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나섰다. 비와 숲에 들지 못하니 먼길 애둘러 나무 공방으로 간다. 일년 중 가장 이쁜 새옷으로 갈아 입고 하늘로 꿈을 키워가는 느티나무의 곁을 맴돈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장사익의 굵은 선으로 듣던 노래를 오늘은 알리의 맑음으로 듣는다. 청아해서 더 깊은 봄 속으로 한없이 떨어져도 좋을 날에 안성맞춤인 음색이다.


새옷으로 단장하는 사이에 나무는 꽃까지 피었다. 느리게 내리는 비에 꽃을 떨구는 것은 수백년을 반복하는 일이지만 수십년 살아온 내가 봄마다 새롭게 하는 봄앓이와 다르지 않다.


이 봄비에 나무도 나도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어 간다.


https://youtu.be/AxdVZgseM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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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구슬붕이'
딱히 대상을 정해두고 길을 나선 것은 아니다. 숲에 들어 그 때에 맞는 만남이면 좋다. 그것이 풀이건 나무건 특별히 구분 하지도 않는다. 들어가고 싶었던 숲에 들어 걸음을 멈추고 숲의 공기와 소리, 색과 빛 그리고 냄새까지 내 눈과 귀와 몸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보이는 것들에 주목하면 되는 것이다.


볕이 잘드는 땅 가까이에서 하늘 향해 속내를 마음껏 풀어냈다. 과하지 않은 보라색의 꽃잎에 햇볕을 품에 제 본연의 색을 발한다. 여리디여린 꽃대에 어찌 저렇게 큰 꽃잎을 달고 있을까. 땅에 바짝 붙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슬처럼 자줏빛 꽃이 뭉쳐 피어 구슬이 송송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일까. 구슬붕이에 비해 크다고 해서 큰구슬붕이라고 한다. 비슷한 모양으로 꽃을 피우는 것으로 구슬붕이, 봄구슬붕이 등이 있는데 구분이 쉽지 않다.


숲으로 깊숙하게 내려않은 햇볕이 봄 숲에 기쁜 소식을 던해주듯 큰구슬붕이는 보는이에게 꽃말 처럼 봄의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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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랑 2018-04-20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큰구슬붕이‘ 였군요.
아주 키작은 10cm 내외의 작은 줄기에 피는 꽃이 용담 비슷하고, 예뻐서 좋아라 했는데 이제야 이름을 알고 갑니다.
무진 님,
오늘도 좋은 시간되세요 ^^

무진無盡 2018-04-20 20:40   좋아요 0 | URL
요사이 숲에서 만나는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겨울의 잔재 그 칙칙함 속에서 봄볕의 위용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발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숨을 쉬면서 이미 숲에 적응된 눈을 가만히 들어 숲의 속살로 파고드는 햇살을 따라간다. 시선이 멈추는 곳에 꿈틀대는 생명의 몸짓을 본다.


눈맞춤, 햇살과 나무 그 사이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때이기도 하지만, 때론 스스로를 잊어버리는 몰입의 순간이다. 이 경험이 주는 환희가 있어 생명의 꿈틀거림으로 요란스런 봄의 숲을 찾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봄의 숲은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가슴을 펴고 설렘으로 다가올 시간을 마주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힘을 발휘한다. 알든모르든 모든 생명이 봄앓이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볕을 가득 안고 돋아나는 붉거나 연초록의 새순은 연약하기 그지없지만 무엇보다 강한 생명이 가지는 힘의 증거다. 먼 산에 피는 산벚꽃으로 봄이 익어가듯 사월의 숲에서 나의 봄앓이도 여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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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말하였네'
-고규홍, 마음산책


"한 그루의 나무를 적어도 세 해에 걸쳐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다 다른 나무에게서 다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사람"


저자의 나무를 대하는 마음에 특별함이 있다. 이렇게 나무를 특별하게 볼 줄 아는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이 그 사람이다. '이 땅의 큰 나무'를 비롯하여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나무 1ㆍ2ㆍ3', '도시의 나무 산책기' 등 다수의 나무 이야기 책이 있다.


이 책은 저자 고규홍의 '나무가 말하였네 1ㆍ2'에 이어 발간된 책으로 옛시에 깃든 나무 이야기다. 이황, 김정희, 박지원, 정약용, 김시습, 윤선도, 황진이, 한용운, 왕유, 원매, 도연명의 시까지 나무를 말하는 옛시 75편을 엄선해 옮기고, 다정하고 세심한 감상과 사진을 더했다.


풀꽃에서 나무꽃으로 시선이 옮겨가는 때, 계절이 주는 선물처럼 옛시와 나무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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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꽃 진다고 황소 눈만큼이나 큰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 보이던 사내는 산 아래 벚꽃잎 떨어진 나무 그늘에 앉았다. 떨어진 벚꽃을 세며 손가락을 수도 없이 접었다폈다를 반복하더니 물기어린 눈가를 훔치며 힘없이 중얼거린다.


"때를 알고 지는 산벚꽃이 무슨 죄야. 너 보고픈데 못보는 애달픈 맘 주체하지 못하고 봄 탓으로 돌린 나 때문이지. 이제 숨 한번 크게 쉬었으니 돌아오는 봄까지 안녕ᆢ."


봄, 그대 마음을 봐 버려서 봄인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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