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고 바람 적당한 날
무엇하나 서두를 것 없다는 듯
숲은 고요하다
 
고로쇠나무에 앉은 늦가을이
바람의 유혹에 헛눈 팔다
저와는 상관도 없는
어설픈 함정에 빠졌다
 
머뭇머뭇 딴짓하다
붙잡힌 것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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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里靑天 雲起雨來 만리청천 운기우래
空山無人 水流花開 공산무인 수류화개
靜坐處 茶半香初 정좌처 다반향초
妙用時 水流花開 묘용시 수류화개
 
덧없는 푸른 하늘엔 구름 일고 비가 오는데
텅 빈 산엔 사람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고요히 앉아 차를 반쯤 마셔도 그 향은 처음과 같고
묘용시에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중국 북송시대 황정견(1045~1105)의 시다. 수많은 시간동안 많은 이들이 시를 차용하며 그 의미를 나누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공산무인 수류화개"나 "다반향초"가 있는 듯하다.
 
어떤 이는 시종일관에 주목하고 다른이는 물아일체에 주목한다. 다 자신의 의지나 지향점에 비추어 해석한 결과이니 스스로 얻은 이치를 살피면 그만일 것이다.
 
하늘을 날아서 짠물을 건넜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 요동치는 바람과 부서지는 파도 앞에서 무심히 바라본 꽃에 몰입한다. 바깥 세상의 혼란스러움과는 상관없다는듯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는 꽃이나 그꽃을 바라보는 이나 다르지 않다.
 
고요히 앉아 차를 마시는 것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몸과 마음에 움직임이 없으니 우러난 차향과 같다. 비로소 움직이면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물아일여物我一如,
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꽃은 그냥 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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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화'
계절의 변화를 아는 지표로 삼는 것들 중에서 꽃만큼 확실한 것이 또 있을까. 생의 주기가 짧아 사계절 중에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초본식물로 계절의 변화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아도 크게 틀리지는 않아 보인다.
 
흰색으로 피거나 붉은색으로 피는 꽃에 노랑 꽃술이 유난히 돋보인다. 색은 달리 피어도 이름은 같이 부른다. 서로를 빛나게 하는 꽃잎과 꽃술의 어울림이 좋다. 모든 힘을 꽃에 쏟아부어서 그럴까 열매를 맺지 못하고 뿌리로 번식한다.
 
가을을 밝히는 꽃이라는 의미로 추명국(북한명)으로도 불리지만 서리를 기다리는 꽃이라는 뜻의 대상화가 정식 명칭이다. 봄맞이가 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름을 가졌듯 가을의 의미를 이름에 고스란히 담았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대상화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이 10여 종에 이른다.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가을 서리에 맥 못추는 것들로 대표적인 것 역시 초본식물들이다. 이름에 가을의 의미를 품었지만 순리를 거스리지는 못한다는 듯 '시들어 가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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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든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경림 시인의 시 "길"이다. 나의 길을 돌아본다. 나는 내 길을 걷고 있나.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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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일 秋日
竹分翠影侵書榻 죽분취영침서탑
菊送淸香滿客意 국송청향만객의
落葉亦能生氣勢 낙엽역능생기세
一庭風雨自飛飛 일정풍우자비비

대 그림자 파랗게 책걸상에 앉고
국화는 맑은 향기를 보내 나그네 마음을 가득 채우네
뜰 앞에 지는 잎 뭐가 좋은지
쓸쓸한 비바람에 펄렁대누나

*조선사람 매헌 권우(1363∼1419)의 시다. 조선전기 원주목사, 예문관제학, 세자빈객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이다.

된서리 내렸다지만
국화의 기상을 꺾지는 못한다.
어떤 이는 술잔 나눌 이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누이를 생각하며
다른 이는 은일에 벗하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가을을 떠올린다.

난 술도 못하고
생각할 누이도 없고
더군다나 은일은 꿈도 꾸지 못하기에
그저 바라만 볼 뿐ᆢ.

각시覺時 -불현듯, 알아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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