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와온 바다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
전생과 후생
최초의 휴식이다

당신의 슬픈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다
구부정한 허리의 인간이 개펄 위를 기어와 낡고 해진 해의 발바닥을 주무른다

달은 이곳에 와
첫 치마폭을 푼다
은목서 향기 가득한 치마폭 안에 마을의 주황색 불빛이 있다

등이 하얀 거북 두마리가 불빛과 불빛 사이로 난 길을
리어카를 밀며 느릿느릿 올라간다

인간은
해와 달이 빚은 알이다

알은 알을 사랑하고
꽃과 바람과 별을 사랑하고

삼백예순날
개펄 위에 펼쳐진 그리운 노동과 음악

새벽이면
아홉마리의 순금빛 용이

인간의 마을과 바다를 껴안고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곽재구의 시 '와온 바다'다. "해가 이곳에 와 쉬고, 달이 이곳에 와 첫 치마폭을 푸"는 때는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었을 것이다. 하여 "해와 달이 빚은 알"인 모두는 겨울 와온 바다와 눈맞춤 해야한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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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 걸렸다. 울진 동해 바다를 온몸으로 품고 돌아와 일상을 저당잡힌 시간이다. 며칠 전부터 왼팔 저림과 근육에 통증이 오는 것을 신호로 채워야할 물리적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간다고 느꼈다.

4주 만에 보는 이가 팔걸이를 풀고 운동을 시작해도 좋다며 옅은 웃음을 보였다. 앞으로도 붙잡혔던 시간 만큼이 더 필요하다는 협박성 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남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어디랴. 움직여도 된다는 통보가 주는 해방감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볕 좋은 오후, 추위를 피해 안으로 들였던 화분을 내 놓았다. 마지막 남은 잎 하나가 온몸으로 볕을 품고 있다. 그 온기가 새 잎을 내는 힘의 원천임을 안다.

그날 그 바다를 품었던 순간과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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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암 안태중 전각전
"전무후무"
ㆍ2020. 12. 3(목)~16(수)
ㆍ갤러리 107
전남 곡성군 곡성읍 중앙로 107

*前無後無
앞도 없고 뒤도 없다
나아가고 물러설 곳도 소용이 없다
지금 이 순간만이 세워진 송곳 같다
존재는 늘 불안하고 위태롭다
그 흔들리는 흔적들이 쌓여 무늬를 만들고
궤적을 남긴다. 그러나 그뿐,
馬耳에 스쳐지나는 봄바람이다

그냥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그냥 살아 간다
특별할 것도 그리울 것도, 딱히 할 말도 없다
벗이 찾아오면 반갑고 졸리면 잠을 잔다
가끔 그대 웃음이 하얗게 빛날 때
물든 가을 여뀌꽃 한줌 꺾어 화병에 담으면
살며시 심쿵거린다
깊어지는 것들은 갇히기 쉽고
부서지는 것들은 흩어져버리기 쉽다
그만큼 만, 이름 모를 들꽃 그 모양만큼만
살아 내기로 한다

좋은 말도 다 하지 않기로 한다
말을 줄이니 분주함이 줄어들고
분주함이 줄어드니 사유가 가볍다
선량한 바람이 어께에 인다

보풀 같은 작은 그리움들,
아직 넘기지 못한 미련들이 토해놓은, 어줍잖은 작품들이다
제현의 아량과 가호가 있기를?.
(度齊에서 야암 안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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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날이다. 한 이틀 비오고 흐려 기운을 빼놓더니 이를 만회라도 하듯 따스한 볕이 뜰에 가득하다.

제법 시간이 흘렀다. 한팔의 부자연스러움이 주는 어색함이 일상에서 머물더니 그것도 익숙해질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찾아온 무력감에 몸도 마음도 붙잡히더니 움직임의 반경을 좁혀온다. 이를 애써 모른척하며 붓을 들어 그리는 것인지 쓰는 것인지도 모를 글자를 종이에 옮기는 시간만 늘어간다.

어느덧 팔의 움직임에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주어진 물리적 시간이 다 채워져감을 느끼지만 일상을 지배하는 무력감 역시 무게를 더하고 있다.

생명을 다했다고 보여지는 저 나무는 어떨까. 새순을 내며 무수한 시간을 살아왔고 더이상 낙엽을 떨구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나로써는 쓰러져 땅으로 돌아갈 나무의 남은 시간도 가늠할 수 없다.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듯 보이는 저 나무의 힘은 어디로부터 연유한 것일까. 제 성질대로 키를 키우고 가지를 펼치며 살다 어느덧 다 내어주었다. 그러고도 남은 일생을 묵묵히 감당해가는 나무의 위로가 따뜻하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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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편지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
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의 라일락 꽃향기를 맡기 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곽재구의 시 '새벽 편지'다. 각자의 방식으로 맞이하는 새벽에 누군가의 온기 가득한 인사를 받는다면 반짝이는 별을 가슴에 품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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