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득공 산문선 '누가 알아주랴'
-유득공 저, 김윤조 역, 태학사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은 조선 후기 북학파 계열의 실학자로, 정조가 발탁한 네 명의 규장각 초대 검서관(奎章閣初代檢書官) 중의 한 사람이다. 20세를 전후로 하여 유득공은 북학파 인사들과 교유하기 시작했는데, 숙부인 유련을 비롯하여 홍대용ㆍ박지원ㆍ이덕무ㆍ박제가ㆍ이서구ㆍ원중거ㆍ백동수ㆍ성대중ㆍ윤가기 등이 대표적인 교유 인사였다.

'이십일도회고시', '발해고', '고운당필기' 등 다수의 산문과 시가 남아 있으며,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이서구의 시를 엮은 '한객건연집'으로 중국 문인들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문집으로 영재집 등이 있다.

*백탑동인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을 접하면서 알게된 이후 발해고와 이십일도회고시를 읽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옛사람 유득공을 그의 산문선으로 만나는 기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리를 만나는 동안, 관대는 종류별로 생겼고, 수명을 다한 서는 버리지도 못하고 서랍에서 쌓인다. 숨은 더 길어졌으며, 배에 힘도 제법 생겼고, 호흡은 안정화 되어가고, 찢어지던 속 입술은 더이상 덧나지 않는다.

간혹 나던 소리가 시간이 쌓이니 내고자 하는 소리를 어쩌다 내는 일도 있게 되었다. 

왠일로 오늘은 피리의 서가 입술에 착 감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구절초'
하얀 꽃잎이 가을볕에 빛난다. 바람따라 나풀거리는 꽃물결이 푸른 하는빛과 잘 어울리는 꽃이다. 이 꽃이 피어 만발하면 가을 한가운데 왔음을 알게한다.


꽃봉우리가 처음 열린 때는 연한 분홍색으로 피었다가 활짝 핀 꽂일때는 흰색으로 바뀐다. 향기도 좋고 모양도 좋아 오래전부터 사랑 받아온 꽃이다.


구절초는 햇살이 잘 비치고 물이 잘 빠지는 곳에서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곧게 서고 잎은 깃 모양으로 잘게 갈라졌고, 포기에는 대부분 잔털이 있다.


꽃은 9~10월에 흰색의 꽃이 줄기나 가지 끝에서 1송이씩 피고, 하나의 포기에서는 5송이 정도 핀다. 식물 전체에서 짙은 국화 향기가 나서 많이들 뜰에 심기도 한다.


구절초라는 이름은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채취한 것이 가장 약효가 좋다 하여 구절초라 한다. 또는 줄기의 마디가 단오에는 다섯으로 컷다가 중양절에는 아홉 마디가 된다는 뜻의 구와 중양절의 절이 만나 구절초라고 한다.


울릉국화, 낙동구절초, 포천구절초, 서흥구절초, 남구절초, 한라구절초 등 종류도 다양한 구절초는 '가을 여인'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박제가 산문선 '궁핍한 날의 벗'
-박제가 지음, 안대회 옮김, 태학사

'북학의'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박제가의 산문을 모아 번역한 책이다.

"조선의 학자로서는 드물게 상업과 유통을 중시하였고, 이용후생의 학문을 체계화하였으며, 현실의 개혁을 위해 중국을 배우자는 주장을 펼쳤다. 또한 18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참신한 시를 쓴 뛰어난 시인이었고, 조선 후기 소품문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산문가였으며, 고고한 문기가 넘치는 그림을 그린 화가에다 속기 한 점 보이지 않은 절묘한 글씨를 쓴 서예가이기도 하다.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부르짖었던 개혁사상가인 그였지만, 사상을 현실정치에 반영할 수 없었던 서얼신분의 하급관료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불우하게 꿈을 접은 비운의 학자로 남게 되었다."

*박제가에 대한 안대회의 설명이다. 박제가의 많은 부분을 알게해주는 글이다.

오래전 '북학의'를 읽었지만 글씨만 본 입장에서 아는 것이 겨우 이름뿐인 박제가를 다시 그의 산문을 통해 만나는 기회로 삼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야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이육사의 시 '광야'의 일부다. 열린 하늘아래 인간이 터를 잡고 살아온 시간이 겹에 겹으로 쌓였것만 기다리는 초인 오지 않았다. 하늘이 스스로를 열어 인간과 빛을 나눈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이육사가 초인을 목놓아 부른지도 칠십년이 지났다. 초인은 너무도 멀리 있어 목놓아 부르는 소리만으로도 열린 하늘 그 틈을 메우고도 남는다. 이제는 차라리 하늘 스스로가 열어두었던 틈을 닫아 빛을 거둬가버리기를 빌어야 할까? 

2016년 개천절의 하루가 참으로 더디게 열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