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고대 문명의 수수께끼 - 기원전 1만 년, 새로 쓰는 인류의 문명 연대기
필립 코펜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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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되어야 할 인류의 역사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지구라는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건에 대해 다 알고자 하지도 않지만 알 수도 없는 일이다. 공간을 좁혀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난 일조차 다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의 일도 이런데 인류의 선조들이 살아온 역사의 전 부분을 이해하는 것에서는 더욱더 알 수 있는 부분은 한정되어 있다. 이는 시공간의 제약이라는 점도 작용하지만 관련분야를 공부한 학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전공분야를 넘어서는 분야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덧붙여 학문분야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견해에 배치되는 다른 이론을 대하는 태도도 검토해봐야 할 문제점들이 부지기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진실일까 하는 부분에서는 지금까지 유용하게 통용되는 이론을 벗어나 제기되는 다양한 의견은 무시되거나 적극적인 방해 공작을 당하게 된다. 이는 특정한 나라의 경우가 아니라 전 세계 학문의 전부분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학문의 지평을 넓히거나 심도 있는 토론의 활성화에도 방해되는 요소로 작용한다.

 

필립 코펜스의사라진 고대 문명의 수수께끼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인류의 역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주목받지 못하거나 일시적인 이슈에 머물고 있는 사건이나 유적을 근거로 인류의 역사의 지평을 거의 무한대로 넓히고 있다. 이런 부분은 특히 인류의 고대사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시간의 한계에 의해 사라진 인류의 역사가 대부분 사라지고 특정한 유물이나 유적의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한계에 의해 남아 있는 유적을 찾아 발굴하여 얻은 귀중한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역사의 자리매김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현재의 역사상식으로 통하는 인류의 역사는 기원전 4천 년 전에 발생한 4대 문명이 인류 최초의 문명이고 그리스가 문명의 요람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이 정설이 진실일까? 그동안 역사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발굴된 유적들이 말해주고 있는 기존 역사 보다 3천 년 전 혹은 5천 년 전에 이미 선진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저자 필립 코펜스는 이 부분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금지된 고고학이라는 이름으로 그 현실을 밝히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구세계와 신세계의 사라진 문명, 아틀란티스, 선사시대의 유적들이 담고 있는 인류 역사의 수수깨끼를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인류의 역사는 수 만 년 전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방해하고 있는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목소리를 높여 규탄하고 있다.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문명이 존재했다거나 청동기시대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된 주석이 유럽으로 수출된세계 최초의 글로벌 경제가 존재했다와 같은이야기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역사와는 판이하게 다른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은 탄소 연대측정으로 확인되며 인근 다른 유적과의 연관성 등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속속들이 밝혀지는 이러한 유적들에 대한 분석은 기존 역사의 페러다임의 수정하기를 요구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이 가지는 인식의 한계를 넘어선 인류의 역사를 올바로 인정할 때 새로 만들어갈 역사는 올바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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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맨발
한승원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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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가 출가한 이유는?

사찰에 가면 팔상전이나 영산전이라는 전각이 있다. 이 전각은 팔상도를 봉안한 곳을 말하며 이 전각에 봉안된 팔상도는 부처님의 일생에서 중요한 장면을 8가지 장면의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을 말한다. 팔상도의 구체적인 이름은 도솔내의상(도솔천에서 내려오는 모습), 비람강생상(룸비니 동산에 내려와서 탄생하는 모습), 사문유관상(사문에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모습), 유성출가상(성을 넘어가서 출가하는 모습), 설산수도상(설산에서 수도하는 모습), 수하항마상(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모습), 녹원전법상(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모습), 쌍림열반상(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모습)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일생을 이해하고 그가 출가를 한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 부처님의 가르침의 궁극적인 이치를 알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싯다르타라는 기원전 5세기경 마가다국의 변방 카필라 성의 슈도다나 왕과 마야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왕위 계승이 보장된 태자로 봉해지고 궁궐에서의 화려한 삶을 포기하며 출가하여 백성들의 고통의 근본원인을 찾아 그것을 해결하고자 6년간에 걸친 수도생활 끝에 깨달음을 얻고 팔십 평생을 길거리에서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삶을 살았다. 25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불교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다.

 

사람의 맨발의 저자 한승원 작가는 그동안의 작품에서서민들의 애환과 생명력, ()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어온 작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영혼의 스승인 석가모니 붓다의 삶을 소설로 써보고 싶은 오랜 염원을 담아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사람의 맨발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부분은 출가에 있다. 무엇이 태자의 신분으로 보장되어 있는 삶을 버리고 출가를 하게 되었는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신격화된 절대적 존재라기보다 모든 인간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실존적 고뇌를 거듭한 싯다르타라는 한 인간에 보다 주목한 것이다.

 

작가가 그려가는 싯다르타의 이야기는 부처님의 일생에서 중요한 장면을 8가지 장면의 그림으로 그려놓은 팔상도를 따라가고 있다. 고행 후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구도하려는 과정에 중신을 둔 것이 아니라 태어나 왕자로 살며 누리고 있던 호화로운 삶에서 카스트라는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 백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 삶의 흔적을 찾고 그들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며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없는가에 대한 구도의 길이었다는 점을 부각시켜 주장하고 싶은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싯다르타가 열반에 든 후 7일 만에 찾아온 제자에게 관을 뚫고 발을 내밀었다. 출가 후 평생 맨발로 걸었던 그 발을 내밀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는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작가 역시 이 점에 주목하여 사람의 맨발이라는 이야기를 풀어갔다. 혼자만의 깨달음에 만족하지 않고 신분의 고하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의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대승적 차원에서 싯다르타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는 곧 독자들이 싯다르타의 맨발을 통해 출가 정신을 잊지 말고 참다운 자유인으로 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여전히 계급사회인 현실에서 싯다르타의 출가정신을 통해 우리사회에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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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3
루치아 임펠루소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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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이야기다

우리 선조들이 남긴 옛 그림 속 장면을 보면 이야기가 그려진다. 산수화든, 풍속화든, 정물화든 상관없이 다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의 옛 그림들이 주로 중국의 영향을 받았던 관계로 그 이야기가 담긴 그림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중국의 조사들을 알 수 있어야 올바른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며 김홍도와 신윤복을 중심으로 한 풍속화를 보면 우리 조상들의 삶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그림을 통해 우리는 앞선 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삶을 한 장면을 만날 수 있으며 이는 곧 역사를 올바른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런 그림 속 이야기를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와 정서를 공유하지 못하는 서양의 그림을 만날 때는 더욱 더 난감할 때가 많다. 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익숙하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서양의 역사에 대한 깊지 못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서 깊은 유럽의 도시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온전히 간직하고자 다양한 공간을 만들었고 현대에 이르러서까지 잘 보존된 그림이나 유물을 통해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하지만 관광의 명소가 된 그곳들에 소장된 유물이나 그림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감상하는 것일까? 그저 유명한 작가나 잘 알려진 유물이기에 호기심으로 찾는 것은 아닐까?

 

마로니에북스에서 시리즈로 발간하는 미술관 기행에 관한 책을 통해 만나는 서양의 그림들이 익숙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서양의 역사와 그들이 살아오며 쌓은 정서와 소통하지 못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때 유명한 화가의 잘 알려진 작품들이 대부분이지만 정서를 공유할 만큼 소통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한사람의 독자로 어설픈 고백을 해본다. 조르조네, 티치아노, 만테냐, 틴토레토와 같은 초기 르네상스의 대가부터 조반니 벨리니와 같은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전성기 대가까지 미술관의 일부를 지면으로 옮겨놓은 이 책은 특히 기독교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잘 알 수 없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불리한 조건 속일지라도 우수한 작품들을 지면으로 옮겨놓은 이 책을 통해 작품마다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서양사와 기독교 사상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작품이 아니라면 당시 시대상황이나 그 시대를 뚫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이해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주로 역사의 한 장면이나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장면을 담은 작품들은 그래서 본래적인 작품의 가치와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예술가는 자신이 수단으로 삼고 있는 장르를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예술가에 의해 그렇게 담겨진 이야기는 이제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소통하며 예술가가 주목했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이 정서상 교감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전재된다면 더욱 원활한 소통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감상자의 자기 정서에 의해 예술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나 감상자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술가의 기술적 능력이 탁월하다면 작품 속에 마련해 놓은 예술가의 이야기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한 작품 감상을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세계 미술관 기행을 발간하는 의도와도 충분히 교감되는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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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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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투명사회에 대한 갈망은 크다

대한민국의 봄을 장식했던 세월호라는 여객선의 침몰이 가져온 파장은 실로 크다. 정부조직의 대처 위기관리 능력의 문제점이 만천하에 밝혀지면서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시스템적 점검이 필요하며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을 선두로 한 정치인들의 현실인식의 능력과 태도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그중 재난사고에 대처하는 정부조직의 정보통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이 날로 커져가면서 사건 전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할 것에 대한 요구가 날로 커져간다. 투명하지 못한 사고의 대처과정이 의혹을 불러일으키며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연장선상에 있다.

 

투명함이 요구되는 사회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걸어온 과정에서 불투명으로 인해 구성원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억울한 피해를 받았던 과거 경험이 단단히 한 몫 한다. 과거 정보를 독점하면서 구성원이 당연히 누려야 할 정치적 자유와 인권, 경제적 권리를 빼앗겨온 구성원들이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사회분야의 투명성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러한 투명성은 부정과 부패를 근절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왔다. 이러한 사실은 세월호 침몰 사건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더욱 더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투명하지 못한 제반 조직과 정책에 의해 피해 받고 있다는 사고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그렇다면 투명성이 전재되는 투명사회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만큼 신뢰할 수 있는 무엇의 전재조건이 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구성원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조건에 따라 다른 해답을 도출하게 된다. 대한민국과 같은 불투명한 정치권력에 의해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마저 침탈당했던 사회에서는 여전히 정치를 선두로 사회 전반에 걸쳐 투명성이 요구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투명함'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믿음에 다른 견해를 제시하며 사회적 관심사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 베를린 예술대학의 교수 한병철로 그의 전작 피로사회로 인해 투명성을 중요시 하는 독일사회에 파장을 몰고 온 사람이다. 그는 이번 신작 투명사회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올바른 방향이라고 대다수가 생각하는 투명함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저자가 바라보는 투명사회는 신뢰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통제사회라고 주장한다. 투명성이 주류 담론인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제기는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주장이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급속하게 진전되는 개인들의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활발한 활동이 무차별적인 정보의 공개로 이어져 그 공개된 정보가 다시 정보를 공개했던 사람들을 강제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일면 타당성이 있는 지적이다. 인터넷이나 sns 등을 매개로 한 신상털기와 같은 부작용을 겪고 있는 현실의 반영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보인다. 우리사회 역시 이 투명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사회이고 보면 저자의 투명성에 대한 문제지기는 한편으로는 우리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제기하는 측면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권력에 의해 불투명한 조직이나 사회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 주는 영향을 줄 수도 있어 보여 조심스럽게 접근해아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투명함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구성원이 처한 사회적 조건에 의해 다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특히 2014년 봄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보다 더 투명한 사회적 조건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투명성의 요구는 구성원들의 일상을 근본적으로 구속하는 정치 분야에 적극적으로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신상털이와 같은 부작용이 현실이 되는 분야에서의 투명사회에 대한 저자의 견해에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결국, 이러한 판단은 사회의 구성원의 처지와 조건이 전재되어야 의미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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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 혼자 서다 - 34살 영국 여성, 59일의 남극 일기
펠리시티 애스턴 지음, 하윤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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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서본 사람의 기록

살아가는 동안 철저히 혼자인 적이 있을까? 사회적 존재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 그 사이에서 잠시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제법 긴 여행기간을 설정하더라도 그 여행하는 동안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움직이게 된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을 떠난 삶이 스스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짐작도 못하게 된다. 가끔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주인공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것도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한 결과물일 뿐이다. 하지만 때론 사람사이를 떠나 극지방에서 수십 일 동안 혼자만 자연의 품속에서 철저히 혼자만의 생활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세상의 끝에 혼자 서다는 바로 그렇게 혼자 극지 남극대륙을 횡단하는 동안의 기록을 담은 이야기다. 물리학자이자 기상학자인 영국인 여성 펠리시티 애스턴이라는 사람이 남극대륙을 스키를 타고 거대한 자연과 힘겨운 시간을 함께한 여정에서 스스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우렸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눈뿐이며 곳곳에 얼음 균열을 피하며 1700여 킬로미터를 59일 간에 횡단한 고독한 여정의 기록이다.

 

남극 대륙은 남극권 내부에 위치한 유일한 무인 대륙(1,300)으로 표면의 98%가 빙원으로 덮여 있으며, 지구 민물 매장량의 90%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남극 대륙을 방문한 사람들로는 1773년 제임스 쿡을 시작으로 19111214일 노르웨이 탐험가인 로널드 아문센이 1912118일 영국 탐험가인 로버트 스코트가 그 후 미국 탐험가인 리처드 비어드도 남극대륙을 탐험하였다. 이후 남극에는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의 기지가 설치되어 있고, 우리나라도 1988년 킹조지 섬에 남극기지를 설치하여 남극의 연구와 이의 평화적 이용에 동참하고 있다.

 

사람은 대자연 앞에서면 경외감을 갖는다고 한다. 그 경외감은 자연의 위엄에 범접할 수 없는 기운 앞에 인간의 왜소함의 다름 아닐 것이다. 극한의 지역 남극 대륙에서 극한의 날씨보다 더 깊은 고독과의 싸움을 견뎌내는 인내의 힘은 어디에서 생길 수 있을까? 80킬로그램에 달하는 썰매를 끌며 스키를 타고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고 어쩌다 남극 횡단철도라는 연구기지 물자보급열차의 바퀴자국을 만나 사람을 만나듯 반가움을 느껴야 하는 여정이라면 굳이 경험하지 못한 일일지라도 그 여정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울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험난한 여정을 왜 나선 것일까? 남다른 도전정신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무엇이 있다.

 

저자이자 남극 대륙을 횡단한 펠리시티 애스턴의 족적을 따라가다 보면 안전지대를 벗어난 사람의 심리적 변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혼자 말에 익숙해지고 태양과 이야기하며 인간의 흔적으로 인한 오염을 막기 위해 소변마저 봉지에 담아 가져와야하는 보호지역을 지나면서도 한 순간도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내면의 힘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모험도 보통의 모험이 아니기에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성이라서가 아니다. 인간의 힘의 한계를 무한히 확장한 이 도전은 안전지대에서만 살아가는 동안에도 잊고 사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불러와 세상의 끝에 혼자 서 본 사람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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