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한다'
관계가 굳건해지는 근거다. 나 아닌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함으로부터 출발하는 마음자리이기에 이때의 타인은 이미 나와 별개가 아니다. 이는 서로의 마음이 기대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온전해 진다.

먼 산 너머를 향해 우뚝선 듯 고개 내밀어 바라보는 애기나팔꽃도 딛고 선 땅과 산 너머의 기운에 의지한다. 땅의 무게감과 산을 넘어온 바람을 맞아 온갖 수고로움을 다해 정성의 꽃을 피울 수 있는 힘도 여기에 있음을 안다.

때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 크게 마음을 기대는 것은 바로 상대를 향한 내 마음의 간절함에서 온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무게가 감당키 어려울수록 마음을 상대에게 의지함으로써 얻는 위안과 용기는 그 무엇보다 힘이 크다.

의지한다는 것은 상대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지만 그 맞은 편에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상대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닌 양자가 공존일 때 그 힘은 커지며 올바로 발휘된다. 

나, 그대를 의지함이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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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하다'
약속되어 있음을 전재로 성립하는 마음가짐이다. 현재를 바탕으로 내일을 향해가는 발걸음의 근거이기도 하다. 무게를 더해온 깊이가 있기에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깊어진다는 것을 누군가는 저물 때가 되었다고 해석한다. 저문다는 것은 특정한 상황의 마지막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이는 이 상황에 이르는 과정에서 다른 상황으로의 질적변화를 시도할 때임을 알려주는 신호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오늘을 이어가는 연속선 상의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찬란한 순간을 꽃 피웠던 쑥부쟁이도 꽃잎 하나하나를 떨구었다. 이 떨궈내는 과정 없이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더욱 열매 없이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한 계절이 다른 계절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은 나날이 급격한 변화를 재촉한다. 이 변화는 이제 더 굳건한 바탕 위에 서 있음으로 기꺼이 받아 안을 수 있는 질적인 변화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시간을 굳건하게 이겨냈다. 애쓴 그대,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이제 그대의 그 힘이 다음을 기약하는 근거가 되리라. 그대의 그 힘이 있어 다가오는 시간은 찬란하게 빛나는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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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이호준, 다할미디어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로 만난 시인 이호준의 글에서 흙냄새가 난다. 흙이 사라진 도심의 이야기에서도 기억 속 흙냄새를 불러오는 이유는 그의 어떤 글이든 하나하나가 우리 모두가 발딛고 살아가는 현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흙냄새는 고향이며 사람의 마음이다.

누구에게나 현실은 삶의 무게로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시인 이호준은 이 버거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그가 묻는 안부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스한 가슴이 있어 가능한 마음 나눔이며 공감을 바탕으로 한 소통으로 모아진다. 그의 글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은
시인 이호준이 이땅에서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전국을 떠돌며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담아 엮은 책이다.

"원두막, 섶다리, 대장간, 장독대, 죽방염, 고무신, 손재봉틀, 이발사, 사진사, 서낭당, 술도가, 간이역, 징검다리, 줄배, 너와집-굴피집, 상엿집, 소달구지, 피맛골, 뻥튀기, 성냥공장, 닭서리, 짚신ᆢ" 등

'그때가 더 행복했네'와 '떠나가는 것은 그리움을 남기네'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이 출간된 싯점이 2008~9년이니 오늘의 현실은 그때와도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그 차이는 그 만큼의 더 깊은 그리움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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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경'
-정약용丁若鏞

友欲月下飮(우욕월하음)
勿放今夜月(물방금야월)
若復待來日(약부대내일)
浮雲起溟渤(부운기명발)
若復待來日(약부대내일)
圓光已虧缺(원광이휴결)

벗이여 달빛 아래 술 마시려면
오늘 밤 저 달을 놓치지 말게
만약 다시 내일 을 기다린다면
뜬구름이 바다에서 일어날 걸세
만약 다시 내일을 기다린다면
둥근 달빛 하마 이미 이지러지리

*음력 구월 보름달이다. 특별한 장소를 정해두고 달빛아래 술잔을 나누던 옛사람들은 사라졌지만 그 고상한 취미는 오늘로 전해져 달을 바라본 이들이 제법있다. 

술잔 기울이지 못하고, 차 한잔 앞에 두지도 못하고 더욱 함께할 벗도 없지만 홀로 달빛 아래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 모월당慕月堂에 앉아 창으로 스며드는 달빛에 책 읽는 것도 좋으리.

그대에게 달을 보낸 까닭도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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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남자
유경숙 지음 / 문학나무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내 삶은 어떤 소리를 낼까?

나에게 있어 문학은 접하기 어렵고 더구나 단편은 더 어려운 일이다하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적극적으로 작가와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낯선 작가들의 작품을 통한 작가와의 만남이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다양한 단편작품을 통해 작가의 글맛을 알아갈 수 있으며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작가의 작품을 통해 주목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청어남자'는 자연과 세상 속, "뭇 구멍에서 나는 피리소리를 듣고 가지런히 편집하는 것자연의 소리에 사람의 숨을 보테어 엮어내는 작업"을 소설쓰기로 규정하는 작가 유경숙의 단편소설과 미니픽션을 모은 소설집이다.

 

적화청어남자불무골금취학령눈썹천은사감국입산통제구역사람들이란 여덟 편의 단편들과 미니픽션으로 맨발의 그녀가다가 돌아온 최씨증미산 사람들 1, 쟁기불목하니” 등 다섯 편의 글이 실렸다.

 

대표작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청어 남자로 볼 수 있다청어 남자는 간병인 여자가 바라본 한 환자와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주목하는 남자가 입었던 옷이 청어뼈에서 본떴다는 헤링본코트다청어가시가 목이 걸려 답답한 심정처럼 남자와 여자의 마음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진다짧지 않은 시간동안 남자와 여자 사이에 주고받았던 교류는 형식적 가치에 불과한 것일까? ‘불무골에서도 마음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태풍이 몰아치는 시공간을 맨몸으로 뚫고 가려던 남자는 죽고 남은 여자동생과 죽은 이의 친구의 친구가 다 떠나곤 빈 골짜기에 들어와 한 집에 함께 기거하는 일로 묻히고 만다더불어 인생의 모진 풍파에 흔들리면서도 자아를 지켜낸 이들의 삶을 담은 금취학령’, 언청이 쌍둥이로 태어나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남매를 그린 적화’ 등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가 들었던 세상 속뭇 구멍 속에서 들었을 피리소리는 어떤 것일까사회적관계망 속에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 사람들이지만 그 밀접한 관계가 역으로 작용하여 단절을 불러오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각기 다른 삶 속에서 각기 다른 소리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을 원하지만 어쩌면 자신조차 알기 힘든 일로 보이기도 한다이 지점이 마음의 단절로 이어지는 것이리라.

 

자연의 소리에 사람의 숨이 소통하여 만들어 내는 피리소리는 공감을 통한 소통으로 이어질 것이다무엇이 어떻게 전개되어 결론으로 모아지는 무엇이 없기에 한없이 열린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 속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도 어쩌면 더 강렬하게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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