫동안 읽지 못하고

너무도 자주 책에서 눈길을 거두어

창밖으로 눈을 돌려 한 숨 쉬게 한다.

 

그동안 책으로 눈을 혹사한 대가를 치르는 걸거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망가지는 것을 알지 못하고

또는 무딘 감정이 이를 안이하게 바라봤던

그 대가가 혹독하다.

흐릿한 글자 사이를 더욱 집중해서 봐야하기에

더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되고

그렇다보니 책에서 멀어지는 이 미련함을 계속하다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보조눈을 마련하기에 이른 것이다.

 

영수증에 싸인을 해야 하는데 내가 쓴 글씨가 흐릿하다.

휴대폰 문자를 사용하는데도 저만치 거리를 두어야 가능하다.

이쁜 꽃도 자세히 보기위해선 멀리 봐야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이제 세상과 만나는 것에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애써 가까이 두어야만 마음이 놓이던 것들이

이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안경, 아니 돋보기

그것도 '노안'이라는 이유로

이젠 가장 가까운 벗이 되어야 하는 물건이다.

이 친구와 별 탈없이 사귀고

책과 세상과 만나야 한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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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과 함께하는 세상 여행 - 한옥연구가가 들려주는 문화 이야기
이상현 지음 / 채륜서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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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사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나는 한옥에 산다. 무슨 거창한 집에 사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은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로서는 살기에 좋은 공간에서 산다는 이야기다. 태어난 곳은 아니고 지난해 시골에 조그마한 한옥을 구입하고 이사했다. 물론 대도시에 집은 그대로 있고 주생활이 공간은 아직도 대도시 그곳이지만 주말이나 틈만 나면 시골집으로 내려온다.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나무기둥, 마루, 툇마루, 조금은 넓은 마당 그리고 서재까지 있어 그야말로 혼자 즐기는 공간이다.

 

이런 나를 두고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자기도 시골로 가고 싶은데 언제 갈지 모르겠다고 하며 부러워하는 부류와 불편한데 시골은 무슨 시골이라고 하는 부류다. 그것도 이사한 곳이 한옥이라고 하면 이 반응은 더 증폭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옥은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몸이 불편하고 조금 더 움직여야 하는 것을 감내하면 마음은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 넉넉한 마음이 한옥을 선택하게 만든 주요한 이유이니 나로서는 몸이 조금 불편한 것은 그리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이곳의 한옥을 구입하기 전까지 인근 마을을 수 도 없이 돌아다니며 새로 생기고 있는 한옥마을들을 둘러 봤다. 새로 지은 한옥들은 하나같이 그곳에 살 사람의 기운을 압도할 만큼 큰 덩치를 자랑했다. 무슨 궁궐의 전각마냥 덩치 큰 집에서 주인인 사람이 왜소해 보이며 위축된다면 그곳에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마음 편안하게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양반대가집도 이처럼 사람을 누룰 정도의 모양새는 아닌데 말이다. 또한 모양은 한옥이면서 실내는 도시의 아파트를 그대로 옮겨온 구조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집이 조금은 낡았더라도 내가 그 집으로 들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말 그대로 살림집 한옥이 좋다. 4계절을 살아보니 더 정감이 가는 것이 한옥에서 사는 것이다.

 

이상현의 책 ‘한옥과 함께 하는 세상여행’은 그런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집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 중에서 기본이 되는 의식주(衣食住) 중에 주(住)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이것만으로 한정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집은 문화를 품고 있다는 말이다. 한옥을 중심으로 우리들의 문화를 살핀다는 시각이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한옥을 바라볼 때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집의 영향력에 대해 살피고 있는 것이다.

 

‘한옥과 함께 하는 세상여행’은 한옥이라는 집, 즉 건축물인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집의 구성요소나 건축 재료에 중심 시각을 두고 한옥의 이야기를 살피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과 수 천 년을 함께해온 주거공간으로 이 속에 담고 있는 삶의 가치와 그 가치를 담보하는 집으로써의 한옥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한옥 이야기에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 빗살무늬 토기와 중국 역사를 함께 이야기 한다.

 

저자의 시각이 한옥이라고 해서 구시대적인 시각에 매어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차 벨로스터에서 읽는 한옥의 디자인’이라는 부분에서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소통과 통합’이라는 화두를 한옥과 연결시켜 보여주고 있다. 가장 현대사회적인 것이 디자인이고 이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이 창의성이라고 볼 때 한옥에서 살아온 한국 사람들의 창조적인 사고방식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확인하고 있다.

 

한옥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오는 동안의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담보된 건축물이다. 사람이 사는 곳의 지형이나 날씨와 생활 방식에 대해 집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개방된 마당, 시원한 대청, 따뜻한 구들처럼 자연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해요구가 반영된 집이 한옥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옥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통해 완성된 집이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인의 정서가 곧 한옥의 정서이고, 한옥이 품은 문화가 곧 한국인의 문화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사람들의 주거형태는 변할 것이다. 하지만, 수 천 년의 우리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한옥의 기본정신은 그대로 이어져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주거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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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문화를 품다 - 벽을 허무는 소통의 매개체 맥주와 함께 하는 세계 문화 견문록
무라카미 미쓰루 지음, 이현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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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도 가깝지도 않지만 늘 함께하는 술

나에게 술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평소 술과 친하지는 않지만 술 문화에는 마음을 열어두고 있던 나에게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술은 하나의 장벽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제약이니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어느 날 자주 만나던 지인에게 ‘술 한 잔’ 하자고 제의했다. 그 사람은 옳거니 오늘은 마음껏 마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술자리에 나왔지만 그야말로 한 잔에 그치는 나를 두고 다시는 같이 술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 후 그 사람과 우연이라도 술자리에 동석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술잔을 건네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여전히 술과 나는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 때는 술 마시는 양을 늘려 보고자 애를 쓴 때도 있지만 그것 역시 허사였기에 이젠 더 이상 술과 씨름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된 후 가장 아쉬운 점이 사람들과 소통의 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술과 일상 그리고 그 일상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술 문화는 그렇게 멀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간혹 그 한잔이 생각날 땐 혼자서 한잔씩 하곤 한다. 그렇게 술이 주는 순기능은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고 이는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리라 생각된다.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의식주와 관련된 무엇 하나 사람들의 일상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문화와 떨어질 수 없다. 어느 것을 선택해서 그와 관련된 역사를 찾아본다면 모두가 인류의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술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술만큼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을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술이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소주’와 ‘맥주’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맥주, 문화를 품다’는 그런 술중에서 맥주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의 역사와 맥주의 상관관계를 찾아가는 책이다. 약관의 나이에 일본의 대표적인 맥주회사인 산토리에 입사하고 이후 맥주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이미 ‘맥주전래’와 같은 책을 펴냈던 저자 ‘무라카미 미쓰루’는 이 책에 맥주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자 했다.

 

술의 역사를 거슬러 가면 5천 년 전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까지 올라간다. 술과 사람들의 인연이 그토록 깊다는 말일 것이다. 이후 식량재배 기술이 늘고 또 자연 속에서 발효되는 곡식을 살피는 과정에서 맥주에 대한 기술을 습득한 사람들이 술을 만들고 이 술이 종교와 결합되며 전쟁이나 민족의 대이동에 의해 전 세계로 펴지게 되는 과정을 찾아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으로 맥주의 역사를 찾아본다. 특히, 이는 맥주의 본고장이라고 하는 유럽에서 맥주의 변천사는 곧 인류의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책 속에서 흥미로운 점 몇 가지를 발견한다. 종교의 본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수도원과 맥주의 관계 그리고 2000년대 말에 와서 중국의 맥주회사 세곳이 세계 10대 맥주회사에 올랐다는 점이다. 또한 이제 갖 100여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맥주가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들어 이제는 술이라고 할 때 소주와 맥주로 양대 산맥을 이룰 정도로 발전해온 과정도 흥미롭다.

 

술과 친하지도 않고 그다지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이 책은 그리 가깝게 다가오지 않지만 맥주를 주테마로 살피는 인류의 역사는 흥미롭다. 술을 팔아 재정을 확보하면서도 때론 금주령으로 단속하고 건강에 해롭다고 절재를 요구하면서도 여전히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술이지만 그래도 술은 각박한 사람들의 삶에 쉼과 여유를 주는 훌륭한 매개자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맥주와 인류의 공존은 아마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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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 - 조선의 귀양터 남해 유배지를 찾아서
박진욱 지음 / 알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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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이 불러온 문학의 꽃, 유배문학

홀로 살아가지 못하는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그 사회적 관계에서 중요한 점이 자신의 의지와 결부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마디로 정치적 생명을 유지 보장받는 사회적 관계에서 사람들은 삶의 가치를 찾는다. 그렇기에 사회로부터 단절은 한 인간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일이다. 현대사회에서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이런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되는 경우는 범죄를 저질러 강제로 감옥에 들어가는 경우 말고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회적 관계가 사람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말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이런 강제적 사회 단절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다분히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자신과 반대편에 선 사람을 중상이나 모략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생명을 끊어내는 유배를 보낸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한 경우는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겠지만 유배 또한 그에 못지않은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 정치는 곧 자신의 삶이었기에 그 사회로부터 강제적 퇴출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는 실로 막대한 의미를 가진 것이다. 하여 정치적 비중이 큰 이유로 유배를 가는 경우 한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졌다. 그래서 오늘날 유배의 유적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곳이 한양에서 먼 남해안의 바닷가나 섬 등지다.

 

다양한 이유로 이런 유배를 떠난 사람들은 그 다양한 이유만큼 또 다른 모습의 유배생활을 보냈다. 어떤 이는 자신을 유배 보낸 임금을 향한 끝없는 구애의 글을 보내기도 했고, 좌절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고, 좌절과 외로움을 문학이나 학문의 연구에 전념하는 것으로 풀기도 했으며 다른 이는 유배간 곳의 지역적 특수성이나 풍속 등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정약전, 정약용 형제의 학문적 성과나 김만중의 소설, 윤선도의 시문학이 그런 반증이 될 것이다.

 

박진욱의 ‘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는 그런 유배생활을 했던 한 사람의 흔적에서 출발하고 있다. 200여 년 전 남해로 귀양 간 류의양이 유배지에서 보고 겪은 일을 기록한 ‘남해문견록’을 발견하고 그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남해의 과거와 현재를 살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후의 기록이다. 13일간의 도보와 자전거로 남해를 돌아다니며 만남 유적과 사람들에 대한 느낌을 담은 것이다. 저자의 발길이 닿는 곳으로는 김만중과 관련된 남해향교와 유배지 노도, 고려 말 성리학자 백이정의 사당인 난곡사, 벽작개의 암각화, 양아리 고대문자 암각화, 조선시대 남해에서 가장 큰 해군기지 미조항, 최영 장군과 관련된 무민사 등이다.

 

글을 풀어가는 저자의 느긋함과 넉살이 지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낫선 여행객을 맞이하는 시골 노인네들의 외로움이 보이고 매립으로 변해버린 해안선이 바꿔놓은 섬사람들의 일상을 포함하여 기능을 다해가는 정자나무와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산성의 흔적들이 사람이 없어 비어가는 농촌과 섬마을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저자 박진욱의 풍부한 역사에 대한 지식은 유배와 관련된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하지만 저자의 열정이 지나친 것인지 간혹 잘못된 상식도 전하고 있다. 가뭄이 들면 나무들이 물을 내 놓는다는 말은 잘못된 상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가뭄이 들어 모든 것이 타들어가는 상황에서 물로부터 대다수의 영양분을 얻고 있는 나무가 그 생명과도 같은 물을 내 놓겠는가?

 

정치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다분히 정치적 이유로 유배를 떠나야 했던 마음이 어떠했을까? 앞 만보고 달려가는 질주가 미덕인 현대사회에서 일부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관계를 성찰해 보는 시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또 어떤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하는가? 일상에서 떠남이라는 모습은 같을지언정 강제와 자발적이라는 출발점이 다르기에 그 순기능 역시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조들의 유배에서 일상에서 떠나 자신을 돌아봄을 유추해 내는 것이 억지라고는 볼 수만은 없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라도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 ‘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를 통해 유배가 가지는 의미와 그 결과를 비롯하여 현재 남해라는 곳의 주소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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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 안도현 아포리즘
안도현 지음 / 도어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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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 남자의 이야기가 관심을 끈다. 스님, 배우, 야구선수로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세 남자의 이야기에서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존재함을 느꼈다. 스님이야 깨달음을 위해 출가하고 그동안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본 시간이 많아 삶의 지혜를 밝혀줄 무엇인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고 배우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을 연기해야 하기에 많은 생각을 하엿을 것이고 이런 경험이 또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야구선수라고하면 마운드에 서서 던지고 치는 일로 살아온 사람들이라 단순한 삶이 아닐까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러한 편견을 확실하게 깰 수 있었다. 이날 모인 사람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스님과 사회에서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멋진 삶을 살아가는 차인표 그리고 메이저리그 진출로 한국 야구사를 새롭게 쓴 박찬호가 그들이다.

 

이 세 사람의 따스한 대화에서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앞만 보고 바쁘게 질주하기만을 살기를 강요하는 현대사회의 흐름에서 보면 일탈일지도 모르는 것이 멈춤에 관한 것이다. 이 멈춤을 바로 자신을 돌아보며 현재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발점으로써의 기능을 말하고 있다. 그렇게 멈추면 비로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열린 가슴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을 발견했다. 시‘연탄길’이나 어른을 위한 동화‘연어’등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인, 안도현의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가 그 책이다. 이 책은 안도현 삼십 여 년의 문학 활동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담은 글들 중에서 골라 엮었다고 한다. 시인 안도현은 한국 현대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낀 것을 시와 산문이라는 문학 형태로 옮겨온 삶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발표하는 글들에서 독자들은 삶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에는 삶은 너무 가볍다, 그때부터 사랑은 시작된다, 내 마음의 느낌표, 고래는 왜 육지를 떠났을까, 그의 이름을 불러 주자 등 다섯 가지의 테마로 엮인 글들이 있다. 각 테마의 제목에서 보듯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물어도물어도 알 수 없어서 자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되묻게 되는 것이 삶이다. 삶, 답이 없다”(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처럼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안도현 시인이 문학 인생과 자연인으로써의 삶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오며 느낀 감정이 살아 있다.

 

시인의 눈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섬세하며 따뜻하고 때론 용감하다. 그렇기에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할 말은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할 말이 시로 표현되어지며 독자들과 공감을 기반으로 한 소통을 이뤄가고 있는 것이리라. 이 책에 안도현의 아포리즘이라는 이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어 보인다. 안도현에게 있어 ‘인생의 깊은 체험과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기록한 명상물’은 시이며 그의 문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청년에서 이제 중년을 넘어선 시인의 삶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성찰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삶에 쫓겨 내 주변에서 사라졌던 사소하고 다양한 대상들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닐까?

 

연말연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앞날에 대한 나름의 계획을 세우기에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지천명을 맞이한 마음에 별 다른 감흥이 있지는 않아 다소 민망하기도 했다. 간혹 멈춤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이 멈춤에서 얻은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그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이렇게 자신이 살아온 돌아보며 내일을 생각하는 시기에 자신을 성찰한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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