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천년의 바람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박재삼의 시 '천년의 바람'이다. 부침浮沈이 심해보이나 자연은 늘 순리대로 흐른다. 꽃은 오늘도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피지만 이를 보는 사람의 마음은 늘 변한다. 순리에 따라 사람의 마음도 의연하길 빈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거짓말 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낯선 경험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던 강물은 잠든듯 고요할 뿐이고, 강을 이웃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생채기를 다독이는 마음이 분주하다.

七 夕

하늘에 죄가 되는 사랑도
하룻밤 길은 열리거늘
그대여,
우리 사랑은
어느 하늘에서 버림받은 약속이길래
천 년을 떠돌아도 허공에
발자국 한 잎 새길 수 없는 것이냐

*시인 류근의 시 '七夕' 전문이다. 매 칠석날이면 이 시 한편으로 칠석을 건너는 감회를 대신해도 모자람이 없다.

칠석七夕, 하루의 긴 시간이 흐른 뒤 품을 키워가는 달이 떠야 알까. 지금은 그저 덤으로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병아리풀'
유독 험한 환경에서 사는 식물들이 있다. 삶의 터전을 척박한 곳으로 택한 이유는 뭘까. 이런저런 이유를 짐작해 보더라도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바위 표면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들은 생각보다 제법 많다. 양질의 환경에서 벗어나 홀로 고독한 삶을 선택한 모습에 경이를 표한다.

올해 처음 눈맞춤한 병아리풀도 이 부류에 속한다. 병아리처럼 작은 풀이라는 의미로 이름 붙여진 이 식물은 짐작보다 더 작았다. 작디작은 것이 바위 경사면에 붙어서 자라고 꽃 피워 열매 맺고 후대를 다시 키워간다. 한해살이풀이라 신비로움은 더하다.

연한 자주색으로 피는 꽃은 한쪽 방향으로 향한다. 자주색에 노랑 꿏술과의 조화로 더 돋보인다. 같은 곳에서 흰색으로 피는 녀석도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회목나무'
때를 맞추지 못하여 꽃을 보지 못하고 열매만 보다가 꽃을 만났다. 비와 안개가 만남을 방해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오랫동안 눈맞춤 했다. 높은 곳을 오르는 맛을 알게하는 식물 중 하나다.

독특한 꽃이 잎에 올라 앉아 피웠다. 대부분 쌍으로 앉았으니 더 눈요기거리다. 긴 꽃자루 끝에 짧은 꽃자루를 내고 두세개의 꽃이 핀다. 이 특이한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가야산 정상부에서 열매로 먼저 만나고 지리산 노고단 오르는 길에서 꽃을 만났다. 먼 길 돌고 돌아 만났으니 같은 곳을 다시 가면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거울을 보며 臨鏡贊
멀리서 바라보면 곱기가 부귀한 사람 같은데 다가서서 살피면 비쩍 말라 산택山澤에 숨어 사는 피리한 사람 같다. 이마와 광대뼈는 시비와 영욕의 처지를 잊은 듯하고 낯빛은 온화해서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사물을 해칠 뜻이 없는 것 같다고들 한다. "광대뼈의 솟은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라고 한 것은 민사문閔斯文이 내 관상에 대해 말한 것이고, "눈동자의 정채가 사람을 쏜다."라고 한 것은 조학사趙學士가 내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약해서 말조차 타지 못하건만 사람들은 내게서 진晉나라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 두예杜預를 기대하려 든다. 용모가 세상을 움직이지 못할 뿐인데도 사람들은 나를 '태현경太玄經'을 지은 한나라 양웅楊雄 처럼 본다. 내가 두 손을 모으고 천천히 보폭을 짧게 해서 걷는 것을 본 사람은 염락의 어진 이(주돈이와 정호ㆍ정이 형제)를 본뜬다고 의심하고, 내가 형상을 잊은 채 멍하게 앉은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장자莊子와 열자列子의 현묘함을 엿보려는 것으로 의심한다.

아! 내 일곱 자의 몸뚱이를 아는 사람은 몇 명 있지만 한 치 되는 내 마음을 아는 자는 누가 있을까? 위로는 하늘이 나를 알고 아래로는 내가 나를 안다. 벗으로는 덕중德重 임상정林象鼎이 나를 칠팔 분쯤 알고 선배 중에서는 치회稚晦 조현명이 나를 오륙 분쯤 안다. 노자는 "나를 알아주는 자가 드물면 내가 귀하다."라고 했다. 아! 한 사람 조구명을 아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조구명趙龜命(1693~1737). 18세기 조선 영조 대에 활동하며 문장 팔대가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을 알렸다. 조구명이 20대 초반에 자신의 모습을 본 후 쓴 글이라니 믿기지 않은 자기성찰로 읽힌다.

"너 누구니?"
거울을 보지 않고 산지 오래다. 그 흔하다는 셀카도 찍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면허증 갱신을 위해 찍은 증명사진을 받아 들고 놀라서 한 말이다. 그렇게 낯선 모습을 마주한다.

"위로는 하늘이 나를 알고 아래로는 내가 나를 안다."라는 말에서 주춤거린다. 하늘이 나를 아는 것이야 속속 들여다보니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나를 얼마나 알까. 더욱, 나를 아는 이는 누구일까? 자발적으로 사회적 단절을 하며 제 마음 편한대로 살고자 하는 이가 스스로를 돌아 본다.

수막새 표정을 보며 살그머니 번지는 미소는 어쩌면 알 수 없었던 속내를 들킨 것이 아닌가 해서다. 거울 보듯 너를 통해 나를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