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빗소리에 차분하게 하루를 연다. 서둘러 나선 출근길 한 곳에 서서 동쪽하늘을 본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하루를 시작하는 통로가 이 길이다.


"봄비에 꽃봉우리 벙글대는 소리보다
단풍잎 물들어가는 소리가 가슴에 못질하듯 
파고들어 더좋다"


*정종배의 시 '가을비 소리에 철들다'의 일부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지는 날씨가 가을의 깊은 품으로 유혹한다.


옅은 빗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것이 더 은근하게 가을의 품 속으로 성큼 다가선다. 그 속도가 나쁘지 않다. "이제야 철들어 가는 소리 아닌지/달항아리 내 사랑아" 가을비를 대하는 이들의 마음이 이와 다르지 않다.


가을비에 철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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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10-0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성하고 여유로운 한가위 명절 되시길...^^
 

'자귀풀'
가냘픈 잎사귀를 달고서 나비모양의 황색으로 꽃을 피웠다. 성근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면서도 활짝 펼치지만 무엇이라도 닿기만 하면 잎은 살포시 오므라든다. 태양을 좋아해 직사광선을 따라 하루종일 해바라기를 하면서도 그 속내를 보이는게 그리 부끄러운 걸까.


눈둑을 걷다보면 간혹 만나게 된다. 물질경이, 자귀풀, 피, 벗풀, 수염가래꽃, 물옥잠, 물달개비, 사마귀풀 등 논둑에는 제법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살고 있다. 눈여겨보지 못했던 지난 시간의 무심함에 세삼스럽게 놀란다.


'자귀풀'이라는 이름은 흐린 날이나 밤에는 자귀나무처럼 잎이 마주 포개져 접히기 때문에 자귀나무 닮은 풀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한다. 잎이 달린 줄기를 말려서 차를 끓여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차풀'이라고 하는 것과 흡사하게 생겼지만 꽃과 잎의 모양, 키 등으로 구분한다.


닿으면 움츠러드는 것에서 유래한 듯 '감각의 예민', '예민한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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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월時越로 이해한다.
시월十月의 첫날이다. 十月로 쓰고도 시월時越로 이해하고자 한다. 여름과 겨울, 뜨겁고 차가움 사이의 시간이다. 그로인해 더 민감해지는 마음의 깃 때문에 시간을 초월해버리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시월十月에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나와 다른 나 같은 관계와 사이, 틈에 주목한다. 그 안에서 무엇을 만나 어떤 향기를 담을지는 구월九月을 살아오며 이미 정해졌으리라.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기를 소망하기에 딱히 무엇이 달라지길 바라는 것은 없다. 그날이 그날이지만 한순간도 같은 때가 없는 시간, 하여 시월時越이 필요한 이유다.

더없이 맑고, 한없이 깊고, 무엇보다 가벼운 시월의 시간과 마주한다. 

十月로 쓰고도 시월時越로 이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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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한정 특별판)
이미경 지음 / 남해의봄날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정을 담은 그림, 구멍가게

익숙했으나 이제는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모습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물건 하나로도 공감하는 모습에서 어렴풋이나마 마음 한 켠 위로를 받는다. '나 뿐만이 아니구나하는 지극히 소극적인 안도감일 뿐이지만 그마져 없다면 훗날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지 모를 일이다이런 마음이 있기에 낡아빠진 정미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다 쓰러져가는 돌담을 손으로 쓰다듬어보기도 하고크거나 작거나를 불문하고 시간이 겹으로 쌓인 물건에 유독 눈길이 가는 것이리라.

 

사람들의 정이 담긴 모습이나 물건에 대해 마음을 쓰는 사람들의 소망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 작가 이미경의'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다작가는 '퇴촌 관음리 구멍가게에 마음을 빼앗긴 후 20여 년 동안 전국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수백 점의 구멍가게 작품을 섬세한 펜화로 그렸다.' 그 결과물이 담긴 책이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 출간된 후 작품을 더 자세히 보고 싶어 했던 많은 독자들을 위해 엄선한 대표작과 신작 14점을 모아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글과 함께 엮어 더 큰 판형으로 펴낸 소장용 특별판이다뿐만 아니라 펜화의 색과 질감을 더 생생하게 느끼고작품의 품격을 담을 수 있도록 책의 종이와 형태도 작가가 함께 꼼꼼하게 챙겼다고 한다.

 

낡아가는 구멍가게가 들어선 건물은 기와집이거나 슬레이트지붕을 하거나 양철지붕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구멍가게에의 이웃들로는 우선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봄의 새싹과 꽃,여름의 풍성한 잎가을의 단품과 낙엽에 이어 겨울 눈 오덮힌 모습까지 사시사철 함께한다그것뿐이 아니다모든 구멍가게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평상이다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 소통하고 정을 쌓아가는 공간으로 작용한 평상이 사계절을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던 나무와 벗하여 크거나 작거나 때론 의자로 대치되더라도 늘 따라다닌다여기에 전봇대와 아스라이 사라지는 전기줄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듯 잔잔한 풍경으로 담겨있다.

 

이 모든 것이 펜이라는 극히 섬세한 도구로 그려진 것이다점이나 줄이 하나씩 모여서 집을 이루고 나무를 꽃피우거나 눈으로 쌓이기도 한다날카로운 펜으로 그린 그림이 주는 섬세함이 이렇게 따스하게 다가오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작가의 마음 속 따스함이 고스란히 담겨 그림이 살아 숨쉬는 듯 생생하다봄이면 새싹이 나고 그 파릇파릇함이 향기로 전해지는 듯싶어 그림을 살며시 손으로 만져보게 된다여기 그림에 얽힌 작가의 짧은 이야기가 더해져 그림을 읽어가는 감성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소장용 특별판이 보니 먼저 발간된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 궁금해진다.

 

눈을 감으면 그동안 그린 구멍가게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그 정겨운 가게들을 앞으로 또 얼마나 그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그저 마음에 새길 뿐이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소소하지만 가치 있는 것들이 주는 감동은 시간과 더불어 쌓여온 사람들의 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가능해지는 것이리라작가의 구멍가게 그림에는 는 정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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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위 품을 키워가는 달을 마주한다. 낮부터 중천에 뜬 달을 보며 '그 달 참 이쁘다'를 되뇌이다 보니 이 시간까지 왔다. 지금 산을 내려온 서늘한 밤공기와 함께 뜰을 서성이는 이유다. 유독 달빛이 가득 내려앉은 뜰에 붙박이로 앉아 서산을 넘어가는 달과 한마음이다.

오늘은 서둘지 않은 상현달이 곱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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