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다한다는 것'
막연한 꿈이었다. 가능할거란 생각도 못했다. 그래도 심장은 뭐라도 해야한다고 자꾸 부추킨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일, 무엇에 주목해야 가능해지는 걸까?

그 중심을 '간절함'으로 보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 역시 그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 간절함을 이루는 길은 '정성'에 있다. 지극정성의 그 정성이다. 하여, 정성이 조금씩 쌓였는지 닿지 못할거라 짐작했던 것이 어느 사이 희미하게나마 산 너머의 하늘빛으로 나타났다.

이제, '귀한 사람 정성으로' 라면 이루지 못할 것 없다고 확신한다. 시공간의 제약도 방해못하는 감통感通에 심통心通을 확인하며 어느덧 눈빛에 깃든 마음까지 본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질적변화한 그날 그 새벽의 바다에 다시 섰다. 같은시간 같은 바다 위지만 그날과 또다른 심장박동이 감동으로 온다. '그대 여기까지 잘 왔다'고 눈부신 빛으로 감싸는 새벽 빛이 가슴 깊숙히 박힌다.

오늘 이곳 바다 위에 굳건하게 설 수 있었던 의지처는 '중용 23장'에서 찾았다. 정조대왕에 주목했던 영화 '역린'에서 왕 정조는 상책의 입을 빌려 중용 23장을 대신들 앞에서 설파한다. 왕의 입이 아닌 상책의 입이였기에 그 울림은 더 깊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베어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것이다." (중용 23장)

其次는 致曲이니 曲能有誠이니 誠則形하고 形則著하고 著則明하고 明則動하고 動則變하고 變則化니 唯天下至誠이야 爲能化니라
기차는 치곡이니 곡능유성이니 성칙형하고 형칙저하고 저칙명하고 명칙동하고 동칙변하고 변칙화니 유천하성성이야 위능화니라.

변화의 힘은 정성이었다. 간절함이 이루고자한 그 것으로 가는 여정의 안내자가 정성이었다. 다시 그날 그바다 위에 선 오늘 그 정성을 의지삼아 여기까지 멈추지 않았듯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걸을 것이다. 하나의 심장이니 그 심장 멈추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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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9-28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절한 마음 끝에 매달리는 정성은 저 달처럼 빛이 나기에 다른 이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걸까요?
또르르 굴러내릴 것 같은 달이 이슬방울처럼 매달려있는 풍경이 좋습니다.
 

'마주본다는 것'
가능한일일까? 사람과 사람이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 그 사람을 통째로 알아버리는 일이 정말 가능하기는 한걸까?

감정을 담지 않고 존재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은 객관적인 해법에 대입하면 답을 얻고 만다. 감정은 완고하고 수시로 변하기에 일정한 법칙이 없다. 

이미 벽을 두르고 상대를 대하는 모든 행위는 그래서 애초에 그 벽을 넘을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ㅈ출발한 경우와 같다. 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공정하지도 않고 또한 벽을 두른자의 일벙적 감정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라는 벽을향해 돌진하는 것은 그것이라도 해야만할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절박함은 때론 기적을 만들어 왔음을 알기에 그 기적에 의지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다.

해를 마주보는 것은 여전히 버거운 일중 하나다. 그렇더라도 마주보지 않으면 일생을. 한번 볼까 말까하는 명장면을 볼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나, 그대를 마주보고자 함은 이렇게 간절함 보테 기적이라도 불러오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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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9-26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광이 매력적인 이유는 덧입혀진 색을 버리고 편견없이 윤곽으로 다가오는 대상 때문이죠. 해를 바라보는 지 주변을 바라보는 건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화면 가득 아름다운 장면이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마주본다는 건. . 용기를 필요로 하는 멋진 도전이라 생각합니다. 바라보는 대상과 그 주변을 통째로 안고자 하는 마음이죠. .
 

'멈출 수 없는 길'
닿을 수 있을까? 깊고 깊어서 그 끝을 모르는 곳, 바로 사람의 마음자리다. 그 본래의 마음자리에 닿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사람의 욕심이 끝도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반증은 아닐까?

시작은 누구나 한다. 그렇게 시작된 길을 가다 조그마한 걸림돌에도 넘어지면 일어나는 것 조차 버거워 한다. 넘어진 자리의 돌부리가 모든 것의 이유라도 되는 듯 과장하여 자신을 합리화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누구나 시작하지만 누구도 쉽사리 그 근본에 이르지 못하고 만다. 

허락된 곳이라면 그나마 수월할 수도 있지만 금지된 곳 또는 허락받지 못한 곳이라면 더 힘든 길임은 자명하다. 허락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닌 그 본래의 마음자리로 가는길.

혹ᆢ그곳에 닿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출발 한 길이다. 가다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중도에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 길을 가는 것이 하늘이 허락한 내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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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9-25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자리라는 게 가늠하기 어려운 곳이라, 어쩌면 거리가 아닌 방향이 될 수 밖에 없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
 

'감어인'鑑於人
자신을 사람에게 비추어 보라는 말이다. 제자백가 중 묵자가 원전이다.


보여지는 모습으로 거의 전부를 판단하는 세상이라고 한탄들 한다. 그렇다면 보여지는 모습을 전부 무시하란 말인가? 보여지는 모습은 속내를 드러내는 중요한 방편이니 그 드러남을 통해 속내를 보는 통로로 삼는다면 드러남은 백분 활용해야할 측면이 된다.


속이든 겉이든 보여야 알 수 있다. 꽃들이 앞을 다투어 화려하고 특이한 자신만의 모양과 색으로 치장하는 이유는 그 속내를 드러내고자 함에 있다. 속내를 드러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 하자는 것이다. 그러기에 드러냄은 꽃에게는 곧 사명을 완수하는 중요한 일이다.


사람이 자기를 가장 잘 비출 수 있는 곳은 역시 사람이다. 나를 비춰주는 사람, 내가 비춰줄 사람을 얻고 그 안에서 사람의 본성으로 돌아가자. 하여, 외롭고 힘든 세상살이 조금은 위로 받고 의지하며 산다면 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


'감어인'鑑於人, 그대를 바라보는 내 방식이며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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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 풀꽃 속의 일제 잔재
이윤옥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풀꽃에게 우리 이름을 돌려주자

우리 풀꽃에 관심이 많다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꽃을 보러 인근 산과 들을 다닌다이름을 알고 불러줄 수 있는 풀꽃이 그리 많지 않지만 하나 둘 알아가는 즐거움은 다른 어떤 즐거움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다이렇게 꽃을 찾아다니면서 간편한 식물도감을 휴대하거나 카메라에 담아온 사진을 도감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에서 다소 의외의 현실에 직면한다.


그 첫 번째는 식물을 설명하는 다양한 식물도감들의 내용이 한결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식물학자들만 보는 도감이 아니라 일반인에게 보급되는 도감과 더불어 각종 사이트에서 찾아봐도 마찬가지다번역문 형식의 설명만으로는 도무지 어떤 식물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두 번 재로는 식물이름이다큰개불알꽃며느리밑씻개도둑놈의갈고리와 같이 다소 민망한 이름들이 많아서 왜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궁금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은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해서 발간된 책이다특히두 번째 문제점에 주목하여 식물이름과 관련되어 의문을 풀어가며 이에 대한 올바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희 볼 수 있는 대부분의 풀꽃들은 식용과 약용으로 사용이 가능한 것들이며 우리민족은 옛날부터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왔다그 증거로 동의보감산림경제물명고 등에서 찾을 수 있다이렇게 전통적으로 관리하고 불러오던 식물이름이 현대 식물학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났다그 과정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주체가 바로 일제강점기의 일본학자들이었다는 점이 그 문제의 출발이라고 보인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만든한반도 고유종 총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반도 고유 식물은 모두 33목 78과 527종이다이 가운데 일본 학자 이름으로 학명이 등록된 식물은 모두 327종으로 무려 62퍼센트에 달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식민지 수탈의 일환으로 우리 산야의 식물들이 채집하고 이름 붙이면서 총독의 이름을 붙이거나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등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이를 바탕으로 삼아 이후 우리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도 어려가지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일본이름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기준이 불분명한 이름들이 등장하고 이렇게 붙여진 이름이 지금까지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저자가 우리풀꽃의 이름의 등록과 번역과정을 추적하며 기준으로 삼고 있는 책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손으로 만든 조선식물향명집과 일본인의 발간한 조선식물명휘가 그것이다저자는 이 두 책을 비교하며 식물이름의 등재와 번역과정에서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식물이름과 관련된 이러한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런 현실을 용인하거나 방치하고 있는 국가기관의 시각에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삼림청의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립생물자원관의 한반도생물자원포털과 같은 기관이 서로 유기적으로 대처하면서 잘못된 식물이름이나 그 해설에 있어 일본잔재가 남아 있는 부분을 바꿔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큰개불알꽃며느리밑씻개금강초롱 등에 얽힌 사연뿐만이 아니다이름에서 식물의 본래 성질이 왜곡되거나 국적을 상실한 이름들이 존재한다후손들은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의무가 있다더불어 식물정보에 올라와 있는 일본식 용어의 번역문구로 된 설명도 바뀌어야 한다큰개불알꽃이 '봄까치'며느리밑씻개가 '사광이아재비와 같이 보다 친근감 있고 그 식물의 이미지와 결부된 우리 이름을 갖게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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