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환자 - 허원주 수필집
김호남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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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무엇을 담아야 할까?
지방자치제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로 어수선했던 지난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고등학교 국어를 담당하시면서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글을 쓰신다고 했다. 선생님은 자신이 쓰신 글이 실린 문학지를 나눠주시면서 글쓰기에 도전해 보라고 한 것이다. 딱히 글 쓰는 재주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잊고 살았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제자의 불편한 일로 다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도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글로 표현해 보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뒤돌아 가셨던 분이다. 그때도 여전히 자신의 글이 실린 문학지를 놓고 가셨다.

그 후, 서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소식도 듣지 못하다가 지난 선거에 교육위원으로 출마하신 것을 알고 선거 사무실로 찾아가 뵈었다. 선거사무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선거홍보물이 아니라 두 차례나 내 앞에 내 놓으시면서 내게 글을 써 보라고 권했던 그 문학지였다. “선생님 여전히 글을 쓰고 계시나 봐요?” 하는 제자를 보면서 “넌 아직도 가슴에 담아두기만 하고 있느냐?”며 옛 기억을 더듬으셨다. “잊지 않으셨어요. 이제야 그때 선생님 말씀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 것도 같아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선생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책을 읽고 있습니다.” 비록 선거에 당선되지는 못하셨지만 여전히 글을 쓰시며 지역 문인들 사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이제는 가까이서 뵐 수 있다.

억지를 부려서 꾸며내는 글이야 어쩌다 보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숙제를 풀 듯 힘들어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나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이 책 ‘가상 환자’를 쓴 저자 허원주님은 자신 나름의 글을 쓰는 이유를 찾았고 글쓰기와 열애중인 사람으로 보인다. 

수필집 ‘가상 환자’에는 ‘독일 사우나’, ‘변비’, ‘나쁜 남편’, ‘가상 환자’, ‘의사 본색’ 등을 비롯하여 ‘글쓰기의 부끄러움’ 까지 총 스물 네 편의 글이 담겨 있다. 그가 쓰는 글에는 병원 의사로 또 대학 교수로, 아버지, 남편으로 살아가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에 대한 상황묘사가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읽어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아마도 글쓰기와 열애중인 것이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마냥 웃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허전함이 있다.

“그의 문장에는 절창이 없다. 왜? 그는 경험사실주의적인 사고관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경험 없는 관념의 생성을 철저히 사양한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기가 막힌 명장면은 연이어지지만 심오한 관념적 명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종완의 허원주의 글에 대한 평가다. 글 한 편 써내지 못한 사람이지만 무척 공감이 가는 말이다. 글은 왜 쓰는 것일까? 글이라고 하면 분명 자신이 쓴 것이지만 발표하고 나면 그 글을 읽는 독자의 글이기도 하다. 그 글 속에 담긴 글쓴이의 생각과 독자의 생각이 공감하며 소통되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글에는 독자와 공감하고자 하는 무엇이 필히 담겨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수필집 ‘가상 환자’는 글쓰기의 출발점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오한 관념적 명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독자와 공감하고자 하는 글쓴이의 무엇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말이 칭찬으로만 들리지 않은 이유가 분명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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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호 2011-07-01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보면 특히 수필을 읽다보면 지나치게 현학적인 글들을 접하게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발표하고 나면 독자의 글이 되는 게 책인데....독자가 공감하지 못하는 관념적 문구로 가득찼다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을지....비록 블로그지만 저도 늘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더위와 함께 시작한 6월
조금씩 책 읽는 것도 더위에 지친 것인지
쉽지 않았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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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2011-6-1) 사람의 마음이 읽힌다
이태혁 저 | 경향미디어 | 2011년 05월

11-122(2011-6-2) 상실의 풍경
조정래 저 | 해냄 | 2011년 02월

11-123(2011-6-3) 천년 후, 다시 다리를 건너다 2
손광섭 저 | JY진양문화 | 2008년 11월

11-124(2011-6-6)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
최성일 저 | 연암서가 | 2011년 05월

11-125(2011-6-7) 왓슨, 인간의 사고를 시작하다
스티븐 베이커 저 | 이창희 역 | 세종서적 | 2011년 04월

11-126(2011-6-10) 간송 전형필
이충렬 저 | 김영사 | 2010년 05월

11-127(2011-6-10) 엄마, 나 또 올게
홍영녀, 황안나 공저 | 조화로운삶 | 2011년 05월

11-128(2011-6-13) 히든
헤더 구덴커프 저 | 김진영 역 | 북캐슬 | 2011년 06월

11-129(2011-6-14)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소래섭 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05월

11-130(2011-6-14)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김도경 저 | 현암사 | 2011년 04월

11-131(2011-6-15) 깍두기 삼십대
조한웅 저 | 소모(somo) | 2011년 05월

11-132(2011-6-15) 사유 속의 영화
이윤영 편역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04월

11-133(2011-6-16)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
선재 스님 저 | 불광출판사 | 2011년 05월

11-134(2011-6-17) 낯익은 세상
황석영 저 | 문학동네 | 2011년 06월

11-135(2011-6-18) 마네와 모네 그들이 만난 순간
수 로우 저 | 신윤하 역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05월

11-136(2011-6-20) 진시황 프로젝트
유광수 저 | 김영사 | 2008년 03월  

11-137(2011-6-21) 한 권으로 충분한 시간론
다케우치 가오루 저 | 박정용 역 | 전나무숲 | 2011년 05월

11-138(2011-6-22)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일레인 N. 아론 저 | 노혜숙 역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04월

11-139(2011-6-23) 천 년의 침묵
이선영 저 | 김영사 | 2010년 01월

11-140(2011-6-24) 미국이 파산하는 날
담비사 모요 저 | 김종수 역 | 중앙북스(books) | 2011년 06월

11-141(2011-6-26)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강제윤 저 | 홍익출판사 | 2011년 05월

11-142(2011-6-26) 말이 인격이다
조항범 저 | 예담 | 2009년 01월

11-143(2011-6-27) 다른 누군가의 세기
패트릭 스미스 저 | 노시내 역 | 마티 | 2011년 05월

11-144(2011-6-29) 야쿠비얀 빌딩
알라 알아스와니 저 | 김능우 역 | 을유문화사 | 2011년 05월

11-145(2011-6-30) 트럭 드라이버
임강식 저 | 부광출판사 |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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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책

간송 전형필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미국이 파산하는 날
다른 누군가의 세기
야쿠비얀 빌딩

나름 세운 목표량에 도달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숙제를 다 하지 못한 부담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 문득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책을 왜 읽고 있나를 생각하는 7월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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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드라이버 - 북미 대륙의 한국인 트럭커, 헝그리 울프의 휴먼 스토리
임강식 지음 / 부광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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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위에서 본 세상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인생살이다. 뜻한 바를 이뤄가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 모든 것에서 좌절을 맞보고 있는 사람이나 그들 모두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굴곡을 넘나드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천지차이가 난다. 무엇이 어떻게 다르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무슨 일을 하던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를 살아갈 수밖에 없고, 현실 또한 마음먹는 대로 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나를 둘러싼 외부의 조건을 내 마음에 맞게 받아들이는 것, 물론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면 세상을 무척이나 달라져 보일 것이고 내 삶의 중요한 일에 임하는 자신의 마음가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순간에 처하게 된다. 그럴 때면 언제나 선택의 폭은 바늘구멍처럼 좁기 마련이다. 이 책 ‘트럭 드라이버’는 그런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선택한 삶을 통해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꿈을 키워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것도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으로 이민을 선택해서 건너갔을 캐나다에서 북미대륙을 트럭에 몸을 싣고 달리고 있는 사람의 일상을 담았다.

캐나다 돈 2달러 그리고 일기장 일곱 권, 그가 가진 전부였다고 한다. 23년 전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의 절박한 상황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싶다. 사는 곳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한 그의 선택은 트럭을 운전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것마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수차례의 좌절을 통해서 얻은 자리다. 

그 후, 그가 트럭과 함께 달린 길이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알버타, 사스케추완, 매니토바, 온타리오, 그리고 퀘백 뉴브런스윅, 노바스쿼샤까지 3,850마일을 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텍사스의 사막을 건너 아리조나, 그랜드캐넌, 몬타나, 와이오밍, 애팔래치안 산맥을 넘고 펜실베니아, 버지니아, 캘리포니아에서 밴쿠버, 유타, 뉴멕시코...그가 달렸던 길이다. 내겐 먼 나라 알지 못하는 낯선 길이지만 저자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는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게 멀고 험난한 길을 몇 달씩 걸쳐 달리고 도 달렸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길 어딘가를 달리고 있을 것이란 것 말이다.

최후 마지막 선택으로 들어선 ‘트럭 드라이버’라는 직업이고 북미대륙에서 지금도 저자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삼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어쩌미 못하는 선택이었겠지만 그들에겐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보인다. 가족과 자신의 꿈을 향한 멈출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저자는 그 길에서도 자신과 사람들의 삶의 희노애락을 본다. 돈도 벌고, 여행도 하고. 얼마나 좋으랴.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이야기에는 너무도 고독하고 외롭고 힘들고 치사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래도 번지는 미소는 어쩌지 못한다. 그 안에는 사람과 자신을 향한 따스함이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외로움에 익숙해 져 있는 것 같다. 그 외로움을 담아 작가로 등단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꿈꾸는 중이다. 그 꿈에는 '가족'이 있고 '성공한 트럭커'도 있다. 인생이 한치 앞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그의 미래는 그렇게 불투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다. 그가 달렸던 길의 길이만큼 깊고 넓게 성숙한 인간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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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비얀 빌딩 을유세계문학전집 43
알라 알아스와니 지음, 김능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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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강요하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선택은?
문학은 사회의 반영이 수밖에 없다. 문학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작가의 언어로 담아내는 것이라도 본다면 굳이 순수문학이냐 참여문학이냐를 따질 이유가 없을 것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강한 기대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낸다면 분명 참여문학이 될 것이다. 그것이 문학이라는 장르에서 작가가 가지는 소명의식일 것이다. 더불어 문학 작품은 잘 알지 못하는 나라의 역사나 한 사회의 문화와 문화권의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 역시 문학이 가지는 소중한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 ‘야쿠비얀 빌딩’의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작품으로 다가선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슬람문화권의 작품이기에 다소 생경함도 있지만 다분히 흥미로운 점이 많아 기대감이 앞서는 작품이다. 특히, 2011년 초 이 작품의 무대가 된 나라 이집트에서 사회적 변혁이 있었기에 더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야쿠비얀 빌딩은 실재하는 빌딩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 빌딩은 이집트라는 나라의 한 시대를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표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테러 공격의 목표가 되었던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처럼 1950대 이집트의 사회상을 집약적으로 담아내는 기능을 한 빌딩이 바로 야쿠비얀 빌딩이다. 부와 권력을 향해 질주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지만 사회가 변화해 가면서 자연스럽게 빈부를 포함한 다양한 계층이 한 건물에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바로 그 빌딩에 담겨진 것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빌딩이 상징하는 이집트의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작품이다. 빈부의 차, 권력, 정경유착 등의 사회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한 이야기를 모함하여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떨어질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가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색을 탐닉하는 늙은이,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 속에서 경험한 동성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권력과 사회적 편견에 의해 꿈이 좌절된 젊은이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미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 때문에 몸을 팔게 되는 여자와 이를 부추기는 부모 등 한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아직은 낯선 이슬람 문화권의 이야기지만 책을 읽어가는 동안 보여주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단지, 무대만 옮겨놓은 것처럼 우리도 익히 가슴 아프게 경험했고 또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데 너무도 많은 제약을 동반하게 된다. 그 많은 제약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사람마다 제 각각이기 마련일 것이다. 어떤 선택이 올바른 것일까?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기에 오히려 낯선 풍경처럼 다가오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작가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강요하지는 않고 있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작가 자신이 경험한 현실이 반영되었다고 밝히고 있는 것과 2011년 1월 카이로의 중심지 ‘마이단 알타흐리르’(자유광장)에서 이집트 시민들과 함께 민주혁명에 참여했고, 지금도 문필 작업과 언론 활동을 통해 혁명의 지속과 완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으로부터 유추해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야쿠비얀 빌딩’은 우리에게 문학작품이 가지는 힘과 작가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문득, 우리 문학의 거대한 산맥인 조정래 작가 생각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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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군가의 세기 - 탈서구 시대, 이제 아시아가 답할 차례다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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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변하는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한 나라의 힘을 표현하는 것으로 대부분 경제적인 부의 축적 정도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면에서 지난 100여년의 역사는 분명 미국을 선두로 한 서구 사회였음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한 세계의 중심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다양한 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 파산하는 날’이라는 책의 저자 ‘담비사 모요’는 향후 세계경제의 중심이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브릭스’로 대표되는 신흥경제국으로 그 중심이 변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나라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에서 경제적 측면만을 고려한 것이 다소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의미 있는 전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아시아를 주목하는 시각이 있다. 패트릭 스미스의 ‘다른 누군가의 세기’는 서양인의 눈으로 아시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아시아를 주목한다. 저자 패트릭 스미스(Patrick Smith)는 여러 언론사의 아시아 특파원으로 20여 년 이상을 아시아에서 생활하며 직접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인도가 서구 세력과 만나 변화해 가는 과정에 대해 면밀한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누군가의 세기’란 20세기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미국의 세기라 될 것이라 했던 ‘헨리 루스’의 말을 뒤집는 주장으로, 그동안 일반적 시각이 서구 또는 아시아로 나뉘는 이분법을 벗어난 그 누군가가 새로운 시대를 혼란 없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 ‘다른 누군가’가 어쩌면 아시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피력하고 있다.

패트릭 스미스는 기본적으로 근대 아시아의 역사를 볼 때 서구의 침략적 속성이 강하게 드러난 외압에 대항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으로 전통적인 문화를 지켜나가려는 아시아 각국의 노력이 서구의 물질문명에 의해 굴복되고 이를 바탕으로 각국이 어떻게 근대화되어갔는가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아시아 각국이 근대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서구의 물질문명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저자가 중점적으로 살피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인도는 같은 방법과 내용으로 서구의 세력과 만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자국 문화와의 충돌’은 어Esj 방식으로든 겪었다는 것이다. 이점은 이후 아시아 역사에서 서구와 아시아를 구분하고자 하는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아시아를 살피는 저자의 시각은 한 나라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다. ‘근대성’에 대한 시각으로 각 나라를 볼 때도 일본에서 만난 지식인과 중국에서 만난 사업가, 인도의 젊은 학생들과의 대화를 나열하며 독자들이 스스로 그 공감하는 것과 차이를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무엇을 비교 분석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경제지표나 통계자료 등에 의존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람들 속에서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는 근대화 과정에서 무조건 서구의 방식을 따라했다고 평가하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마치 맹목적으로 서구를 따라하는 것에 자신들의 미래를 맡기는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경제적 성장을 이룬 아시아 각국은 혼란에 빠졌다. 자신들의 정체성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이로부터 서구와 아시아를 구분하는 과정에 아시아의 역사를 부정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이는 아시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데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서구의 물질문명을 따라가기 급급한 모양새였더라도 그 과정에는 분명하게 아시아의 역사라는 것을 인정하고 다음 세기를 맞이해야 한다는 충고도 엿보인다.

저자가 주목하는 아시아 국가 중 인도는 독특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낙후, 계급과 종교문제 등 가난한 나라로 비춰지는 것이 현실이지만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IT산업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인도는 전통 문화와 서구적 가치관, 자본주의의 발달이 인도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인도는 배타성보다 포용성을 보인다. 저자는 이 점을 이후 아시아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근대 아시아의 중요한 고민은 분명 물질문명의 혁신적 개혁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문화적 혼란, 가치판단의 기준, 정체성의 위기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제는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서구의 시각을 벗어나 아시아가 자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열린 시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체성이란 바로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서구화는 일반적인 의미의 서구 지향도 아니다. 오직 미국을 모방하는 미국화이다. 그나마 이마저도 미국 역사에 관한 진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극히 편협하게 해석된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추천사에서 보여준 장하준 교수의 말이다. 중국, 일본 그리고 인도의 경험과 우리나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비슷한 과정을 겪어오면서도 이들 나라들은 자신들에 적합한 방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체불명의 정책에 목을 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다가올 세기에 그나마 뒤처지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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