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나리'
지난해는 남덕유산(1507m)을 오르게 했던 꽃을 올해는 가야산(1430m)에서 만났다. 남덕유산에 비해 다소 단조로운 능선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꽃놀이하느라 좋은 시간을 보냈다.

비로 기억되는 가야산은 여름 꽃의 천국이다. 그 안에 주목하는 것은 솔나리와 네귀쓴풀이라지만 그외에도 자주꿩의다리를 비롯하여 다양한 꽃들을 만날 수 있다.

크지 않은 키에 솔잎을 닮은 잎을 달고 연분홍으로 화사하다. 다소곳히 고개숙이고 방긋 웃는 모습이 막 피어나는 아씨를 닮았다지만 내게는 삶의 속내를 다 알면서도 여전히 여인이고 싶은 중년의 수줍음으로 보인다.

꽃은 밑을 향해 달리고 꽃잎은 분홍색이지만 자주색 반점이 있어 돋보이며 뒤로 말린다. 길게 삐져나온 꽃술이 꽃색과 어우러져 화사함을 더해준다. 강원도 북부지역과 남쪽에선 남덕유산과 가야산 등 높은 산에서 볼 수 있다.

살며시 전해주는 꽃의 말이 깊고 따스하다. 아름다움을 한껏 뽑내면서도 과하지 않음이 좋다. 그 이미지 그대로 가져와 '새아씨'라는 꽃말을 붙였나 보다.

마음이 일어나면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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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디여린 것이 굳은 땅을 뚫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언 땅, 모진 비바람,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도 꽃을 피우는 일의 근본적인 힘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명을 가진 모두는 저마다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굳건히 설 힘을 갖고 태어난다. 그 힘은 자신을 지켜줄 무엇이 있음을 태생적으로 믿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설령 비바람에 꺾일지라도 멈출 수 없는 그 힘이다.

솔나리가 꽃대를 올렸다. 아직 남은 힘을 다해 꽃봉우리를 더 내밀어야 하기에 먼 길을 준비하듯 다소 느긋할 여유도 있어 보인다. 어느 한 순간도 꽃으로 피어난 그 때를 잊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꽃 피고 열매 맺는 수고로움을 환한 미소와 향기로 견디는 것은 벌, 나비, 바람 등에 의지해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으로 멈추지 않을 수 있다.

그대 또한 가슴 속에 그런 믿음을 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나 비바람 몰아치는 중심에서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것, 그 믿음이 삶의 배경이다.

그 힘을 믿기에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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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난초
여름 제주 숲은 습기를 가득 품은 공기로 무겁기만 하다. 여기에 조금만 걸어도 달려드는 모기가 극성이다. 그것이 대수랴. 보고자 하는 꽃이 거기 있다는데 지체할 틈이 없다.
 
한번 와 본 곳이라고 익숙한 분위기의 숲에서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 거리다 보고싶은 것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다가선다. 조금 거리를 두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기다렸던 눈맞춤을 한다.
 
습도가 높고 반그늘 혹은 음지의 토양에 부엽질이 풍부한 곳에서 자란다는 흑난초가 주인공이다. 흑이라고 먹색은 아니다 자색이 약간 섞인 묘한색이 볼수록 매력적이다.
 
"신안군의 섬과 제주도 한라산에 드물게 분포하는 야생란으로, 멸종위기식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흑난초의 녹화라는데 이정도 차이면 다른 이름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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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시인 본색(本色)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鷄)!

*정희성 시인의 시 "시인 본색(本色)"이다. 이 시를 처음 접한 마누라가 나를 처다보며 알듯모를듯 미소짓던 그 얼굴이 떠오른다. 사람 사는게 다 사는게 비슷하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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蟬說 선설
매미가 우는데 소리가 등에서 나온다. 무릇 천하에 소리를 내는 동물은 모두 입으로 소리를 내는데, 매미만 등에서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입으로 소리를 내는데도 사람들이 알지 못할 뿐인가, 아니면 매미라는 물건이 미소해서 이목구비(耳目口鼻)의 기관을 갖추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벼룩과 이와 개미를 보면 지극히 자질구레한데도 입을 가지고 있고, 지렁이와 굼벵이를 보면 지극히 굼지럭거리는데도 입을 가지고 있다. 소리를 내지 않는 것들도 입을 가지고 있는데, 매미처럼 맑고 기이한 소리를 내는 것이 입으로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어찌 이상한 현상이 아니겠는가.
 
옛사람이 “매미는 이슬을 마신다.”라고 하였으니, 매미에게도 입은 있는 것이다. 입이 없다면야 사람들이 물론 이상하게 여길 것도 없겠지만, 입이 있는데도 소리가 등에서 나와야만 사람들이 “왜 그럴까?” 하고 이상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이 많은 것을 싫어해서 하늘이 매미의 입을 일부러 함봉(緘封)하여 경계한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이렇게 써 보았다.
 
*조선사람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1711~1788)가 남긴 '매미에 대한 설'이다.
 
문득 돌아보니 어느날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때를 지나 제 몫을 다한 까닭이리라. 그 울음소리로 때가 되었음을 알았고 그 울음소리로 때가 무르익었음도 알았는데 그 울음소리가 사라지니 다른 때에 이르렀음도 알겠다. 이처럼 소리에 주목해 일상의 때를 구분하게 해주는 것이 얼마나 될까. 羽化우화하여 한철을 제 멋으로 마음껏 보냈으니 모두가 登仙등선 하였길 빈다.
 
계절을 이끌어가는 비가 차분하게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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