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기초 명상 수행 - 꿈명상 역경, 전환의 명상, 원초적 지혜의 명상
갸툴 림포체 지음, 도솔 옮김 / 청년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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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다스리는 또 다른 방법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한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 내 마음먹기에 따라서 세상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달라 다가오는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말에 현혹되어 ‘마음 다스리기’라는 욕심을 부려본다. 욕심을 부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말을 나의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될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지만 그 안에서도 찾아보는 것은 결국 실천의 문제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내 스스로 실천하고 답을 얻지 못한다면 늘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천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수많은 수행법에서 종교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명상이나 참선 수행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만만한 과정이 아니며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실천하기 어려움 점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 ‘티베트 기초 명상’ 역시 담고 있는 내용 자체를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대승불교가 주류를 이루는 우리의 종교 환경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티베트 밀교에서 전해지는 수행법이라는 점이 흥미를 끌기는 하지만 왠지 모른 낯선 느낌이다.

‘티베트 기초 명상’은 오로지 삼보(불, 법, 승)에 의지해서 수행에 전념한다면 부처님이 속세의 고난을 헤치고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어떤 역경도 쉽게 헤쳐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식사의 요가, 죽음의 요가, 살생의 요가 등 다소 낯선 수행법을 제시하며 영적 훈련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우선은 흥미롭다. 

이 책의 중심은 ‘꿈 요가’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꿈은 잠자는 무의식 상태에서 꾸게 되는 것이지만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자각할 수 있다면 현실과 꿈에 대한 진정한 실체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까? 밀교의 신비스러운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통을 웃는 낯으로 맞이하는 사람은 없으며 되레 고통이 웃는 낯으로 사람에게 다가올 뿐. 그래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는 하지만 고통의 원인을 알고, 고통을 중단시키길 원한다면, 수행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 흥미를 넘어선 무엇이 있다. 분명 자신만의 수행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나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나를 둘러싼 외부환경에서 오는 다양한 자극에도 굴하지 않고 평삼심을 유지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뜻을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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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의 장수비결
정지천 지음 / 토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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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장수비결은 없을지도 모른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꿈이다. 그 중 인류의 역사는 생명을 연장하려는 꿈을 실현해오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의 방식이 변하고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류는 그 꿈을 실현해왔다. 특히 의학의 발달은 이제 100년을 넘어 그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제 인류는 오랫동안에 멈추지 않고 건강하고 오랫동안으로 생명에 대한 꿈을 확장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고 싶은 인류의 소망은 다만 생물학적 의미의 생명 연장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건강하게’라는 말 속에 이미 늘어난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실현해 가려는 ‘삶의 질’의 문제와 직결되어 온 것이다. 

현대인의 생활과 비교도 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온 앞선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통해 그러한 꿈을 실현했을까? 지난 시간 역사 속에서 그러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일상을 살펴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했는지 알아보는 것이 이 책의 발간 목적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 정지천은 한의학을 공부하고 오랫동안 인간의 건강한 삶에 대해 연구한 사람이다. 그는 조선시대 왕들을 비롯한 명문가들이 가문을 유지하고 계승해온 그들의 고유한 생활 습관과 전통, 역사적 배경 등을 살펴 한의학적인 근거를 밝히고 있다. 그러한 연구결과를 모아놓은 책이 ‘명문가의 장수비결’이다. 저자가 관심가지고 살핀 조선시대 명문가로는 이익, 정약용, 이정구, 조헌, 김정희, 이항복, 박지원, 서유구, 윤선도, 이황, 정온, 송시열, 송준길, 허목, 허엽 등 조선시대를 당당하게 살았던 열다섯 명과 그들의 집안이다. 또한 장수를 누렸던 중국과 조선의 왕들에 대해서도 살핀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던 이들의 삶은 그리 평탄한 것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열중하고 자신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 출세에 대한 압박, 당쟁을 비롯한 어지러운 정치 환경에서 권력과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 등 당시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겪었을 정신적, 물질적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 압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았던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저자가 이 연구를 출발한 근거가 아니었을까?

장수한다는 것은 어쩜 곧바로 먹는 음식과 직결하여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먹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살펴본 그들의 일상에는 특별한 그 무엇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그들의 일상을 살펴 찾아낸 비결로 우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적으로 강한 몸이라 본다. 건강한 부모 밑에 건강한 자식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엄격한 가풍 속에서 공부를 통해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검약한 생활 습관, 넉넉한 마음 씀씀이, 강인한 정신력, 의학적 지식 등을 바탕으로 자신의 몸 상태를 늘 살펴 과하지 않은 음식 습관이 그 비결의 기본이라는 점은 특별한 장수비결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것으로는 놀라울 만큼 평범하다. 특이할 점은 이들 명문가들의 가풍으로 이어져 온 음식습관에는 그들 집안의 선천적인 체질에 맞는 콩, 양탕, 녹차, 고구마, 고사리, 구기자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적절한 음식 습관이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어쩜 바로 이 점을 밝히고 싶은 것이 저자의 관심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건강하고 오랫동안 살고 싶은 인간의 소망을 시현하는 것에는 특별한 비책이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자연과 더불어 살며 넉넉한 마음 씀씀이에 넘치지 않은 생활이면 그 소망은 현실로 다가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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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 천 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
오윤희 지음 / 불광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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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을 고스란히 담아낸 대장경
모든 것이 시간 앞에 장사 없다. 한 번 만들어진 것은 없어지기 마련이다. 유사 이래 인류가 이룩한 거대한 문화유산 역시 대부분 사라지고 남은 것은 극히 일부분일 것이다. 이 또한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점 사라져 갈 것이다. 그렇기에 무엇인가를 기념한다는 것은 사竄낡킬� 잊혀져가는 그 무엇을 현 시점에서 그것이 가지는 현재적 가치와 의의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리라. 100년도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1000년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 의해 가치를 발현하기에 지나간 1000년의 시간도 오늘, 지금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하여 역사를 보는 것도 오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다. 

1000년 전 누군가에 의해 시작된 조그마한 출발이 1000년 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다음 1000년 후를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고려대장경이 올해로 조성 된지 1011년부터 2011년 까지 꼭 1000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상상도 못하는 그 긴 시간동안 숱한 사람들의 손과 마음에 의해 존재해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의미일 것이다.

대장경, 고려대장경(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이제는 세계문화유산이다. 한국 그리고 아시아를 넘어 인류가 이룩한 귀중한 세계의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이 ‘대장경, 천 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은 바로 그 대장경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대장경이 불교의 가르침을 담아놓은 그릇이라고 하면서 그 가르침이 대장경으로 담겨오는 과정, 그리고 공간과 시간을 넘어가는 동안 늘어난 그 가르침에 대한 말을 기록, 고려대장경으로 불리는 재조대장경이 가지는 가치의 의의, 그 의의를 표현한 교정의 이야기 등이다. 송나라의 개보대장경, 거란의 거란본대장경(단본), 고려의 초초대장경과 재조대장경에 이어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 등 이 모두가 같은 부류의 그릇에 속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 대장경에 대해 한 나라 특정한 사람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되어 부처가 가르침을 설하고 사후 결집을 통해 가르침을 담아내고 그것이 중국을 거쳐 고려에 그리고 일본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는 동안 함께했던 사람들과 나라의 모든 것을 담아왔기에 당시 아시아의 공동된 유산으로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게 해야만 대장경이 가지는 올바른 의의를 되살릴 수 있으며 지나온 1000년과 다가올 1000년을 이어가는 올바름이라고 본다. 그러한 결과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그릇에 담은 대장경의 또다른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그동안 고려대장경연구소를 비롯한 저자가 이 대장경에 헌신한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가 대장경을 보는 시각은 독특하다. 대장경에 담긴 다양한 분야의 기록물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있지만 무엇보다 저자는 지나온 1000년의 시간과 다가올 1000년의 시간의 한 가운데 서서,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관조하는 모습으로 대장경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시각은 대장경이라는 그릇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부처로부터 시작된 말이 다양한 그릇에 담겨 시간과 공간을 건너와 우리가 사는 시대에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그릇에 담기는 그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공력을 빠뜨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사십이장경’이 서기 67년 중국에 들어오고 그 후 고려에서 대장경이 만들어진 것이 꼬박 1천년 후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 그 대장경이 만들어진 지 또 꼬박 1천 년이 흘렀다고 한다. 2011년 음력 3월 10일 해인사에서 벌어질 ‘팔만대장경 정대불사’를 기다리는 마음은 불자를 넘어선 관심이 주목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종교를 넘어 인류문화유산이라는 가치를 지닌 고려대장경을 소장한 우리로써 그간의 과정이 자부심만을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한 점이 한 둘이 아닌 것 같다. 태워버려도 아깝지 않은 무엇으로 바라봤던 조선시대의 시각이나 분명 소장하고 있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우리의 과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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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정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예술의 정신
로버트 헨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즐거운상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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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한 동경을 현실로 만들어준 안내서
예술과 예술인에 대한 환상이 있다. 평범한 사람으로 그들이 펼쳐내는 세계에 대한 강한 동경이 그 배경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미술관이든 갤러리든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곳을 서성이게 만든다. 서성인다는 말은 그림과 자신의 거리를 좁혀 가는데 주저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어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럼 무엇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장애요소로는 예술과 자신을 확연하게 구분 짓고 예술가들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사람들의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학교 미술교육에 의해 형성된 것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요소로는 예술가와 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형성해온 자신들의 영역에 대한 울타리가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무엇이 있는 존재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차별화 하고자 했던 일련의 행동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이 진정 빛을 발하는 것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얻는 평가가 아닐 것이다. 작품과 일반 대중이 소통하여 공감을 이뤄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예술의 의미가 아닐까?

이러한 소통에 장애요소는 더 있다. 기회만 있으면 화가들의 개인전이나 단체전이 열리는 갤러리를 자주 방문한다. 아는 화가의 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다양한 화가들의 그림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공감할 수 있는 무엇이라고 찾아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렇게 방문한 갤러리에서 빼놓지 않고 챙겨보는 것이 그림을 담아 놓은 도록이다. 갤러리를 나오고 나서 나중에 그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때문에 꼭 챙긴다. 하지만 그 도록에는 알 수 없는 언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면 당황스러운 마음이 든다. 바로 미술평론가들이 쓴 그 화가와 작품에 대한 평이 그것이다. 화가와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작가와 관객 사이의 소통을 매개하는 글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간격을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임을 밝혀둔다.

예술이 예술가로 칭해지는 일부의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특수한 경험이라고 한다면 인류가 이룩한 문화는 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주체는 그 시대를 있게 했던 대부분의 대중들이었다. 그들과 유리되어진 문화는 살아남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으로 표현되는 예술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 책 ‘예술의 정신’은 그래서 특별한 가치를 가진다고 보여 진다. 대중과 작가의 간격을 좁혀주는 다양한 서적들이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바로 ‘그림 읽어주는 책’들이 그 범주에 든다. 이러한 책들의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작품과 ei중 사이에는 근접하지 못하는 한계를 있다. 바로 이 점을 이 책을 말해주고 있다. 단편적으로 한 작품에 대한 해설이 아닌 예술 전반 특히 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책이라는 점이다.

‘미술학도들’에게 라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분명한 책이지만 그것에 한정된 것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 전반에 대한 저자의 가치관을 살펴볼 수 있다. 그 가치관이 예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대 미술이 일반 관객과 격리되는 듯 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저자의 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역으로 그러한 기본적인 사항을 알고 작품을 대할 때 느낄 수 있는 그림에 대한 이해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감동을 전해줄 것이라는 점에서 일반인에게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라고 보인다.

이 책에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젊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그림 비평에 관한 편지’, ‘무엇을 위한 예술인가?’ 등의 주제를 담고 있다. 특정한 예술사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또한 어떤 화가들의 그림을 전반적으로 해설하는 내용이 아니다. 로버트 헨리의 책 ‘예술의 정신’은 분명하게 미술학도들에게 미술교사로서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해야할 사항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주는 책이다. 학교라는 현장에서 학생들과 직접 대면하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발견한 점이나 기존 미술계의 관행처럼 행해지는 일련의 모습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바로, ‘예술은 무엇이고, 그림은 어떻게 그려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이다. 현대 미국 미술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저자의 위치에서 그 영향력을 생각할 때 대단한 저작이라 생각된다.

이미 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다양한 ‘그림 읽어주는 책’에 앞서 이 책을 먼저 접해야 그 책들이 온전히 자신의 가치를 더 발할 수 있게 하는 예술안내서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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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정월 보름이라고 합니다.
옛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던 그 달이
오늘은 구름에 싸여 좀처럼 그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내요.
구름과 구름 사이 조그마한 공간에서나마 잠깐 볼 수 있는 저 달을
오늘따라 더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보일 듯 말 듯 은근함이 있어
무엇인가 명확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마음의 반영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밤 저 달처럼
투명하지 않아 보일듯 말듯하기에 더 간절함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도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모든 것이 투명하다면 그래서 가슴 속에 감출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희노애락의 감정들도 없겠지요.
그렇게 세상이 투명하기만 하다면 좋은 세상일까요?

옛 사람들의 글을 접하다보면
투명하여 더 이상 사람들의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거나
더 이상 뭔가를 기대할 여지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오히려,
조금 부족한 듯, 보일 듯 말 듯하는 그런 은근함이
사람들이 감성을 자극하고 닫힌 마음으로 파고들어
사람과 세상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더군요.

지금 밤하늘의 달을 보는 마음처럼
그런 옛 사람들의 마음을 닮고 싶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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