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물봉선'
꽃 피었다고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사진 속에서 만났다. 내가 사는 근처에 흔하게 보이는 물봉선과는 분명 다른 멋이 있어 언젠가는 꼭 보고 싶었던 꽃이다. 몇 년 간의 경험으로 보아 한번 보고자 하는 꽃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볼 기회가 생긴다.


물가에 피는 봉선화라고 해서 물봉선이다. 보통의 물봉선이 연붉은 색으로 핀다면 노랑색으로 피어서 노랑물봉선으로 부른다. 흰색으로 피면 흰물봉선으로 부른다.


물봉선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색이 다른 것이지만 그것 외에도 말린 꼬리가 아니라 구부러진 모습이다. 노랑물봉선 무리 속에는 닫힌꽃도 흔하게 보인다.


무주의 적성산에서 처음 본 이후로는 매년 지리산에서 만나고 있다. 봉선화와 같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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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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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의 질감으로 다가온 문장

볕이 참으로 좋은 날이다이 가을 파란 하늘 아래 까실까실한 볕으로 만물이 뽀송뽀송 여물어 간다볕은 어느 계절에나 다 있지만 계절마다 질감이 다르다차가운 겨울을 무사히 건너기 위해서 따스함을 이 가을 속에서 얻고 가는 것이 순리라는 것처럼 볕이 주는 독특한 질감으로 인해 가을이 더 특별해진다.

 

이 독특한 볕처럼 사람의 가슴에 온기를 스미게 하는 것이 또 있다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며 자신이 가진 온기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만드는 글이 그것이다이런 글을 만나면 일상에서 느끼는 버거운 삶이 위로 받기에 가까이 두고 자주 펼치게 된다나에게 있어 그런 문장을 만나게 된 계기는 옛사람들의 글을 접하면서부터다.

 

옛사람의 글에 매료된 계기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있었다면 그 옛글을 본격적으로 탐독하게 된 중심에는 이덕무가 있다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조선의 영 정조 시대를 살았던 문인이다가난한 서얼 출신으로 정조에 의해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되었고북학파로 불리며 박지원홍대용박제가유득공과 교류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그의 문집으로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있다.

 

이 책 '문장의 온도'는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의 글을 고전연구가 한정주가 선별하여 엮고 옮겼다. "거창하고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소박한 문장인데도 몸과 마음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문장"이라는 평을 받는 이덕무의 글은 가을볕처럼 사람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 넣기에 충분하다.

 

만약 한 사람의 지기知己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마땅히 십 년 동안 뽕나무를 심을 것이고일 년 동안 누에를 길러 손수 다섯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할 것이다열흘에 한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한다면 오십 일 만에 다섯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할 수 있을 것이다이 오색의 실을 따뜻한 봄날 햇볕에 쬐어 말리고아내에게 부탁해 수없이 단련한 금침으로 내 지기의 얼굴을 수놓게 해 기이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玉으로 축을 만들 것이다그것을 높게 치솟은 산과 한없이 흐르는 물 사이에 걸어 놓고 서로 말없이 마주하다가 해질녘에 가슴에 품고 돌아올 것이다.” (선귤당농소)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고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고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다.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지만 지극히 드문 일이다이런 기회는 인생 동안 다 합해도 몇 번에 불과하다.” (선귤당농소)

 

이덕무의 글에 가진 독특함은 일상에서 사소하게 만나는 모든 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다는 것에 있어 보인다그러하기에 글에 담긴 사유의 깊이나 온도가 거부감 없이 읽는 이의 마음에 그대로 투영된다그것이 이덕무의 글을 자주 읽게 만들며 그가 이끄는 깊은 사유로 세계로 찾아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가을볕의 질감처럼 사람의 마음에 깊고 두터운 온기를 전하는 글과의 만남으로 나를 위안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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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개가 곱게도 내린다. 비는 가을이 옷깃을 파고드는 속도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추적추적 긴 여운을 남길 모양이다. 밤새도록 내리는 비는 골목길도 채 적시지 못했지만 담장을 넘어 핀 막바지 능소화를 떨구었다. 지는 꽃과 아침을 반기는 꽃이 다정한 벗이라도 되는듯 다정도 하다. 

가고 오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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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선비는 가을을 슬퍼하니 서리 내리는 것을 슬퍼함인가? 초목이 아닌 것이다. 장차 추워지는 것을 슬퍼함인가? 기러기나 벌레가 아닌 것이다. 때를 만나지 못하여 강개한 사람과 고향과 조국을 떠나는 나그네라면 또한 어찌 가을만을 기다려 슬퍼하겠는가? 이상하기도 하다! 바람을 맞이하여 흐느껴 탄식하며 스스로 즐거워하지 못하고, 달을 보면 비통하여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에 이른다. 저들의 그 슬픔은 무슨 까닭에서인가? 슬퍼하는 자에게 물어보니 슬퍼하는 자 또한 슬퍼할 줄만 알지, 그 슬퍼지는 까닭은 알지 못한다.

아, 나는 알겠다! 하늘을 남자에 해당하고, 땅은 여자에 해당하는데, 여자는 음陰의 기운이요, 남자는 양陽의 기운이다. 양기는 자월子月(음력 11월)에 생겨나 진사辰巳(음력 3·4월)에서 왕성한 까닭에 사월巳月(음력 4월)은 순전한 양의 기운이 된다. 그러나 천도天道는 성하면 쇠하는 법이니, 사월巳月 이후부터는 음이 생겨나고 양은 점차 쇠한다. 쇠하면서 무릇 서너 달이 지나면 양의 기운이 소멸하여 다하는데, 옛사람이 그때를 일러 '가을'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즉 가을이라는 것은 음의 기운이 성하고 양의 기운은 없는 때이다. 동산銅山이 무너지매 낙수洛水의 종鐘이 울고, 자석磁石이 가리키는바 철침鐵鍼이 달려오는 것이니, 물物이 또한 그러하다. 오직 사람으로 양의 기운을 타고난 자가 어찌 가을을 슬퍼하지 않겠는가? 속담에 "봄에는 여자가 그리움이 많고, 가을에는 선비가 슬픔이 많다"라고 한다. 이는 자연이 가져다주는 느낌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진실로 자네의 말 그대로 선비가 슬퍼함이 그 양의 기운이 쇠함을 슬퍼하는 것이라면, 온 세상의 머리 건귁을 아니하고 수염이 난 자는 모두 가을을 슬퍼해야 할 것이다. 어찌 오직 선비만 가을을 슬퍼한단 말인가?"

내가 답하였다. "그렇다. 바야흐로 저 가을 기운이 성하면, 그 바람은 경동하고, 그 새들은 멀리 날아가고, 그 물은 차갑게 울고, 그 꽃은 노랗게 피어 곧게 서 있고, 그 달은 유난히 밝은데 암암리에 양의 기운이 삭는 조짐이 소리와 기운에 넘친다면 그것을 접하고 만나는 자 누군들 슬퍼하지 않겠는가?

아! 선비보다 낮은 사람은 한창 노동을 하느라고 알지 못하고, 세속에 매몰된 자들은 또 취생몽사醉生夢死를 한다. 오직 선비는 그렇지 아니하여 그의 식견이 족히 애상을 분변하고, 그 마음 또한 사물에 대해 느끼기를 잘하여, 혹은 술을 마시고, 혹은 검을 다루고, 혹은 등불을 켜고 고서를 읽고, 혹은 새와 벌레들의 소리를 듣고, 혹은 국화를 따면서 능히 고요히 살피여 마음을 비우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까닭에 천지의 기미를 가슴 속에서 느끼는 것이요, 천지의 변화를 체외에서 느끼는 것이다. 

이 가을을 슬퍼하는 자가 선비를 두고 그 누구이겠는가? 비록 슬퍼하지 않으려 하더라도 될 수 있겠는가? 송옥宋玉이 말하기를 '슬프구나! 가을 기운이여'라고 하였고, 구양수가 말하기를 '이는 가을 소리이다'라고 하면서 슬퍼하였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가히 선비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경금자絅錦子는 말한다. "내가 저녁을 슬퍼하면서, 가을이 슬퍼할 것이 없는데도 슬퍼지는 것을 알겠다. 하루의 저녁이 오면, 엄자가 붉어지고, 뜰의 나뭇잎이 잠잠해지고, 날개를 접은 새가 처마를 엿보고, 창연히 어두운 빛이 먼 마을로부터 이른다면 그 광경에 처한 자는 반드시 슬퍼하여 그 기쁨을 잃어버릴 것이니, 해를 아껴서가 아니요, 그 기운을 슬퍼하는 것이다. 하루의 저녁도 오히려 슬퍼할 만한데, 일 년의 저녁을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일찍이 사람이 노쇠함을 슬퍼하는 것을 보니, 사십 오십에 머리털이 비로소 희어지고 기혈이 점차 말라간다면 그것을 슬퍼함이 반드시 칠십 팔십이 되어 이미 노쇠한 자의 갑절은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미 노인이 된 자는 어찌할 수 없다고 여겨서 다시 슬퍼하지 않을 것인데, 사십 오십에 비로소 쇠약해짐을 느낀 자는 유독 슬픔을 느끼는 것이리라!

사람이 밤은 슬퍼하지 않으면서 저녁은 슬퍼하고 겨울은 슬퍼하지 않으면서 유독 가을을 슬퍼하는 것은, 어쩌면 또한 사십 오십 된 자들이 노쇠해감을 슬퍼하는 것과 같으리라!

아! 천지는 사람과 한 몸이요, 십이회十二會는 일년이다. 내가 천지의 회會를 알지 못하니, 이미 가을인가, 아닌가? 어쩌면 지나 버렸는가? 내가 가만히 그것을 슬퍼하노라.

*이옥(李鈺, 1760~1815)의 글이다. 조선 후기 정조 때 문신으로 문체반정에 연루되면서 잘못된 글을 짓는다는 공식 낙인이 찍혀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였다. 그의 글은 친구 김려(1766~1822)의 문집에 담겨 전해졌다.

아침 저녁으로 소슬蕭瑟바람이 옷깃 사이를 엿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려는 가을의 배려다. 단풍들듯 마음에 스며들 사람의 온기가 필요한 때다. 가을의 정취를 미리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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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진범'
가을로 내달리는 숲에는 늦지 않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분주하다. 여전히 꽃은 피고 지며 맺은 열매는 영글어 가고 이미 떨어진 낙엽도 있다. 그 숲에서 특이한 모양을 한 꽃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가지 끝에 옹기종기 모여 서성이듯 오리를 닮은 것처럼 특이하다. 연한 황백색으로 꽃이 핀다지만 다 핀 것인지 피는 중인지 참으로 독특한 모습이다.


모양은 진범을 닮았으나 꽃 색깔이 흰색이라서 흰진범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모양 만큼이나 독특한 이름이다.


덕유산, 지리산, 백운산 등 비교적 높은 산에서 만났다. 긴 투구를 연상하게 만드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는지 '용사의 모자'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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