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 머뭇거리던 꽃이 햇볕을 만나니 부끄럼도 없이 마음껏 꽃잎을 열어젖힙니다. 서둘러 핀 꽃은 이미 파릇한 새 잎에 묻히고 다른 꽃들이 피니 관심에서도 이내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디 꽃뿐이겠습니까. 만화방창萬化方暢 꽃놀이에 한눈 판다고 하루를 건너온 해가 스스로 붉어져 꽃으로 피었습니다. 어디 스스로 붉어진 해만 그러겠습니까.

오늘밤 달은 또 얼마나 곱게 웃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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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구술붕이'
딱히 대상을 정해두고 길을 나선 것은 아니다. 숲에 들어 그 때에 맞는 만남이면 좋다. 그것이 풀이건 나무건 특별히 구분은 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들어가고 싶었던 숲에 들어 걸음을 멈추고 숲의 공기와 소리, 색과 빛에 내 눈과 귀가 익숙해지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보이는 것들에 주목하면 되는 것이다.


볕이 잘드는 땅 가까이에서 하늘 향해 속내를 마음껏 풀어냈다. 과하지 않은 보라색의 꽃잎에 햇볕을 품에 제 본연의 색을 발한다. 여리디여린 꽃대에 어찌 저렇게 큰 꽃잎을 달고 있을까. 땅에 바짝 붙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슬처럼 자줏빛 꽃이 뭉쳐 피어 구슬이 송송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일까. 구슬붕이에 비해 크다고 해서 큰구슬붕이라고 한다. 비슷한 모양으로 꽃을 피우는 것으로 구슬붕이, 봄구슬붕이 등이 있는데 구분이 쉽지 않다.


숲으로 깊숙하게 내려않은 햇볕이 봄 숲에 기쁜 소식을 던해주듯 큰구슬붕이는 보는이에게 꽃말 처럼 봄의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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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신영복 유고, 돌베개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따라 가고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싶어 바다로 간다

가까이 두고 표지의 글씨만 읽다가 이제서야 첫장을 열어간다. 읽어가기에 마음 다짐이 필요했나 보다.

신영복 선생(1941~2016)이 생전에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재구성한 책이다. 서문을 대신하여 신영복 선생의 오랜 벗이자 제자인 성공회대학교 김창남 선생의 글 '신영복 선생의 말과 글-참 스승의 의미'와 고인의 생애를 약술한 '신영복 연보'가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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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밤 시작한 비가 아침까지 이어진다. 이제 막 피어난 벚꽃 마음도 몰라주고 매정하기 그지없이 가냘픈 꽃잎 떨구고 만다. 하나 어쩌랴 덕분에 길바닥이 차분한 꽃이불 덮었다.

나무 위 꽃잎이 비에 기대어 비로소 땅과 만나 회포 풀어내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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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꽃다리'
참으로 이쁜 이름이다. '꽃이 마치 수수 꽃처럼 피어 있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핀 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꽃과 향기에 반해 이 나무를 구하기 위해 애를 쓰던 중 어느 농장 뒷켠에 자라던 나무를 데려왔다. 이 나무가 토종 '수수꽃다리'인지 수입종 '라일락'인지는 모른다. 그냥 수수꽃다리가 맞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이라는 노래 일부다. 라일락이라고 하면 우선 이 노래가 생각나지만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눈부신 슬픔이라 노래하는 것이 꼭 이 나무의 슬픈 사연을 담은 듯하다.


미 군정청에 근무하던 엘윈 M. 미더는 북한산에서 우리 토종식물인 '털개회나무' 씨앗을 받아 본국으로 가져갔고, 이후 싹을 틔워 '미스킴라일락'이라 이름 짓고 개량하여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시장에 퍼져나갔다. 그 나무가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었다. 우리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아픈 현실이다.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실린 남효온의 '금강산 유람기'에는 "정향 꽃 꺾어 말안장에 꽂고 그 향내를 맡으며 면암을 지나 30리를 갔다"라는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수수꽃다리 형제나무로 개회나무, 털개회나무 등이 있는데 구분이 쉽지않아 꽃을 좋아한 옛사람들은 따로 구분하지 않고 중국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여 정향丁香이라 불렀다고 한다.


내 뜰에 들어와 자리잡아 이제 내 키보다 크고 튼실하다. 올해도 이쁜 꽃과 향기로 함께하고 있다. 라일락의 '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 '사랑의 싹이 트다', 수수꽃다리는 '우애'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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