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소설편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주영숙 지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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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에 대한 입문서

우리 선조들이 남긴 문학작품을 이야기 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 ~ 1805) 아닐까 싶다. 박지원은 영조와 정조시대인 조선 후기 사람으로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문예부흥기라는 시대를 살았다. 18세기 조선후기는 시대가 변화를 요구하는 변혁의 물결이 일어난 시기이며 권력다툼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자연재해로 인해 사람들의 고충은 참담했다. 이런 시대를 살았던 박지원은 양반의 아들로 태어나 주류의 세계에서 살 수 있었지만 이와는 벽을 쌓고 가난한 삶을 살았다. 벗들과 만나서 시대와 문화를 이야기하며 글을 쓰는 것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도 볼 수 있다.

 

 

양반전, 허생전, 광문자전, 마장전, 예덕선생전, 민옹전, 김신선전, 우상전, 호질, 열녀함양박씨전 등이 연암의 소설들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소설도 있다. 저자는 이런 소설들에 얽힌 전후 이야기까지 포함하여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있다.

 

 

‘열하일기’의 작가로 대표되는 연암 박지원에게 글쓰기는 무엇이었을까? 숨 막히는 사회를 살아가는 자유인 박지원의 숨통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저자 주영숙의 시각으로 본 이 책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을 통해 얻은 느낌이다. 이렇게 저자 주영숙은 연암 박지원의 작품을 통해 그의 삶과 사상을 이야기 한다. 크게 ‘소설 속의 연암 박지원’, ‘시대 속의 연암 박지원’ 두 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의 중심은 시대 속의 연암 박지원에 있는 듯하다.‘시대 속의 연암 박지원’은 연암의 생애를 10년 단위로 구분하고 소설과 연결하여 삶과 소설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밝히고 있다. 누구든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지원 역시 당시를 관통하는 정신에 의해 삶을 꾸려갔다. 이나 오히려 시대를 앞선 사상으로 시대를 이끌었던 사람이다. 홍대용과 벗하며 사람들의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학문을 논하고 음직으로 나아간 관직생활에서 이를 구현한 사람이다.

 

 

풍자와 해학, 웃음으로 대표되는 연암 박지원의 소설들이 담고 있는 골자는 연암이 살았던 시대를 넘어 21세기인 지금도 따끔한 충고로 다가온다. 문인으로 학자로 사상가로 정치가로 살아온 연암의 삶을 오롯이 담아온 소설과 산문, 시 등 그의 글 속에서 다시 연암의 삶을 반추한다. 그의 삶에는 사람이 있었다.

 

 

연암의 삶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이 무엇 때문일까? 열하일기나 양반전의 작가로 더 많이 알려진 것이 어쩜 연암의 삶 본질을 알아 가는데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만큼 저자 주영숙의 연암에 대한 이야기는 쉽고 풍부하다. 연암 박지원에 대해 알려고 한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연암 박지원에 대한 저자의 두 번째 책 산문과 시 편인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와 함께 읽으면 연암과 만나는 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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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산문.시편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주영숙 엮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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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글에 빠지다

오래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보리출판사, 2004)를 머리맡에 두고 오랜 시간을 걸쳐 읽었던 기억이 있다. 우선 역사인물 박지원이라는 사람의 유명세와 세간에 떠도는 작품에 대한 지명도에서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먼저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기억으로는 내용의 친근감이나 호기심의 정도로 볼 때 그리 썩 감동 깊게 읽었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워낙에 많은 분량이었고 기어이 다 읽어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작용하였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집중하지 못하고 글자만 따라가는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 후 다른 경로를 통해 200여 년 전 북학파를 중심으로 한 우리 선조들의 글을 접하면서 우리 고전이 주는 매력에 푹 빠져 찾아서 읽었던 우리 고전의 맛을 하나 둘 알게 되고 다시 연암의 글을 접하게 된다.

 

어떤 글이건 작가가 살던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다시 읽은 연암 박지원의 글에서 독특한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 어쩜 연암이 살던 사회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깊어졌던 점도 빼놓지 못할 것이다. 조선 후기 영, 정조 왕의 치세에 힘입어 조선은 르네상스를 맞이한다. 그때 청나라를 비롯한 외국의 문물을 어떻게 조선의 사회에 유용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일명 실학 또는 북학이라고도 불리는 그것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고민했던 사람들이 북학파로 불린다. 그들 중 홍대용을 비롯하여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서유구 등의 글을 접하면서 조선 후기 사회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선조들이 남긴 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이다.

 

먼저, 당시 박지원의 글은 한자로 쓰여 졌다는 점이 다가가기 힘든 조건 중 하나다. 한자를 우리글로 해석하는 것이 만만찮은 일이 될 것이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작품은 다 이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온다. 하여, 어떤 사람이 해석하느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 접근성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박지원의 글이 탁월한 문장력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한자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것을 맛볼 수 있는 것은 해석한 글을 통해서일 뿐이다. 주영숙의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산문, 시편인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로 연암 박지원의 글에 대한 매력 속으로 빠져 보자. 이 책‘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는 편저자 주영숙의 박지원에 대한 두 번째 책이다. 그 첫 번째가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 소설편이 있다.

 

혼자 사는 즐거움, 네 이름은 네 몸의 것이 아니다, 이 쪽배 타고 떠나시면, 생각에 귀 기울이다, 붓으로 말을 하다, 매력적인 글쓰기란? 으로 엮인 마흔 네 편의 산문편에 주목한다. 작가가 사물을 보고 해석하는 정도에 따라 글쓰기는 달라질 것이다.

 

한 가지 예로 ‘매화를 파는 편지’를 번역한 ‘매화꽃을 사시오’에서 “만약 가지가 가지답지 못하거나, 꽃이 꽃답지 못하거나, 꽃술이 꽃술답지 못하거나, 꽃술의 구슬이 구슬답지 못하거나, 상 위에 놓아도 빛이 나지 않거나, 촛불 아래서도 성긴 그림자가 생기지 않거나, 거문고와 짝지어도 기이한 정취를 자아내지 않거나, 시에 넣어도 운치가 나지 않거나, 하나라도 이런 점이 있다면 영원히 마다하셔도 끝내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을 거요.”

 

일찍이 이덕무의 글에서 매화를 만들어 팔았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박지원의 이 글에서 보는 매화는 생긴 모양이나 우리 선조들이 매화에 담아 둔 정서상의 매력이 한껏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이 적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윤회’를 만들어 파는 사람의 강한 자부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연암 박지원의 산문들을 읽다보면 사물에 대한 놀라운 관찰력과 이해도가 넘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사물에 대한 무궁무진한 표현력에 놀라게 된다. 또한 ‘지구는 정말 둥글게 도는가? ’, ‘지구는 스스로 빛을 내는가?’에서는 박지원의 앞선 사상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자신의 마음과 지향하는 바를 담아 글을 지었다.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쩜 자신이 내다보는 높은 이상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갈고 닦는 수행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더불어 이 책에 실린 연암의 글 속에서 홍대용이나 이덕무, 서유구 등 반가운 옛사람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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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장 - 뉴욕타임스 부음 기사에 실린 지상의 아름다운 별들에 관한 기록
유민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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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모든 것의 끝일까?

태어난 모든 생명은 그 끝이 있다. 부인하지 못할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생명이 끝나는 죽음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설령 죽음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과는 담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그저 먼 미래의 일이다. 이런 딜레마가 죽음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선조들은 그런 죽음에 대해 ‘행장’이라는 글을 통해 죽은 사람의 삶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행장은 죽은 사람에 대한 산 사람들의 시각을 통해 죽은 사람의 삶에 대해 평가하며 그 기록이 있기에 이후 죽은 사람이 다른 형태로 기억되는 것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죽음은 끝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실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어쩌면 신문의 ‘부고란’이라는 것이 그 또 다른 시작이 아닐까? 유민호의 이 책‘행장 Obituary’은 지상에서 빛나는 삶을 살며 세상으로부터 주목 받았던 사람들이 아니라 무엇을 하던 어떻게 살았던 자신의 삶에서 빛을 발한 사람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하늘의 별이 아니라 지상의 별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뉴욕타임스’ 부음란에 실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시기적으로는 2011년도 사망자를 중심으로 살핀 것이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국 산 사람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한 컷으로 스포츠 세계를 61년간 조망한 카투니스트 - 빌 겔, 42년간 당나귀 보호운동에 투신한 당나귀의 대모 - 엘리자베스 스벤슨, 친절함과 미소로 ‘국회의사당 이웃’이 된 워싱턴 홈리스 - 피터 비스, 히로시마 원폭을 체험한 반핵, 반전, 비핵 평화운동가 - 다카하시 아키히로,‘의미 있는 돈 쓰기’를 실천한 예술계의 자선사업가 - 아그네스 바리스, 아우슈비츠에서 탈출한 최초의 연인, 죽음마저 헛되이 만든 사랑 - 예지 비엘레츠키, 23년간 뉴욕 록펠러 센터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실어 나른 소나무 전문가 - 데이비드 뮈르바흐, 레오나르도 다빈치 연구에 관한 미국 최고 전문가 - 리차드 터너 등이 이 책 행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다.

 

삼십 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이 아니다. 한 명 한 명 읽다보면 그 누구보다 빛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누가 알아주던 그렇지 않던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고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스스로 개척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지상에서 빛나던 별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죽은 사람의 행장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무엇으로 살았던지 생명에는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죽은 사람의 흔적은 이제 죽은 사람의 손을 떠나서 산사람의 몫이 된다. 그 흔적에서 찾아낸 삶의 향기는 산 사람들에게 삶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살아갈 바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주목하는 사람들이 우리에는 조금 떨어진 곳의 사람들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지상의 빛나는 별로 살았던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눈을 돌려 우리 곁에서 아름답게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서 전하는 향기로 미래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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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 - 이제하 판타스틱 미니픽션집
이제하 지음 / 달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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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하, 그는 어떤 사람일까?

소설가, 시인, 음악가, 화가 등으로 세간에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도 활동하는 각 분야에서 독특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온 사람이라면 그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처음 접하는 작가에 대한 낯선 느낌을 조금이라도 좁혀보려는 마음으로 책 ‘코 :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과 함께 있는 이제하 노래모음 CD를 들었다. 목소리에 묻어나는 깊은 어둠, 슬픔 등 호소력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노랫말 역시 심상치 않다. 일주일을 반복해서 듣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 ‘코’는 한국 문단에서 50년 이상 꾸준한 활동을 펼친 이제하의 단편소설집이다. 새로운 소설들과 작가의 대표작들을 다듬어 수록한 것으로 한마디로 쉽지 않다. 그렇기에 어느 단편들 하나하나가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극히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긴 호흡이 필요한 작품들이다.

 

순전히 코 하나만의 매력 때문에 결혼하고 또 그 코 때문에 이혼한 사람들에 집중하다 보면 코를 성형해 준 의사, 우둔하기 마련인 곰에게 마음을 전해 우체국에 보내기도 하고, 각방 선언을 당한 아내의 마지막 말에 헛웃음이 터지기도 하고,10년 전 죽은 아내와 호텔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도 하고, 하늘을 잘라내 이불로 삼았다는 부부 이야기, 미래도시 신시에 도착해 과거 여자를 만나 총살하고 깊은 산골에서 쓰러져 있는 남자 등 서른아홉 가지의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모든 작품은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겠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동안 작가만의 특별한 맛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쉽게 읽히지 않음만큼 놀라운 반전이 미소 짓게 하기에 다른 작품으로 눈을 돌릴 힘을 주고 있다. 현실의 삶과는 다소 동떨어진 세계를 무대로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는 작가의 상상력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판타스틱이라는 말이 주는 상상력의 세상은 때론 분홍빛의 환상을 넘어 우울함이나 암담함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제하의 작품 속에서 느끼는 황당함이 때론 현실에서는 이뤄갈 수 없는 꿈이 환상 속에서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문학이 가진 속성 중 하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솔직한 성찰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제하의 작품에 담긴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어쩜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본성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소설은 서른아홉 명의 이제하 뿐 아니라 지금 내 모습도 이 안에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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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 - 그림과 시에 사로잡히다
임희숙 지음 / 스테디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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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공감하는 그림과 시의 만남

세상을 특별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겐 무언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로 자신들만의 시각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비롯한 모든 감정을 담아낸다. 하여 그들은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일깨우며 그 아름다움에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름하여 예술가들이 그들이다. 문학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그들의 가슴에 담겨 새롭게 태어나는 세상은 그래서 늘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리라.

 

각기 특색 있는 감성으로 사람들과 만나온 문학, 그림, 음악 등은 이제 자신의 분야만을 고집하거나 머물러 있지 않고 서로의 벽을 허물어 소통하고 있다. 음악이 그림을 만나고(‘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노엘라 저, 나무수 발행, 2010), 그림이 문학을 만나고(‘그림 문학에 취하다’, 고연히 저, 아트북스, 2011), 그림과 시가 만난다. 이처럼 같으면서도 다른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 독특함을 독자들과 나누며 새로운 상상의 세상을 안내하고 있다. 다르지만 같은 그것은 사람의 본성에 기인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다. 그림과 시의 만남은 어떤 새로운 세상을 펼칠까?

 

‘황홀 : 그림과 시에 사로잡히다’의 저자 임희숙은 그림과 시의 만남이 만들어 주는 세상으로 안내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의 그림 속에 녹아있는 사람들의 본성에 대한 감상을 현대 시인들이 세상과 만나며 삶의 진정성에 대한 성찰이라는 키워드로 만나게 한다. 조선시대 특색 있는 화가의 그림과 시를 통해 사람들의 삶과 세상을 읽어가고 있다. 시인이기도 한 저자가 만들어 낸 그림과 시의 조합으로는 이성복의 시와 안견의 몽유도원도, 이승훈의 시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문태준의 시와 양팽손의 산수도, 오규원의 시와 신잠의 탐매도, 이진명의 시와 이불해의 예장소요도, 김명인의 시와 이상좌의 송하보월도, 오탁번의 시와 이경윤의 월하탄금도, 박형준의 시와 윤정립의 관폭도, 김혜순의 시와 김명국의 달마도, 송찬호의 시와 이명욱의 어초문답도, 최승자의 시와 윤두서의 자화상, 장석남의 시와 최북의 공산무인도, 황지우의 시와 정선의 금강전도, 신경림의 시와 심사정의 파교심매도, 양문규의 시와 이인상의 설송도, 함민복의 시와 김홍도의 포의풍류도, 송재학의 시와 신윤복의 주유청강, 정일근의 시와 김정희의 세한도, 최정례의 시와 전기의 매화초옥도, 정진규의 시와 장승업의 고사세동도 이렇게 20쌍의 만남이다. 이 만남을 무릉도원의 서정, 양인과 천인의 시대, 내 광기를 잠재워라, 내 안에 풍경이 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으로 분류하고 이에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가 풀어가는 이야기로 이런 만남을 주선한 것은 북송의 시인 소동파가 당나라 시인이자 화가였던 왕유의 그림을 보고 한 ‘시 안에 그림이 있고 그림 안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 가 근거가 된다. 조선시대 화가의 그림 속에서 찾아낸 이야기를 현대 시인의 시와 연결시키는 저자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람의 삶에 대한 성찰이 중심을 이룬다. 그림과 시의 만남이 가능해 지는 통로가 그것이라는 것이다. 이 통로를 통해 저자가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세계는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게끔 한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림과 시가 담고 있는 정서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삶의 무게를 극복해 가는 것은 이런 화가나 시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가는 과정에서 좌절하거나 곤란을 겪게 되지만 이들에게는 그런 과정이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집중성과 특별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여, 그 결과가 그림으로 시로 나타나는 것이다. 저자는 그림과 시에 담긴 이 이야기를 시공간을 초월하여 읽어낸다. ‘황홀’은 이런 만남이 주는 감정을 담아낸 제목으로 읽힌다. 그만큼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이 크다는 것이리라. 저자의 독특한 시각, 풍부한 상상력은 그림과 시가 가지는 이야기의 다양성과 깊이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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