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코 낮은 곳으로만 향하는 구름이 눈맞춤하자는 손짓에 못이긴척하며 손을 놓고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며 따라가는 시선을 사로잡는 구름과 하늘의 조화가 아름답다. 하늘바다를 느릿느릿 유영하는 구름은 돛이 없어도 유유자적 제 갈길을 가지만 발이 묶은 나무는 구름과 벗하며 지나는 바람의 속삭임으로 산 너머의 소식을 듣는다.


구름이 살아가는 법


무한히 넓은 하늘을
흘러가면서도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느릿느릿 천천히
흘러간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쉬엄쉬엄 
유유히 흘러간다.


그래서 
쉬이 지치지 않고


제 갈 길
끝내 다 가고야 만다.


*정연복의 시 '구름이 살아가는 법'의 전문이다. 오늘 하늘의 구름과 너무도 흡사한 장면을 읊을듯 하여 무심코 봐지지 않은 하늘이다.


하늘 품에서 땅을 보며 유유자적 흘러가는 구름이나 땅 품에서 하늘을 향해 느릿느릿 꿈을 키우는 나무나 사는 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둘 사이 어디쯤이 내가 서 있는 시간일텐데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구름과 나무가 그렇듯 "쉬이 지치지 않고 제 갈 길 끝내 가고야 마는" 그 마음은 알 것도 같다. "쉬엄쉬엄 유유히 흘러"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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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나무'
늦은 오후 지는 해를 마주보며 숲길을 걷는다. 나뭇잎 사이로 언듯언듯 비추는 햇살에 곱게 물든 꽃잎을 본다. 꽃을 해와 나 사이에 두고 이리저리 빛이 스며드는 틈을 찾아 눈맞춤하는 시간이 참으로 좋다. 빛과 나 사이 사이에 따라 달라지는 색의 오묘함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붉은 빛을 한껏 뽑내는 늦은 오후의 싸리나무의 매혹적인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옛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깊숙히 들어앉아 일상을 함께한 나무라는 점이 더 매력적이다. 사립문을 비롯하여 싸리비, 삼태기, 지게 위에 얹는 바소쿠리와 부엌에 두는 광주리, 키 등 거의 대부분이 싸리나무로 만든 것이다. 그만큼 흔하면서도 쓰임새가 많아 두루두루 사용되었다.


싸리나무 종류는 제법 많다.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땅비싸리부터 조록싸리, 광대싸리, 참싸리, 싸라나무 등 우리나라에만 20여 종의 싸리나무가 있다고 한다. 시기에 따라 고운 꽃을 찾아볼 만큼 매력적이어서 놓치고 싶지 않은 꽃 중에 하나다.


싸리나무는 생가지를 태워도 연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여 빨치산들의 산속 생활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상념', '사색'이라는 꽃말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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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보다는 무겁고 구름보다는 가벼운, 산과 마을의 들판 사이를 가득 채운 공기가 더디게만 흐른다. 더디기만 한 바람이 거미줄에 걸린 물방울을 닮았다. 얼기설기 엮어진 거미줄에 무게를 덜어내고서도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듯 머뭇거리기만 한다.


바람의 속도보다 더 더디게 열리는 하루다. 이러다 비라도 내린다면 가을 속으로 큰발걸음 내딛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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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슬'
한번 눈맞춤하여 이름을 불러주고 나면 다시 만날 기회가 많아진다. 어쩌면 늘상 만나던 것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던 까닭이리라. 겨울에 동네에서 만났던 털이슬을 남덕유산을 오르며 다시 만났다.


눈이 제법 내린 겨울날의 숲에서 낯선 열매를 보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외감을 느꼈다. 하얀 눈을 배경으로 수십개의 발을 달고 기어가는 듯한 열매는 생소하기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알고나니 의외로 독특한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자잘한 꽃이 긴 꽃술을 삐쭉하 내밀며 하얗게 핀다. 하나로는 알 수 없을만큼 작지만 모여 피니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꽃보다는 특이한 모습의 열매에 주목하게 된다.


이슬처럼 매달린 열매에 털이 잔뜩 난 모습에서 털이슬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초록의 숲에서도 특이하게 보이지만 겨울 눈 속에서 보는 열매의 모습은 장관이다.


털을 잔득 달고 있는 열매는 곁을 지나가는 짐승의 몸에 붙어 씨앗을 옮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 기다림은 생존의 본능일 것이다. '기다림'이라는 꽃말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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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듯 보았다. 다시 볼 요량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이 바람에 흔들린 나뭇잎에 사라져버린 빛이다. 언제 다시 올지몰라 꽃짝하지 못하고 눈여겨 보지만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모든 기다림이 늘 안타까운 이유다.

가을 속으로 질주하는 숲은 소란스럽다. 수고로움으로 건너온 시간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더딘 발걸음일망정 멈추지 말아야함을 알기 때문이다. 나무도 풀도 시간과 사간을 이어주는 분주함에 몸을 맡기고 제 할일을 한다.

큰키나무 아래 터를 잡아 바람의 도움으로 어쩌다 볕과 마주하는 꽃무릇이 붉다. 콫대를 올리기 전부터 붉었을 속내가 잠깐의 빛으로 오롯이 돋보인다. 봐주는 이 없어도 저절로 붉어져야 하는 것이 숙명임을 알기에 찰라의 빛마져 고맙기만 하다.

머물러 있음이 소중한 것은 시간이 지난 후 그 자리가 빛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빛남을 찾으려해도 다시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하여,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함을 배운다.

빛이 내려앉은 순간, 그 간절했던 소망을 비로소 불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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