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음'
-배일동, 시대의창

"소리의 이치와 원리를 깨쳐 궁극에 이르다"

일찌감치 서재에 들이고도 엄두가 내지 않아 펼치지 못했다. 우선 소리꾼 배일동이 풀어내는 소리에 대한 이야기에 매료되긴 했으나 내 사유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한 이유에서다.

설악산을 안마당 거닐듯 다니며 담아낸 사진 속에서 소리를 향한 구도의 몸짓을 확인하는 것으로 대신하다 더이상은 미루지 못하고 책을 손에 들었다.

'몰두' 할 수 있을지 '주마간산' 격일지는 아직 모른다. 일단은 손에 든 용기에 스스로를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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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그 황홀한 빛의 숲에 들었다. 이른 시간 숲은 이미 빛의 세상이다. 한낯 햇살의 뜨거운 기운이 맹위를 떨치기 전 숲으로 파고드는 햇살의 느긋함이 담긴 때의 숲이 좋다. 터벅터벅 적막을 깨는 스스로의 발자국 소리의 리듬에 귀 기울이는 시간으로의 나들이다. 

헉헉대며 산길을 오르는 이의 숨가픔을 다독이는 물소리가 환영하는 계곡에 앉아 배낭을 풀고 손을 적신다. 밀려드는 상쾌함으로 한숨 돌렸다 싶을때면 눈은 이미 주변을 살핀다.

계곡 돌틈에 떨어진 꽃잎 위의 빛, 정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바람 소리, 반가움과 경계를 넘나드는 새의 울음, 눈 보다는 코의 예민함을 건드리는 숲의 향기에 넘실대는 산그림자의 손짓, 오랜만에 만난 동무를 반기는 다람쥐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숲 속 한 식구가 누리는 시간의 공유다.

숲, 숨에 틈을 내는 시공時空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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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난초'
먼데서 오는 꽃소식은 마음을 늘 급하게 만든다. 볼 수 있을지없을지는 알 수 없지만 우선 반갑다. 시간을 내고 찾아갈 수 있다는 것,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행복 또한 꽃이 준 선물이다.


나뭇잎으로 우거진 숲에 볕이 드는 순간 유난히 빛나는 꽃이다. 꽃대에 많은 꽃을 달았고 그 하나하나가 모두 빛을 발하고 있다. 녹색 꽃대와 황갈색 꽃, 하얀 꽃잎술이 어우러진 모습이 매력적이다.


왜 이름이 감자난초일까. 둥근 알뿌리가 감자를 빼닮아서 감자난초라고 한단다. 감자라는 다소 투박한 이름과 어울리지 않지만 그 이름 때문에 더 기억되기도 한다. 크기와 색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숲 속에서 만나는 꽃들은 모두가 숲의 요정이 아닐까 싶다. 있을 곳에 있으면 그곳에서 빛나는 모습이라야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꽃말이 '숲속의 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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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문화예술회관 작가지원공모전시

"感應動通감응동통"


ㆍ2020. 5.21(목)~6.14(일)
ㆍ광주문화예술회관 갤러리


내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은 변화의 형상들이며
그 변화의 형상들은 내 안에 자리한다.

내게 왔던 시간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깊었던 인연들은 사라진 시간 속 어디쯤에 숨어있을까?

오랫동안 바라보던 나무의 맨 몸에 하나 둘 꽃이 피더니,
순식간에 몸 전체가 꽃으로 뒤덮힌다.
아예 나무 자체가 꽃이 되었다.

그래, 시간의 행방이 여기 있었네!
이 꽃이 지면 다른 꽃으로 피면서.

-2020년 봄날, 꽃을 그리다.


*최대주
-2005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서양화 전공
-개인전
2019 피안의 숲으로(담양 고서갤러리) 외 다수
-단체전
2020 직시, 역사와 대면하다(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외 다수


*우연히 찾은 갤러리에서 발길을 붙잡혔다. 멀리서 보고 사진인가 싶었는데 그림이다. 관심사인 나무와 꽃이라 더 눈에 띄었는지는 모르나 굉장한 흡입력이 있다. 자작나무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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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充實之謂美 충실지위미'
충실充實한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하고자 할 만한 것을 '선善'이라 하고, 선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신信'이라 하며, 선이 몸속에 가득 차서 실하게 된 것을 '미美'라 하고, 가득 차서 빛을 발함이 있는 것을 '대大'라 하며, 대의 상태가 되어 남을 변화시키는 것을 '성聖'이라 하고, 성스러우면서 알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

*맹자孟子 진심하盡心下편에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선善, 신信, 미美, 대大, 성聖, 신神"의 여섯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美은 무엇일까.

책을 손에서 놓치 않으나 문자에만 집착해 겨우 읽는 수준이고, 애써 발품 팔아 꽃을 보나 겨우 한 개체의 만개에 주목하고, 가슴을 울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몰입하나 그 찰라에 머물뿐이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순하게 대상을 한정시켜서 아름다움을 보는 것에 나를 맡긴다면 스스로에게 미안할 일이 아닐까?

마른 땅을 뚫고 솟아나는 죽순에서 지극한 아름다움을 본다. 죽순은 땅을 뚫고 올라오기 전 이미 다 성장했을 때의 마디를 준비하고 있다. 시간과 때를 알아 뚫고 나오는 힘 속에 아름다움의 근원인 충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해 두해 그렇게 발품 팔아 꽃을 보러다니다 보니 모든 꽃의 아름다움은 그 충실의 결과임을 알게 된다.

애써서 다독여온 감정이 어느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은 스스로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한다. 쌓아온 시간에 수고로움의 부족을 개탄하지만 매번 스스로에게 지고 만다. 그렇더라도 다시 충실에 주목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이기는 힘도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충실充實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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