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젊은 그들 - 18세기 북학파에서 21세기 복합파까지
하영선 지음 / 을유문화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는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불투명한 미래는 사람의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하여, 많은 정치가, 사회학자, 철학자를 비롯한 학문을 하는 전문가들과 학자들은 미래의 전망을 밝히기 위해 수많은 현실적 요소들을 분석하며 전망을 내놓는다. 그렇게 내놓은 전망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미래를 희망적으로 설계하는데 실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이 현실의 분석을 잘못했거나 내놓은 전망이 불투명할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하나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일도 이를 바탕으로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일은 그러한 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여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정치현실이든 학문의 일선에 서서 장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을 주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역사를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를 보고 그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평가하는 기준과 잣대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역사를 보는 이유라고 말한다. 이는 과거를 무시하고는 현재는 없으며 미래역시 현재의 연속선상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무엇을 봐야 할까? 

이런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모범적인 사례가 있다. 하영선의 ‘역사 속의 젊은 그들’이 바로 그런 예시를 제시하는 모범답안처럼 보인다. 이는 우리가 처한 현실의 문제를 18세기부터 시작하여 지금 오늘의 문제를 살피고 있다. 하영선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국제정치 속에서 한국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 파악하고 복잡한 현실 국제정치의 맥을 잡아내며 미래를 전망할 것인가이다. 하여, 하영선이 주목하는 사람은 18세기 박지원, 19세기 정약용, 20세기 조선말과 일제시기 박규수, 유길준, 김양수, 그리고 해방이후 안재홍, 그리고 현대에 이용희와 복합파에 이른다. 이 흐름 속에 일정한 맥이 있으며 그 맥이 바로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처한 현실과 미래를 전망하는 시각을 찾아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18세기는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담고 있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주목하며 또한 정약용의 저서 여유당전서 속에 나타나 있는 당시의 현실인식과 미래의 전망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 왜 그 결과가 실패로 끝났는지 살피고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제치하, 해방정국과 미군정을 지나 현대에 이르는 과정을 살핀다. 또한, 저자 하영선이 각각의 인물들과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으며 그들의 고민과 저자의 고민이 만나는 지점이 어디인가를 알려준다. 그가 주목하는 인물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며 이미 많은 연구가 된 박지원이나 정약용 같은 사람도 있지만 김양수나 이용희 같은 생소한 사람도 있어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흥미로움도 있다. 

저자 하영선의 전공은 정치학이다. 정치학은 자국의 이해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국가 간의 힘의 관계나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기에 이렇게 역사 속의 사람들을 찾아 그가 주목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다. 그것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열악한 한국의 현실 속에서 세계열강에 둘러싸인 젊은 그들은 어떻게 외교 강국의 길을 찾았는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정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실리를 추구하는 국가 간의 관계를 풀어가는 방법 또한 현실과 유리되어 찾을 수 없는 것이리라.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일본의 막강한 세력 사이에 위치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여 그들 속에 우뚝 설 수 있는 현실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 이 책의 요지라 여겨진다. 그가 주목하는 방안으로 ‘복합’이라는 용어가 있다. 무엇보다 현실정치가 이차원이나 삼차원이 아닌 다차원의 복합 성향을 가지기에 이를 대처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복합적으로 사고하고 그 속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이러한 방안이 현실화되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희망으로 밝혀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전방위적 지식인 정약용의 치학治學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세기 보다 21세기에 더 빛나는 다산 학문
한 사람은 주로 한 가지 분야에서 기억된다. 특히, 역사적 인물 중에는 그가 남긴 다양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사실이 주목되어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수 천 년 우리역사에서 한 가지 분야에 특출한 업적을 남기고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다수다. 한글 세종, 측우기의 장영실, 화약 최남선 등과같이 기억되는 것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한 가지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기도 어려운데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긴 사람이 있다. 피폐해진 민생을 살리고 정치적 쇄신을 위해 정조가 활동하던 조선후기 사람으로 18년이 넘는 시간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 같은 사람이다. 이 사람을 통해 역사는 천재가 있음을 알게 한다. 

정약용(1762년(영조 38)∼1836년(헌종 2)은 조선후기 문신이며 실학자다. 그가 (1801년(순조 1))가 일어나 천주교도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를 갔던 신유박해에 관련되어 그의 둘째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당한 것이다. 이 유배기간 동안 강진의 거처에서 학문을 닦고 재자들을 길렀으며 이를 통해 성장한 사람들과 다산학파를 이뤄 우리 역사에서 보기 드문 방대한 서적을 출간한다. 18년이 넘는 유배기간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그의 학문적 열정은 식지 않고 계속되어 당시 학자들 사이에 주목을 받았다. 주의 주요저서로는 매씨상서평, 상서고훈, 상례사전, 악서고존,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총 500여권을 헤아린다. 

하면, 정약용은 유배기간 동안 강진에서의 생활이 어떠했기에 여유당전서에 포함된 5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서적을 출간할 수 있었을까? 정민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은 바로 그 문제에 대해 주목한다. 정약용이 남긴 저서는 특정한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경전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며 실제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정민은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정약용의 학문하는 자세와 태도에 대해 주목한 것이다. 정민이 평하는 장약용은 한마디로 ‘통합적 인문학자’라 규정한다.  

통합적 인문학자란 정약용의 저서를 분류하고 분석하면 경전을 연구한 경학자, 예론을 분석한 예학자, 목민관의 행동지침을 정리한 행정가, 아동교육의 실천적 대안을 만든 교육자이며 지난 역사의 맥을 찾을 줄 아는 역사가, 배다리와 유형거를 만든 토목공학자, 지리학자, 의학자, 법학자, 국어학자이며 시인 그리고 문예비평가로 이 모든 것은 실질적으로 정약요이 남긴 서적에 의해 관련된 항목을 찾아서 붙인 이름이다. 이렇기에 통합적 인문학자라고 한다는 것이다. 

정민이 정약용의 수백 권에 이르는 방대한 서적을 살펴 그가 어떤 방법으로 그 많은 저술을 남길 수 있었는지 정약용의 공부법을 살펴 이 책에 수록했다고 한다. 정민 역시 정약용이 공부한 그 방법으로 체계를 세우고 초록을 하는 과정에서 현실에서도 매우 유용한 방법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해서 지식경영법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은 ‘다산치학 10강 50목 200결’이라는 일정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큰 줄기를 세우고 다섯 가지 방법론과 네 개의 소분류를 더해 정약용의 공부법의 핵심을 파악하고 그 방법을 공유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다. 정민은 이런 연구과정을 통해 다산의 삶과 학문이 가지는 핵심가치를 분류한다. 그것은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인 비민보세,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간난불최, 실용을 우선하는 실사구시,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오득천조, 지금 여기의 가치를 다른 것에 우선한다는 조선중화 이 다섯이 그것이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 다산의 편지글이다. 우선, 자식들에게 가족에게 닥친 어려움에도 굴하지 말고 스스로를 갈고 닦는 공부에 열중하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내용과 다산이 연구하는 분야의 결과를 둘째 형이나 벗 그리고 당파를 불문하고 당대 학자들에게 검증하고자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편지글을 통해 본 다산의 학문적 열의와 자신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굳은 믿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의 저자 정민은 이렇게 정약용의 공부법을 통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깨달음을 전해준다. 공부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등이다. 18세기를 살았던 사람의 삶이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충분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속에 진정한 공부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늦게 와서 미안해, 라오스
정의한 지음 / 책만드는집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지 여행 다닐 뿐인 시각에 갇힌 라오스
무엇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그러기에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는 다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든다. 현대인들이 걷기, 쉼, 산행 등 이름은 각기 다르지만 자신의 주 활동 공간을 벗어나 자연이 주는 혜택을 만끽하거나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과의 대화를 갖는 기회를 만들곤 한다. 다른 이름으로 여행이 그것일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여행이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자기 거주지를 떠나 객지에 나다니는 일, 다른 고장이나 다른 나라에 가는 일 등을 말한다. 비슷한 의미의 말로 관광이 있는데 이는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광, 풍속, 사적 등을 유람하는 일이고 한다. 딱히 구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 대상을 돌아보는 동안 무엇에 중심을 두느냐가 아닐까 싶다. 즉, 여행하는 동안 나를 제외한 대상에 주목하는 것이 관광이라면 대상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주목하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몇 해 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시간을 흘려보낼 권리’라는 주제를 여행이라는 테마를 통해 알려주는 책을 통해 여행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 일이 있다. 최갑수의 ‘목요일 루앙 프라방’(예담 2009)은 바로 여행을 통해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리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 아닌가 싶었다. 최갑수는 라오스의 한 도시인 루앙 프라방에 머물며 스스로에게 쉼의 시간을 주었다. 그 쉬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돌아 본 심정을 글로 옮기고 엮어 책으로 발간 한 것이다. 

정의한의 이 책 ‘늦게 와서 미안해, 라오스’는 최갑수가 방문한 루앙 프라방이 있는 라오스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여행하며 보고 듣고 경험했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두 책의 저자가 보여준 여행 일정은 같지 않지만 같은 곳 라오스의 루앙 프라방을 방문했다는 점에선 유사점이 있다. 하지만, 정의한이 보여주는 루앙 프라방과 최갑수의 루앙 프라방은 달라 보인다. 같은 사람이 같은 곳을 다시가도 똑 같은 감정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서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방문한 느낌을 봐도 여전히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어쩔 수 없다. 

최갑수에게 루앙 프라방은 스스로에게 ‘쉼, 머뭄’의 혜택을 주고자 했다면, 정의한에게 라오스는 대상과 자신의 교감 속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길이 아니라 대상을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으로 느껴진다. 하여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방문하지만 다른 곳을 방문한 것처럼 달리 보이는 이유가 이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정의한의 시각을 통해 바라보는 라오스는 독자인 나에게도 대상으로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여행일정의 거점 도시를 방문하고 처음으로 하는 일이 하루 이틀 머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여행자에게 머물 공간이 주는 마음의 안정감의 가치를 희석할 마음은 없지만 유독 머물 공간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의한의 라오스 여행기는 독자인 나에게는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이 여행기에는 라오스의 낫선 풍경이 주는 자연환경의 매력이 뛰어나게 묘사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라오스 사람들의 삶의 향기를 전해주는 것도 인색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 정의한은 무덤덤한 눈으로 그저 흘러가는 대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전부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강하기에 백번 양보해서 여행자의 마음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스스로를 위안해 보기도 한다. 

‘넌 지금 단지 여행을 다니고 있을 뿐이다. 그뿐이다.’라고 수없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저자가 붙인 이 책 제목이 ‘늦게 와서 미안해, 라오스’다. 늦게 와서 미안할 정도로 라오스가 매력적인 나라인지 이 여행기를 통해서 저자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기는 한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 거려진다. 이 책을 삐딱하게 읽은 나만의 느낌이길 바랄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지식인의 죽음 - 김질락 옥중수기
김질락 지음 / 행림서원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신념이 무너졌을 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물음의 근저엔 사람마다 다른 그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나 사회적 환경,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다름이 아니라 한 사람을 오롯이 그 사람이게 만드는 그 무엇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역사의 변화무쌍한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믿고 지향하던 삶을 목숨과 바꿔서라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우리는 그들의 삶 속에서 그토록 믿고 싶었던 사람의 신뢰를 보고자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지만 스스로를 배신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역사는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며 다만, 옳지 못한 사례의 교훈으로 삼는 것이리라. 

한국전쟁 후 우리나라 1960년대는 극히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그 혼란은 국민들의 실생활이 피폐하여 살기 힘든 것만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두고 치열한 사상적 투쟁을 벌려나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좌우 이념대립이 극에 달하여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일도,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을 통일에 대한 염원에 대해서도 안개 속에 빠져들던 그런 때였다. 그런 시대 민족의 앞날을 열어갈 희망으로 지하투쟁을 벌였던 세력들 중에 ‘통일혁명당’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은 세간의 관심을 받다가 이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통일혁명당’은 미제국주의 식민지 통치의 철폐와 자주적 민주정부의 수립, 파쇼독재체제의 소탕과 사회정치 생활에서 민주주의의 실현, 농어촌 세기적 낙후성과 빈곤의 일소 등 12개조의 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을 결성한다. 북과의 관계를 북한의 중앙당과는 형제당이라 설정하고 남한혁명은 남한 인민 자신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자주노선을 택했다. 주요활동으로는 ‘청맥’지를 발간하고 학사주점을 중심으로 동조세력을 모으고 하부조직을 구성하였다. 통일혁명당 중앙 간부였던 김질락과 이문규는 1967년(5월 5일~5월 28일)에 목포를 거쳐 서해를 통해 월북하여 평양의 주암산 안거에서 약 20일간 머물면서 노동당에 입당하고 교양을 받았다. 주요 인물로는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이진영, 신영복 등이며 김종태와 이문규, 김질락 등은 사형이 집행되었다. 

지식인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떨어질 수 없다. 그것도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고 살아서는 지식인이라 마f할 수 없는 것이다. 한때 시대의 사명을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며 치열한 삶을 살았던 지식인이 그 길을 걸었던 자신의 삶을 부정한다는 것은 분명 지식인의 삶을 포기한다는 것이리라. 그 순간 그가 걸어왔던 길은 분명하게 후회가 따른다는 것은 자명하다. 무슨 말로 자신의 삶을 후회하던 그 후회 속에서 사람들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 책 ‘어느 지식인의 죽음’은 사형이 집행된 김질락의 옥중수기로 1991년 발행되었던 것을 재발간한 책이다. ‘비록 그때로부터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옥중에서 처절한 후회로 써내려간 저자의 절절한 고백록을 읽게 될 지금의 독자들도 시대를 잘못 읽어간 한 젊은 지식인의 삶과 죽음에 먹먹하고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재발간한 의도가 분명한 것이다. 변절한 지식인의 모습 속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 이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 10년 후 세계를 움직일 5가지 과학 코드
리처드 뮬러 지음, 장종훈 옮김 / 살림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잘못알고 있는 사실이 가져오는 불안과 공포
현대사회의 물질적 풍요로움은 과학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 혜택은 과학적 상식이 그리 많지 않은 일반인들로써는 상상을 초월한 결과를 가져오는 그것이 현실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이러한 물질문명의 혜택을 일상적으로 누리는 일반인으로써는 그 놀라운 일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또 그러한 과학적 원리들을 다 알고 있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나마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상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과학적 원리에 접근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과학적 원리를 다 알지 못해도 된다는 위안을 넘어 잘못알고 있는 사실이 주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일은 과학적 원리의 이해정도를 넘어 정치적인 이해요구와 결부되어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일이 사회적 반향을 불러오는 커다란 사건과 관계가 있거나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인 지구의 운명을 결정지을만한 일일 경우라면 어떨까? 알 필요 없는 것이며 전문적인 학자들의 손에만 맡겨야 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지구는 인류라는 생명체를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의 운명공동체라는 것이 이제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일반적인 생각이 되었다. 그렇기에 공동체 일원으로써 지구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일에 일정한 정도의 역할은 불가피한 일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기, 인류가 해결해야할 당면한 공통의 문제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10년 후 세계를 움직일 5가지 과학코드라는 부제를 단 책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은 바로 그런 문제에 대해 우리의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뮬러가 선정한 과학코드에는 테러, 에너지, 원자력, 우주, 지구 온난화가 있다. 이들 문제는 모두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를 넘어서 인류 공동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사실로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정확한 사실에 기초하고 있는지, 또한 그것들이 지구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지을만한 것인지, 혹 국가의 미래를 결정지을 정책 결정자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다른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노벨평화상 수상자 버락 오마바와 관련된 지구 온난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방사능에 대한 불안 등에 대해 저자의 시각은 우리의 상식과는 다소 어긋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아마도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이리라. 이렇게 된 배경에 대해 저자의 이야기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보여 진다. 이렇게 잘못된 사실이 일반상식으로 통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이 공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에서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이미, 지구 온난화, 남극의 오존층 구멍 등의 문제는 환경론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원자력발전소의 문제는 방사능 유출을 넘어 인류가 사용하는 연료에 대한 모색을 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문제다. 이처럼 한 개인이나 한 국가의 문제는 더 이상 그렇게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지구의 운명과 직결되기에 이는 곧바로 정치적 문제로 쟁점화 되며 해결하기 까다로운 다양한 요인과 결합된다.  

고도의 과학적 원리, 물리학적 법칙을 드러내면서도 수식이나 원리에 억매이지 않고도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국가적 중요 정책 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많은 요소들 속에서 미래의 지도자들이 알고 있어야할 물리학적 법칙의 이해정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지난 ‘천안함 사건’을 통해 익히 경험하였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되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묻히고 있다. 과학적 원리와 배척되는 어떠한 결정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결부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경험한 그동안의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정책결정의 과정을 살펴보면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 가지는 가장 큰 의의가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