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緣'
굳이 말이 필요없다. 언어 이전에 이미 감지하고 무의식적으로 표현되는 영역이 여기에 속한다. 하여, 언어로 설명하기엔 부족하고 어설프다. "어찌 알았을까? 이 마음" 만으로 충분하다.


애쓰지 않아도 보이는 마음 같은 것. 빛과 어둠이 서로를 의지하여 깊어지는 것. 사람도 자신의 마음에 세겨진 결에 의지하여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시간을 공들여 쌓아가야 가능하다.


이른 아침 볕이 사나워지기 전에 뜰을 걷는다. 잘려나간 단풍나무의 돋아난 새순에 아침햇살이 닿았다. 세상에 나와 숨을 쉬는 것을 축하라도 하듯 새순과 햇살의 만남이 눈부시다.


때마침 서로 서로가 어우러져 눈부심으로 피어나는 것처럼 그대와 내가 만나 겹으로 깊어지는 일도 이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여, 연緣은 연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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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리'
여름 하늘에 무엇이 있을까. 익숙한 길이고 제법 사람도 많은 곳인데 봐주는 이는 드물다. 사람 눈길이야 받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테지만 나비나 벌도 없다. 무심코 올려다 보는 그 모습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노고단 대피소 앞에서 만났다.


화려하고 강렬하다. 짙은 황적색 꽃잎의 안쪽에 자주색 반점이 있다. 곧장 하늘을 보며 핀다. 줄기에 어긋나는 잎이 조밀하게 달린다.


나리는 꽃이 어디를 향해 피느냐에 따라 구분한다. 땅을 보면 땅나리 하늘보면 하늘나리라식 식이다. 여기에다 줄기에 잎이 돌려나는 하늘말나리, 잎이 솔잎을 닮은 솔나리, 주근깨 투성인 참나리, 털중나리, 중나리 등이 있다.


대표적인 여름꽃이 산과 들에 피는 나리들이다. 야생에 피는 꽃을 보는 즐거움을 대변하듯 하늘나리의 꽃말은 '길들여지지 않음', '변치 않는 귀여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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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고자 함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수고로움을 마다않고 하늘을 향하는 이유가 있다. 그곳에 닿고자 함이다.


그 끝을 알 수 없기는 하늘 끝을 짐작하는 것이나 알 수 없는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나 매 한가지다. 나는 그 알 수 없는 내일을 담보로 오늘을 내일로 미룬다. 마치 내일을 앞당겨 오늘 살 수 있는 것처럼ᆢ.


닿고자 하나 끝내 닿지 못하리라는 것쯤은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마음의 키를 하늘 끝까지 키울 것이며 버릇처럼 책을 읽을 것이고 먼길을 마다않고 꽃을 찾아다닐 것이며 그것이 무엇이든 눈길 머무는 순간을 기록할 것이다.


내가 내 삶을 살아가며 내 감정과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다는 듯이ᆢ.


약득若得이면 만족滿足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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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오줌'
만나고 싶은 꽃소식을 듣고 낯선 숲에 들었다. 가면 볼 수 있을거란 섯부른 판단이 몸 고생을 자처할거라는 후회는 늘 나중의 일이 된다. 산 중턱으로 잘 가뀌진 산책로엔 나무데크만 더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곳에서 만난 유일한 꽃이다.


연분홍 꽃이 봉우리를 만들었다. 여러 갈래로 난 꽃가지들이 한곳에 뭉쳐나 커다란 꽃차례를 형성하여 전체 모양이 글씨쓰는 커다른 붓같기도 하다. 미세한 털이 빽빽하게 붙어 있는듯 보여 볼 때마다 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노루오줌은 뿌리에서 지린내가 나서 노루오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오줌 냄새를 내는 이유는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서겠지만 뿌리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라 확인은 못한다. 꽃봉우리가 숙여지는 겉모습으로 구분되는 숙은노루오줌도 있지만 이렇게 따로 구분이 필요할까 싶다.


초여름 숲에서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다. 의미를 부여하는 말이 많은 것은 그만큼 친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약 없는 사랑', '붉은 설화', '정열', '연정' 등 다양한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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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길 위에 섰다. 섬진강 상류 어느 곳이다. 강을 가로지르던 기찻길이 철거되면서 끊긴 강 위로 새로운 길을 열었다. 사람도 걸어서 건너지만 돌아오기 위함이고 강을 따라 내려오는 자전거를 탄 이들은 통과하는 곳이다.


해질무렵 산을 넘는 초승달을 보다가 문득 반듯하게 손을 치켜든 형상이 인상적이어서 주목한다. 자전거를 타고 강을 건너다 마주보는 이에게 인사를 건네는 순간인지도 모르겠지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라 눈에 거슬린다. 화면 밖 뒤따라가는 일행은 고개를 숙였다.


해질무렵 앞집 초등학생의 자전거라도 빌려타고 강둑을 달려보고 싶다. 가슴을 열어젖히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조금이라도 시원해질까. 한낮에 더위에 저녁 어두워지는 풍경을 미리 본다.


연일 타는듯 강렬한 햇볕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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