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秋霜
어제 밤사이에 내린 서리에 뜰이 하얗게 되었다.겨울 한복판으로 내달리는 때 이 단어가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본래자리가 어딘지를 잊고 혼란을 자초하며 설치는 무리들로 시끄러운 세상이다. 무엇보다 어른의 기세등등하고 엄한 가르침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바짝 긴장한 몸이 서리꽃으로 오늘 날씨를 짐작한다. 산 너머 온기가 솟아 오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매화
"댁의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니다."
 
김용준의 수필 '매화'의 첫 문장에 끌려서 그렇지않아도 학수고대하던 매화 피었다는 소식에도 해가 바뀌어서 만나려고 참았던 꽃나들이를 한다. 진주 벗에게 청하여 기어이 探梅탐매의 길을 나섰다. 귀한 이와 함께 한 시간에 매향이 가득하다.
 
100년의 시간이 응축되어 피어난 매화는 그 품을 쉽게 열 수 없다는듯 드문드문 꽃망울을 열고 있다. 봄이 오기 전에 다시 만나자는 뜻이리라. 홍매가 서둘러 곱디고운 붉은 속내를 전하고 있다.
 
마주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내려다도 보고, 올려다도 보며, 때론 스치듯 곁눈질로도 보고, 돌아섰다 다시 보고, 보고 또 본다. 이렇듯 매화에 심취하다 보면 매화를 보는 백미 중 다른 하나를 만난다. 어딘가 다른듯 서로 닮아 있는 벗들의 매화를 보는 모습이다. 지난해 먼길 달려와 소학정 매화를 보던 꽃벗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눈길에 나귀 타고 탐매探梅에 나선 옛사람들의 마음을 알듯도 하다.
 
섬진강에 매화 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거 끼소.
하나 더 있으니 난 괜찮소"

부실해 보였나 보다. 추운 윗 지방 올라간다고 나름 준비도 했는데 동해안의 온기에 방심했을 것이다.
망연자실, 자작나무 숲 입구에서 몰아치는 찬바람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벗어 목에 두르라고 내미는 그 마음과 한가지다.

지난번엔 마음 졸이며 왕복 8시간을 운전하게 했고, 어쩔때는 양말 벗어 등에 업고 냇물도 건너주었다. 내어주는 정이 만만치 않아 늘 주저하면서도 기꺼이 받는다. 주는 정과 받는 정이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꽃길에서 얻는 벗의 마음이 이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수궁가 중 토끼화상 그리는 대목

그때여 별주부가 세상을 나가는디 토끼 얼굴을 모르는 것이었다. 화공을 불러 들여 토끼화상을 한 번 그려 보는디

화공을 불러라 화사자 불러 들여 토끼 화상을 그린다
동정 유리 청홍련 금수추파 거북 연적 오징어 불러 먹 갈아 양두화필을 덜퍽 풀어 단청채색을 두루 묻혀서 이리저리 그린다
천하명산 승지강산 경계보던 눈 그리고
봉래방장 운무중에 내 잘 맡던 코 그리고
난초 지초 왠갖 댕초 꽃 따먹던 입 그리고
두견 앵무 지지 울제 소리 듣던 귀 그리고
만화방창 화림중 펄펄 뛰던 발 그리고
대한 엄동 설한풍에 방패하던 털 그리고

두 귀는 쫑긋 눈은 오리도리 허리는 늘씬 꽁댕이는 모똑 좌편 청산이요 우편은 녹순데 녹수청산 해 굽은 장송 휘늘어진 양유송 들락날락 오락가락 앙거주춤 기난 토끼 화중퇴 얼풋 그려 아미산월 반륜퇴
이어서 더할 소냐

아나 옛다 별주부야 니가 가지고 나이거라

*먼 곳을 도는 꽃놀이의 맛에 빠져 앞산을 외면 했다. 겨우 꽃 지고 열매마져 땅으로 돌아가는 때에서야 발걸음을 한다.

오며가며 눈맞춤 하던 것이 이번엔 발걸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기어이 내려가 깊은 인사를 건네고서야 보내주는 심사를 짐작할만 하다.

수궁을 떠나 토끼 찾아 헤맨지 얼마일까. 늦기 전에 수궁으로 돌아가길 빈다.

https://youtu.be/0oSK76RLPKc
인간문화재 남해성의 소리로 듣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읽는수요일

전라도 가시내

알룩조개에 입마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 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젠 무섭지 않다만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궈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달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속을 달리는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색이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줍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거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이용악 시인의 "전라도 가시내"이다. 전라도든 함경도든 어디서 왔는가가 대수랴. 빼앗겨버린 후의 동병상련 보다는 지켜야 할 무엇에 주목해야 한다. 지나간 시절이 아닌 지금도 다르지 않을 현실을 직시하자. 투표를 잘해야 한다.

#류근_진혜원_시선집 #당신에게_시가_있다면_당신은_혼자가_아닙니다 에서 옮겨왔습니다. (25)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구례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