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에 쌓여 키워온 마음이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켠다. 안으로만 안으로만 쌓아둔 속내가 더이상 어쩌지 못하고 비집고 나온 것이리라. 연노랑 꽃잎을 마저 열지도 못하면서 고개까지 떨구었지만 의연함을 잃지는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숨죽여 내리는 비라도 쌓이면 망울지게 마련이듯 감춘다고 해도 감춰지지 않은 것들이 부지기수다.

들키면 안될 무엇이 있는 것일까.

소리도 없는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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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구슬붕이

딱히 대상을 정해두고 길을 나선 것은 아니다. 숲에 들었을 때에 볼 수 있으면 좋다. 그것이 풀이건 나무건 특별히 구분하지도 않는다. 들어가고 싶었던 숲에 들어 걸음을 멈추고 숲의 공기와 소리, 색과 빛 그리고 냄새까지 내 눈과 귀와 몸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보이는 것들에 주목하면 되는 것이다.

볕이 잘드는 땅 가까이에서 하늘을 향해 속내를 마음껏 풀어냈다. 과하지 않은 보라색의 꽃잎에 햇볕을 품에 제 본연의 색을 발한다. 여리디여린 꽃대에 어찌 저렇게 큰 꽃잎을 달고 있을까. 땅에 바짝 붙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슬처럼 자줏빛 꽃이 뭉쳐 피어 구슬이 송송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일까. 구슬붕이에 비해 크다고 해서 큰구슬붕이라고 한다. 비슷한 모양으로 꽃을 피우는 것으로 구슬붕이, 봄구슬붕이 등이 있는데 구분이 쉽지 않다.

숲으로 깊숙하게 내려않은 햇볕이 봄 숲에 기쁜 소식을 던해주듯 큰구슬붕이는 보는이에게 꽃말 처럼 봄의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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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샛길로 들어가고,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낮추고, 잠깐의 평화로운 순간을 위해 일찍 길을 나서며, 스치는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차를 멈추고, 지나온 길을 기꺼이 거슬러 올라가고, 신발을 벗고 냇가를 건너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길을 나서는 것, 무엇이든 시선이 머무는 순간 걸음을 멈춘다.

쉽지는 않지만 못할 것도 없는 것들이다. 세상을 조금 낯설게 보고자했던 이런 시도가 몸과 마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오늘도 그 멈추지 않을 길 위에 서 있다.

어제 같은 오늘이면 좋고, 오늘 같은 내일이길 소망한다. 이기심의 극치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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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붓꽃'

꼭 집어 대상을 선정하고 때맞춰 일부러 찾아간다. 그곳에 가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노루귀, 변산바람꽃, 깽깽이풀, 노각나무, 함박꽃나무 등 그렇게 찾아가는 몇가지 식물 중 하나다.

딱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비슷한 금붓꽃과는 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전해준다. 곱고 더 순해서 한결 친근함을 불러오는 꽃이 이 노랑붓꽃이다.

노랑붓꽃은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남부지방에 자생지가 있으나, 자생지 및 개체수가 극히 드물어 보기 쉽지 않은 꽃이다. 비슷힌 금붓꽃과 차이는 잎이 보다 크고 넓고, 한 꽃대에 꽃이 1~2개씩 달리는 것이 다르다.

작은 차이지만 느낌은 사뭇 달리 다가온다. 글로 설명하기 전에 느낌이 다른 것으로 식물의 종류를 구분하는 묘한 재미를 노랑붓꽃으로 다시 한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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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꽃

부질없는 세상 못내 가련하여라

庭際有櫻桃花盛開 정제유앵도화성개

未三日還落有感 미삼일환락유감

花事無三日 화사무삼일

人生少白年 인생소백년

盛衰同一理 성쇠동일리

浮世更堪憐 부세경감련

정원에 활짝 핀 앵두꽃이

사흘 만에 졌기에 감회가 있어

꽃 소식은 사흘도 가지 못하고

인생사는 백 년도 되지 못하는구나

성쇠의 이치는 다 같은 법

부질없는 세상 못내 가련하여라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열 번째로 등장하는 이수광(1563~1628)의 시 '庭際有櫻桃花盛開 未三日還落有感'이다.

특별히 내세울 것 없어서일까. 무수히 많은 꽃을 피우고 꽃 만큼 열매도 많이 열린다. 익어 떨어질 때까지 미쳐 다 따먹지 못할 정도다. 이수광은 이런 앵두나무에서 주목한 것이 짧은 개화 기간으로 꽃이 지는 감회를 읊었다.

우선, 앵두하면 "앵두나무 우물가에~"로 시작하는 노래를 떠올린다. 지금이야 우물도 없으니 우물가를 서성이는 동네 처녀도 찾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앵두나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에 앵두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세종과 문종 사이에 앵두와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효성이 지극한 문종이 앵두를 좋아한 세종을 위해 앵두나무를 심어 앵두가 익으면 따다 바쳤다. 그후 궁궐에 앵두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것이다.

지금 사는 곳에 터전을 마련하고 처음으로 심었던 나무들 중 하나가 앵두나무다. 다른 나무에 비해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두어해 눈과 입을 즐겁게 하더니 그 다음해에 죽어버렸다. 지금은 새로 심은 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

앵두나무를 심은 이유는 앵두 익을 무렵 누군가 찾아오면 나눠 먹어도 좋을 것인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맞춰 찾는 이가 있다면 앵두나무로 이끌어 붉디붉은 앵두를 한 움큼 따서 입안에 넣고 새콤달콤한 맛을 즐기곤 한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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