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제색도 - 빛으로 그리는
이갑수 지음, 도진호 사진 / 궁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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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을 보는 사람의 마음
날마다 지나치는 풍경이 어느 날 아주 정답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딱히 이유를 설명할 무엇도 없지만 그 풍경에 마음이 가는 것이다. 그날 이후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게 된다.

비슷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갑수가 주목하는 풍경하나는 다분히 의도적인 바라보기다. 인왕산이 자리한 곳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가 이사를 하면서부터 자주 접하는 인왕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연유로 해서 조선시대를 살았던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 남긴 ‘인왕제색도’라는 그림 한 점에 주목하게 된다. 260년 전 화가의 눈에 들었던 인왕산의 모습과 너무도 닮은 산 모습을 보면서 지난 시간과 더불어 함께해온 산의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출발한 인왕산 바라보기는 2009년 9월부터 가을에서 시작하여 다시 가을이 올 때까지 한 해 동안 한 곳에서 바라본 인왕산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도진호라는 사진가는 사진으로 인왕산의 모습을 담고 이갑수는 시시때때로 산을 오르며 글로 인왕산을 담았다. 이 둘이 만나 사계절이 지나는 동안 인왕산과 함께한 저자의 마음자리가 책으로 출간된 된 것이다. 비로 이 책 ‘신인왕제색도’다.

‘신인왕제색도’의 도화선이 되었던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국보 제216호로 지정되었다. 정선의 나이 76세 때인 1751년(영조 27)에 그려진 작품이다. 겸재 정선의 평생의 벗이었던 사천 이병헌이 죽자 벗을 애절한 마음을 담은 그림으로 비온 뒤 안개가 피어나는 순간을 동쪽에서 멀리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인왕제색도는 중국화풍에서 벗어나 조선 산하를 있는 그대로 담은 진경산수의 대표적인 걸작이라고 한다. 화제에 ‘인왕제색(仁旺霽色) 겸재(謙齋) 신미윤월하원(辛未閏月下沅)’이라고 묵서되었고 그 밑에 정선(鄭敾) 원백(元白)이란 방인(方印)이 찍혀 있다.

‘신인왕제색도’에 담긴 모든 인왕산 모습은 바로 겸재 정선이 살았던 곳에서 바라본 모습이라 더 그림에 충실한 시각이 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왕산 기슭에 사람들이 모여산 것은 오늘날의 일이 아니다.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릴 당시에도 그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저자 이갑수는 바로 인왕산 아래 둥지를 틀고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인왕산과 함께 이야기 하고 있다. 자연의 변화는 사람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준다. 구름, 안개, 비, 눈이 오는 동안 인왕산 아래 사람들이 모습이 실감나면서도 따스한 애정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떠 하나의 시각이 제기 되었다. 서울의 한 지점에서 인왕산을 찍듯 인왕산에서 서울의 한 지점, 서울의 풍경을 찍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인왕제색도’와 한 몸인 ‘인왕산 일기’가 추가되었고 한다. 

사진 속 인왕산은 그 모습이 그 모습 같다. 또 같은 사진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도 같은 사진이 없다. 우리들 삶도 사람마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똑 같은 삶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인왕제색도가 그려진 2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왕산 모습은 그리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슭에서 삶의 희노애락을 겪으며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 후손들이 선조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더 시간이 지난다면 사라진 그들처럼 지금 산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사라질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도시에도 우뚝 솟은 산이 있다. 일천 미터가 넘는 산이지만 위엄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넉넉한 품에 사람들을 품어 왔고 또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은 어머니와 같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어온 그 기슭에 많은 사람들이 깃들어 살아간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을까? 그 산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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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화비평이다 
이택광 (지은이)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문화가 상품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 특색에 맞는 문화상품을 개발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오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하지만 그러한 문화상품이 얼마나 공감을 받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렇게 문화를 어떻게 보며 누릴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기에 적절한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 아닌가 싶내요. 

 

인정향투 - 문인의 지취
이용수 (지은이) | 에세이퍼블리싱 | 2011년 6월
 

그림을 통해 선인들의 삶의 자취와 더불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가슴 속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궁궐 장식 - 조선왕조의 이상과 위엄을 상징하다 
허균 (지은이) | 돌베개 | 2011년 6월
 

왕의 나라에서 중심은 왕입니다. 그 왕이 살았던 궁궐을 짓는데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궁궐을 구성하고 있는 각종 상징물을 통해 당시 시대상황뿐 아니라 오늘날 궁궐을 찾아가 그것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싶내요. 다양한 상징이 의미하는 것은 곧 사람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한가지 방법이기에 역사와 문화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 유익한 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개항부터 해방 후까지 역사를 응시한 결정적 그림으로, 마침내 우리 근대를 만나다! 
이충렬 (지은이) | 김영사 | 2011년 6월 

선조들이 남긴 그림 속에는 그림을 그린 화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쩜 시대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재해석한 그림속 사람들의 삶이 흥미로운 이유가 아닌가 싶내요. 조선시대 그림에 대한 책들은 많이 있으나 비교적 가까운 근대이후 작품을 만나기는 더 어렵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이 책은 근대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 오래된 지혜의 공간에서 새로운 건축 패러다임을 읽다 
한필원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11년 6월

산업사회의 전개과정에서 사라진 것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이며 모든 문화의 생산과 누림의 공간이었던 마을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공동체 문화의 새로운 방식을 남아 있는 전통마을을 통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책에 대해 관심가는 이유라할 수 있습니다. 옛 기억을 더듬어 전통마을 속 현대인의 삶을 비교해 보고 싶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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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는 맨홀 2011-07-07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고 싶은 책들이 눈에 들어 옵니다. ㅎㅎ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 시인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보낸 행복 편지
김선우 지음 / 청림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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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본성을 확인해 가는 시간
나 이외에 누군가 알더라도 상관없지만 소중한 공간이 있다. 그곳에만 가면 숨 막히는 아찔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오롯이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이나 스스로가 정한 규칙에 얽매어 한없이 자신을 압박하는 시간에서 조차 스스로에게 너그러움을 줄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무슨 거창한 곳은 아니다. 때론 수시로 변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해진 공간이다.

가까운 공원의 나무의자, 인적이 드문 골목길 한 모퉁이, 길인지 아닌지도 모를 숲속 오솔길 그것도 아니면 자동차 안. 이 모든 것들이 바로 그 곳이다. 이런 곳의 공통점은 혼자라는 것이다. 비록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그곳에 있는 시간만큼은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할 그 무엇이 아니기에 혼자라는 것이다. 또한 멀리 가지 않아도 되기에 조금만 여유를 부린다면 언제나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휘황한 거리에는 ‘나’라는 광고 문구가 넘치건만 왜 갈수록 나를 잃어버리며 산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나의 실종에 불안하면서도 남들 사는 대로 살지 않으면 또 다른 불안이 엄습하는 기이한 닫힌회로. 출구 없는 일상의 쳇바퀴로부터 어떻게 ‘나’를 찾을까.”

작가 김선우에게 그렇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스스로 위안 삼을 수 있는 곳이 남인도의 영적 공동체 ‘오로빌’이라고 생각된다. 작가는 그곳을 벼르고 별러 찾아갔다. 작가가 찾아간 오로빌은 ‘새벽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이곳은 모든 사람이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이상을 꿈꾸던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로빈도’에 의해 시작된 곳이라고 한다. 1968년 첫 발을 내디딘 이래 현재까지 40여 개국 2천여 명이 모여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출신, 나이, 학벌, 직업 등 우리들이 일상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이런 것들이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하는 곳이다. 누구나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살면서 나는 나, 너는 너, 이 모두를 아우르는 우리가 공존한다. 

오로빌에 발을 딛는 작가는 조심스럽다. 방문자라는 신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치 잘못 자신이 내린 어떤 선입감이나 편견으로 인해 오로빌의 가지는 본래의 모습을 왜곡 또는 훼손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하여, 사람은 물론 나무며 풀, 곤충 등 그곳 오로빌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마음 쓰며 공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움츠러드는 이방인이 아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공동체 안으로 들어선다. 함께 일하며 놀고 자신을 누리는 시간 동안 그들과 하나가 되어 보인다.

저자 김선우의 눈에 비친 오로빌은 완성된 공동체가 아니다.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된 열망과 강한 의지의 결과가 시간에 익어가는 동안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바뀌기도 하는 등 지금도 완성으로 가는 중이라고 보고 있기에 현재진행형이다. 

현대인이 가지는 외로움의 거의 전부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저런 관계에 매어 있으면서 그로부터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 바로 그 자리가 외로움의 출발이 아닌가 싶다. 늘 함께 살아가지만 그 살아가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벽을 두르고 닮아가려고 하는 생각이 사람들을 외로움으로 내몰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현실에서 작가처럼 “나 좀 쉬려고요, 좀 지쳤거든요. 일단 쉬고 다시 잘 살아볼게요. 알았어요, 좀 쉬고 다시 잘 사랑해볼게요.” 이렇게 주변사람이나 자신에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현실이다 보니 오르빌의 사람들이 달라 보이기 마련이다. 떨어진 꽃을 주워 거름을 만드는 일, 사람들에게 안마를 해주는 일, 아이들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밴드 마스터, 비온 뒤 흙탕물을 뒤집어쓴 나뭇잎을 닦아주는 일 등 이 모든 일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그곳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사회적 장치나 남의 시선을 넘어선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오로빌이라는 것이다.

무엇하나 확정된 것이 없는 것이 사람들의 삶이다. 이것 아니면 곧 죽을 것 같은 것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행복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보는 것, 이것이 작가 김선우가 오로빌에서 우리들에게 보내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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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도서관 -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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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들의 모든 마음이 담긴 도서관의 모든 것
오랜 꿈이 이뤄지는 중이다. 도시의 콘크리트 벽을 탈출하여 넉넉함이 있는 시골생활을 꿈꿔 온지 오래되었는데 지금 시골집을 장만하고 수리중이다. 집을 수리하며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나만의 서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지대가 낮은 평지 마을이라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멀리에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마루에 앉아 볼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오래된 한옥의 본체를 살기에 불편함만 줄이는 선에서 수리하고 마당 한 쪽에 서재 공간을 만들었다.

기존 담장을 이용하여 바닥을 고르고 기중을 세워 판넬로 지붕과 남은 벽을 마무리 하고 한쪽은 유리로 마감을 하니 제법 넓은 공간이 생겼다. 10여 평이 조금 넘은 이 공간을 이제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마음부터 설렌다. 아파트 거실 양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그러고도 남아 이 방 저 방에 쌓여 있는 책으로 채워가는 멋진 공감연출이 기대된다. 판자로 책장을 만들어 벽에 붙이고 5000여 권의 책을 분류해서 하나 둘 채워 가면 그 공간은 앞으로 살아갈 집의 생활중심이 될 것이다. 비록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지만 서재의 이름도 붙여주고 마음 나눌 벗들이라도 가끔 찾아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책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속 자신만의 공간을 꿈꾼다. 그곳은 이름이 어떻게 불리든 공간의 크고 작음도 상관없이 책과 더불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소망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놓은 책이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은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이라는 설명과 함께 저자가 자신의 도서관을 만들어가면서 도서관의 역사를 비롯하여 도서관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도서관의 기원에 대해 추적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신화, 정리, 공간, 힘, 그림자, 형상, 우련, 일터, 정신, 섬, 생존, 망각, 상상, 정체성, 집 이 모든 것은 저자가 도서관과 관련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다. 이러한 축을 바탕으로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도서관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이다. 이미 사라져 버린 책과 도서관, 누구도 찾지 않은 책일지라도 사람의 역사와 그 맥을 함께해 온 것이 도서관이다. 이렇듯 도서관이 갖는 고유한 기능에서부터 역사적 변천과정, 사회적 기능과 역할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아우르고 있다. 아무리 시대적 환경이 변하더라도 도서관이 갖는 그 역할은 그렇게 큰 변화를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오늘날 전자책이라는 편리하고 시간성에 거의 제약을 받지 않는 도구가 발달하면서 출판시장이나 책의 유통 경로에 그리고 도서관이 가지는 근본적인 기능에 구조적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저자의 견해에 주목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용 환경의 편리성이 종이책보다 월등한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장 사이를 거닐거나 책장에 자리 잡은 책의 제목만으로도 여행이 충분하며 묵은 잉크냄새가 베어나는 종이책 중심의 도서관이 주는 향수는 강하게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빼곡히 들어선 책장들 사이로 숨겨진 이야기들은 무엇일까? 세상에는 어떤 도서관들이 존재했고, 어떤 이유로 사라졌을까? 그리고 그런 도서관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저자가 느끼는 지극히 개인적인 도서관에 대한 감성적 표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든 과정에서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도서관을 어떻게 꾸미고 이용하며 그 속에서 스스로 얻게 되는 감정상의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소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흐름이 한결 정답게 느껴지도록 한다.

"책이 우리 고통을 덜어주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이 우리를 악에서 보호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을 읽어도 우리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모를 수 있다. 책이 죽음이라는 공통된 운명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중략) 잘 쓰인 책이라도 이라크나 르완다의 비극을 덜어줄 수 없지만, 엉터리로 쓰인 책이라도 운명적으로 맞는 독자에게는 통찰의 순간을 허락할 수 있다." 

“책이 그렇게 좋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변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딱히 설명한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난감할 때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의 이 말 한마디면 해결될 수도 있을 듯싶다. 이것으로도 다 말하지 못한다면 “그냥 읽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그렇겠지만 마음 다해 무엇에 흠뻑 빠져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주는 깊고 무거운 감동을 다 알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 무척이나 덥지만 그 더위를 책과 더불어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책이 주는 무한 감동의 세계와 그 책이 살아가고 있는 도서관이 가지는 의미를 말이다. 아직 지붕에 벽체만 완성된 서재지만 그 안에 담겨질 세상이 어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서재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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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소설
송수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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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이 위험하다
역사를 가정한다는 것만큼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지난 일에 대해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지난 일이 오늘의 일에 깊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끊임없는 가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한 가정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 

역사적 인물을 기억하는 것으로는 살피고자 하는 사람의 생애를 걸쳐 그가 이룩하고자 했던 뜻과 마음이 담겨있는 그가 남긴 글이 주목된다. 글은 그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글에 대해서도 역사를 보는 것처럼 무엇을 어떻게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얻고자 하는 것 또한 커다란 차이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송수경 작 ‘위험한 소설’이 바로 그러한 예증이 아닐까 한다. 이 작품은 조선 중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역모에 연루되어 능지처참을 당했던 허균(許筠, 1569~1618)이 남긴 ‘홍길동전’을 두고 역사적 가정을 풀어내고 있다. 우리에게 기억되는 홍길동전은 적서차별에 대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 길동이 집을 나가 도술을 익힌 뒤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규합하여 활빈당을 결성하고 백성들을 괴롭히던 탐관오리들을 처단하며 이후 변조참의에 제수 받고 신하의 예를 다한 후 이상향 ‘율도국’을 세워 왕이 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 ‘위험한 소설’이란 바로 허균의 ‘홍길동전’을 지목하고 있다. 홍길동전에 담겨 있는 사상적 배경이 당시 조선 중기의 사회정치적 배경에 대해 반하는 내용이기에 역모에 해당한다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허균이 쓴 홍길동전과 이를 각색한 홍길동전이 따로 존재하며 당시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누군가 각색한 홍길동전이라는 것을 이 작품의 기본적 틀로 삼고 있다.

이런 전재 하에 교산 허균, 부안의 기생 매창, 매창의 연인이었던 촌은 유희경 그리고 이들 주변인물들인 허균의 벗 후오자 등이다. 광해군 10년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한지 수년이 지난 후 숙부 허보와 외손자 필진은 몰락한 가문의 명예를 되찾고자 허균의 역모죄가 억울한 누명을 쓴 것 때문이라는 증거를 찾아 나선다. 이 작품은 허균이 살아생전 매창과 촌은 유희경과 교류하며 자유인으로 살던 시기와 허보와 필진이 누명을 벗기고자 하는 시기가 공존하며 진행되고 있다. 

혁명에 참여하자는 유희경과 그 무리들과는 결코 다른 생각을 지녔던 허균을 바라보는 매창은 안타까운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홍길동전을 지을 것을 권한다. 연인 유희경과는 달리 허균과 나눈 문우지정이 남녀의 감정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허균의 선택은 홍길동이 어떤 인물로 성격 지을 것인지에 그 답이 있음을 알고 홍길동전을 마무리 한다. 하지만 그 홍질동전은 각색된 채 사람들 사이에서 반향을 불러오고 말았다. 

사물에 구애되지 않고 마음에 막힌 데 없이 자연 그대로 인간의 본성에 따른 삶을 살고자 했던 자유인 허균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허균의 모습을 무엇을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이라는 시각과 시대와 불화를 겪은 지식인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가 남긴 홍길동전에 담겨 있는 시대의 부조리를 비평하고 100년 앞을 내다본 세상을 꿈꾼 것은 당시로써는 용남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모죄로 죽임을 당한 당시 이런 사상적 배경이 담긴 홍길동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는 것은 정치상황의 복잡성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허균이 살았던 조선 사회는 임진왜란을 겪은 후 급격한 혼란에 휩싸인다. 당시를 살았던 허균으로써 무엇을 보았을까? 그가 품었던 꿈과 열망은 수 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근원의 중심에는 개인적인 삶과 백성과 사회의 앞날을 희망으로 이끌어갈 힘의 원천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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