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쥐손이
익숙한 모습이라 지나쳤는데 뭔가 놓친듯 아쉬움이 남았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곳에 멈추어 길게 눈맞춤 한다. 닮았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드러내는 것으로 꽃을 구별하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가야산 정상 부근에서 여러번 본듯 하지만 그냥 지나쳤는데 올해는 붙잡혔다. 세잎쥐손이, 미국쥐손이, 꽃쥐손이, 둥근이질풀, 이질풀, 선이질풀 등이 같은 집안으로 쥐손이 종류가 꽤 다양하여 그것이 그것같아 구분이 쉽지가 않다.

산쥐손이는 높은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꽃은 적자색으로 피며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작은 꽃자루에 한두송이 씩 달린다. 잎은 깊게 여러갈래로 갈라진다.

다시, 그곳을 찾게되면 이번에는 더 반가운 눈맞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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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줄가리'
꽃이라고 하면 쉽게 활짝 피어있는 상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꽃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만개한 꽃이 주는 특유의 느낌을 통해 전해지는 공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꽃 한송이는 수많은 상황에 맞물리는 다양한 노력에 의해 피어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둘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장석주는 시 '대추 한 알'에서 수많은 상황에 맞물리는 다양한 노력에 주목했다.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잊었거나 때론 외면한 과정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을 여기서도 만난다.

나팔꽃이 환하게 꽃을 피워다가 진다. 조금씩 움츠려드는 모습이 꽃만큼 아름답다. 누구나 보지만 누구도 보지 못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듯 어느 한순간도 꽃 아닌 때가 없음을 다시 확인한다.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것을 보며 딱히 대줄가리와 여줄가리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에 딸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을 뜻하는 말이 '여줄가리'다. 이 여줄가리에 반대되는 말로 '어떤 사실의 중요한 골자'를 일컫는 '대줄가리'가 있다. 대줄가리에 주목하다보면 여줄가리의 수고로움을 잊고 말았던 지난 시간들이 가슴에 머문다.

지는 자리가 따로 없음을 몸으로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나팔꽃의 강단지게 다문 꽃잎에서 여줄가리의 아름다움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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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풀
높은 산에 피는 꽃을 보기 위해 오르는 곳이 몇 곳 있다. 남덕유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이 그곳이다. 높은 곳의 날씨는 변화가 심하여 안개가 끼거나 비를 만날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을 오르는 이유는 그곳에만 피는 꽃들이 있기 때문이다.
 
송이풀 역시 그런 곳에서 주로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송이풀은 꽃이 핀 듯 안 핀 듯 옆으로 비틀리며 줄기 끝에 송이를 이루기 때문에 송이풀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모양새와 잘 어울리는 이름인듯 싶다.
 
붉은 기운이 도는 꽃이 핀듯 안핀듯 줄기 끝에 모여 있다. 또하나 특징직인 것이 길쭉한 잎인데 규칙적으로 결각이 있어 꽃만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꽃이 흰색으로 피는 것을 흰송이풀이라고 하며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며 꽃도 같은 시기에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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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아침이면

귀뚜라미는 밤새도록 방 밖에서 울며
아침이면 가장 눈부신 소리의 보석을 낳는다
이슬이다

*이시영 시인의 시 "아침이면"이다. 허공에 매달린 이슬이 발길을 붙잡는 아침이다. 밤을 건너온 시간과 눈맞춤은 느긋함으로 하루를 연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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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몸살

멀리서 산 기슭만 보여도 가슴이 뛰고 머뭇거리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꽃이 피어날 몸짓을 감지한 까닭이다. 꽃벗들의 꽃소식 들려오기도 전에 몸은 이미 꽃몸살을 앓기 시작한다.

한겨울 눈이 내리면서부터 시작된 매화꽃 향기를 떠올리며 남쪽으로 난 창을 열고 물끄러미 바라보듯, 여름 끝자락에 이슬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만 내려앉을 때가 되면 서쪽으로만 고개를 돌린다.

이때 쯤이면 아무도 찾지않을 산기슭에 홀로 또는 무리지어 꽃수를 놓고서도 스스로를 비춰볼 물그림자를 찾지 못해 하염없어 해지는 서쪽 하늘만 바라볼 고귀한 꽃이 눈 앞에 어른거리만 한다.

안개가 마을의 아침을 품는 때가 오면 꽃몽우리 맺혀 부풀어 오를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제나 필까 저제나 필까 꽃소식 기다리다 고개가 다 틀어질지경에 이르러서야 그곳에 발걸음을 내딛는다. 다 꽃을 마음에 둔 이들이 꽃과 눈맞춤하기 위해 이 꽃몸살은 통과의례다.

몇년을 두고 뜰에 들이고자 애를썼던 꽃이 지난해에 드디에 자리를 잡았다. 올해 싹이나고 그 끝에서 꽃봉우리가 맺혔다. 아침 저녁으로 눈맞춤하며 잘 자라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일상의 큰 즐거움이었다.

사라지는 것은 순시간이더라. 다시, 꿈을 꿔야 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뒷산 가까이 두고 살피는 꽃의 더딘 움직임이 간절함을 더하는 과정을 누리는 것이 내몫인가 싶기도하다.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물매화 피었다는 소식에 자꾸 뒷 산만 바라본다. 오랜 꽃몸살 끝에 첫만남의 그곳에서 봐야 비로소 본 것이기에 아직은 더 꽃몸살을 앓아야 한다.

목이 늘어나는 것은 너 만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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