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나를 물들이다 - 법정 스님과 행복한 동행을 한 사람들
변택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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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만 같은 향기를 발하는 인연들

무수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다갔다. 삶의 끝냄이 죽음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이 죽음을 바라보는 의미는 시대와 종교, 자신이 처한 조건에 따라 달리 받아들인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그를 기억하며 그가 살다간 삶의 향기를 통해 지금 자신들의 삶에 대한 성찰에 이르게 한다면 죽음 그 사람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것이 아닐까?

 

불교라는 종교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생각과 생활풍속에 이르기까지 깊숙한 영향을 여전히 미치고 있는 종교가 불교인 것이다. 수천 년에 이르는

역사에서 그만큼 많은 수행자들이 존재했고 자신만의 행적을 통해 자신이 걸어간 구도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전하고 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깊은 넓은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를 ‘무소유’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기억하는 ‘법정 스님’이다.

 

송광사 불일암은 법정 스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장소가 될 것이다. 법정 스님과 자신의 관계 속에서 특정한 장소가 차지하는 역할은 크기에 불일암에 대한 기억은 두고두고 스님의 행적을 떠올리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법정 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키워드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각기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스님과의 인연에 따라 법정 스님을 기억할 것이다.

 

이 책 ‘법정, 나를 물들이다’는 바로 그렇게 법정 스님과 자신의 인연에 따라 자신에게 이슬비처럼 젖어들었던 법정 스님의 향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조각가 최종태, 도예가 김기철, 화가 박항률, 원택 스님, 천주교 주교 장익, 원불교 교무 박청무, 방송인 이계진, 박성직, 백지현, 홍기은 등 이런저런 인연으로 이어온 법정 스님과의 인연 따라 함께 가서(同行) 함께 행복했던(同幸) 열아홉 사람의 인연 이야기가 있다.

 

저자는 불교신문인 현대불교에 ‘법정 스님과 만난 사람들’이라는 연재를 모아 이 책으로 엮었다. 가까이에서 스님을 봐온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있다. ‘무소유’라는 대표적인 이미지에 법정 스님을 가두어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다. 아마도 그러한 마음에서 열아홉 사람이라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다르면서도 같은 향기를 전하는 이야기를 모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법정 스님이 걸어온 행적 중 대표적인 것이 그것이지만 너무 한 가지 측면만 주목되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리라.

 

열아홉 사람의 이야기는 각기 다르다. 하는 일도 다르고 만난 인연도 다르기에 법정 스님과의 구체적 이야기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억에 남은 법정 스님의 향기는 비슷한 향을 발하고 있다. 이는 법정 스님이 걸어온 길에서도 나타난다. 무소유의 삶을 살다간 스님으로만 기억되다보니 법정 스님이 불교 안과 밖에 미쳤던 영향은 간과되는 듯한 느낌이다.

 

이렇게 스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단한 학승이라는 점과 사회와 사람들의 삶에 무한한 애정을 가졌던 스님이라는 점이다. 경전을 번역하는 역경원의 모태가 되었다는 점, 성철 스님과의 인연 등에서 스님이 불교 내에서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대중들이 살아가는 세계에 늘 촉수를 두고 그들의 삶에 두루두루 펼친 애정은 스님의 장기 중 하나인 글쓰기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도 싶다. 많은 사람들이 법정 스님의 책을 통해 스님을 만났다는 점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리라.

 

지긋한 나이의 사람들이 자신보다 먼저 간 사람을 기억하는 것, 그 속에는 세상과 삶에 대한 지혜가 엿보인다. 한 가지에서 통하면 만물에서 다 그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은 어쩜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각기 다른 인연이지만 그 다름은 공존의 기반이 된다. 남녀, 종교, 가치관 등 각기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인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자 했다는 스님의 말에서 지금 나는 나처럼 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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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 오래된 지식의 숲,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철 지음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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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읽는 눈, 지봉유설

최근 선비들에 대한 시각이 다양한 각도에서 도출되는 것을 본다. 대의, 명분, 청렴 등 그동안 선비를 지칭하는 말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는 것이다. 조선의 선비가 주목받으며 선비정신을 우리시대를 이어갈 정신적 가치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선비들이 과연 그럴만한 행보를 보였는지 따져 보자는 것이다. 김연수의 ‘조선 지식인의 위선’(앨피, 2011)에 바로 그러한 시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전웅의 ‘유배, 권력의 뒤안길’(청아출판사, 2011)에서도 유학의 이념을 실천한다는 사대부들이 보여주는 것은 의외의 모습들이다. 그렇다고 선비들이 가지는 의의를 편협한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공감하는 바가 크다.

 

선비가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 중에서 학문하는 학자로써의 측면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되는 책이 있다. 알마출판사에서 발행한 이철의 ‘조선 백과사전을 읽는다’ 가 그것이다. 이 책은 오래된 지식의 숲이라는 부재가 붙어있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대부 한사람인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통해 조선시대의 모습을 살피는 것이다. 이 속에서 학문하는 선비의 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유설’이라고 하면 조선 선비들이 학문하는 흐름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것이 바로 경학이라고 표현되며 지식백과에 의하면 경학은 ‘중국 유가 경전의 글자, 구절, 문장에 음을 달고 주석하며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유설이 의미를 가진다고 보인다. 유설이란 유서와 비슷한 말로 사물과 지식을 그 속성에 따라 분류해 기록한 책이다. 광범위한 책에서 발췌한 내용들을 주제별로 분류, 편집하고 자신의 의견을 붙인 것이다. 한마디로 백과사전처럼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수록한 것이다. 이런 부류의 책으로 조선시대에 발행된 이수광의 ‘지봉유설’과 이로부터 100여년 뒤에 출간된 이익의 ‘성호사설’ 그리고 조선 후기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이 있다.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에서 저자는 지봉유설을 기본으로 하고 성호사설을 참고하면서 당시 조선 사회를 읽어간다. 지봉유설에는 학문하는 선비의 기본이 되는 것이 경학이기에 단연코 이와 관련된 분량이 많다. 하지만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자연, 지리, 풍속, 언어, 음식, 기담, 문화 등 당시 접할 수 있는 세계의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를 통해 당시 사회를 이끌어갔던 지배층의 시각을 알 수 있으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도 알 수 있다는 점이 그 가치를 높여주는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의 공식적 기록물인 왕조실록에는 기록되지 않은 점도 기록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로도 높게 평가받는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은 저자가 지봉유설에 선별한 내용을 통해 당시의 시대를 읽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보다는 100여년의 차이가 나는 상호사설과 비교분석한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100여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를 통해 시회를 관통하는 사상의 흐름과 더불어 백성들의 삶의 변화도 살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성리학이라는 학문이 변화되어 가면서 경직화된 모습, 세계 지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조선에 전래된 외래 물품이나 신분사회에서 노비를 바라보는 시각 등이나 백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풍속 등에 대한 다른 의견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이 살았던 시대는 조선이 건국 된지 200여년이 지난 후였으며 임진왜란 등의 전란을 겪었으며 사림들의 당파 싸움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또한 중국을 통해 새로운 학문이 들어오며 실학이라는 학문의 맹아가 싹트는 시기였다. 즉, 경학의 시대를 넘어 실학의 시대로 이행하는 변혁의 시대였다. 이런 때를 반영하는 지봉유설에 담긴 당시의 상황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조선 사회의 풍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두 선비의 저서를 통해 그들이 지향했던 사회에 대한 이증적인 태도를 볼 수 있다. 학문과 실생활의 접목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사상적 흐름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혁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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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KBS 2FM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을 추억하는 공감 에세이
김성원 지음, 김효정 사진 / 인디고(글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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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끝낼 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지난밤엔 밤하늘에 별이 총총히 빛나고 달빛에 좋았다. 시골집 마당에서 바라본 하늘이 있더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어제 밤에는 하얀 달빛에 달랑 별 하나만 보였다. 그나마 그 별이 있어 달이 외롭진 않았겠다는 생각이다. 지구의 그림자인 달은 늘 지구를 향해 눈길을 보낼 테지만 그 달을 보는 별은 또 어떤 마음으로 달 곁에서 머물고 있을까?

 

이런 밤이면 벗할 수 있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 창문으로 파고드는 달빛에 혹시나 그리운 이의 그림자라도 비칠까 자꾸 창으로 눈이 가는 밤에 더없이 좋은 벗으로는 라디오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깊어가는 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마음들이 서로의 시린 가슴을 달랠 수 있는 것은 비슷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 이야기를 밤하늘로 쏟아 올려 세상의 시린 가슴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라디오이니 시린 가슴이 먼저 알게 되는 것이리라.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녀가 말했다’는 그 라디오가 매개가 되어 만들어 내 놓은 이야기다. 라디오 구성작가인 김성원은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서툰 몸짓으로 하루를 엮어가다 쉬는 시간인 밤에 다른 사람들의 쉼을 위해 불을 밝혀야 하는 라디오 심야프로그램에서 그녀는 말을 했다. 수많은 청취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담았기에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세상과 만나는 것이리라.

 

그녀는 깊어가는 밤과 벗하고 있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 라디오와 함께 깊어가는 밤을 밝히는 대부분은 청춘의 시절을 아프게 보내는 사람들이다. 취업 걱정, 다가올 미래를 설계하며 때론 가슴 가득 담아둔 사람에 대한 못난 마음으로 뒤척이는 청춘들이 주인공인 것이다. 그녀는 그들에게 말한다. 자신이 살아오며 경험했던 바를 바탕으로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의 가슴을 모아 밝아올 내일에는 찬란한 태양이 떠오를 것이니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섬세한 사람들은 자주 다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며 예민한 촉수를 통해 예술을 창작하기도 한다.’

 

깊어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인 밤하늘과 벗하는 사람들은 남다른 감성의 소유자가 많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그런 사람들은 자주 다친다. 마음이 여리고 예민해서 내것을 그냥 다 내주면서도 아파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렇다고 무슨 거창하고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일상을 살아가며 겪는 일에서부터 한번쯤 가슴 속에 담아두고 열병을 알았던 사람들의 가슴앓이가 있기에 이건 ‘내 이야기야’라는 공감이 존재한다. 때론 우리를 삶에서 두발 딛고 살아갈 힘을 주는 삶의 지혜는 거창한 사상가나 철학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늘 상 대하는 사소한 것들 속에서 발견한다. 그녀는 바로 그러한 사소한 것들이 가지는 힘을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밤삼킨별이 찍은 감성사진들이 그 공감을 더할 수 있게 만들고 있어 한층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고 한다. 어쩜 살아가는 동안 그 이야기는 영원히 끝맺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청춘의 가슴을 울리는 그녀의 이야기는 깊이를 더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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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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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안은 없는 것일까?

트럭에 소를 실고 청와대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의 정책에 항의한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다. 또한 육우 송아지 가격이 마리당 1만원 그것도 폐기처분 가격이라고 한다. 사료 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굶기거나 어쩔 수없이 폐기처분해야 하는 상화에 처한 현실에 대한 아우성이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지난해 한미 FTA 협상에 수많은 농민들이 반대의 입장을 표현한 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토록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모든 무역 장벽을 제거하는 협정’인 FTA를 정부는 왜 관철하려는 것일까? FTA협상이 타결되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어떤 이익이 보장되기에 그렇게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반대로 미국은 무엇 때문에 여러 나라들과 FTA채결을 하려는 것일까? FTA협상이 진행되는 나라간 진행상황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협상이 진행되는 양국 간 이해당사자들 모두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 이상하게 보인다. 이는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국가 간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우선 이러한 주장을 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잘사는 나라, 경제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비롯되고 주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 잘사는 나라들이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경제적 우위를 담보로 개발도상국이나 못사는 나라에게 강압적으로 관철시켜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은 결국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의해 이윤의 추구와 직결되는 문제일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빈곤에서 벗어나거나 살고자 애쓰는 못사는 나라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하는 것이 그들의 벌리는 자유무역 정책의 핵심일 것이다.

 

바로 이런 세계적인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국제간에 벌어지며 잘사는 나라가 강요하고 있는‘자유무역정책’이 의미하는 본질과 현재 진행되는 실상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잘사는 나라들이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저변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경제성장을 이뤄냈던 다양한 나라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지금 잘살고 있는 나라 대부분이 지난 시간에 자유무역과는 반대의 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보호무역이나 자유무역 등 정책들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자유무역, 경제개방, 공기업의 민영화, 지적재산권, 외국인 투자유치 등에서 저자 장하준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일정한 방향을 보인다. 바로 못사는 나라, 개발도상국들이 보다 잘 살기위해서 실시해야할 정책이 어떤 것에 주목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대처해야할 국제적인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주요한 방향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고 지칭하는 나라들은 이른바 잘사는 나라의 대표 격인 미국, 영국 등의 나라들이다. 이들이 차지한 국제적 지위를 이용하여 WTO, IMF 등 국제기구를 움직이며 이들 국제기구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론경제학이 주는 이해하기 어려움이 없이 현실 경제나 국가 간의 관계를 쉽게 설명하고 있어 경제나 국제문제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더 가치 있게 다가온다. 정하준의 재치 있는 미래를 예측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라도 피해만하는 가상의 현실이다.

 

장하준은 불투명한 국제관계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힘으로 몰아붙이며 개발도상국들의 희망을 빼앗는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도 희망을 이야기 한다. 그가 희망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양자가 두루 살길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다면 생각을 바꿀 수 있고 이렇게 바뀐 생각은 희망을 내다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잘사는 나라, 강대국에 힘으로 밀리는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리 밝은 전망을 내다볼 수 없다. 힘 있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끊임없이 힘으로 밀어붙이고 줏대 없는 국내 정책입안자들은 이를 따라가는 것이 마치 애국자인 양 행세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 답은 장하준의 이야기를 빌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었던 지난 우리의 경험을 깊이 성찰한다면 답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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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박물관 - 글누리의 모음
박창원 지음 / 책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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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우리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작은 땅, 적은 인구, 그것도 부족해 세계 유일의 분담국가인 한국이 경제적 성장을 이뤄내 당당히 강대국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힘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열악한 자연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눈부신 결과를 가져온 것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인들이 가지는 창조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는 역사적 유물이나 기록유산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는 문제다. 하여,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다양한 우리의 역사적 문화유산이 선정되어 온 것이리라.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문자인 ‘한글’일 것이다.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 한글이 창제되는 과정에 대해 다소나마 알게 되면서 우리글인 한글이 가지는 의의와 가치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것은 세종대왕에 대한 관심도 있겠지만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왕과 학자들의 열정을 보면서 더욱 더 글자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한글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560여 년 전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대왕이 재위 25년부터 26년 사이(1443~1444년)에 완성한 것이다. 세종의 명에 의하여 집현전 학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한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세종이 독자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깊은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박창원의 ‘한글 박물관’은 바로 이러한 필요성에 적절한 이해를 담보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총 4부 1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글이 가지는 언어학에서 차지하는 의의와 가치는 물론 한글이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과 이후 한글과 관련된 당시 정책을 비롯하여 한글로 번역되었거나 한글로 써진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한글이 지나온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즉, 한글이 만들어진 시기부터 분단국가에서 통일 이후 한글에 대한 전망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언어학자나 전공자가 아니기에 다소 어려운 내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글자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법칙부터 한자 문화권에 있었던 주변나라들의 문자와 비교하며 한글이 만들어지는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한글이 가지는 우수성은 이미 출발부터 담보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접하기 어려운 훈민정음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은 한글에 대한 이해로 넓혀져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글자의 가치를 더울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인류가 만들어온 모든 문화유산과 과학적 업적 등에 두루 통하는 말일 것이다. 글자 역시 어느 날 불쑥 한 사람의 독창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한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삼국시대 이후 말과 글이 달라 표현하기 힘들었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향찰, 이두 등과 같은 다양한 노력들의 결과가 모아져 세종대왕에 의해 꽃피운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세종 왕이나 집현전 학자들의 업적을 평가절하 하고자는 의미는 아니다.

 

노엄 촘스키, 로버트 램지, 펄벅 등 세계적인 언어학자나 석학, 작가들이 한글에 보내는 과학성과 우수성에 대한 찬사는 있는 그대로의 한글을 나타내는 표현일 것이다. 과학화되는 현대사회에서 더욱더 주목되는 한글이 정작 우리에게 홀대받고 있다는 인상이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드라마에서 세종 이도는 문자를 알게 된 백성들이 자신들에게 닥칠 문제에 대해 스스로 잘 대처할 것으로 믿었다. 때론 지기도 하고, 목숨을 잃기도 했지만 여전히 살아 다음을 준비해온 것처럼 그들은 살아서 자신의 몫을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백성을 어여삐 여겨 글자를 만든 왕 세종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한글의 변용이 문제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까? 개념 없는 청소년들의 불장난으로 치부하기엔 변화되어가는 사회에 언어나 문자 역시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글 한글이 가지는 우수성과 과학성을 이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해 종합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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