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넣어두거라'


送黃子中 황자중에게 준다
奎章全韻一件 규정전운 한 건
唐筆一枝 중국 붓 한 자루
唐墨一錠 중국 먹 한 개
扇子一把 부채 한 자루
烟杯一具 연배 한 개
路費 錢二兩 여비 돈 두 냥


*스승의 제자를 향한 마음이다. 다산 정약용을 찾아온 황상이 돌아간다고 하자 제자에게 준 선물 목록이다. 다산과 강진 유배시절 제자 황상이 다산이 강진 유배 해배 이후 수 십년 만에 만났다. 기력이 다한 다산은 1836년 2월 22일 회혼연回婚宴 마저 취소하고 마지막을 제자와 함께 보낸다.


"규장전운ㆍ먹과 붓, 이제라도 그간 접어두었던 시 공부를 다시 시작하라는 스승의 뜻이시네. 더우면 부채를 부치고, 힘들면 담배도 한 대 피우게, 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란 뜻이시네."


너무도 오랜만에 보았지만 다시는 볼 수 없는 두 사람의 마음에 절절함이 가득이다.


"학연이 대신 말하고, 스승은 다시 자리에 누웠다. 스승의 눈빛은 이미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대답도 못하고 꾸러미를 안고 울음을 삼키며 물러나왔다."


"삼근계를 받던 1802년 10월 17일의 풍경이 떠올라서 울고, 학질에 걸려 덜덜 떨며 공부할 때 '학질을 끊는 노래'를 지어주며 힘을 실어주던 정다운 목소리가 생각나서 울었다. 신혼의 단꿈에 빠졌을 때 혼이 다 나갈 만큼 야단 치시던 그 편지가 생각나서 울고, 아버지 장례 때 다시는 안 보겠다며 서슬 파랗게 진노하던 그 사랑이 그리워서 울었다. 살아서는 네 편지를 다시는 받아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스승의 편지를 받고도 7년을 미적거린 자신의 미욱함이 미워서 울고, 그 아픈 중에 제자를 위해 삐뚤빼뚤하게 규장전운이란 글자를 쓰던 그 마음이 고마워서 또 울었다."


스승과 제자, 다산과 황상의 마음자리를 엿보는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 등골이 송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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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평양
성석제 외 지음 / 엉터리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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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평양?

2018년 4월 27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무위원장이 남과 북의 경계선을 넘어갔다가 넘어왔다마치 전 세계인들을 증인으로 세우기라도 하듯 모두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멈췄던 꿈을 다시 꾸었다가능할까당연히 되던 염원을 넘어 현실로 이뤄질 수 있는 꿈을 꾸었던 것일까?를 반복해서 되 뇌이면서도 믿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꿈을 넘어 현실로 그것도 살아생전에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여기에다 한 가지를 더한다평창 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혼란스러움은 그것만이 아니었다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에 대한 현실보다 북한 주민이 알고 있는 남한에 대한 현실 인식이 훨씬 더 정확하고 실상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런 현실에서 짐작할 수밖에 없는 평양의 오늘과 내일이 얼마나 현실성 있게 그러질 수 있을까? "내일의 평양은 오늘의 평양과 다를 겁니다"라는 이 말이 가지는 현실적인 의미가 무엇일까?

 

'성석제공선옥김태용정용준한은형이승민' 30대에서 50대 중반에 이르는 6인의 각기 다른 세대가 그 북한을 이야기 하고 있다이들이 이야기 하는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지난해 말부터 올 봄에 이르는 극히 짧은 시간 경험했던 것을 반영하겠지만 오랫동안 우리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었던 허상을 출발점으로 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로 인해 여섯 편의 소설이 가지는 모호성이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그들이 그려가는 내일의 평양이 어제의 평양을 뛰어넘어 설정될 수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알아야 지향하는 바가 명확해지며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문학이 가상의 현실을 그려가는 것이라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미래를 선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 현실을 반영하며 암울했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에 익숙한 분위기조작된 사건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자유를 찾아 탈출했다지만 그 자유가 오히려 삶을 구속하는 공간상상만으로 미리가보는 공간 등의 이야기는 한걸음 벗어난 저기 어디쯤에 머물러 있다.

 

그렇더라도 북한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소설이 등장하고 이것이 하등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현실이 중요하다이것으로 시작으로 보다 본격적인 통일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소설이 등장하는 시발점으로 그 의미가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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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이다. 터를 정하고 돌을 골랐다. 이리저리 돌려보며 생긴 모양대로 하나둘 쌓았다. 쌓은 돌이 높아질수록 더 간절해지는 마음이다. 누구든 무엇을 염원하든 그 마음자리 정갈함은 한마음이다.


파아란 하늘에 멈춘듯 떠가는 솜털구름도 폭염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참새들도 알아서 그늘로 찾아 들고, 그늘에 든 고양이는 졸린 눈 감지도 못하며 연신 고개만 꾸벅거린다. 여전히 바람은 먼데서만 불고 그 바람도 열기가 가득이다. 염천炎天 아래 더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돌을 쌓듯 정성으로 건너온 발걸음, 햇볕 속 구름의 더딘 움직임과 다르지 않다. 아직 그대로 있을까. 돌탑을 품고 있는 그 숲을 걷던 기억으로 이 여름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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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요등'
꽃을 보기 위해 늘 먼길을 나설 필요는 없다. 사는 곳이 어디건 꽃 없는 곳은 없기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지천으로 꽃이 있다.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무슨 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골목 입구에 늙은 감나무 한그루 있고 그 감나무를 경계로 돌담이 남아 있다. 담쟁이덩굴이 주를 이루지만 이에질세라 덩굴로 자라며 세력을 확장시켜가는 식물이 이 계요등이다. 들고나는 때마다 눈맞춤 한다.


통모양의 꽃이 줄기 끝에 다닥다닥 붙어서 핀다. 꽃통의 윗부분은 다섯 개로 갈라지고, 꽃은 약간 주름이 잡히면서 하얗게 핀다. 안쪽은 붉은 보랏빛으로 곱게 물들어 있고, 제법 긴 털이 촘촘히 뻗쳐 있다. 이 붉은색을 보는 맛이 여간 아니다.


계요등은 닭 오줌 냄새가 나는 덩굴이란 뜻이다. 잎을 따서 손으로 비벼 보면 약간 구린 냄새가 나는 것에서 유래했다. 계요등의 다른 이름은 구린내나무다. 냄새 역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나에겐 기피할 만큼 싫은 냄새는 아니다.


다른 식물을 감고 자라기도 하고 땅으로 넓게 퍼지기도 하듯 환경에 잘 적응하는 모습에서 비롯된 것일까. '지혜'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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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다. 어찌하다 그곳에 자리잡았을까. 그것도 틈이라고 파고들어 자리를 잡고 움을 틔웠다. 폭염 속에서도 간신히 버티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든든한 생명의 보금자리에 든 것처럼 안정적이다. 생명의 근본이 이렇다는듯 의연하다.


7월 마지막날, 한낯 열기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다. 반가워할 이유도 없는데 무서울 것 없다는듯 거침없이 파고들어오는 열기에 속절없이 당하고만다. 땡볕도 제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는듯 비틀거린다. 이렇게 세상이 제것인듯 날뛰는 것은 얼마 남지않은 몸부림이라는 것을 스스로 아는 까닭이다.


염덕炎德이라며 세상을 보듬었던 조상들의 마음자리는 책 속에서만 머물고, 소나기 소식은 산 너머에서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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