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리향
안개 자욱한 가야산 정상에서 무수히 펼쳐진 꽃밭을 걷는다. 천상의 화원이 여긴가 싶을 정도로 만발한 꽃밭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한다. 첫인상이 강렬하다.

연분홍 꽃이 바닥에 융단처럼 깔렸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겨우 보이는 꽃들이 무리지에 핀 모습이 환상적이다. 잎도 작고 꽃도 작지만 큰 무리를 이루니 제 세상이다.

'향기가 발끝에 묻어 백리를 가도록 계속 이어진다'는 뜻에서 백리향이라 했단다. 잎에서도 꽃에서도 향기를 품고 있으니 그 향은 땅끝까지 갈 것이다.

유사한 '섬백리향'은 울릉도 바닷가 벼랑 끝 혹은, 섬 전체 바위틈새에서 군락을 이루며 사는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천연기념물 제52호라고 한다.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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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否안부

處暑처서라더군요. 가을에 대해 물었으나 답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산 너머엔 비 온다고 하고 강 건너에는 폭염이라고 하고 바다 건너엔 천둥번개 친다고 하지만 이곳은 그저 흐린 하늘에 간혹 바람이 지나갈 뿐입니다.

긴, 여름이라 힘들었다 말하지만 짧은 가을 맞이를 주저합니다. 여름은 비록 길지만 옅어서 건널만 했는데 짧은 가을의 깊은 수렁을 어쩌지 못하는 심사가 이렇습니다.

처서라고 희망을 걸어보는 것은 곧 金風금풍이 전하는 蕭瑟소슬한 기운에 기대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요. 북으로 열린 들판 너머는 늘 아득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보내고 맞이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그러기에 그저 바람이 일어나는 쪽으로 비스듬히 고개를 돌립니다.

나는 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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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바위솔"
작디작은 것이 바위에 의지해 터전을 꾸리고 순백의 꽃을 피운다. 어쩌다 바위에 터를 잡아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지나가는 바람과 안개가 겨우 인사를 건네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난쟁이바위솔'은 작고 바위에 붙어 살며 잎 모양이 솔잎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개가 많은 깊은 산의 바위틈에서 주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키는 작고, 잎은 줄기 끝에 모여 있으며 끝이 뾰족하다.
 
꽃은 흰색과 연분홍색이다. 이 식물은 안개에서 뿜어주는 습기를 먹고 살아가기 때문에 안개가 자주 끼지 않는 곳에서는 꽃이 연분홍색으로 자라며 잎의 특성상 푸른색도 옅어진다. 그러다가 다시 수분이 많아지면 잎의 푸른색이 돌아오고 꽃도 흰색으로 된다.
 
꽃을 피워 스스로를 드러내고 그것으로 다시 삶을 이어가는 것이 사람 사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고맙다. 척박한 환경에서 날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는 듯 '근면'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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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가까이 갈 수 없어
먼발치에 서서 보고 돌아왔다
내가 속으로 그리는 그 사람마냥
산이 어디 안 가고
그냥 거기 있어 마음 놓인다

*정희성 시인의 시 "산"이다. 가을은 사람들과의 몸과 마음의 거리를 좁히라고 찬바람을 데리고 온다지요.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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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山之石 타산지석

誰謂他山石 수위타산석
可以攻美玉 가이공미옥
玉性溫且潤 옥성온차윤
石品頑更碌 석기완경록
精麤旣不倫 정추기불윤
軋磨又太酷 알마우태혹
攻之不以漸 공지불이점
殘缺因撞觸 잔결인당촉
玉人撫之泣 옥인무지읍
深藏在空谷 심장재공곡
塵埋色逾姸 진매색유연
皎潔光朝旭 교결광조욱
安得博物子 안득박물자
把贈申戒勖 파증신계욱
不願求善賈 불원구선가
唯思甘韞匵 유사감온독

누가 타산지석으로
아름다운 옥을 다듬을 수 있다고 했나
옥은 본성이 따뜻하고 빛나지만
돌은 성품이 완고하고 거칠다네
정밀함과 거칢이 이미 다른데
삐걱대며 가는 것이 또 너무 가혹하네
다듬기를 점차적으로 하지 않으면
부딪쳐서 깨어지고 만다네
옥인이 어루만지며 울다가
빈 골짜기에 깊이 숨겼는데
진흙 속에 묻혀도 빛은 더욱 아름다워
맑고 깨끗함이 아침 햇살에 빛나네
어디서 박학다식한 사람을 얻어
이것을 주어 경계하고 힘쓰게 할 수 있을까
좋은 값에 파는 것도 원치 않으니
그저 고이 상자에 넣어 두고 싶네

*조선사람 조임도 (趙任道 1585∼1664)의 글이다. 우연히 만난 글에서 내가 사는 세상이 보인다.

모난 돌이 자신을 옥이라고 우기는 세상이다. 그 모난 구석이 자랑인양 더 모나게 굴고 있다. 여기에 세상 온갖 돌들도 덩달아 옥인양 아우성이다. 이런 아우성에는 필히 곡절이 있을텐데 그것은 자신이 모난 돌임을 숨기고자 하는 꼼수가 숨어 있다. 그 꼼수가 들어날까봐 목소리를 더 높인다.

세상 사람들이 옥으로 쓰고자 주목하는 이에게 온갖 돌들이 옥이 아니라고 고개를 들이밀며 소리를 높이고 있다. 옥을 밀어낸 자리가 돌이 차지할 자리가 아닌 것을 알고도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는 것을 모난 돌들만 모른다.

정 맞을 일만 쌓아가는 모난 돌들의 아우성이 아무리 높아도 돌은 옥이 될 수 없다. 그 아우성이 옥의 가치만 더 높여준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대의명분은 이미 사전에나 있는 말이 되었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가 최우선인 돌들의 세상에도 결국은 여리고 순한 생명 앞에 무릎 꿇게 된다.

여리고 순한 생명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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