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반기듯 새벽에 쌓인 눈이 고마웠다. 먼길 달려온 수고로움에 등 토닥이는 손길이 더해졌다. 어쩌면 바라던 귀한 모습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까만밤 하얘지라고 다시 눈이다. 덕분에 설중 복수초福壽草와의 눈맞춤을 하고, 덕분에 반가운 마음에 온기까지 더해졌다. 애써 꽃을 찾는 마음의 본뜻이 무엇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미소로 이미 알았다. 매 순간마다 얼굴 가득 미소가 피어난다.


그 마음이 꽃처럼 곱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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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芽鱗
눈쌓인 겨울숲엔 이미 봄이 꿈틀대고 있다. 얼음짱 밑으로 물이 흐르고, 언땅을 뚫고 새싹이 돋고, 개울가 나무가지에 물이 오르고, 가지끝 겨울눈은 부풀어 오르고 있다.


아린芽鱗, 겨울눈을 감싸고 있으면서 나중에 꽃이나 잎이 될 연한 부분을 보호하고 있는 비늘잎을 말한다.


생강나무의 겨울눈이 부풀어 올랐다. 봄은 이처럼 여리디여린 가지 끝으로부터 온다. 그 여린 것이 매서운 추위를 어찌 견딜까 싶지만 여리기에 빠르게 봄의 기운을 안고 부풀어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겨울과 봄의 경계가 서로를 무너뜨리는 때가 지금이다.


부드럽고 여린 것이 품고 있는 온기가 봄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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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문선 8', - 책과 자연
-서유구 외 저, 안대회 이현일 편역, 믿음사


한국산문선 8권은 권상신, 이옥, 남공철, 심노숭, 서유구, 김조순, 김려, 정약용, 서기수 등 정조 시기에 교육을 받아 창작을 시작하고 순조 시기에 왕성하게 쓴 문장가 23명의 산문 70편을 엮었다.


앞 시대 영조 후기에 일어난 소품문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 더욱 풍부한 문장을 펼친 때로 정조와 순조 년간에 이르는 시기다. 다양한 신분과 처지의 역량 있는 작가들이 도전적인 주제, 참신한 문체, 신선한 시각을 담은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인다.


단연코 '이옥'에 주목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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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밤 하얘지라고 눈이 내린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눈은 빠르게 땅에 닿고 닿는대로 쌓인다. 순식간에 높이를 더하여 땅의 높고낮은 경계를 허문다.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듯 깊어가는 밤의 정적을 깨우는 눈이다.


폭설이다. 입춘도 지난 때 폭설을 만나는 낯선 경험이 싫지가 않다. 꽃 피기를 기다리는 간절함을 시샘이라도 하는듯 하늘의 변덕이 요란하다. 꽃을 향한 그리움이 깊다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눈오는 밤의 운치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뜰에 서서 하늘과 마주 한다.


눈속에서 여물어 더욱 깊어질 봄의 그윽한 향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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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서 막 깨어나는 노루귀와 눈맞춤하고 나니 시간이 흐를수록 얼마나 더 피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다시 보고자 입춘에 길을 나섰다. 생각보다 많은 눈으로 덮인 숲에서 새생명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고 험난한 여정이다.


노루귀 보았던 비밀의 숲은 설국이라 지난번 보았던 개체의 상태만 겨우 확인하고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지난 봄 계곡을 내려오며 발견했던 몇몇 곳의 노루귀 터전이 궁금해서다.


얼어붙은 계곡물 위에 쌓인 눈을 헤치고 스틱으로 꼼꼼하게 두드려 확인하며 거슬러 오른다. 눈에 익은 장소마다 멈춰서서 눈 위로 드러난 흔적을 확인하지만 쌓인 눈을 뚫고 올라온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눈이 녹을 시간동안 안으로 성장했을 노루귀를 기대해 본다.


계곡의 끝에서 만난 소나무다. 한 뿌리에서 나 하늘 향해 나란히 뻗어가다 나란히 누웠다. 그 나무의 기울기가 허락한 터전에 소복히 내려앉은 눈이 제법 두텁다. 눈이 감지하는 눈의 두께와는 다르게 하얀 눈이 주는 무게감은 훨씬 가벼워 보인다.


숲은 계절에 따라 스스로 속내를 보여줄 경계를 마련해 두었다. 가장 깊숙하고 은밀한 곳까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시간이 이 겨울이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겨울숲으로 들어가는 이유다. 숲으로 난 길의 마지막에서 겨우 보이는 하늘을 보며 깊고 긴 숨을 들여마신다. 숨이 가빠오도록 호흡을 멈춘다.


차고 맑고 깨끗한 겨울 숲의 정기精氣를 가슴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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