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구름 떠가는 푸른 하늘에 좋은 볕을 시셈이라도 하듯 성질머리 사나운 바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제 멋대로다. 그렇더라도 날뛰는 바람끝이 무뎌져 부리는 성질 값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몇번의 혹독한 추위가 더 찾아올지라도 이미 기운은 봄을 향해 급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얼음이 가득한 겨울 숲속, 언 땅을 뚫고 막 올라온 새순이다. 여리디여린 생명의 기특함을 어루만지는 볕의 손길에 온기가 가득하다. 초록이 빛을 만나니 서로 마주하는 경계에서 생명의 찬란함이 가득하다. 경계에서 만나 온기를 나누며 서로를 빛나게 하는 자연의 기운을 닮고자 애써 겨울 숲으로 간다.


서로를 품는 볕과 새순의 어울림만으로도 이미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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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福壽草'
유난히 이른 꽃 소식이었다. 먼곳이라 마음만 분주했다. 그러다 불쑥 눈앞에 나타난 꽃으로 가슴 가득 꽃밭이 되었다. 동북쪽 바다끝 찬물내기로부터 들리기 시작한 꽃소식이 남쪽 바다 끝 향일암에서 고흥으로 이어지고 드디어 전남 내륙으로 올랐다.


눈을 녹이고 가장 이른 시기에 피는 꽃이기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해의 꽃과의 눈맞춤을 시작하는 신호로 여겨 사랑받는 꽃이다.


아직은 제 빛을 내지 못한다. 볕이 부족하고 낮은 온도가 그 이유다. 유난히 샛노랗게 밝고 색감으로 등불을 밝힌듯 따스함을 전해주는 꽃이라 복과 장수에 대한 사람들의 염원이 꽃이름에 담겼다.


납매에 이어 복수초도 눈맞춤했으니 나의 봄꽃놀이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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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를 팔아 밥을 해 먹고 與李洛瑞書九書 四

집 안에서 값나가는 물건이라곤 겨우 '맹자' 일곱 권뿐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이백 전에 팔아 그 돈으로 밥을 지어 실컷 먹었소. 희희낙락 영재(유득공)에게 가서 한껏 자랑을 늘어놓았더니 그도 굶주린 지 벌써 오래라, 내 말을 듣자마자 즉각 '좌씨전左氏傳'을 팔아 쌀을 사고 남은 돈으로 술을 받아 내가 마시게 했소. 이야말로 맹자씨가 직접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명 씨가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한 것과 다를 바 없지 않겠소. 그래서 나는 맹자와 좌구명 두 분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칭송했다오. 그렇다오. 우리들이 한 해 내내 이 두 종의 책을 읽는다고 해도 굶주림을 한 푼이나 모면할 수 있었겠소? 이제야 알았소. 독서를 해서 부귀를 구한다는 말이 말짱 요행수나 바라는 짓임을. 차라리 책을 팔아서 한바탕 술에 취하고 배불리 밥을 먹는 것이 소박하고 꾸밈없는 마음 아니겠소? 쯧쯧쯧! 그대는 어찌 생각하오?


*이덕무와 유득공 두 친구가 긴 굶주림 끝에 보란듯이 책을 팔아 호쾌하게 한끼 밥을 먹고 술을 나뉘 마신 다음 이서구에게 사연을 전해준 편지글이다.


궁핍이 가져다준 웃지 못할 이야기지만 벗이 있어서 익살로 살아난다. 벗의 속내를 흥쾌히 받아준 친구의 마음 나눔이 귀하기만 하다. 이런 벗의 사귐이 어디 옛사람들의 글 속에만 있을까만 늘상 그리운건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부끄러운 속내를 털어놓고도 염려가 생기지 않은 일이 이처럼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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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섬으로 가다'
-김선미, 나미북스


여전히 나무는 매력적이다. 한겨울 나무의 민낯을 보면 나무의 사계절이 보인다. 새 잎나서 푸르러 단풍들고 낙엽지는 생의 짧은 주기를 한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 사람보다 긴 세월을 살지만 1년 주기로 사계절의 변화를 확인하는 매력이 있다.


그 나무에 관한 내용이다. "수만 그루 나무가 자라는 남이섬은 나무섬이다. 본래 밤나무, 뽕나무 등이 간간이 자라던 모래땅에 지금처럼 울창한 숲이 들어선 것은 일찍이 '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연이 함께 한다.


나무 여행자 김선미의 남이섬으로 나무 여행의 결과물이 이 책으로 엮였다. 입춘 무렵부터 대한 즈음까지 매달 사나흘, 밤낮으로 나뭇길을 걷고 숲속을 떠돌며 나무와 무언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깊은 사색에 빠져든 이야기다.


나무는 남이섬이나 깊은 산, 숲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어느 곳이든 크고 작은 수많은 나무들이 함께 산다. 이 책이 내 옆 나무에게 눈길 주며 인사 나누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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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칼을 들면 어떻게 될까. 이 좋은 볕이 무색하게 시린 바람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드문드문 산을 넘는 구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듯 어느덧 반을 채운 낮달이 무심하게 얼굴을 내밀 있다.


초록이 그리운 때, 겨울 숲을 찾는 묘미 중 하나는 생명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나는 것이다. 나무의 겨울눈과 언땅을 뚫고 솟아나는 꽃과 푸르름을 간직한 이끼류가 그것이다. 움츠려 숨죽인듯 보이지만 그 속엔 생명이 꿈틀대고 있다.


바람이 아무리 드세더라도 볕을 이기진 못한다. 제 기운만 믿고 설치다 치친 바람이 잠깐 쉬는 사이 볕이 좋은 곳에 앉아 낮달과 눈맞춤 한다. 반달이 수줍은듯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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