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지숲속의 여왕이다. 추위에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봄기운에 익숙해질 무렵 숲에서 춤추듯 사뿐히 날개짓하는 꽃을 만난다. 한껏 멋을 부렸지만 이를 탓하는 이는 하나도 없다.
햇볕따라 닫혔던 꽃잎이 열리면 날아갈듯 환한 몸짓으로 이른 봄 숲의 주인 행세를 한다. 꽃잎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과한듯 싶지만 단정함까지 있어 우아하게 느껴진다. 숲 속에서 대부분 무리지어 피니 그 모습이 장관이지만 한적한 곳에 홀로 피어있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넓은 녹색 바탕의 잎에 자주색 무늬가 있는데, 이 무늬가 얼룩덜룩해서 얼룩취 또는 얼레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씨앗이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5년 이상 자라야만 꽃이 핀다고 하니 기다림의 꽃이기도 하다.
뒤로 젖혀진 꽃잎으로 인해 '바람난 여인'이라는 다소 민망한 꽃말을 얻었지만 오히려 꽃이 가진 멋을 찬탄하는 말이라 여겨진다.
"화훼가 세상을 만나는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난초는 주周의 굴원屈原을 만났고 지초芝草는 한의 무제武帝를 만났으며, 국화는 진의 도잠陶潛을 만났고 매화는 남북조南北朝 시대 여러 사람을 만났으며, 모란은 당나라 낙양洛陽 사람들을 만났다. 연꽃은 송나라 주렴계周濂溪 선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만나게 되었으니, 세상에서 연꽃이 가장 늦게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어찌 고결한 존재가 서로 만나기 어려워서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조선 후기 때 사람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의 '순원화훼잡설淳園花卉雜說'의 연꽃 부분에 나오는 글의 일부다. 순원화훼잡설은 신경준이 전북 순창에 내려와 살면서 순창의 꽃들을 기록한 글이다.굴원의 난초, 왕휘지의 대나무, 도연명의 국화, 임포의 매화 여기에 더하여 영랑의 모란, 소월의 진달래, 도종환의 접시꽃, 김유정의 동백(생강나무), 박완서의 싱아, 송창식의 동백꽃, 이미자의 해당화 등등.꽃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여럿이 있다. 모든 꽃이 아름답지만 사람이 각기 다른 성격을 지내듯 꽃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 유독 좋아하는 꽃을 곁에 두고 완상하며 자신만의 감정이입을 하는 이들의 마음 속에 꽃 향기가 머물 것이다.누군가를 떠올릴때 그에 어울리는 꽃이 함께 생각난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이미 꽃길 속을 걷는 것이리라.나는 무슨 꽃일까.
1948년 4월 3일 그로부터 72년이 지났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니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제주도에서 지리산에서 그리고 한반도의 산하 구석구석에서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하여장렬히 산화해 가신 모든 혁명전사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다시, 이산하의 장편 서사시 ‘한라산’ 서문을 읽으며 바다 건너 제주의 그날을 새긴다. 통째로 떨구어 지고난 후가 더 아름다운 동백이다. 늘 새롭고 나날이 새로워져야 할 4ㆍ3의 의미를 상징하는 꽃으로 삼았으니 기꺼이 꺼내들었다.그때나 지금이나 떨어진 동백이 땅 위에서 더 붉다.
'흰괭이눈'계곡물이 풀리고 난 후 재잘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깨어나는 것들이 있다. 오늘은 그 중 '괭이눈'이라는 이름을 가진 앙증맞은 애들이 주인공이다.
애기괭이눈, 흰괭이눈, 금괭이눈, 산괭이눈, 선괭이눈‥ 등 고만고만한 생김새로 다양한 이름이라 제 이름 불러주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괭이눈이라는 이름은 꽃이 핀 모습이 고양이눈을 닮았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상상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물을 좋아해 계곡 돌틈이나 근처에 주로 산다. 눈여겨 본다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식물이기도 하다. 숲에 들어가면 계곡의 돌틈을 살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흰괭이눈은 줄기와 잎에 흰털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괭이눈 종류들은 대개 노란색 꽃을 피운다. 노란별이 하늘에서 내려와 물가에 꽃으로 핀듯 아름다운 모습이다.
설악산 아모르 야생화 아모르-최기수 저, HNCOM
"설악산 등산로 곳곳의 시간과 거리에 대한 정보, 산행길 곳곳의 풍경과 생명체들의 삶, 사람과 자연의 동반적 관계 등을 스스로 음미하고 기록하며 ‘설악산 즐기는 법’을 제시했다."
발품 팔아 몸과 마음으로 설악산을 마실 가듯 다닌 시간이 쌓인 결과물이다. 이곳에선 먼 설악산이지만 가까이 볼 기회로 삼는다. 페친 최기수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