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그림 수집가들 -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니 모으게 되더라
손영옥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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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고 즐길 줄 아는 것이 기본이다
간혹 안면 있는 사람들과의 모임자리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하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얼마나 영화를 보는지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보지는 못한다고 한다. 좋아하면서도 정작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 과연 좋아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무엇이든 좋아하면 다양한 형태로 직접 접하면서 누리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그렇지 못하는 스스로를 위안삼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는 영화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삶의 분야에서 마음 쓰며 좋아하는 것을 한 가지라도 두고 복잡하고 심란한 일상의 삶에 위안을 삼아본 사람들은 그 좋아한다는 것을 누리는 진가를 말한다. 무엇이든 머릿속 상상으로만 그치는 것은 위안 보다는 움츠려드는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누리지 못하는 분야로 으뜸인 것이 그림과 음악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직접 참여하기에도 만만찮은 벽이 있고 그만한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가능한 것이기에 더더욱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리라.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지는 못하지만 듣고 감상하는 것으로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에는 그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직접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도 있지만 그림이 주는 매력에 빠져 좋아하는 그림을 수집하고 지인들과 어울려 감상하기를 좋아한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물론 그 중심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왕에서부터 사대부와 중인에 이르기까지 그림을 대하는 조선시대의 변화하는 모습까지를 담아내고 있다.

제1부 ‘서화 수장에 빠졌던 왕과 왕자들’에는 당시 온갖 문화적 혜택의 최선두에 있었던 성종, 연산군, 정조 등 왕과 그 종친들에게 그림이 가진 남다른 의미를 파헤치고 있다.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림하나 보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왕들의 모습과 안편대군, 월산대군처럼 권력에서 밀려난 자신의 처지를 어쩔 수 없이 시, 서, 화에 담아 그를 알아주는 벗들과 나누는 삶을 살았던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탐욕과 자족의 기로에 선 양반 컬렉터들’의 제2부에서는 왕과 권력을 나눠가지며 세상을 호령했던 양반가문과 그들의 일상에 그림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볼 수 있다. 조선 성리학의 영향으로 자족하는 삶에 차와 그림이라는 도구를 적절하게 활용하며 자신들의 지위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지켜나갔던 측면도 있지만 그들의 이러한 모습 속에서 조선의 그림이 발전하게 되는 토대가 되었다는 점도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의 백미는 제3부 ‘조선후기를 뒤흔든 중인 컬렉터들’에 있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싶다. 조선이 중기를 넘어서며 사회경제적 안정과 시장경제의 발달, 중인 신분들의 사회적 진출 등 사회적 변화가 정착되는 과정에 등장한 신흥부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결코 넘어서지 못했던 신분의 한계를 사대부 양반들의 자족적인 문화생활을 자신들도 향유하며 보란 듯이 위세를 떨치려는 마음과 국외를 넘나들 수 있었던 신분 그리고 마련된 경제적 기반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서화의 감상과 수집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의 화단에 영향을 미치며 상호작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 본다.

저자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그림을 올바로 보는 법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있다. 제4부에서는 바로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전재되어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양그림과는 달리 제문과 발문이 달린 동양그림들을 감상할 때 그 제발을 빼놓지 않고 봐야 그림의 전체적인 맥락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림 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인장 또한 충분한 이야기 거리다. 작가가 누구인지 작품의 진위를 판가름하거나 하는 기능이외에도 그림의 소장자의 변천과정이나 인장 자체로도 예술성을 발견한다고 한다.

이 책은 시간을 거슬러 조선 그림의 창작자와 감상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 양자를 이어주는 서화수집가에 대해 먼 옛날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로 끌어오고 있다. 시원스러운 그림에 상세한 설명까지 있고 더불어 저자의 그림에 대한 따스한 마음이 스며있는 이 책을 접하고 전시회를 찾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림은 분명 달리 보일 것이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알면 진정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정 보게 되고, 볼 줄 알면 소장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그저 모으는 사람과는 다르다’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이 서화수집광 김광국의 ‘석농화원’의 발문에 쓴 글이다.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로 한 때 대단한 유행어가 되었던 말이다. 그림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것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만큼 바르게 표현한 말이 없을 것이라는 저자의 마음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왕이든 사대부 양반이든 중인 신분이든 그림을 대하는 그들의 동기는 달랐더라도 문화적 소양을 쌓고 누리려는 모습은 부럽기만 하다.

시대를 불문하고 그림은 어쩜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인지 모른다. 그나마 현대사회에 와서 그림을 전시하고 그림과 감상자가 일대일로 대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눈으로나마 보는 기회가 늘었다.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 나누는 감상에서 벗어나 개별화된 것은 몹시 애석한 일이다. 전시장 유리 상자에 갇힌 그림들은 여전히 그림 속 떡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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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
로버트 쉬네이큰버그 지음, 정미우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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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넘어선 영화감독들의 이야기
창작을 업으로 하는 작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창작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보다 더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각종 문학작품이나 그림, 사진 등에서 보여주는 작가들의 사상과 가치관을 작가가 만들어 놓은 작품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작가로 이야기가 집중되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렇기에 아무리 유명한 문학작품일지라도 작품속 주인공 보다는 작가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예술작품을 창작하고서도 창작물의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하는 분야가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쉽게 생각하듯 영화분야가 아닌가 한다. 물론 문학 분야에서 한 작가의 작품을 찾아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영화분야에서도 그런 사람이 분명하게 존재할 것이며 최근 배우보다 감독이 더 유명해지는 경향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벌어지는 일 정도로 여겨지지 않을까 싶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이런 작가들이나 영화감독들이 마냥 부러울 때가 있다. 같은 것을 보고도 깊고 따스하며 설렘이 있는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들의 눈과 가슴이 그것이다. 분명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세상을 보고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런 부러움에서 오는 말일 것이다. 

이런 영화감독들의 일상을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책을 만났다. 시그마북스의 ‘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책에는 세계영화사에서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36명의 감독들의 생생한 인생 이야기가 있어 평소 궁금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한다. 1875년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 감독을 시작으로 1963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이르기까지 그들이 태어난 시대 순으로 정리된 이 책은 영화감독의 이야기이기에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중심이지만 그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에 더 흥미가 간다.

영화판의 사람들은 감독과 배우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대중적 인기를 먹고사는 사람들이기에 대중적 시각에 대해 다분히 즉각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지만 인기와 흥행이 곧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기에 그들의 생활은 베일에 감춰지기 마련이다. 그 감춰진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아버지의 이야기, 데밀의 여성편력, 무성영화시대의 전설 채플린의 롤리타 성향, 애니메이터 디즈니 등 많은 감독들이 보여준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섹스와 마약, 캐스팅 카우치, 폭력 등이 판치는 속의 영화감독들의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살아가는 영화판 전체 속의 살아있는 이야기들이다. 또한 이 책에는 이렇게 유명한 감독들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벗어난 저예산 영화, 여류감독 등 영화감독의 언저리에서 간독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고 있어 그 의미성을 더한다고 본다.

영화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지위의 막강함으로 인해 감독과 관련된 캐스팅이나 영화 촬영과정에서의 감독들의 독특함 등이 우선 주목되지만 그 외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그들 내부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일화들 역시 작품을 통해 형성된 감독에 대한 이미지와 꼭 같은 것으로 연결되지 않음도 알게 된다.

다소 흥미위주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고도 보이는 이 책속에 등장하는 영화판의 이야기는 먼 이웃나라의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한국영화판에서 벌어지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대중문화의 꽃을 창출하는 그들이 보여주어야 할 대중문화의 선도자로써 긍정적인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불성설이 아니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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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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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새로운 가치관 사이의 혼란스러움
현대사회는 개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규범들이 점점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다양한 법규들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개인들의 이상과 가치관이 행동을 규정하는데 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을 볼 때 전통적인 가치관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각은 여전히 불쾌함을 드러내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이미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난 이 시대의 가치관이 형성되었다는 점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경향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마도 남 녀 간의 사귐이나 결혼 그리고 결혼 후 출산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바로 이러한 결혼관에 대한 일면을 잘 묘사한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당시 영국의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면서 개개 주인공들의 면모를 적절한 묘사로 당시 젊은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한다. 저자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은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결혼하여 집을 떠나거나 아니면 부모님과 형제들을 보살피며 독신으로 늙어가던 당시 대부분의 여자들처럼 살아가지만 어린 시절부터 소질을 보였던 글쓰기를 하며 결혼하지 않고 42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영국의 하트포드셔의 한 마을이 주 무대인 이 소설은 다섯 자매가 함께 사는 베넷가의 딸들이 결혼 적령기에 겪는 심리적 갈등과 당시 결혼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배우자의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다. 어느 시대나 결혼은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거나 상승시키는 작용을 했던 한 측면이 있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부를 향한 사람들의 욕구가 결혼이라는 절차를 통해 성취하려는 마음이 그것이다. 제인과 빙리,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샬렛과 콜린스, 리디아와 위컴의 결혼으로 살펴본 이들의 결혼관은 조금씩의 차이를 보인다. 온순하고 착한 맏딸 제인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며 사회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한 오해로 결혼의 어려움에 봉착한다. 하지만 그들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혼에 이르게 된다.

신분상승의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발현이든 여성의 역할 변화나 여성의 사회적 해방이라는 거대한 가치를 말하지 않더라도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결혼을 대하는 모습은 전통적인 가치와 새로운 가치간의 충돌에 의한 혼란스러움이 있다는 점이다. 딸들의 결혼을 둘러싼 부모의 모습 역시 현대적 가치기준으로 볼 때 이해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 적령기의 사람들에게 결혼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일까? 전통적인 가치관이 중심을 이뤘던 시대에는 가문이나 지위, 경제력 등 사회적 규범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대에 들어서 그러한 비중이 줄었다는 점 보다는 그러한 사회적 규범에 의한 기준은 여전하면서도 개인적 감정이 더 강화된 측면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것도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겐 사랑이라고 하는 감정보다는 사회적 배경이나 지위가 더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오직 사랑만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더라도 결혼에 대한 오늘날의 생각을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은 꼭 해야만 하는 통과의례였지만 지금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선택사항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무엇보다 결혼을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가 달라진 근본적 이유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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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인간 호모라피엔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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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면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불편한 진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의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얻게 된 것인지 의심 없이 받아들이면서 올바른 길을 가는 것으로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누군가에 의해 문제제기를 받던지 아니면 상황이 변하여 선택을 기로에 처할 때에 이르러서야 혼란스러움에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자신이 믿는 바가 잘못된 정보이거나 진실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보다 그것 자체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현실이 아닌가 싶다.

존 그레이의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는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인간에 대한 다양한 분야에서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한 거칠면서도 직설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바로 자신이 알던 것과는 사뭇 다른 시각을 접하는 불편함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혼란스러움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내내 함께한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는 그동안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또는 믿고 싶었던 인간에 대한 다양한 ‘진실’에 대해 거침없는 칼을 들이대고 있다. 하지만 그 칼에 베이는 아픔보다는 묘한 흥분이 앞선다. 인간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 물음이 따라 붙기 때문이다. 저자 존 그레이는 종교와 철학, 과학적 성과에 의해 그동안 인간에 대한 규정이 잘못되었음을 제기한다. 특히 서구의 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속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직적접인 칼을 대고 있다.

‘인간 종 중심주의’가 무엇이고 그것이 가지는 가치를 비롯하여 인간이 믿어왔고 믿고 싶은 자아의 실현에 이르기까지 동물과 인간의 구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유일신의 종교적 가치관에 의해 자의적으로 규정한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허상에 머물러 있는 한 휴머니스트나 철학자들이 그토록 구별하고 싶어 하는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차별성은 가치 없는 것이며 이것이 인류의 미래를 책임지지도 못한다고 주장한다.

저자 존 그레이는 자신의 주장을 확인하는 과정을 고대 소크라테스, 플라톤, 장자 등 철학자의 이야기로부터 다양한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간상을 통해 하나 하나 세밀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우연한 유전적 사고의 결과 지구상에 출현하게 된 고도로 약탈적이며 파괴적인 동물에 불과하며 ’약탈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 ‘하찮은 호모 라피엔스’라는 말로 현재의 인류를 정의한다.’

그동안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휴머니즘은 인간의 본질에 가까이 접근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대해 저자는 일침을 가하고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주어진 본성을 초월할 수 있으며 자기 운명과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휴머니즘에 대해 과학, 철학, 종교 등의 그간 성과를 통해 살펴보며 왜곡된 인간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 기만, 도덕의 악덕, 구원받지 못한 자들, 비非진보, 있는 그대로 등의 여섯 가지 분류로 되어 있지만 굳이 순서를 지켜 읽을 필요가 없다. 책의 어느 부분을 펴든 저자의 동일한 주장을 만날 수 있다. 

다른 동물들과 비교되는 인간만의 차별성으로부터 갖게 되는 인간의 우월성과 자신의 삶에 의지적인 작용이 가능하기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꿈을 실현할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대단히 불편한 진실을 만나는 순간이다. 그 주장의 핵심은 ‘인류를 중심에 놓지 않는 견해들을 제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의 일부로써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다른 동식물들과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저질러온 파괴에 대한 반성과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감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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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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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그 넉넉한 품에 안기다
가끔 섬으로 간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이젠 다리가 놓여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다. 내가 가는 그 섬의 바다는 탁 트여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미지의 세상이라기 보다는 육지와 섬들로 둘러싸여 마치 호수 같은 모습의 바다다. 제법 큰 강을 끼고 있어 육지의 온갖 시름을 다 받아주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은 늘 평온을 유지하는 곳이다. 운 좋으면 석양의 붉게 타는 노을에 넋을 잃기도 하고, 달이 밝으면 하늘의 달과 바다의 뜬 달도 함께 보고 다양한 섬사람들의 생활의 터전을 안고 있는 모습도 보고 때론 낚시도 한다.

한창훈의 이 책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에 나오는 바다하고는 다른 느낌이지만 그 바다에 서면 바다보다 사람들이 먼저 보인다. 어느 바다나 마찬가지겠지만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사람들을 거뜬하게 보듬어준 바다이기에 그럴 것이다. 한창훈이 나고 자란 바다와 지금 내가 그리는 바다는 겉모습에서 조금의 차이일 뿐 삶의 터전으로써의 바다는 같다. 

하지만 한창훈에게 바다의 기억은 아주어린 나이에서부터 시작하지만 내게 바다는 훌쩍 큰 어른으로써 대한 바다가 먼저다. 그렇기에 내가 본 바다는 소년의 눈으로 바라다본 바다의 느낌은 모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런 차이로 한창훈의 눈으로 본 바다가 새롭게 다가온 것이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에는 바다에서 나는 식재료의 이야기를 매개로 작가 자신의 삶과 섬사람들의 인생을 그리고 있다. 누구나 알고 좋아하는 생선에서부터 해초와 조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먹을거리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역시 삶의 애환이 담긴 이야기가 더 가깝게 다가온다.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먹을거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 필요한 교본을 정약전의 자산어보로 삼고 있다. 하여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생각과 정약전의 기록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조그마한 차이지만 정약전이 살던 당시 바다와 지금 한창훈이 사는 바다가 다름도 알고 또 같음도 알게 된다.

갈치, 삼치, 숭어, 문어, 고등어, 볼락, 모래미, 병어, 농어에 돌돔, 감성돔까지 가끔이지만 철따라 하는 바다낚시기에 생선에 대한 구별도 할 수 있지만 한창훈의 생계형 낚시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훗날 바다낚시에서 혹 만나게 될지도 모를 주인공들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나도 한창훈이 말하는 생계형 낚시에 가까운 사람인가 보다. 나와 딸아이의 밥상에 올릴 먹을거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그렇다.

‘한 번도 못 먹어봤다는 말은 한 번도 못 가봤다는 말보다 더 불쌍하다.’ 와 ‘반드시 먹을 것만 낚는다. 낚은 것은 야무지게 먹는다.”는 말은 바다를 사랑하고 그곳에서 나는 먹을거리에 빠져 직접 잡거나 채취해 먹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먹는 것에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처음 먹어본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발길을 바다로 돌리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빠져드는 것이 있을 것이다. 몸으로 직접 하지 못하는 조건이라면 마음만이라도 늘 그 근처를 멤 돌며 호시탐탐 노리는 그것 말이다. 산, 스포츠, 음악, 바다, 낚시 등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생각하고 또 하는 동안 그 사람은 늘 가슴이 넉넉하여 행복한 사람이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는 한창훈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 된다. 자신을 있게 해준 바다와 그곳에서의 삶을 기억하고 육지를 돌고 돌아 다시 찾아 섬에 안착한 사람의 눈으로 본 바다이기에 과거와 현재가 그리고 그리 밝은 것은 아니더라도 미래가 함께 있다. 

바다에서 태어났기에 바다르 조금 안다고 자부하던 저자는 ‘파도처럼 격정적이고, 낚시처럼 애타며, 활어처럼 펄떡거리는 인생의 맛’을 따스하게 때론 슬픈 눈으로 전하고 있다. 하여 한창훈은 삶에서도 문학에서도 어쩔 수 없이 바다와 함께 살아갈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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