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인해 봄 밤의 운치를 더한다. 생동하는 봄의 기운과는 달리 차분하게도 내린다. 꽃 보느라 산으로 들으로만 향했던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려여야 한다는 봄의 다독임이다.


그러나 어쩌랴 봄비에 한창 물오른 나뭇가지처럼 꽃과의 눈맞춤에 빠져버린 것은 이 봄이 지나도 잠잠해지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것을.


봄을 온전히 누려야 한해를 무사히 건너갈 힘을 얻을 수 있다. 한밤 가득 내리는 이 비로 미처 깨서나지 못한 봄이 한꺼번에 일어날 내일을 기대한다.


나는 깨어나는 봄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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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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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메모는 일상이자 삶이었다

책은 다양한 의미에서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한 도구이다수 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책의 지위는 아주 막강한 힘을 가져왔으며 현대에 이르러 조금씩 위상이 변하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책이 가지는 가치와 의의는 엄중하다역사 속에서 책을 사랑했던 옛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여기에 더하여 책을 좋아하는 것과 뗄 수 없는 것이 메모라 할 수 있을 것이다무엇인가를 간략하게 쓴다는 메모는 생활문화가 바뀌면서 메모를 한다는 것이 낯선 모습으로 변해간다급하면 목소리를 녹음한다거나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거나 조금 더 여유 있으면 휴대폰 메모장의 기능을 활용한다손으로 무엇을 기록한다는 것이 이렇듯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정민 교수의 '책벌레와 메모광'은 책을 유난히 사랑했던 사람들과 그 책 속에 남겨진 흔적들을 찾아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옛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옛 책의 흔적을 통해 그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만난다책과 메모의 상관관계를 찾아보는 흥미로움이 있다. "책을 향한 사랑기록에 대한 열정이라는 주제로 삶에서 책을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고 종이가 없으면 감잎에라도 스쳐가는 생각을 붙잡아둔 책에 미치고 메모에 사로잡힌 옛사람들 이야기인 셈이다.

 

정민 교수가 첫 번째로 주목한 것은 책과 관련되어 흥미로운 관심거리 중 하나인 장서인이다책에 찍한 책도장이 중국와 조선 그리고 일본에서 각기 다른 의미를 가졌다장서인을 대하는 태도가 조선은 소유의 개념으로 책이 자신의 손에서 떠나면 장서인을 지워버리고 일본은 이미 있는 장서인 위에 소자를 덧 찍으며 중국은 기존의 장서인을 그대로 두고 자신의 장서인을 찍었다이렇게 장서인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동양 3국의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작용한다.

 

장서인’, ‘책벌레’, ‘쇄서’, ‘운초’, ‘용서’ 등 현대사회에서는 다소 생소한 단어와의 만남을 통해 책과 관련된 문화를 확인하게 된다이처럼 정민 교수가 이 책에서 책에 미친 책벌레들과 기록에 홀린 메모광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한 사회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에 있어 보인다여전히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인 인문학이 주목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여겨지기에 이 책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

 

책의 여백에 메모를 남기든 따로 메모장을 만들어 사용하든 아니면 일상을 함께하는 휴대폰 메모장을 활용하든 생각을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도구로 메모가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옛사람들의 독서문화와 기록문화를 살펴 달라진 환경에서 스스로에게 유용한 방법을 찾아 사용하면 될 것이다.옛사람들의 독사와 기록문화를 통해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갖는 독서와 메모의 가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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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을 모았다지만 과하지 않다. 소박한 민초들의 삶 만큼이나 소박한 소원이니 굳이 오색 댕기와 같은 과한 치장도 필요 없으리라. 왼쪽으로 꼰 새끼줄을 일곱번 허리에 두르고 정갈한 마음 처럼 하얀 종이를 고이 접어 걸어두는 것이면 마땅했으리라.


더 크고 웅장한 위쪽 할아버지 나무를 두고 잘려나간 가지로 인해 더 애뜻한 할머니 나무에 두손 모아 마음을 얹어 놓았다. 깊은 사연과 뜻하는 바가 있어 할머니 나무에 금줄을 걸었을테지만 길손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420여 년을 한자리에서 살았다고 하니 세월을 짐작도 못한다. 대나무 숲 우거진 마을 입구에 서서 들고 나는 뭇생명들의 안부를 챙겼으리라.


정갈한 마음으로 나무 둘레를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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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부채'
꽃소식 따라 몸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도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꽃이 있기 마련이다. 알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야기 꺼리도 못되지만 먼 곳이거나 가까이 있어도 때를 놓치면 볼 수 없어 언젠가 볼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눈을 녹이면서도 생명의 열정을 보여주는 앉은부채도 그렇게 보고 싶은 식물에 속했다. 지난 겨울에서야 멀지 않은 곳에 자생지가 있다는 것을 접하고 두 번째 발품을 팔아 눈맞춤 했다. 조금 늦은 때라 새 잎이 올라온 것까지 볼 수 있어 이제는 잎을 보고도 알아볼 수 있겠다.


'앉은부채'라는 이름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부처님과 닮아서 '앉은부처'라고 부르던 것이 바뀐 것이라고 하고, 잎이 땅에 붙어 있고 부채처럼 넓게 펼쳐진 모양 때문에 앉은부채라는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앉은부채는 꽃을 피울 때 스스로 열을 내고 온도를 조절하는 신비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눈을 녹이면서 꽃을 피울 수 있나 보다. 봄 눈 다 녹은 후에 가까스로 눈맞춤했다.


우엉취·삿부채풀·삿부채잎이라고도 하는 앉은부채의 꽃말은 '그냥 내버려 두세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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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봄인 게다'
모든 생명의 그 본성은 붉다. 제 아무리 꽃들이 화려한 색과 몸짓으로 봄을 불러온다지만 그것은 다 서막에 불과하다. 봄은 언땅을 뚫고 올리오는 새순의 붉음을 보아야 비로소 시작된다. 봄을 새로운 희망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봄앓이가 서럽도록 아름다운 것은 붉은 생명의 속내가 꿈틀대기 때문이다. 붉은 생명의 기운이 생동하는 작약의 새순으로 내 봄을 맞이하는 근본으로 삼아도 좋으리라.


내 속이 붉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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