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남겨 뒀어요.


다음에 오는 바람 섭섭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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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삼'
한번 봤다고 멀리서도 보인다. 처음 만났던 때가 고스란히 떠오르면서 조심스럽게 눈맞춤 한다. 노고단에서 첫만남 이후 두번째다. 의외의 만남은 늘 설렘을 동반하기에 언제나 반갑다.


흰색의 꽃이 뭉쳐서 피었다. 연한 녹색에서 점차 흰색으로 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느다란 꽃대는 굳센 느낌이 들 정도니 꽃을 받치기에 충분해 보인다. 녹색의 숲과 흰색의 꽃이 잘 어울려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삐쭉 올라온 꽃대가 마치 노루꼬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노루삼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유래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녹두승마라고 부르며 약재로 사용된다고 한다.


멀리서 바라본 모습이 마치 숲 건너편에 서 주변을 경계를 하고 있는 노루를 보는 느낌이다. 꽃말은 ‘신중’, ‘허세 부리지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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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숲,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요소는 부지기수다. 그 중에 하나는 볕을 품고 있는 풀의 새싹이거나 나무의 새순이다. 

그렇거니 하고 그냥 지나치면 머무를 이유를 찿지 못하지만 매순간 자연이 전하는 생명의 기운을 만나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이 싱그러운 봄의 꽃과 새싹을 보면 표현 방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환희에 공감한다.

멈추고 눈맞춤 하는 순간, 봄은 내 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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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도지구載道之具
우리 옛그림을 보면 동식물을 그린 그림들이 제법 많다. 이른바 화훼영모화가 그것이다. 선비들은 무엇때문에 이런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유교적 인식체계에서는 예술을 수단으로 보는 관점에서 화훼영모화를 그렸다고 한다. 동식물로 자연의 이치를 드러냄으로써 수신修身의 도구로 이해한 것이다. '재도지구載道之具', 즉 도를 실어 나르는 도구로 본다는 의미다. 일차적으로는 주역이나 논어와 같은 경전을 말하지만 의미를 넓혀 시문詩文을 짓거나 그림을 그리는 문화예술 활동을 포함한다고 보았다.

그림을 재도지구載道之具로 삼은 대표적 화재가 매화ㆍ난초ㆍ국화ㆍ대나무를 대상으로 하는 사군자이다. 선비들은 사군자를 잘 치려면 먼저 인품이 올발라야 하며, 사군자를 치면서 인성을 수양할 수 있다고 믿었다."(한국의 화훼영모화에서 발췌) 영역을 넓혀 동식물을 그리는 행위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이해해도 될 듯하다.

현대인들이 산과 들로 다니며 꽃과 새, 풍경을 찍는 행위를 선비들이 그림을 그렸던 것에 견주어 이해한다면 어떨까. 알고 모르는 사이에 수신修身에 근본을 두고 인성을 수양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해한다. 

비록 그 취지와 어긋나는 행위를 저지르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을 보며 마음의 위안과 평안을 얻고 행복해하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조선사람 강희맹(1424~1483)은 "무릇 모든 초목과 화훼를 보면서 눈으로 본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얻은 진수를 손으로 그려 그림이 신기하게 되면, 하나의 신기한 천기天機가 나타난다."고 했다.

"홀로 마른 가지에 앉아 추위를 견디며 먼곳을 바라보거나 졸고 있는 새를 그린 그림에 담긴 선비들의 자연을 사모하면서도 속세를 떠날 수 없었던" 은일隱逸 정신을 이해한다.

산과 들로 멀고 가까운 길을 나서서 꽃과 새들을 대상으로 한 사진 한장에 담긴 사의思議를 공감하는 벗들의 마음에서 옛 선비들의 마음을 본다. 여기에서 재도지구載道之具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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種花 종화

種花愁未發 종화수미발
花發又愁落 화발우수락
開落摠愁人 개락총수인
未識種花樂 미식종화락

꽃 심다

꽃 심을 땐 안 필까 걱정하고
꽃 피니 시들까 시름한다
피고 지는 게 모두 근심이니
꽃 키우는 즐거움 알 수 없네

*고려 때 대문장으로 활약한 문신 이규보(1168~1241) 의 시다. 조바심 이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저절로 싱거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사계절 동안 꽃 없을 때가 있을까마는 유독 봄을 기다리는 것은 긴 겨울을 이겨낸 봄꽃의 매력이 큰 까닭이다. 유독 더디 오는가 싶더니 시차도 없이 한꺼번에 핀 꽃들이 허망하게 지고만다. 그 허탈함이 하도 크기에 보지 못한 꽃을 먼 곳 꽃향기 품은 누군가가 봤다는 소식에 괜히 심술만 난다.

그러나 어쩌랴. 봐서 좋은 것은 그대로 담아두고, 때를 놓친 꽃이나 볼 수 없는 꽃은 가슴에 담아두고, 그리운 그대로 꽃이니 안달할 일이 아니다. 

서로 기댄듯 나란히 같은 곳을 바라보는 큰괭이밥의 모습이 순하고 곱기만 하다. 꽃을 품은 내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길 소망한다면 과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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