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수요일

나목(裸木)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 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밴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이
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트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신경림 시인의 시 "나목(裸木)"이다. 겨울숲이 좋은 이유 중 하나다. 민낯이 어색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때에 그곳에 서서 함께 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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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를 만나는 날은 등심붓꽃이 피어있었다.

평사리 어느집 마당에 청사초롱이 걸리고 원근에서 온 이들로 북적이던 날 그 무리들 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잡고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무리들 사이를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주인장의 소개로 한 부부를 만났다. 시골 일소의 순박한 눈을 빼닮은 남편과 세상 모든 일을 설레임 가득한 미소로 대할것 같은 부인이 부부에 대한 첫 인상으로 기억한다.

식이 끝나고 집에 들러 차한잔 하고가라는 인사를 받았던 기억이 있고 그날 그집에서 차담을 나누었는지는 모른다. 평사리를 들고날 때면 인사차 안부를 물었고 어느날인가는 그 마당에 들었고 그후론 평사리 보다는 그들이 사는 토담농가가 목적지가 되어 그렇게 시간이 쌓여갔다. 간혹 달을 핑개로 안부를 주고 받았으며 그집에서 만드는 강정과 쑥차를 맛보며 마음의 거리가 좁혀졌을 것이라 짐작한다.

노고단 숲길을 내려오는데 내가 사는 집에 들렀다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귀가한 날이 처음 내집에 온 날로 기억하고 있다. 광주로 음악회에 가던 길이라고 했다. 잠깐의 만남을 위해 긴 시간을 기다려준 정성이 고마웠던 날이고 여러가지 핑개거리를 찾아 만남을 이어가는 개기가 된 날로 기억한다.

간혹 식사를 때론 공연관람을 이유로 서로가 청하여 만남이 이어졌다. 어느해 여전히 찬바람이 부는 이른 봄날 섬진강 소학정 매화 소식을 궁금해하자 몸소 안내해주었고 그길에 자신이 애지중지 가꾸는 매실농장까지 이어졌다. 여전히 섬진강을 넘나들며 정을 쌓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부부가 불쑥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맛난 저녁을 대접받고 차를 마시며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 내게 가면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며 함께 아는 이가 보냈단다. 그간 사정을 귀담아 들었고 뭔가 도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겁도 없이 메일주소를 건네고 말았다.

원고를 받고 거듭 읽고 읽었다. 글자 하나를 놓치면 안될 것 같은 일상이 녹아든 귀한 글들을 보면서 이건 되겠다 싶어 일면식도 없는 출판사로 원고 투고를 했다. 이런 무모함이 또 있을까 싶지만 몇권 읽어온 그 출판사의 느낌과 이 원고가 만나면 일이 벌어지겠다는 뭔지모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 서로 인연이 되어 책이 발간되었다. 공상균 작가의 "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2020, 나비클럽)가 그 책이다.

그후로도 두분에게 알게 모르게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종종 책 발간 이후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일에 대해 궁금해 하면 두번째 책을 출판사와 계약했고 부인도 요리에 관한 책 출간으로 계약서 도장을 찍었다는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다.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그 결과가 양영하 작가의 "지리산학교 요리 수업"(2022, 나비클럽)으로 나왔다. 지리산 자락 유명인사가 이제 부부 작가로 더 빛나게 되었다.

남들에게 딱히 내놓을 것은 없지만 세상 부러운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도 이 부부 '공상균ㆍ양영하' 두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남편인 공상균 작가의 부인을 바라보는 눈엔 언제나 꿀이 떨어진다. 그것도 흘러 넘치는 수준이다. 천하에 이리 수줍음을 타는 이가 있을까 싶지만 강단 있는 부인의 애교가 그 비밀인듯 보이지만 절묘하게 서로의 틈을 매워주는 마음이 그 중심에 있어 보인다. 이런 분들을 만난 것은 내게 큰 복이다.

이제 부부 작가를 만나는 날엔 가방에 꿀단지를 넣어가야겠다. 나란히 어깨를 기댄 등심붓꽃 같은 두분 사이에 흘러넘칠 꿀을 담아와 두고두고 부러워할 것이다.

출간기념회도 못갔는데 싸인은 언제 받나~

#지리산학교요리수업
#양영하 #나비클럽 #토담농가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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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雪이다.
이때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분이 든다고 한다. 그럴듯한 서리 두어번 내렸으나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어 소춘小春이라고도 불린다는 이 말에 더 가깝다.
 
반가운 새들이 날아왔다. 큰 날개로 유유자적 하늘을 선회하는 독수리떼도 왔으니 때는 분명 겨울로 들었다는 것을 안다.
 
비가 오려나 싶다.
기온으로 봐선 눈은 아직 멀은듯 한데 하늘의 일이라 짐작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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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바위솔
좀바위솔을 지척에 두고도 보지 못하고 지나간 것이 아쉬웠나 보다. 늦은 물매화와 조금 멀리가서 볼 요량으로 진주로 향했다. 뒷자석에 앉아 느긋하게 주변을 살피며 처음 간 곳의 풍경을 누린다.
 
좀바위솔 있다고 찾아간 곳엔 낯선 바위솔이 세개쯤 하늘을 향해 꽃대를 올리고 있었다. 예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하나 주변에는 꽃대를 올리지 못한 어린 개체들이 수없이 다음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주지역에 난다고 진주바위솔인가. 좀바위솔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울진에 가서 보았던 둥근바위솔에 더 가까운데 잎의 크기가 훨씬 작다. 정선바위솔과도 차이가 난다.
 
겨울눈으로 월동하고 내년에 꽃 피울 개체에 대한 희망으로 다시 계절의 변화를 기다린다. 척박한 자연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해온 바위솔들을 보면 생명의 신비로움 사뭇 더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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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고 바람 적당한 날
무엇하나 서두를 것 없다는 듯
숲은 고요하다
 
고로쇠나무에 앉은 늦가을이
바람의 유혹에 헛눈 팔다
저와는 상관도 없는
어설픈 함정에 빠졌다
 
머뭇머뭇 딴짓하다
붙잡힌 것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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