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겨울비가 내린다
굵은 빗소리가 닭 울음을 대신해 잠을 깨운다. 밍기적거리다 온기를 박차고 일어나 토방을 내려섰다. 겉으로야 눈을 기대한다지만 속내는 은근히 쏟아질 비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가을을 건너오는 동안 귀한 비라 더 반갑다. 겨울비 치곤 제법 올 기세다.


여전히 졸고 있는 골목 가로등 불빛으로 붉은 비를 만난다. 불빛 너머 텅 비어버린 채마밭이 물기를 가득 품는다. 오랜 기다림의 갈증을 해결하려는듯 금새 촉촉해졌다.


마음은 춥고
사랑 가난할 때
겨울비 내리다.


*허유의 시 '겨울비'의 일부다. 시인의 "이때/아프게 아프게/하필 겨울비 내린다"는 마무리가 겨울 그 매운 속내처럼 시리다.


잦아들었다 다시 거세어지기를 반복하는 너울성 리듬으로 만나는 이 겨울비는 '하필 겨울비'라는 체념을 씻어주기에 충분하게 내린다. 겨울비, 마음이 추운이에게 제 몸의 온기로 계절을 포근하게 건너라는 응원으로 오는 것은 아닐까.


온기 가득한 붉은 겨울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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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나무'
차가운 겨울 숲에 들어 눈이 숲의 빛에 익숙해질 때까지 숨을 죽이고 섰다. 숲이 맨몸으로 속내를 보여주는 때라 조심스러운 발걸음이다. 이때 숲을 찾는 묘미 중 하나는 나무와 오롯이 눈맞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잎에 꽃에 열매에 주목하다 미쳐 살피지 못했던 나무의 몸통과 만난다.


차가운 손을 뻗어 나무의 몸통을 만진다. 나무마다 거치른 정도가 다르고 온도도 달라 눈을 감고 만지는 느낌 만으로도 알 수 있는 나무가 몇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이 고광나무다. 맨손으로 잡아도 차갑지 않고 온기마져 느껴진다. 나무의 수피가 주는 포근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꽂만 보고 내가 사는 이곳 남쪽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쪽동백과 혼동하여 한동안 들뜬 기분을 안겨주었던 나무로 기억된다.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초여름에 피는 순백의 꽃도 한겨울 수피가 전해는 포근함도 다 좋아 내 뜰에도 있는 나무다.


나무가 사람과 공생하며 전하주는 이야기 속에서 꽃말은 만들어진다. 후대 사람인 나는 그 이야기를 역으로 추적해 본다. '추억', '기품', '품격' 다 이 나무와 잘 어울리는 꽃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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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리 내렸다. 제법 차가움의 힘 쎄 보인다. 하지만, 이 차가움은 아침 햇살에 금방 녹아버릴 순간의 머뭄이라는 것을 안다. 더던 아침 해가 동짓날 긴긴 밤을 건너기 버거웠는지 늑장을 부리고 있다.


익숙한 온기를 벗어나 머리를 깨우는 차가움 속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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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문선'
-정민,안대회,이홍식,이종묵,장유승 편역 외 1명, 민음사 

욕심나는 책이다. 오래전에 나온 태학사 발행 산문선을 즐겨 찾다가 새롭게 발간된 한국 산문선을 발견했다. 산문이 가지는 매력에 푹 빠져 관련 책을 모으고 있다.

1. 우렛소리 
2. 오래된 개울 
3. 위험한 백성 
4. 맺은자가 풀어라 
5. 보지 못한 폭포 
6. 말 없음에 대하여 
7. 코끼리 보고서 
8. 책과 자연 
9. 신선들의 도서관

갈등 중이다. 9권 짜리 세트를 한꺼번에 들여와 처마에 달린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읽어도 좋겠고, 한달에 한권씩 새로운 기분으로 만나도 좋겠다. 어떤식으로 만나던 반가울 책이기에 올 한해 많은 시간을 선인들의 산문 속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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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기대하게 만드는 저물녘의 시간을 건너는 해가 붉다. 긴 하루를 수고로움으로 건너온 해는 무엇이 부족하여 저토록 붉은 여운을 남기면서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산을 넘는 것일까. 눈 한번 깜박이고 나니 이미 해는 보이지 않는다.


하루를 수고로움으로 건너온 모든 이들의 허한 마음을 다독이기라도 하려는듯 붉은 마음을 내놓고 사라진 해의 그림자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눈은 올까. 많은 눈을 예고한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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