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쓴풀'
보라색이 주는 느낌이 좋아 마냥 바라보고 있다. 깊게 파여서 더 활짝 편 꽃잎에 난 줄무늬의 선명함도 좋다.


시들어가는 풀잎 사이에 선명한 가을꽃이 발걸음을 잡는다. 바쁠 것도 없기에 계절이 주는 선물을 하나라도 놓치기 싫은 욕심을 부려도 무엇하나 타박할 마음은 없다.


'자주쓴풀'은 산과 들 양지바른 곳에 비교적 드물게 자라는 두해살이풀이다. 줄기잎은 피침형 또는 선상 피침형, 양끝이 뾰족하다. 잎은 마주나며, 잎자루가 거의 없다.


꽃은 9~10월에 위쪽 잎겨드랑이에서 모여 달리며, 위에서부터 피고, 연한 붉은빛이 도는 보라색이다. 짙은 색의 잎맥이 있고 밑부분에는 가는 털들이 많이 나 있다.


자주쓴풀은 모양이 쓴풀과 비슷하나 줄기에 검은 자주색이 돌며, 꽃이 자주색이라서 ‘자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쓴풀은 흰색 꽃이 핀다.


털쓴풀이라고도 하고 자지쓴풀, 쓴풀, 어담초, 장아채, 수황연이라고도 하는 자주쓴풀의 꽃말은 '지각', '불행한 사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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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아침 햇살을 버티는 힘이 제법 쎄다.
지독한 안개로 더딘 아침을 맞이한다. 반도의 동남쪽은 무참히 쓸고간 '차바'의 뒷끝이 맵고 어지럽기만 하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때, 왕이 근신하는 뜻에서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여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인 것을 감선減膳이라 했다

지진에 이어 태풍까지 자연재해를 대하는 옛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떠울려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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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강을 건너다.

때아닌 비와 바람으로 여린 사람의 가슴을 무참하도 헤집어 놓더니 너도 무안했던 것이리라. 
이리 붉은 속내를 비치는 것이ᆢ.

긴 하루 무사히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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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괴불주머니"
바다에서 왔을까 마치 물고기의 치어를 닮은 모습이다. 오묘한 색까지 더해져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줄기에 옹기종기 서로를 기대어 모여 있는 것까지 멸치나 새의 모습과도 닮았다. 모양이 특이해 확실하게 기억한다.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각인 시키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있다. 그것들의 특징을 밝혀 가족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이름을 얻기도 한다.


퇴근길 자주가는 숲의 길가에 큰 키로 솟아 무리를 이루고 있었는데 확포장공사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되어 못보게 되나 싶었는데 땅에 바짝 엎드려 제 사명을 다하고 있다. 어찌나 반갑던지 오랫동안 눈맞춤했다.


'선괴불주머니'는 숲 속 그늘진 습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분백색을 띠며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선다. 봄철에 피는 현호색이나 괴불주머니와 닮았는데 선괴불주머니는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핀다.


꽃은 7~9월에 피고 노란색이며 붉은 점이 있다. 줄기의 끝에 모여 핀다.


괴불주머니라는 이름을 단 것으로는 산괴불, 선괴불, 눈괴불, 염주괴불, 갯괴불, 자주괴불, 큰괴불, 둥근빗살괴불주머니 등 종류가 많기도 하다. 이를 다 구분할 재주는 내게 없다.


곧게 서서 자라는 괴불주머니라는 의미를 가진 선괴불주머니는 '보물주머니'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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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與人'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

그러나 벗을 잃는다면 행여 내게 눈이 있다 하나 내가 보는 것을 뉘와 함께 볼 것이며, 행여 내게 귀가 있다 하나 내가 듣는 것을 뉘와 함께 들을 것이며, 행여 내게 입이 있다 하나 내가 맛보는 것을 뉘와 함께 맛볼 것이며, 행여 내게 코가 있다 하나 내가 맡은 향기를 뉘와 함께 맡을 것이며, 행여 내게 마음이 있다 하나 장차 나의 지혜와 깨달음을 뉘와 함께하겠나?


종자기가 세상을 뜨자 백아는 자신의 금을 끌어안고 장차 뉘를 향해 연주하며 뉘로 하여금 감상케 하겠나? 그러니 허리춤에 찼던 칼을 뽑아 단번에 다섯 줄을 끊어 버려 쨍 하는 소리가 날밖에. 그러고 나서 자르고, 냅다 치고, 박살내고, 깨부수고, 발로 밟아, 몽땅 아궁이에 쓸어 넣고선 불살라 버린 후에야 겨우 성에 찼다네. 그리고는 스스로 물었다네.


"속이 시원하냐?"
"그래, 시원하다."
"엉엉 울고 싶겠지?"
"그래, 엉엉 울고 싶다."
그러자 울음소리가 천지를 가득 메워 종소리와 경쇠 소리가 울리는 것 같고, 흐르는 눈물은 앞섶에 뚝뚝 떨어져 큰 구슬 같은데, 눈물을 드리운 채 눈을 들어 바라보면 빈산엔 사람 하나 없고 물은 흐르고 꽃은 절로 피어 있었다네.


내가 백아를 보고서 하는 말이냐구? 그럼, 보다마다!


*연암 박지원의 글 '여인與人'의 뒷부분이다. '벗 잃은 슬픔'을 이렇게 펼쳐놓았다. 먼저 간 아내보다 친구가 더 소중하다는 말 이후에 이어지는 문장으로 친구 없이는 나도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겼다. 친구의 소중함을 논하기엔 옛날과 지금을 비교할 수 없을 것이지만 이토록 애틋한 심사를 밝히는 것 역시 오늘날에는 접하기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연암의 문장 중 백미가 아닐까 싶다.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절현지비絶絃之悲라는 말이 유래했다. "자기를 진정으로 깊이 이해해 주는 사람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하는 점, 또한 이 세상에서 자신과 정신적으로 소통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점, 그리하여 그러한 존재를 상실했을 때의 슬픔이 얼마나 큰가 하는 점을 상징적으로 말한다."


"내가 백아를 보고서 하는 말이냐구? 그럼, 보다마다!"

이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 어찌 부럽지 않을 수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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