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이 머문다. 날이 짧아지는가 싶더니 산 중에 이미 깊은 가을이었다. 가을꽃을 대표하는 쑥부쟁이와 구절초도 이미 시들고 있다. 아침 저녁 옷깃을 여미도록 쌀쌀해진 날씨보다 빠르게 시간은 간다. 한 주 사이에도 몰라보게 달라진 가을 숲의 모습에서 더딘 일상의 시간을 탓했던 어제를 돌아보게 된다.

노란꽃으로 이른 봄의 설렘을 전해주던 생강나무에 단풍이 들었다. 말라가는 잎에 볕이 들어 그 찬란했던 한 때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노랗던 꽃마음으로 인사를 나누던 나무는 다시 노랗게 물든 잎으로 안녕을 고한다. 한동안 움츠렸다 다시 기지개를 펴기 위한 틈을 위해 스스로를 위로하는 몸짓이리라. 

어제는 빠르고 오늘은 더디며 내일은 언제나 늦다. 현재를 살지 못하는 시간이 주는 아쉬움이 그렇다. 짧은 가을을 머뭇거리다 놓치지 않아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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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
까실까실한 가을볕이 좋은날이면 그 볕 아래 빛나는 것이 벼 익은 황금빛 들판만 좋은 것이 아니다. 양지바른 곳에 다소곳이 하늘을 향해 활짝 웃고 있는 보라색 꽃이 한껏 기지개를 켜고 있는 모습이 일품이다.


똑바로 하늘을 향해 핀 보라색의 꽃이 수풀 속에서 쑤욱 고개를 내밀고 있다. 깊은 속내를 가졌지만 숨기거나 내숭을 떨지는 않고 모른척 통째로 내보이고도 당당하게 하늘을 향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다.


용담龍膽은 용의 쓸개라는 뜻이다. 그만큼 귀한 약재로 쓰였다는 말이다. 비슷한 꽃으로 과남풀이 있는데 층을 이루며 꽃이 피는 과남풀은 '칼잎용담'이라고 불렸는데, 잎이 마치 칼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구분이 쉽지 않다.


산을 올라 등성이를 걷다가 만나는 용담의 자태는 멈춘 걸음을 쉽사리 뗄 수 없게 한다. 색감과 모양 그리고 주변과 어우러짐을 보며 한동안 서성이게 된다. '긴 추억', ‘슬픈 그대가 좋아요’ 등의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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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 바다에 왔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개펄에서 일하는 아낙들을 바라보며 ‘봄날의 꽃보다도 와온 바다의 개펄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던 그 바다다.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
전생과 후생
최초의 휴식이다


당신의 슬픈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다
구부정한 허리의 인간이 개펄 위를 기어와 낡고 해진 해의 발바닥을 주무른다


*곽재구의 시 '와온 바다'의 일부다. 곽재구의 '길귀신의 노래'로 와온을 알고 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몇번의 기회를 놓치고 이제서야 만날 수 있었다.


다행이 와온은 민낯을 보여주지 않는다. 첫만남에 다 보여주는 것은 민망함을 아는 것이리라. 가득찬 바닷물은 호수보다 잔잔하고 그 바다가 어둠 속에 묻혀가는 사이 객으로 선 이는 스스로 와온 바다를 품는다.


다시 만날 그 때를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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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여뀌'
사진 속 눈으로만 익혀온 식물을 숲이나 들에서 직접 만나 확인하는 즐거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라는 환경이 달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식물의 경우가 그렇다. 꽃을 보러 먼 길을 다니는 이유 중 하나다.


가을로 접어들며 인근 들판이나 산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고마리를 비롯한 여뀌 종류다. 여뀌, 개여뀌, 바보여뀌, 흰꽃여뀌, 장대여뀌, 기생여뀌 등 자잘한 꽃들이 피어 허리를 숙이고 조심스런 눈맞춤을 하게 된다.


붉다. 연한 붉은 색의 꽃을 드문드문 달고 있는 줄기에 붉은색 털이 가시처럼 달렸다. 꽃도 붉고 줄기도 붉으니 그늘에서도 붉은색이 주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가시여뀌는 줄기와 꽃자루에는 붉은색 선모가 마치 가시처럼 빽빽하게 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별여뀌'라고도 부르는 가시여뀌를 처음으로 찾아간 백운산 응달진 숲길에서 반가운 눈맞춤을 했다. 여뀌 종류의 꽃말이 '학업의 마침'이라는데 연상되는 유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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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어 하늘을 향한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구름이 닿을듯말듯 딱 그 높이에서 머뭇거린다. 어쩌면 닿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하늘이라 망상을 펼쳐도 민망하지 않다.


물결치는 바다가 하늘로 올랐나 보다. 너울성 파도가 일렁이다 용솟음치고는 이내 스러지듯 구름이 가슴으로 파고들며 너울진다.


동쪽을 등지며 햇볕바라기를 한다. 바람결에 전해지는 차가움이 품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피해보자는 심사다. 멍하니 바라본 하늘에서 며칠전 남쪽바다 위에서 보냈던 하룻밤낮을 그리워하고 있는 중이다.


손에 든 책 표지에 쓰인 문장에 기대어 안부를 묻는다.


"저기요, 내마음 잘 도착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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