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 - 몸에 관한 詩적 몽상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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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에 대한 기막힌 시각이 돋보인다

한 때, 사람구경이 나에게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적이 있다. 번잡한 도심의 모퉁이에 자리 잡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보고 있노라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느낌을 받곤 했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 멈추곤 했던 기억이 살아난다. 사람의 몸은 다양한 은유를 담고 있다. 그 은유는 쉽게 전해지기도 하지만 도통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내 몸이 전하고 싶은 간절함을 알지 못하는 순간 외딴 섬에 홀로 버려진 고독을 느낀다. 이러한 느낌은 청춘시절을 보내는 동안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세월을 함께 하는 동안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그 사회적 관계가 사람들을 가두는 일에 스스로 익숙해지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사이에 벌어지는 감정의 단절을 느낄 때도 함께 한다.

 

몸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의 몸을 생물학적 가치로만 생각할 때 알 수 없는 무엇이 분명 있다. 사람의 몸에 대한 규정이 역사적 맥락과 시대적 가치에 의해 담고 있는 의미를 은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접할 때 보다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경주의 ‘밀어’는 도발적인 표현들로 가득한 책이다. 몸을 생물학적 시각을 넘어 사회문화적 가치의 변화에 의한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몸이 지닌 의미를 은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대단한 인내와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은유는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에겐 신선함으로 다가서지만 사고의 범위를 넘어서면 고역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러한 느낌은 때론 상식의 범위를 넘어서 자기 인식에 대한 통찰의 시각까지 전해주기에 저자의 몸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온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우리들의 몸에 대한 통합적 시각이 아니라 개별화된 각 부위에 대한 깊고 자세한 관찰에서 출발하고 있어 보인다. 특정 부위를 지칭하는 말이 주는 어감이나 그 어원을 따라가는 것이나 상징성에 주목하여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다. 눈시울, 가슴골, 귓불, 솜털, 뺨, 입술, 쇄골, 유두, 항문, 불알, 복사뼈 등 마흔여섯 가지 우리 몸의 부분들을 깊이 응시하고 있다. 때론 그 시각에는 관능적이고 은밀함마저 보인다. 이러한 신체부위에 대한 저자의 탐구는 눈에 보이는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 철학, 언어학, 역사학, 민속학, 생물학, 의학, 운기학 등 인문적 고찰로 그 범위가 무한정 확장된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시각이라 당혹감마저 일으킨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글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사진을 함께 담고 있어 저자의 시각이 특정한 신체 부위를 바라보는 느낌을 비슷하게나마 경험할 수 있다. 한 여인의 몸의 다양한 부분을 담은 사진은 아름다움을 넘어 저자의 시각과 어울린다. 만약 사진이 없었다면 훨씬 어렵게 읽히게 될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사진이 주는 시각적 이미지가 저자의 글과 어울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목선은 “잠자는 육신을 공중으로 데려갈 때 필요한 선”, 핏줄은 고독해서 몸속으로 숨어버린 살, “아직 발견되지 못한 채 물속 깊이 떠다니는 슬픈 대륙의 이미지”, 손가락은 “다른 문으로 가는 현기증”, 눈망울은 “몸속의 천문대”, 가슴골은 “육체 안에 감추어진 다락의 색”, 젖무덤은 “울렁증의 처녀림”, 머리카락은 “인체에 숨어 사는 풍경”으로 표현하고 있다. 깊은 사고와 성찰을 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다시 읽어가는 동안 안개가 걷히듯 살며시 드러내는 그 의미를 알게 될 때 비로써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된다. 이 책의 매력이 이 부분에 있다고 여겨진다.

 

저자 김경주의 전작을 접하지 못했다. 이는 그에 대한 선입감이나 편견 같은 정보가 없다는 말이다. 하여, 이 밀어에서 전해주는 이미지가 저자를 알게 하는 정보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 정보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의 시집 “시차의 눈을 달랜다”에 대한 흥미로움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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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2
김지원 지음 / 나무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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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마음을 품는 도시, 런던

내가 사는 도시에는 디자인 비엔날레가 개최된다. 광주비엔날레라는 명칭으로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20005년 이후부터 격년제로 홀수 년에 열린다. 사회 전반에서 디자인이 주목되면서 지방의 디자인산업을 진흥시키고 세계의 디자인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마련된 행사라고 한다. 그에 따라 도시 곳곳에는 미술작품이 설치되어 도시의 미관을 새롭게 꾸미기도하고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기본적으로 그 취지와 목적을 공감하고 환영하면서도 중요한 무엇인가가 빠진 듯 허전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느낌을 강하게 주는 것은 거리에 설치되는 작품들을 대할 때가 그렇다. 디자인비엔날레가 열리는 도시의 문화적 전통과 어우러지면서도 디자인적 감각이 살아있는 독특한 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더없이 환영받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자. 사람과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설치작품을 기대하는 것과는 다소 동떨어진 작품이 어색하게 사람의 발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디자인 산업의 육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성일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 만들어진 도시환경은 분명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에 의해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계획이나 도시환경개선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헐리는 건물이나 새롭게 조성되는 단지의 모습이 사람들의 감성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기를 바란다면 무리일까?

 

 

그런 의미에서 ‘런던 디자인 산책’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여러 해 동안 문화상품개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 김지원이 영국 런던에서 공부하면서 실제 경험한 런던이라는 도시 속에서 발견되는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렇다면 디자인을 전공한 저자에게 런던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는 런던이라는 도시가 갖는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보인다.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 런던은 ‘수많은 인종들이 어울려 살아가며 다채로운 빛깔로 소통’하고 있기에 여전히 역동적이고 생기에 넘치는 도시라고 한다. 저자에게 그런 인상을 심어준 런던의 구체적인 모습을 찾아보고 있다.

 

 

‘오래된 유산과 현대적인 감각을 조화시키고 인간의 행복과 도시의 미래를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저자가 독자들을 이끄는 장소로 따라가 본다. ‘헨리 벡이 디자인한 런던 지하철의 노선도’, ‘100년을 훌쩍 넘긴 우체통’,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으로 바뀌어 사랑받는 화력발전소’, ‘버려진 그릇의 변신’ 등 런던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어떻게 현대적인 가치와 연결시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 알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디자인은 눈으로 보고 실제 생활에서 체험하면서 느끼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은 런던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저자의 눈에 담겼던 모습들이 생생하게 사진으로 담겨 독자와 같이 호흡하고 있기 때문이다. ‘잿빛 도시의 일상을 컬러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런던 디자인이다.’라고 정의하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며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도 사람들의 일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도시이기를 꿈꿔본다.

 

 

‘장인 정신의 진정한 가치는 훌륭한 기술이나 디자인보다 좋은 마음을 품는 것에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담긴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기에 좋고 쓰기에 편리한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좋은 마음을 품는 것의 의미가 살아있을 것이다. 좋은 마음은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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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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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과 괴로움은 한 나무의 다른 가지다

책을 읽다보면 누군가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그 사람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사람 사귐이 깊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경험은 책이나 저자가 널리 알려진 베스트셀러나 그의 작품이 아니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사람과 사람을 매개하고 그 사이의 사귐의 깊이와 넓이에 의미 있는 작용을 하게 된다. 이는 그 사람을 만나는 동안 공유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능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선 듯 책을 권하기가 주저되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다. 저자와 책 그리고 독자의 사이를 넘어선 또 다른 관계가 형성되며 그 관계를 그래서 책임이 따르게 된다.

 

내게 그런 경험을 가져다준 책이 있다. 그중 하나가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듯 철학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의미 있고 긍정적인 영향력과 이를 문학 장르와 결합하여 독자와 만나고자 하는 시도가 너무나 반가웠다. 문학 장르 중에서 시라고 하면 더욱 의미 있게 생각되는 것이 시인이 가지는 독특한 감수성이다.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만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한층 여유롭고 넉넉하며 살아갈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에 그렇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얼마나 객관성을 얻을 수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더불어 철학자 강신주의 적극적인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차에 그의 출간은 매우 기대되는 경우였다. 인문학이 사람의 일상생활과 떨어져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그로인해 인문학의 본래 출발점에서 벗어나게 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한 사람으로 그가 벌이는 활발한 대중 강연은 반가운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의 제약으로 인해 그의 강연에 참여하기란 어려운 문제이기에 그의 책이 출간된다는 것이 반가운 것이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이후 시와 철학의 절묘한 어울러 짐에서 깊은 사색의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던 경험이 후속작을 기다린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책이 바로 전작에 이어 발간된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이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살아가면서 이 둘 사이가 아주 동떨어진 개념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는 일상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에서 얻은 교훈이다. 깊은 사색과 자기 성찰의 시간은 보낸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철학적인 시각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랑, 돈, 여성, 그리스도, 타자, 자유, 역사, 대중문화, 글쓰기, 감각, 관계 등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시와 철학 그리고 사람이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여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간과하지 말아야할 주제들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책에 언급된 14명의 시인과 철학자들이 저자의 철학적 사고의 범주에서 절묘한 만남을 한다. 인문학의 중심이 사람이듯 당연히 철학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시의 정신을 ‘자유정신’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 자유정신은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철학이 인간의 이러한 자유정신에 대해 멀리 보는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기에 이와 철학 그리고 사람은 이 ‘자유정신’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공유된 자유정신은 인간의 삶의 질을 한층 높이는 부분으로 작용하며 그렇지 못한 환경을 바꾸거나 스스로 자유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자기조건을 확보하려는 것이 바로 사람의 삶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철학과 시가 같은 맥락에서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기에 철학자인 저자가 시에 주목하고 시를 통해 철학의 근본 문제에 인간의 삶을 있는 것이라고 보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상대적인 세상이다. 이 상대적인 개념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세상에 많은 문제들은 상대성을 무시하거나 잃어버리고 살아가면서 발생한다. 사랑도 그 안에는 나와 타자가 공존하지 않으면 발생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나와 타자의 개념은 나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써 ‘자유’라고 하는 가치에 의한 타자와의 성숙한 만남이 이뤄지는 것이다. 시인과 철학자의 눈 그리고 독자의 눈이 같은 연속선상의 흐름 속에 존재함을 알게 하는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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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편지 - 인류 문명에 대한 사색
최인훈 지음 / 삼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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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숨은 진주를 발견하다

책을 읽다보면 참으로 난감할 때가 있다. 분명 담고 있는 내용이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겉도는 듯하여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처럼 넘긴 책장을 다시금 돌아본다. 보통의 경우 관심사에서 벗어난 내용이거나 내가 받아들이기에 범위를 넘어선 내용이 대부분이기에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경우 억지로라도 책장을 넘기며 내용에 몰두하는 경우와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과감하게 책을 덮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든 선택은 독자의 몫이기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난감한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어렵게 읽은 경우 남에게 내세우지는 못하지만 뿌듯함을 안고 책장을 덮은 경험이 간혹 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만든 책이 삼인출판사 발행 최인훈의 ‘바다의 편지’다. 내용이 어렵기에 우선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저자에 관해서다. 최인훈은 ‘광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작가다. 저자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광장’이 그렇듯 저자의 작품은 무게감이 있다. 이 무게감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안고 있는 삶의 무게감과 동일한 맥락에서 얻어진다. 저자 최인훈은 소설가로써뿐 아니라 희곡, 비평 등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유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펼쳐온 사람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에게 최인훈은 ‘광장’이라는 작품으로 인해 소설가로 각인되어온 경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최인훈의 사상사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책이 이 ‘바다의 편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다의 편지’에는 작가 최인훈에 갇힌 이미지를 사상가 최인훈으로 확장시키는데 필요한 작품들을 모아 놓은 부분과 2003년 ‘황해문학’에 발표한 바다의 편지를 수록했다.

 

1부와 2부에서 접하는 최인훈의 글은 쉽게 읽히는 내용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인류문명이 걸어온 길에 대해 문명의 역사적 진화과정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를 분명하게 제기하면서 그 근원으로 나아가는 길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3부에서 보여주는 현실인식에 대한 글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무엇을 찾아내 미래를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희망을 찾아 그 희망을 현실의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최인훈의 글은 쉽게 읽히는 글이 아니다. 읽은 부분도 다시 읽어야 비로써 무슨 내용인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정독을 요구한다. 일상적인 사람들이 평상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문어체가 보여주는 현실과 다소 동 떨어지는 표현들이 그것이다. 내용의 무거움에 표현하는 단어와 문장의 낯섬이 함께 작용하여 더 무겁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무거움은 내용의 진중함에 이끌려들기에 최인훈의 사상에 대한 접근에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책에 함께 수록된 육성으로 낭독된 ‘바다의 편지’를 틀어놓고 한참 동안 다시 접하는 동안 글을 읽으며 넘어갔던 행간의 간격과 침묵의 순간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읽는 기회를 준다는 점과 저자의 육성을 듣는다는 경험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작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작품에 담아야 하는지에 대해 최인훈의 사유의 깊이를 보게 된 것이다. 역사와 문명, 인간의 존재조건 등과 같은 근본문제에 대한 성찰이 문학론이나 예술론으로 구체화되고 이러한 바탕에 작품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론으로 모아진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 대한 진한 애정에서 출발하여 너무나도 고독하고 깊은 성찰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광장’, ‘회색인’, ‘서유기’, ‘총독의 소리’,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화두’ 등은 최인훈이 발표한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광장’이외의 작품들이 일반 독자들과 얼마나 만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 듯싶다. ‘광장’을 비롯한 저자의 작품을 다시 찾아 꼼꼼하게 읽어야할 의무감이 밀려오는 시간이다.

 

작가와 작품 이 양자 사이에서 독자는 서로를 이어간다. 작가의 작품이기에 찾아서 보는 경우는 그 작가의 사상과 가치관에 매료되어 그것이 담긴 작품을 찾는 경우가 될 것이고 반대로 작품을 통해 작가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양자는 결국 작가에게서 만들어졌지만 독립적인 작품에서 만나는 것이 된다. 오늘 나에게 작가를 통해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 책으로 의미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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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홍신 세계문학 7
존 스타인벡 지음, 맹후빈 옮김 / 홍신문화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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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댈 것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뿐이다

인류의 기억 속에 남은 위대한 문학 작품들이 수없이 많다. 문학 작품이 위대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형태가 어떻든 모든 문학 작품은 인간의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전재로 한다면 그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바탕에 녹아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전재를 어떻게 담아내는가에 따라 문학 작품의 의의가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서 작가의 가치관이 주목받는다.

 

‘나는 내가 내 나라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 관해서 글을 쓰는 미국 작가이지만 나는 실은 기억에만 의존해왔다. 그런데 기억이란 기껏해야 결점과 왜곡 투성이의 밑천일 뿐이다. 참된 미국의 언어를 듣지 못하고 미국의 풀과 나무와 시궁창이 풍기는 진짜 냄새를 모르고, 그 산과 물, 또 일광의 빛깔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알지도 못하는 것을 써왔던 셈이다. 이른바 작가라면 이것은 범죄에 해당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내 눈으로 과연 이 거대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다시 발견해보리라 마음먹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로 이야기 되는 J.E. 스타인벡(1902. 2. 27 - 1968. 12. 20)의 위의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모든 문학은 그 형태가 어떤 모습이든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을 반영하게 되지만 이를 어떻게 작품 속에 구현하는가는 작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점에서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이 갈라지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단편적인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초반 미국 실생활을 구체적으로 반영한 작품이다. 대공황으로 인해 실업자 수가 폭증하고 삶의 터전에서 강제적으로 쫓겨나는 이주민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렵지만 가족을 구성하고 그 가족이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기반이 되는 사회에서 산업의 변화와 이에 따라 해체되는 가족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술기운에 자신을 보호하려다 살인죄를 저지르고 복역 중 가석방으로 풀려나 톰 조드는 집으로 돌아온다. 먼지 날리는 길을 걷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세례를 해주었던 전도사를 만나 옛집으로 찾아가지만 그 집은 이미 텅 비어버린 생태다. 이미 가뭄에 의해 말라버린 농작물 같은 신세가 된 사람들은 은행의 거대자본에 의해 농토마저 잃게 된다. 고향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기에 온갖 소문이 난무하는 곳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에 오른다. 고물 트럭에 세간을 싣고 험난한 여정에 오른 사람들은 조드의 가족만이 아님을 금방 알게 되지만 멈출 수 없는 기차처럼 가고 또 갈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에 근접할수록 꿈꾸던 이상향이 아님을 알게 되지만 그들은 멈추지 못한다. 이미 돌아갈 고향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온 사람들은 굶주리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무슨 일이든 찾고자 하지만 이미 일자리는 없다. 그나마 남은 일자리마저 자본가들의 횡포로 터무니없이 싼 임금을 강요받게 된다. 이제 정착할 수 있는 땅이 없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목숨을 담보로 나선 길 위에서 떠도는 것 말고는 없어 보인다.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은 가족의 해체를 강요받는 길이었다. 오랜 여행에 지치거나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도망자 신분이 된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 그나가 기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그런 의미에서 주목받는 작품이다. 있는 그대로의 미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겪게 되는 좌절과 우울, 소외, 죽음과 같은 부정적 요소보다는 배려와 나눔, 따뜻한 인간애 등에 주목하여 인간성 회복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긴 호흡이 필요한 이 작품은 조드라는 가족이 닥친 현실을 뚫고 가는 모습을 그려가는 것과는 별도로 객관적 상황을 묘사하는 중층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다. 한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강요했던 당시 시대적 상황을 함께 묘사하고 있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미국의 현실을 보다 강하게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임신한 아내를 버리고 떠난 남편에 대한 절망감과 굶주림 등으로 사산을 한 로저샨은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불어난 젖을 먹이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잃지 않고 견지한 ‘인간의 존엄성’과 ‘희망’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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