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꽃'
조선 정조 때를 배경으로 한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김탁환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원작으로 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시투구꽃의 실물이 궁금했다. 투구꽃에 각시가 붙었으니 투구꽃보다는 작다라는 의미다. 여전히 각시투구꽃은 보지 못하고 대신 투구꽃을 만났다.
 
꼬깔인듯 투구인듯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감추고 싶은 무엇이 있나보다. 자주색 꽃이 줄기에 여러 개의 꽃이 아래에서 위로 어긋나게 올라가며 핀다. 병정들의 사열식을 보는듯 하다. 여물어 가는 가을 숲에서 보라색이 주는 신비로움까지 갖췄으니 더 돋보인다.
 
꽃이 투구를 닮아 투구꽃이라고 한다. 맹독성 식물로 알려져 있다. 인디언들은 이 투구꽃의 즙으로 독화살을 만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각시투구꽃도 이 독성을 주목하여 등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집안도 형태적 변이가 심하여 복잡하다. 투구꽃, 세뿔투구꽃, 바꽃, 지리바꽃, 놋젓가락나물, 한라돌쩌귀, 진범 등 겨우 두 세 종류만 보았고 또 비슷비슷 하여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 예쁘지만 강한 독을 지닌 투구꽃은 볼 수록 매력적이다. 독특한 모양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뭔가 감추고 싶어 단단한 투구를 썼는지도 모를 일이다. '밤의 열림'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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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달라진 질감으로 얼굴에 닿는 볕이 아깝지만 붙잡을 도리가 없다. 볕 날 때 그 볕에 들어 볕의 온기를 가슴에 품어두는 수밖에.

향기 또한 다르지 않다. 가을볕의 질감으로 안겨드는 향기를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가을볕 만큼이나 짧은 향기가 아까워 한 줌 덜어다 그릇에 옮겨두었다.

하늘의 볕을 고스란히 품었으니 볕의 질감을 그대로 닮았다. 색감에서 뚝뚝 떨어지듯 뭉텅이로 덤벼지는 향기에 그만 넋을 잃어 가을날의 한때를 이렇게 품는다. 다소 넘치는 듯하나 치이지 않을만큼이니 충분히 누려도 좋을 가을의 선물이다.

아는 이는 반가움에 가슴이 먼저 부풀고, 처음 본 이는 눈이 먼저 부풀어 이내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 이 향기다. 하늘색 종이 봉투에 한 줌 담아서 그리운 이의 가슴에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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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조팝나무
처음 간 곳에서 차를 세우고 길 아래로 내려간다. 첫눈맟춤 하는 제비동자꽃과 애기앉은부채와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길로 오르는 눈길과 딱 마추쳤다.
 
옳지 너지? 역시 사진으로 익혀두고 언제보나 싶었던 꼬리조팝나무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준다. 분홍색의 꽃봉우리가 바람이 흔들리며 나 여기있다고 신호를 보낸다. 번지는 미소로 인사를 건네고 코밑까지 가서 찐한 눈맞춤을 한다.
 
무슨 동물의 꼬리를 닮아서일까? 다른 조팝나무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다른 꽃모양과 꽃 색깔이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에 분포한다지만 남쪽에서는 보지 못했다.
 
바쁜 일정에 뒤돌아오면서도 자꾸 멈칫거리는 이유는 첫눈맞춤한 꽃들과 작별이 쉽지 않아서 일 것이다. 여긴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발걸음을 붙잡는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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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씨앗은 씨방에
넣어 보관하고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있는 바람은
잔디 위에 내려놓고

밤에 볼 꿈은
새벽 2시쯤에 놓아두고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기는 일이다

가을은 가을텃밭에
묻어 놓고

구름은 말려서
하늘 높이 올려놓고

몇송이 코스모스를
길가에 계속 피게 해놓고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다가오는 겨울이
섭섭하지 않도록

하루 한 걸음씩 하루 한 걸음씩
마중가는 일이다

*오규원 시인의 시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이다. 나의 오늘이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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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三十二花帖 제삼십이화첩
 
초목의 꽃, 공작새의 깃, 저녁 하늘의 노을, 아름다운 여인
 
이 네가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인데, 그 중에서도 꽃이 색깔로는 제일 다양하다. 미인을 그리는 경우 입술은 붉게, 눈동자는 검게, 두 볼은 발그레하게 그리고나면 그만이고, 저녁 노을을 그릴 때는 붉지도 푸르지도 않게 어둑어둑한 색을 엷게 칠하면 그만이며, 공작새의 깃을 그리는 것도 빛나는 금빛에다 초록색을 군데군데 찍어 놓으면 그뿐이다.
 
꽃을 그릴 적에는 몇가지 색을 써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김군金君이 그린 서른 두 폭의 꽃 그림은 초목의 꽃을 다 헤아린다면 천이나 백 가운데 한 둘 정도에 불과하지만 오색五色도 다 쓰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공작새의 깃ᆞ저녁노을ᆞ아름다운 여인의 빛깔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아하! 한 채 훌륭한 정자를 지어 미인을 들여앉히고 병에는 공작새 깃을 꽂고 정원에는 화초를 심어두고서, 난간에 기대어 저무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꼬? 하나 미인은 쉬이 늙고 노을은 쉽게 사그라지니, 나는 김군에게서 이 화첩花帖을 빌려 근심을 잊으련다.
 
*조선 후기를 살았던 유득공(柳得恭,1748~1807)의 글이다. 북학파 계열의 실학자로, 정조가 발탁한 네 명의 규장각 초대 검서관 중의 한 사람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김군金君은 박제가의 '꽃에 미친 김군'에 나오는 김군과 동일인인 김덕형으로 본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물매화가 피었다. 봄을 대표하는 매화에 견주어 가을을 대표한 꽃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귀한 모습이다. 더욱 봄의 매화는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이 물매화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 꽃을 만나면서부터 매년 때를 기다려 눈맞춤하고자 애를 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전하는 꽃의 표정에 넋을 잃고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급기야는 뜰에 들여놓고 말았다.
 
외출하기 전 눈맞춤은 당연하고 돌아와 곁을 떠났던 짧은 시간 동안 변한 모습까지 놓치고 싶지않은 마음이다. 나이들어 무엇을 대하며 이런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 꽃은 늘 깨어 있는 마음을 불어온다. 애써 찾아 꽃을 보는 이유 중 하나다.
 
꽃을 그린 김군이나 그 그림을 보고 심회를 글로 옮긴 유득공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오늘도 저물어가는 시간 이 꽃을 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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