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더부살이

때가 아니었다고 여긴다. 꽃소식을 접하고도 만날 생각을 못하거나 안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서식지를 알 수 없거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그것이지만 무엇보다 관심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닌가 한다.

이 꽃도 마찬가지였다. 일찍부터 소식을 접하였지만 마음을 내지 못하였다. 그러다 문득 올해는 멀지 않은 길을 나섰다. 이제서야 만날 때가 되어서일 것이라 여긴다.

백양사 인근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백양더부살이다. "백양더부살이는 쑥 뿌리에 기생하며 볕이 잘 들고 건조한 곳에서만 사는 까다로운 생태를 지녀 전라남도 및 제주도 몇몇 곳에만 분포하는 한국 고유종이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잡풀 사이에서 키을 키운 꽃이 우뚝 솟아 있다. 대부분은 무리를 지어 있지만 간혹 한 두 개체만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제법 튼실한 꽃대에 많은 꽃을 달고 있다.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던 것일까. 화려한 색으로 스스로를 꾸몄다. 한계가 있기에 더 강럴한 의지의 표출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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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맞춤이다.
숲에 들면 한없이 느려지는 걸음에 익숙하다. 좌우를 살피고 위아래도 봐야하며 지나온 길을 돌아도 봐야 한다. 걸음을 옮기고 높이를 달리하고 속도가 변하면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바라보는 방향과 각도다. 일부러 그렇게 봐야할 이유를 밝히기 전에 당연시되는 행동이다.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어느 때는 걸음을 멈추고 몸과 마음이 그 숲에 동화되도록 고요히 머물러 숨쉬는 것도 조심스럽게 행동할 때도 있다. 그런 후에 느끼는 숲은 또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숲에 들어 생명을 만나기 시작한 후로 달라진 태도다.

문득 눈을 들면 몇 걸음 앞서 보란듯 꽃을 피우고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건네는 꽃과 눈맞춤 한다. 느린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바라본다. 적절한 때그곳에서 멈춘 나와 꽃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꽃이 핀다고 그 꽃이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는 안다. 관련된 모든 인연의 정성을 다한 수고로움으로 꽃이 피듯 사람의 만남도 그러하다. 사람과의 만남, 그 만남으로 인해 형성되는 공감, 이 모두는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져 꽃으로 피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염화시중의 미소가 따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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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죽나무
개울가 꽃그늘 위로 하얀꽃이 땅을 향해 무수히 달렸다. 흐드러진 그 꽃 아래 서면 꽃그늘과 은은하게 번지는 향기에 취해 한동안 떠날줄을 모르게 된다. 꽃 수만큼 열리는 열매 또한 꽃만큼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과한듯 싶지만 발길을 붙잡는 강한 매력으로 향기와 꽃 모두를 갖춘 나무다.

나무 수피 또한 매번 만져보는 나무다. 검고 매끄럽지도 않지만 사계절 내내 차가운 기운을 전해주는 것을 느껴본다. 이렇게 손으로 만져보며 나무의 기운을 느켜보는 것도 나무를 보는 색다른 맛이 분명하다.

때죽나무라는 이름은 껍질을 짓찧어 물에 풀어 물고기를 떼로 기절시켜 잡았다거나 중이 떼로 무리지어가는 모습과 닮았다고하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초등학생 정도의 여학생들의 무리가 목소리 한껏 높혀 재잘거리며 하교하는 모습처럼 정겨운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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難得糊塗 난득호도

청나라의 서예가 정판교는 총명하기는 어렵고 어수룩하게 보이기도 어렵지만(聰明難 糊塗難), 총명함을 잃지 않은 채 어리석게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고 하였다.

산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하늘의 구름처럼 가볍다. 그 한가로운 모습이 좋아서 찾아보지만 정작 속내는 따로 있다. 세상살이 온갖 욕심의 굴곡을 내달리며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경계코자 함이다. 그 방편으로 삼을만한 문장이라 여겨 옮겼다.

유월 건듯 부는 바람에 띠풀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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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청명 시절 혼을 끊는 고향의 꽃

臨水杏花 임수행화

​瓠犀齒白捲脣紅 호서치백권순홍

草麝淸香散曉風 초사청향산효풍

似怕嬌顔容易老 사파교안용이로

淡施脂粉照靑銅 담시지분조청동

물가의 살구꽃

박씨 같은 흰 이에 붉은 입술 말아 올리고

그윽한 맑은 향기 새벽바람에 흩어지네.

아리따운 얼굴 쉬이 늙을까 두려운 듯

연지와 분 옅게 바르고 거울에 비추어 보네.

-성현, "속동문선" 권9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열한 번째로 등장하는 성현(成俔,1439∼1504)의 시 "臨水杏花 임수행화"다.

봄의 화사함을 말하기에 빼놓을 수 없는 꽃이다. 매화가 지고 벗꽃이 피기 전에 살구꽃이 핀다. 살구꽃은 꽃받침이 홍자색으로 꽃이 피면서 뒤로 졎혀진다는 특징이 있다. 홍자색의 이 꽃받침이 살구꽃의 화사하게 보이도록 한다.

살구꽃의 이미지는 다양하지만 우선 고향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시절 살구를 먹었던 기억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려말 조선 초의 시인 정이오읮 "천금으로도 오히려 좋은 계절을 살 수 없는데, 뉘 집에 술이 익어 가길래 꽃이 저리도 피는가. 千金尙未買佳節 酒熟誰家花正開라는 구절에서 술 익는 마을에 핀 꽃도 응당 살구꽃일 것이다"며 살구꽃을 술익는 마을과 연결하고 있다.

어린시절을 보리타작 할 무렵 살구나무가 있는 집 골목에서 주운 살구를 먹었던 기억이 있지만 꽃에 대한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시골동네로 이사를 온 이듬해 봄 동네 뒷길 어느집에 나이 먹은 살구나무가 있었다. 꽃 필 때부터 열매 익어 떨어질 때까지 일부러 그길을 출퇴근 길로 삼았다. 꽃도 보고 열매도 맛보는 재미를 누렸는데 올 봄에 그 나무는 잘려나갔다.

더이상 이 마을에서는 살구꽃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올 봄 내 뜰 대문 옆에 한그루 심었다. 이제 꽃 피고 열매 열릴 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아무리 찾아도 살구꽃 사진이 없어 꽃친구 평상 선생님의 사진을 빌려왔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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