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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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무엇을 중심에 두고 볼 것인가?

국제정세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주목하는 나라가 있다. 우리와도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는 나라 중국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나라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중국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중국이 주목받는 이유는 중국 자체가 가지는 무지막지한 힘이 근간이 되지만 그 힘을 바탕으로 세계화가 화두인 현대사회에서 힘의 역학관계를 보더라도 중국은 단연 중심에 서 있다. 중국의 무엇이 그렇게 존재를 부상시켜왔을까?

 

중국 이야기를 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오늘날 주목받는 중국은 어느 한순간 갑작스럽게 부상한 나라가 아니다라는 점이다. 역사시대 이래 거대한 땅과 인구 그리고 무엇보다 발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늘 세계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을 잊고 현재의 모습만을 생각한다면 거대한 중국의 현재 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그러한 과정에 늘 함께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대등한 관계로 영토 전쟁을 하기도 했지만 역시의 대부분의 시간을 강자와 약자라는 관계를 통해 관계유지를 해 온 것이다. 한때. 중국의 지위는 별 볼일이 없었다. 우리나라에 비해 경제력이 떨어지고 이념적 체제가 달라 담을 쌓고 지냈지만 시대가 변하며 다시 관계를 개선하며 교역량으로만 보더라도 현재는 세계 여러 나라와 비교하여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단연 앞서고 있다.

 

G2, 현재 중국을 대표적으로 나태내주는 표현이다. 미국 다음으로 강력한 경제대국이라는 말이다. 이는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다른 경제 선진국과는 다른 가능성으로 무장된 나라이기에 그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 중국이 주목받는 이유의 근거에 깔려있다. 이런 중국과 한국의 미래는 어떤 관계로 성장할 것인가? 경제력을 앞세운 중국의 정치공세를 비롯한 다방면에 걸친 중국의 힘 앞에 한국의 앞날을 예상하기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이런 현실을 바탕으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마주할지 그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당면한 문제가 아닌가 한다. 미래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전에 우선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우리와는 수천 년의 관계가 있다지만 중국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문제제기에 발 벋고 나선 문학인이 조정래다. 물론 이보다 전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중국에 관심을 갖고 중국문제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제기를 했지만 대중적인 작가가 자신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중국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은 시사한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정글만리’, 중국을 정글로 묘사한 작가의 작품이다. ‘정글’이란 소위 ‘무한 경쟁’으로 대표되는 성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작가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룡을 이야기하며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야기의 중심은 분명 경제가 차지하지만 경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역사, 문화, 정치 등 사람들의 일상과 관계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야기다. 그런 만큼 이 이야기를 접하는 동안 중국에 대해 다양한 접근이 필요함이 전재가 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해 있던 종합상사 부장 전대광, 의료사고로 실패한 한 의사가 가족을 남겨두고 온 서하원, 거대 권력을 소유한 세관원의 주임 샹신원, 베이징대 학생인 전대광의 조카 송재형과 그 중국 애인 그리고 건설 붐을 쫒아 미국에서 건너온 대기업 젊은 여자 총수와 그 무리들과 중국내 신흥재벌들이 벌이는 현대 중국의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들이 상하이와 베이징 그리고 시안에서 펼치는 활약상을 따라가 본다.

 

지난 1년 동안 한족,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 공간에서 10여명이 넘는 그들과 함께 보내는 동안 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개인의 자유로운 생활이지만 중국인의 이익 앞에선 하나가되는 그들을 보며 젊은 층의 현대 중국인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를 읽어가는 동안 그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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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을 보는 법 - 전통미술의 상징세계
허균 지음 / 돌베개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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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나들이에 함께할 참고서

일요일 오전 TV쇼 진품명품을 자주 본다. 선조들의 혼이 담긴 작품에 대한 가치가 얼마인지도 흥미롭지만 그보다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지식을 전문가들에게 들을 수 있어서 관심 있게 보곤 한다. 선조들의 작품 속에 암호처럼 등장하는 다양한 소재들을 알아야지만 작품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으며 시대 배경과 더불어 작가의 의도나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듯 말듯 아리송한 암호를 하나 둘씩 알아가다 보면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시대의 사람들 관심사가 무엇이며 왜 그러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상징은 왜 등장한 것일까? 자연과 더불어 수없는 고난을 헤쳐 나오는 과정에서 인간들이 겪었던 다양한 경험은 행복을 추구하는 근본 마음에 소망을 심었고 그 소망을 기원하는 마음이 하나 둘 상징으로 나타나 사람들의 일상에 필요한 도구를 비롯하여 그림이나 화가들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온 것이리라.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고 사람들의 삶 또한 변하기 마련이기에 오늘날 그러한 상징을 이해하는데 한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를 알지 못한다면 옛 그림 또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징을 쉽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답답한 것 또한 현실이다.

 

허균의 ‘옛 그림을 보는 법’을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저작으로 보인다. 저자는 옛그림을 경치와 흥취, 그리고 이치, 사군자, 풍류와 문방청완취미, 시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시, 행복과 길상에의 소망, 신선 세계의 동경, 은둔과 은일, 절조와 의행, 고사인물화, 왕권과 상서의 징표, 환상의 금수, 문자도에 이어 색에 이르기까지 열세 가지로 주제로 분류하고 그에 대한 해설을 곁들인다. 주제에 걸 맞는 작품과 함께 저자의 해설을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중화문화권에 속했던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중국의 유가 사상이나 도가 사상에 영향을 받았듯 우리 옛그림 속에 등장하는 많은 상징들이 그로부터 기인하고 있다. 한자의 발음과 상징이 나아내는 대상들의 발음이 비슷하거나 같다는 것으로 등장하는 상징들이 현대인들 생각과 동일시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옛사람이 그랬다고 하니 그러려니 이해하면 그만 아닐까 싶다. 그렇더라도 작품의 제작 당시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그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그러한 상징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선조들의 삶을 이해하는 한가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림도 결국 사람들의 일상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 일상 중 많은 부분이 어떻게 하면 많은 자식들과 건강하게 오랜 시간 행복하게 살 것인가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내 늘 곁에 두고 누리거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러한 소망을 건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승진이나 개업, 돌잔치, 회갑 등에 선물하는 경우 그에 부응하는 내용을 담아 건넨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옛그림을 보는데 한결 쉽게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50여 작품들을 보면서 실전 연습을 한다는 생각으로 가까이 두고 보거나 박물관 나들이에 들고 가서 참고해도 될 참고서가 아닌가 싶다.

 

모처럼 박물관나들이에서 만나게 되는 옛그림들을 보며 당황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혹 일행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아는 바를 바탕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기틀이 이 책을 통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넘어 우리 전통 미술 전반에 걸쳐 한발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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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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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너에게 갈 수 있을 거야?

기다림, 반가움, 무료함 때론 거북함에 피하고 싶은 것...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전화다. 전화 없는 세상은 상상 속에서도 불가능한 현실이다. 필요한 사람이 먼저 하는 것이 전화지만 걸려온 전화를 피하고 싶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 나를 찾아 전화를 하지만 늘 반가운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어느 시인의 시에서 제목을 가져왔다는 이 소설은 꽤 많은 사람들이 찾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엄마를 부탁해’이후 출간된 지 제법 지난 신경숙의 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라는 작품을 통해 신경숙과도 만나게 된다. ‘엄마를 부탁해’로 강한 인상을 받았던 작가의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기대된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나에게 성장소설로 읽힌다. 그 중심에 청춘이 있다. 청춘, 청춘을 대표하는 말로 무엇이 있을까? 희망? 불안? 사랑? 무엇 하나로 딱히 정의할 수 없음은 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시대를 관통하는 무엇이 있을 것도 같다. ‘그것이 무엇일까’을 찾아내는 것이 이 작품의 중심을 관통하는 주제로 보고 싶은 마음이다. 성장소설이라고 하면 대부분 어릴 적부터 시작하지만 이 작품은 20대 초반을 그 시작으로 하고 있다. 바로 청춘들이 세상과 친구 그리고 자신에게 귀결되는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번민하며 때론 웃고 기뻐하며 서로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들이 가득하다.

 

엄마의 병으로 인해 일찍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정윤, 그런 정윤과 한 고장에서 나고 자라며 늘 붙어 다녔던 단이와 대학에서 만난 명서와 미루가 주인공들이다. 각자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튼튼한 성을 쌓고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살며시 고개를 들지만 이내 다시 그 성안으로 몸을 숨기고 마는 청춘들이다. 세대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년령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그 비슷한 것이란 시대적 환경이 중심인 듯싶다. 같은 시대를 사는 같은 또래들이라도 그들 가슴속에 깃든 것들은 다를 수 있다. 이 다름이 기쁨과 아픔, 불안과 희망이 공존하는 근거가 된다. 이들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윤교수다. 청춘들 보다 세월의 무게와 성찰의 깊이가 있어 청춘들에게 나침반이 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있다. 명서의 정윤에 대한 마음이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 간절함 보다 더 깊은 마음의 거리가 있다. 곁에 두고 싶지만 그 마음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것이 명서의 사랑이다. 윤교수가 죽음을 맞이하는 8년 후 다시 만나는 정윤과 명서의 만남에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세상과 스스로를 만나는 지점에서 사랑으로 만나게 된다. 이를 받아들이는 두 사람의 마음엔 혼란 보다는 느긋한 무엇이 있어 보인다.

 

삶은 산술적 시간과는 상관없이 기나긴 길이다. 그 길에서 혼란스러운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혼란을 잠재우는 힘은 조금 긋하게 시간과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신경숙의 고백처럼 우리 문학에는 청춘들의 문제를 직시하는 작품들의 부재를 안타까움이 있다. 청춘들의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 청춘들만의 문제가 아니듯 이 작품 또한 나이를 불문하고 공감할 무엇이 있다. 상처를 안고 삶에 도전하는 청춘들의 일상이 처절하게 그려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가슴 저미는 공감대가 있다. 그것이 힘일 것이다. 이 작품이 회자되는 근본적 힘 말이다. ‘언젠가’라는 기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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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 고은 선禪시집
고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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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뭘까?

때론,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청춘의 시기를 지날 때는 몰랐다. 모든 것이 이성의 잣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그 이성의 무한한 힘에 기대어 세상을 무서운지 모르고 지났다. 하지만, 하나 둘 나이가 들어가며 그 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한계와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이렇게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것이 아마도 시가 아닌가 싶다. 같은 것을 같은 시간에 함께 보았지만 시인의 가슴에 담긴 세상은 놀라우리만치 다른 세상을 담아내고 이를 시어로 옮겨 놓은 것이 시라는 생각에 시인을 보통의 사람들과는 한 참 거리를 두고 생각했다. 그것이 이성의 잣대로 보는 세상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세상을 보는 것으로 시인의 가슴을 정의한다면 공감하는 분들도 제법 있지 않을까 싶다.

 

현대 시인 중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선후배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 고은 시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독특한 그의 시에선 대부분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다 한 순간을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비로써 이해되는 시들이 많다. 시대의 아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던 시인의 시 중 ‘선시’를 모아 놓은 시집 ‘뭐냐’는 어떻게 보면 이성이 모든 기준이 된 세상에서 그 이성을 내려놓고 자신과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시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뭐냐’가 담고 있는 감성적 접근은 그리 만만치 않다. 가장 절친한 벗에게, 이웃에게, 세상에게 도대체 ‘뭐냐?’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스스로에게 지금껏 살아온 삶에 대한 처절한 성찰을 하게 만드는 자책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시집에 담긴 시들은 대개 몇줄 되지 않은 짧막한 시어들로 되어 있다. 세상을 살아가다 어느 순간 머리와 가슴을 스치는 깨달음의 감정을 시로 승화시켜 낸 성찰의 진수가 아닌가 싶기도 한다. ‘선시’란 사전적 의미로 ‘모든 형식이나 격식을 벗어나 궁극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적(禪的) 사유(思惟)를 담고 있는 불교시’라고 한다. 굳이 종교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이해될만한 대목이다.

 

“오직 선은 마음뿐이다. 이 마음속의 진면목으로만 기존의 세계에 대한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선의 목적이다. 일체를 부정함으로써 일체의 진실을 획득하는 선은 그 부정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유로운 선문답과 선시를 낳을수 있게 된다.”

 

스님들이 깨달음을 향한 정진의 과정에서 또한 깨달은 순간 진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선시와 선문답이라면 일상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도 그 삶 속에서 깨달음의 과정이 분명 잇을 것이다. 물론 이때 깨달음의 순간이 스님들의 그것과 일치한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시인이 시를 낳고 문학가가 작품을 낳는 과정도 이에 못지 않은 깨달음의 과정일 터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얻는 한 순간의 감동도 그에 못지않은 깨달음이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고은의 선시에는 서슬퍼런 칼날이 곳곳에 번뜻이고 있어 사뭇 이성의 그 무엇을 잘라내고 있다. ‘그렇지!’, ‘맞아~’또는 ‘어?’, ‘이럴수가!’와 같은 느낌으로 공감하는 순간 시인의 선시는 어느덧 보통 사람들의 깨달음의 순간과 만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 시인의 깊은 속내를 그렇게라도 느끼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작별

 

잘 있게

잘 가게

 

저 건너

 

어찌 살꼬

너 없이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삶의 무게에 억지로라도 마음의 여유를 누리는 순간에서야 온전하게 만날 수 있는 시인의 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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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그린 이 시대 50대의 인생 보고서
송호근 지음 / 이와우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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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 울지는 못하더라도...

나이 50이면 인생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 생물학적 수명이 늘어나면서 나이 50이면 마음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몸도 사회적 지위도 마음과는 멀어지면서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20대를 두고 그들이 안고 있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시행되고 각계각층에서 한목소리를 내며 그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내세우기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50대, 우리시대에 50대가 안고 있는 문제는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어디에도 그들을 위한 시도를 목격하지 못한다. 일부 사회학자들 사이에서 이런 저런 대안이 제시되고 있긴 하지만 당사자인 50대들에게 얼마나 희망적인 대안이 될지 의문이며 그나마 위안이라도 되 주었으면 싶은데 그마저 여의치 않다.

 

급격한 산업화의 주역으로 당당하게 살아오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 밀려나기 시작하더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시간도 없이 한꺼번에 수 천 명이 끈을 놓치고 사회로 밀려나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제 2인생은 삶의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첫출발선인 샘인데도 대책 없이 타의에 의해 몰리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가부장적 의식이 지배적인 부모세대와 무엇하나 부족함 없이 자유로운 사고 속에서 성장했던 자식세대 사이에 끼어 이 두 세대의 가교 역할을 하지도 못하며 책임만 지고 있는 50대의 현실에 대한 직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의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는 그런 의미에서 시의적절한 문제제기가 아닌가 싶다. 사회학자인 저자 송호근은 자신도 이 문제의 50대 중반으로 대학교수라는 다른 50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호조건에 있으면서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자신의 실재고민을 노출하며 이 시대 50대가 안고 있는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우리시대 50대가 안고 있는 현실문제는 가정에선 외로운 아버지로, 후배들 눈치나 보는 선배, 사회에선 보수적인 사람으로 낙인 되어 어느 한곳 마땅히 설자리가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50대도 한때는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서 목청을 높였으며, 사회에선 산업역군으로 든든한 기둥이었고, 따스한 가정을 꿈꾸는 가장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한 순간 허물어지며 자신을 돌아볼 기회조차 상실하며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밀려나고 있는 슬픈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하필 이런 때 찾아오는 것이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다. 잊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성찰이 이럴 때 찾아와 현실의 문제와 겹쳐 더 암울한 현실을 만들어 낸다.

 

이런 현실을 공감하며 저자가 내 놓은 처방은 독립하자는 것이다.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 이제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남은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독립을 이야기 한다. 이 독립에는 다가올 죽음을 맞이할 준비이며 달라진 조건에 맞는 일에 대한 준비이며, 가족과 일 때문에 생각도 못했던 취미를 갖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나 둘씩 이런 준비를 하면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보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여 길가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놓고 속으로 울지라도 가슴에 한을 쌓아 두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소리 내 울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속내에서 스스로를 다독일 힘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50대가 안고 있는 이런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역시 나의 현실이다. 남은 시간, 아니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송호근 교수의 이 책이 현실에 버거운 걸음걸이를 하고 있는 50대를 비롯하여 아직은 팔팔한 3, 40대에게도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해 주고 있어 미래를 희망으로 안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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