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하는 기대는 늘 부풀어 오른다. 아직까지 내겐 오면 반갑고 오지 않으면 서운한 것이 눈이다. 밤사이 대지를 덮기에 충분한 눈이 내렸다. 바람이 잔잔하고 볕이 좋아 춥지 않게 눈이 그려놓은 그림 속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 몇번의 혹독한 추위가 더 찾아올지 모르지만 이미 기운은 봄을 향해 급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긴 겨울을 건너느라 애쓰는 이끼에 볕이 들어 다독이고 있다. 겨울 숲속, 땅 속엔 꿈틀거리는 생명들의 힘찬 움직임이 있고 땅 위엔 여리디여린 생명의 기특함을 어루만지는 온기 가득한 볕의 손길에 있다.

초록이 빛을 만나니 서로 마주하는 경계에서 생명의 찬란함이 가득하다. 경계에서 만나 온기를 나누며 서로를 빛나게 하는 자연의 기운을 닮고자 애써 겨울 숲으로 간다.

서로를 품는 어울림만으로도 이미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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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 꽃 혼자 보기 아까워 매향 가득한 꽃그늘 아래를 서성입니다. 굴뚝새가 향기를 품고 떠나는 순간 납월홍매 한송이가 툭 발끝으로 떨어졌습니다. 향기를 품고 떠난 새도 나무 아래를 서성이는 내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요. 그대 계신 곳을 향하여 찻잔에 올려두고 합장합니다.

간다는 기별도 없었지만 마중하는 마음은 이미 꽃으로 피었습니다. 춘삼월 기다릴 여유가 없었기에 납월 추위 속에서 향기를 건네는 이유라지요.

일찍 핀 금둔사 납월홍매는 이미 빛을 잃어가고 새롭게 벙그는 꽃봉우리는 많이 있더군요. 피고 지는 그 빈자리에 은근한 향기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오셔도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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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
마음의 깃을 열어 봄볕을 품는다.

*글씨는 야암 안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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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청매화

다른 길은 없었는가
청매화 꽃잎 속살을 찢고
봄날도 하얗게 일어섰다
그 꽃잎보다 푸르고 눈부신
스물세살 청춘
오늘 짧게 올려 깎은 머리에서
아직 빛나는데
네가 좋아하는 씨드니의 푸른 바다도
인사동 네거리의 생맥주집도 그대로다
그 사람 떠나고 다시 꽃 핀 자리마저 용서했다더니
청매화 꽃잎 꿈결처럼 날리는, 오늘
채 여물지도 않은 솜털들을
야무지게 털어내다니
정말 다른 길 없었느냐
새벽이면 동학사로 떠날
이른 봄 푸른 이끼 같은 아이야
여벌로 더 장만한 안경과
흰 고무신 한 켤레 머리맡에 챙겨놓고 잠든
너의 죄 없는 꿈을 마지막으로 쳐다보다
눈부시도록 추울 앞날을 위해
이 봄날, 떨리는 손으로 투툼한 겨울 내복 두 벌
가방 깊숙이 몰래 넣었다

*박규리의 시 '청매화'다. 비로소 봄날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다소 더디더라도 잊지 말아야할 의식이다. 봄의 문턱을 넘는 마음자리에 무엇을 놓아야 할까.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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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매探梅'

크고 작은 가지마다 휘도록 눈이 쌓였건만

따뜻함을 알아차려 차례대로 피어나네

옥골玉骨의 곧은 혼은 비록 말이 없어도

남쪽 가지 봄뜻 알고 먼저 꽃망울 틔우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의 시 탐매探梅 중 한 수다. 탐매의 시작은 눈쌓인 길을 떠나 남쪽으로 길을 나서면서부터다.

 

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눈쌓인 추위에 매화를 찾아 그 아름다움과 맑은 향기를 즐기는 것을 탐매探梅 또는 심매尋梅라 하고, 봄기운이 더 완연해진 후 만발한 매화를 찾아 감상하는 것은 관매觀梅 또는 상매賞梅라 했다.

 

하여, 관매觀梅나 상매賞梅는 이미 매화의 그 맑은 기운을 잃어버린 후이고 더욱 인파 속 묻혀버린 매화는 향기마져 흐트러져버린 까닭에 그 맛과 멋이 덜하다. 물론 이 또한 다 취향이니 더 무엇을 이르랴.

 

무릇, 매화를 보고자 함은 추위 속에서 그 향기 더욱 맑고 그윽해지는 탐매探梅가 제격이다.

 

남쪽 가지 봄뜻 알고 먼저 꽃망울 틔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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