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고 더하다'

돌을 쌓은 축대 위에 흙을 이겨 올리고 나무를 얹었다. 사방을 두르고 겨우 틈하나 냈다. 숨구멍이다. 지붕까지 이었으니 어엿한 공간이 되었다. 나머지는 벼랑이다.


그대와 내가 사는 사람 세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면서 남들만 모른다고 모두가 아우성이다.


여전히 구름을 이기지 못하여 지친 해가 버거운 시간의 강을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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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0 14: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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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배나무'
하늘거리는 하얀꽃잎이 봄볕에 눈부시다. 매력 포인트 유난히 붉은꽃술이다. 그 속에 콩만한 배가 담겨있단다. 이른 봄숲에서 만날 수 있는 흔하지 않은 모습 중 하나다.


한국이 원산지로 낙엽지는 키작은나무다. 산과 들에서 자란다. 가지에 가시가 있으며, 흰색 피목이 있다.


꽃은 4∼5월에 흰색으로 피고 짧은 가지 끝에 5∼9개씩 달린다. 꽃잎은 5개이고 둥글거나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 또는 넓은 달걀 모양이다.


열매는 작고 둥글며 10월에 녹색을 띤 갈색에서 검은 색으로 익는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녹리(鹿梨)라는 약재로 쓴다.


우리가 먹는 과수원의 배의 원종이라고 한다. 과일로 개량되기 이전의 원시종이라는 말이다. 야생배 종류 중 하나인 돌배보다 훨씬 작다. 콩만한 배라고 해서 콩배라고 한다.


유난히 붉은 꽃술 때문일까 '온화한 애정'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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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탓하며'

해도 늦장부린다. 어제밤은 늦도록 달이 지붕에 걸려 헤메더니 아침엔 해도 구름을 헤치고 나올 기력이 쇠잖해진 걸까? 덩달아 봄날 아침을 맞이하는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다ᆢ봄, 네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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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나무'
바람앞에 연약한 꽃잎이다. 쉴새없이 흔들리며 햇볕에 빛난다. 지켜야하는 할 몫이 있어 가시를 달았다. 하지만 가시로는 다 지키지 못함을 알기에 순박한 꽃잎을 더 달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얀 꽃잎에서 노오란 탱자향이 난다.


중국 원산이며 우리나라는 경기도 이남에 분포하는 낙엽지는 나무다.


날카로운 가시가 특징이어서 귀양 온 죄인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는 산울타리로 사용했고, 민속에서는 저승의 사자를 출입 못하게 막기 위해 울타리에 심기도 했다.


꽃은 5월에 잎보다 먼저 흰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 달린다. 꽃자루가 없고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5개씩 떨어진다.


열매는 둥글고 노란색이며 9월에 익는데, 향기가 좋으나 먹지 못하지만, 한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약재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약용식물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찾아보기 힘든 나무가 되었다. '추억'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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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나무를 심다
김은경 지음 / 북촌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정조는 왜 나무를 심었을까?

조선후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호학군주이며 못 다한 개혁의 군주 바로 정조다그렇다면 왕 정조의 개혁 정치 중심에 무엇이 있었을까왕권의 강화로의 전환과 더불어 백성의 삶을 안정화시키는 것으로 모아진다고 볼 수 있다그동안 왕 정조를 바라보는 시각에 이 두 가지가 중심이었다고 봐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왕 정조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만난다김은경의 책정조나무를 심다는 왕 정조를 바라보는 중심 키워드로 나무심기에 주목한다재임기간동안 1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는 정조와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정조와 나무흥미롭고 절묘한 조합이다대학에서 한문학을대학원에서 산림자원학을 공부한 저자 김은경이 조선왕릉의 수목에 대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에 언급된 정조의 나무심기에 관한이야기를 담았다.

 

영조의 장례를 치르면서 시작된 정조의 나무심기는정조 24년 여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된다아버지 사도세자를 닮고 싶었고 할아버지 영조의 효심을 닮으려 했던 정조의 나무심기는그가 조선의 임금이 되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정조의 나무심기는 할아버지 영조의 왕릉에 나무를 심은 것으로부터 출발한다왕릉에 나무를 심는 것은 효를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써 자식을 대신해서 부모를 지켜주는 나무라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할아버지 영조와 아버지의 비극적인 관계로부터 정조에게는 특별한 아버지가 있었다그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면서 묘역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수많은 나무를 심기에 이른다.

 

식목 왕 정조의 나무 간택에는 왕릉을 풍성한 숲으로 가꾸려 했던 마음과 더불어백성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고자 했던 애민 정신이 담겨 있었다.”

 

정조의 백성을 위한 정치를 알 수 있는 부분 중 하나가 나무심기에서도 알 수 있다백성과 관련된 나무심기에서 백성을 생각하는 정조의 기본적 시각을 살필 수 있는 부분이다효에서 시작된 나무심기가 백성의 안위와 관련된 부분으로까지 확장되면서 나무심기에 대한 일관된 정책으로 정착되기에 이른다효로부터 출발한 묘역관리 차원을 넘어 체계적으로 관리·운영하고 상세한 기록으로 남겼다.

 

도리桃李를 심고 도리桃李 꽃을 보며 도리桃李가 되고자 노력했던 이들과이들을 도리桃李로 바라본 정조가 심은 것은 단지 나무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저자 김은경의 왕 정조의 나무심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기록에 나타나 객관적 사실을 발굴하여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한문학을 공부한 것으로부터 연유된 것으로 보이는 독특한 시각은 기록물의 행간에서 읽어내는데 있다이는 한문학과 나무를 공부하던 시절의 에피소드와 연결되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특히 나무심기를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하고 운영한 것과 결부하여 바라봄으로써 저자가 식목 왕 정조를 바라보는 궁극적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유추할 수 있다나무심기는 결국 조선이라는 나라와 그 나라에 사는 백성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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