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白露'
이날 이후 가을의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시점으로 삼는다.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 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한다.


안개가 가득한 아침이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에 쑥부쟁이가 피었다. 연보라 꽃에 맺힌 이슬로 가을로 가는 시간을 인증해도 좋을 징표로 삼는다.


속담에 "봄에는 여자가 그리움이 많고, 가을에는 선비가 슬픔이 많다"라고 한다. 백로를 지나면 본격적인 가을이다. 혹, 반백의 머리로 안개 자욱한 숲길을 넋놓고 걷는 한 남자를 보거든 다 가을 탓인가 여겨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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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酒飮敎微醉後
好花看到半開時
좋은 술 마시고 은근히 취한 뒤
예쁜 꽃 보노라, 반쯤만 피었을 때

*중국 송나라의 학자 소옹邵雍이 읊은 시다. 은근함과 기다림에 주목한다.

아침 이슬이 깨어나기도 전에 햇살 품은 꽃봉우리가 곱게도 열린다. 꽃 문을 열개하는 것이 빛일까 아니면 온도일까. 서툰듯 수줍게 속내를 보이지만 허투른 몸짓이 아니라는 듯 야무지다.

대개는 화양연화의 순간을 꿈꾸기에 만개한 꽃에 주목한다. 결과의 달콤함을 얻기 위내 서둘러 만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알까. 꽃 피고 나면 지는 일만 남는다는 것을ᆢ. 

이제는 안다. 화양연화의 순간 보다는 절정으로 가는 과정이 아름답다는 것을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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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떡풀'
보러가야지 마음 먹고 있었는데 짐작도 못한 곳에서 의중에 있던 꽃을 만나면 그 순간의 모든 것이 특별하게 기억된다. 윗 지방에서 꽃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언젠가는 볼 날이 있겠지 하며 마음 한구석에 접어두었던 꽃을 만났다.


활짝 핀 꽃은 아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잎 때문이다. 바위에 바짝 붙어 자라며 한자 大자 모양으로 흰꽃이 핀다. 꽃도 꽃이지만 잎에 주목한 덕분에 알아볼 수 있었던 꽃이다.


바위떡풀, 참 독특한 이름이다. 바위에 떡처럼 붙어 있다고 붙여진 이름 일까. 산에 있는 바위틈이나 물기가 많은 곳과 습한 이끼가 많은 곳에 산다.


가까운 식물들로는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지리산바위떡풀'과 울릉도에서 자라는 '털바위떡풀'이 있다고 한다. 이 개체도 지리산에서 본 것이니 지리산바위떡풀일까. 구분하지 못하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바위에 붙어 독특한 잎 위로 피는 자잘한 흰꽃이 무척이나 귀엽다. '앙증'이라는 꽃말이 저절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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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모금

"사령이 담배불을 붙여 올리면 높이 화문석에 기대어 천천히 피우는 어느 고관의 귀격貴格, 앉아서 피우건 누워서 피우건 그 편한 대로 하는 복격福格, 부지런히 입술과 혀를 놀려 한 번 빨고 두 번 빨아들임에 연기가 곧바로 입에서 나오는 묘격妙格, 아리따운 여인이 연인을 만나 애교를 부리고 잠자리를 같이하다가 님의 입 속에서 아직 반도 때우지 않은 담뱃대를 바삐 앵두같은 입술 속에 넣고서 웃으며 피우는 염격艶格, 그리고 농부가 쉬면서 보리막걸리를 한 순배 돌리고 왼손으로는 담배꼬바리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부시를 잡고 불을 사르면 연기가 봉홧불처럼 피어올라 곧바로 코를 찌르는 진격眞格이 그것이다."

*조선 사람 이옥李鈺(1760~1815)이 자신의 글 연경烟經에서 흡연의 품격 즉 연취煙趣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담배 피는 것을 죄악시 하는 현대인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묘사다. 여기에 더하여 한 편의 시를 보자.

"위로는 재상으로부터 아래로는 하인까지
안으로는 규방에서 밖으로는 고을 기생에 이르기까지
입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즐기지 않으리오"

조선에 담배가 들어온 때는 17세기 초엽으로 광해군 때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급속도로 펴져 그야말로 담배 천국이나 다름 없다. 

"담배는 사람에게 이롭다. 더울 때 피우면 더위가 물러가고 추울 때 피우면 추위를 막아주고 식사 후에 피우면 소화를 도와준다. 용변을 볼 때는 악취를 없애주며 잠이 오지 않을 때 피우면 잠이 온다. 뿐만 아니라 시나 글을 지을 때, 남들과 대화를 나눌 때, 조용히 앉아 사색에 잠길 때 등 어느 경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없다."

담배 피는 것을 좋이했던 정조 임금의 글이다. 지독한 애연가였던 정조는 심지어 책문의 시제로 '남령초'를 내걸기도 했다고 한다.

수십 년간 피던 담배를 끊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올린 담배세 때문이다. 2014년 말 국민건강 증진의 명분을 내세웠지만, 세수부족분을 서민 부담으로 채우려는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담배를 피지 않기로 한 것이다. 두루두루 잘한 일이라 여기면서도 간혹 담배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림은 이교익(李敎翼, 1807~?)의 풍속회다.

이옥의 '담배 피기 좋은 때'라는 문장은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애연가들이 않을 듯 하다. 

"달빛 아래서 좋고, 눈 속에서 좋고, 빗속에서 좋고, 꽃 아래서 좋고, 물가에서 좋고, 누각 위에서 좋고, 배 안에서 좋고, 베갯머리에서 좋고, 변소에서 좋고, 홀로 앉아 있을 때 좋고, 벗과 마주 대할 때 좋고, 책을 볼 때 좋고, 바둑을 둘 때 좋고, 붓을 잡았을 때 좋고, 차를 달일 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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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道理'
-한정주, 아날로그

"하나하나의 글자가 언어의 음과 상관없이 일정한 뜻을 나타내는 문자. 고대의 회화 문자나 상형 문자가 발달한 것으로 한자가 대표적이다."

이는 표의문자表意文字에 대한 사전적 의미다. 이 책을 선택한 의미가 여기에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의미와 가치를 가진 한자의 뜻을 살펴 일상을 돌아보고자 하는 의미다.

恥, 驕, 改, 諂, 賢, 滿, 錢, 弘, 利, 謙, 惑, 訥, 禮, 辱, 嫌, 敵, 傷, 仁, 恕, 恩, 傾, 潔, 責, 和, 義, 惡, 偏, 善, 思, 明, 完, 益, 悔, 疑, 靜, 望, 盛, 警, 容, 安, 哭, 苦, 較, 勝, 智, 貧, 寬, 染, 孝, 寒, 忠, 惕, 聽, 信, 樂, 面, 訓, 終, 猜, 難

60자 한자 중 훈과 음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글자가 몇이나 될까. 하나하나를 읽고 그 뜻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래전에 읽었던 황광옥의 <동양철학 콘서트> 이후 두번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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